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껍질은 왜 미끄러울까?
바나나 껍질은 왜 미끄러울까?
  • 참여와혁신
  • 승인 201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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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이그 노벨상 수상자 발표…유머와 해학 풍성
노벨상 수상 맞춰 91년부터 시상…기상천외한 연구결과 속으로
과학칼럼니스트

10월은 노벨상의 계절이다. 매년 이맘때면 우리 삶에 기여한 사람들이 노벨상의 영예를 안는다. 노벨상 발표 전 미국 하버드대에서도 비슷한 시상식이 열린다. 미국의 과학 유머잡지인 ‘별난 연구 연보(Annals of Improbable Research, AIR)’가 1991년 만든 이그 노벨상(Ig Nobel Prize) 시상식이다. ‘따라할 수 없고, 흉내 내서도 안 되는’ 기발한 연구에 주어지는데 먼저 웃기고 나중에 의미를 곱씹게 하는 성과들이 많다. ‘보잘 것 없는’, ‘비천한’ 등의 뜻을 가진 ‘이그(Ig)’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구석을 파고들어 세상을 한층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올해 9월 18일 선정된 배꼽 빠지는 이그 노벨상 수상작이다.

인공관절 연구 때문에 바나나를?

“올해의 물리학상 수상자는 일본 기타사토(北里)대의 마부치 기요시(馬??資) 교수팀입니다. 이 분들은 ‘바나나 껍질을 밟으면 미끄러지기 쉽다’는 내용을 밝혀냈습니다.”

수상작을 듣고 한바탕 웃음이 터진다. ‘바나나 껍질이 미끄럽다’는 건 어린아이도 다 아는 간단한 상식이니 당연한 반응이다. 코미디 영화나 드라마, 만화 속에서 바나나 껍질을 잘못 밟고 미끄러지는 장면은 지루할 정도로 등장한다. 그런데 굳이 거창한 실험까지 하며 연구한 까닭은 무엇일까. 조금 동떨어져 보이지만 이 내용이 인공관절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관절을 연구하고 있는 마부치 교수는 마찰이 줄어들기 때문에 관절 통증이 생기고, 같은 원리로 바나나 껍질이 미끄럽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바나나 껍질이 얼마나 미끄러운지 측정한 자료는 없었다. 그래서 직접 바나나 껍질과 구두 사이, 바닥과 바나나 껍질 사이의 마찰계수를 측정해 ‘바나나 껍질의 위험성’에 대한 논문을 쓴 것이다.

마부치 교수에 따르면 바나나 껍질 안쪽에는 점액이 가득 찬 알갱이가 가득 들어있다. 바닥에 떨어진 바나나 껍질을 밟게 되면, 이 알갱이가 터지면서 마찰이 줄어들어 미끄러지게 되는 것이다. 연구진의 실험 결과 바나나 껍질 위를 걸었을 때 마찰계수는 보통 때의 20%도 되지 않는다. 마부치 교수는 “이 연구는 바나나를 실컷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우스갯소리를 하며 “바나나의 마찰계수는 사람을 넘어뜨릴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고, 이 연구는 인공관절의 연결부를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 이그노벨상 홈페이지
돼지고기로 코피를 막는다?!

의학상 역시 상상도 못할 연구 결과가 선정됐다. ‘코피를 흘리는 어린이 콧구멍에 길게 자른 돼지고기 조각을 넣으면 지혈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미국 디트로이트 의료센터 연구진은 ‘글라즈만 혈소판무력증(Glanzmann thrombasthenia)’이라는 병 때문에 심각할 정도로 피를 흘리는 어린이를 위한 치료법을 고심하다 이런 성과를 얻었다.

글라즈만 혈소판무력증을 앓는 환자들은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많은 피를 흘리게 된다. 혈액응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환자들의 고통을 줄여줄 치료법을 찾기 위해 디트로이트 의료센터 연구진은 새로운 발상을 해야 했다. 소날 사라이야(Sonal Saraiya) 박사는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오래 전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대처했을지 고민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코피를 흘리는 4살짜리 어린이의 코에 소금에 절인 뒤 얇게 자른 돼지고기 조각을 넣었다. 그러자 콧속에서 출혈을 막는 효과가 있었다. 많은 양의 소금이 코 안에서 유체를 끌어당기는 바람에 지혈하는 데 도움이 된 것이다.

이들은 “이번 연구결과는 글라즈만 혈소판무력증으로 고통 받는 환자가 많은 코피를 흘릴 경우 돼지고기 조각이 효과가 있다는 걸 보여줬다”면서도 “코피 환자의 코 안에 돼지고기 절임을 쑤셔 넣는 것은 모든 정식 치료법이 다 실패한 뒤 마지막 수단이며, 감염 위험이 있으므로 일반적인 경우에는 사용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토스트에서 예수를 본다?

신경의학상 수상자는 토스트가 탄 자국에서 예수 얼굴이 보인다는 사람들의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로 촬영한 캐나다 연구진에게 돌아갔다. 이강 토론토대 교수팀은 사람들에게 임의적으로 생긴 무늬를 보여주고 그 형상을 맞춰보라고 주문했다. 이처럼 우연히 생긴 현상 속에서 질서를 찾으려는 경향을 ‘파레이돌리아(pareidolia)’라고 하는데, 연구진은 이 때 뇌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관찰한 것이다.

이강 교수는 “흥미롭게도 사람들은 토스트 조각에 생긴 무늬에서 사람 얼굴을 본다”며 “이 때 뇌 속에서 이미지를 처리하는 과정은 실제 사람 얼굴을 보고 처리하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특정 무늬를 사람으로 인지하는 능력은 사람은 물론 침팬지에게서도 나타난다. 이 교수에 따르면 사람으로 인지되는 무늬에서 나타나는 얼굴은 개인적인 기대나 믿음에 의해 결정된다. 가령 불교 신자라면 토스트 조각에서 예수 대신 부처를 보게 되는 식이다.

이밖에도 심리학상은 호주·영국·미국 공동 연구진이 발표한 ‘습관적으로 늦게까지 깨어 있는 사람은 평균적으로 자만심이 더 강하고 영악한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받았다. 공공보건 분야에서는 ‘고양이를 키우는 게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을 수 있다’고 밝힌 체코·인도·일본·미국 공동 연구진이 선정됐다. 이들은 “그렇다고 고양이를 버리라는 것은 아니”라며 “단순히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우울함을 느껴 고양이를 기르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동물에 관한 연구결과도 있다. 체코·독일·잠비아 공동 연구진은 ‘개들이 지구의 남북 방향 자기장선에 일직선으로 몸을 맞춰 배변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로 생물학상을 받았다. 또 북극곰처럼 보이는 옷을 입고 북극해 스발바르군도에 사는 순록에게 다가가 반응을 살핀 노르웨이 연구진은 극지과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