보드게임, 단순함과 복잡함의 미학
보드게임, 단순함과 복잡함의 미학
  • 임성봉 기자
  • 승인 2014.10.09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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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판 위에서 벌어지는 숨 막히는 전략싸움
“적은 비용으로 즐길 수 있는 건전한 취미”
[일.탈_ 나만의 힐링을 공개한다] (9)-자작보드게임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다. 그렇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게 우리네 삶이다. 한 번의 선택으로 부귀영화를 누릴 수도, 반대로 밑바닥까지 가라앉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박은 인간 탐욕의 가장 상징적인 행위다. 섹스와 마약, 그리고 도박은 언제나 도매금 취급이 일쑤였다.

그런데 여기 도박과 게임의 경계에 놓인 발명품이 하나 있다. 바로 보드게임이다. 보드게임을 어떻게 도박이라고 할 수 있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이 둘은 놀랍도록 닮아 있다. 도박이 그렇듯 보드게임 역시 구라(?)를 잘 치는 사람이 이긴다. 나의 패를 숨기고 남의 패를 먼저 읽어내는 사람이 이긴다. 상대의 허점을 노려야 한다. 그리고 돈도 걸려 있다(게임에서의 돈이지만). 보드게임 역시 도박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불확실성(운)’을 재미의 원천으로 삼는다.

기자가 이번에 만난 사람은 28살의 이대환 씨다. 그는 평일에는 지인의 가게에서 일을 하고 주말에는 집으로 올라와 보드게임을 제작한다고 했다.

가깝지만 먼 보드게임

보드게임은 90년대 중반, 블루마블의 성공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은 블루마블의 아성을 넘지 못하고 ‘일회용 게임’으로 취급받게 된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해외에서 만든 질 높은 보드게임이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마니아들을 형성하게 된다. 보드게임은 이후 이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변화를 맞게 된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보드게임은 점차 마니아들만을 위한 게임이 됐고, 이제는 이들이 직접 자작보드게임을 만드는 단계까지 오게 됐다. 사라질 것 같으면서도 꾸준히 명맥이 이어져 오는 것을 보면 그 매력이 적지 않은 듯 싶다.

이를 위한 인터넷 카페도 있는데, 회원 수만 무려 1만 3천여 명이 넘는다. 이들은 카페를 통해 각자가 구입한 보드게임을 소개하고, 오프라인 모임을 가지는 등 다양한 형태로 활동한다. 보드게임제작 강의는 물론, 제작에 필요한 이미지도 서로 공유한다. 또한 자신이 만드는 자작게임에 대한 계획, 제작과정, 완성본 등 제작전반을 공개하면서 이에 대해 피드백을 받는다. 이들이 이렇게 보드게임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재미도 재미지만 많은 사람들과 직접 만나 어울리며,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게 보드게임의 매력이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기 때문에 컴퓨터게임, 비디오게임과는 다른 재미가 있다. ‘사회성’도 기를 수 있고 ‘인간관계’도 형성할 수 있어 얻어가는 것도 많다. 또 보드게임이 논리적이고 전략적인 사고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사고력을 기를 수도 있다.”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보드게임 통해 사람 대하는 법 배웠다”

프리랜서인 이대환 씨는 현재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 안전관리요원 자격증이 있는 그는 현재 지인의 가게에서 안전점검을 맡아 일을 하거나, 아이들에게 보드게임을 가르치고 있다. 가게의 경우, 많으면 하루에 600명이 찾을 정도로 규모가 상당하다고 한다.

또 아이들에게 보드게임을 가르쳐 주는 일은 보수가 적지만 꽤 즐거운 일이란다. 성인들이 즐기는 보드게임과 달리 아이들의 정서발달이나 사고력증진을 위한 교육용 보드게임도 있는데, 이대환 씨는 아이들에게 교육용 보드게임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능력은 ‘사람 대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사람의 심리를 읽어야 하는 보드게임을 통해 사람 대하는 방법을 알기도 했지만, 사람들과 직접 만나 취미를 공유하면서 얻은 것이 더 많다고 했다.

“온라인으로도 보드게임을 할 수 있지만,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게임하는 것은 요즘시대에 메리트 있는 일이다. 일면 도박과 비슷하지만, 굉장히 건전한 놀이가 바로 보드게임이다(웃음). 게다가 앞서 말했듯 사회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물론, 논리력도 키울 수 있으니 일석다조다.”

포커페이스, 그리고 ‘기만책’

기자도 모임이 열리는 주말에 함께 게임을 즐겨봤다. 이른 시간이라 모인 인원은 기자를 포함해 4명. 제일 먼저 했던 게임은 ‘레지스탕스:쿱’이다. 규칙은 간단하다. 각자 두 장의 카드를 갖는데, 이 카드에는 각각 공격능력과 방어능력이 있다. 이 능력에 맞춰 자원을 수집하고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다. 이 게임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구라(이들은 이걸 속임수가 아닌 구라라고 표현한다)를 잘 쳐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가진 패가 A라 하더라도 B카드를 가지고 있는 척 하면서 상대를 견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있어도 없는 척, 없어도 있는 척’해야 한다는 것이다. 혹 상대의 패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공격했다가는 역으로 내 카드 한 장을 버려야 한다.

첫판에서 기자는 가장 먼저 패배했다. 어떤 카드를 들고 있는지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포커페이스를 유지해도 여지없이 들통 났다. 하지만 반대로 상대의 패를 읽으려고 하면 헛다리를 짚기 일쑤였다. 코너에 몰려 당황하면 어김없이 필패였다. 영화 <타짜>에서 나온 명대사 “쫄리면 뒈지시든지”는 보드게임에서도 통했다.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보드게임의 진정한 재미는 ‘자작’

이들은 이제 단순히 즐기는 걸 넘어, 스스로 보드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간단한 퍼즐부터 복잡한 수준의 전략보드게임까지 각양각색이다. 그야말로 창의성과 자유성만 있으면 누구든지 제작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전쟁을 주제로 할 수도 있고, 경영을 주제로 할 수도 있다. 시대배경도 제작자 마음이다. 주말마다 보드게임을 제작하는 이대환씨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메모를 해둔단다. 현재 이대환씨는 중세를 배경으로 선과 악의 싸움을 담은 보드게임을 제작 중에 있다.

“보드게임을 제작하는 일은 생각보다 즐겁다. 지금은 선과 악으로 상징되는 두 팀이 승리를 위해 경쟁하는 게임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규칙을 정하고 밸런스를 맞추는 일이 쉽지 않다보니, 계속해서 수정작업 중에 있다. 알다시피 창작의 고통이 상당하다(웃음). 하지만 보드게임의 매력을 한 번 맛보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다. 나중에는 이런 과정 자체를 즐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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