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쓰나미와 고독한 노인
실버 쓰나미와 고독한 노인
  • 참여와혁신
  • 승인 2014.10.10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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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사회 진입 앞둔 한국, 노인 위한 직업 속속 등장
개인주의 문화 확산…외로운 노인 위한 서비스 각광

박사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에 따르면 한국은 2030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65세 이상이 전체인구의 20%, 즉 5명 중 1명이 노인인 사회가 된다는 뜻이다. 참고로 2014년 현재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12.7% 수준이다. 기대수명은 점차 늘어나는 반면 출산율은 세계 최저수준이니 고령화 속도도 세계최고다. 61세 회갑연(回甲宴)이 사라지고 70세 고희연(古稀宴)으로 바뀌었듯이 80세 산수연(傘壽宴)이 대세가 될 날도 멀지 않은 듯하다.

농업사회에서 노인은 지식과 경험의 전수자로서 공동체로부터 존중받았다. 장수가 드문 일이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축복받을 일이었다. 대가족제도하에서 노인부양은 전적으로 가족구성원의 몫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달라졌다. 우리 국민소득은 2만 불을 훌쩍 넘어섰지만, OECD 회원국 중 노인빈곤율 1위다. 가계부채, 사교육비에 허덕이는 자식들은 제 앞가림하기에도 급급하다. 빈곤과 더불어 노인의 심리적, 정서적 고립감과 박탈감도 문제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바뀌면서 노인소외가 본격화하고 있다. 서울에 사는 65세 이상 어르신의 20%가 ‘독거노인’이라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그나마 건강할 때는 경로당도 다니고 소일거리를 찾으니 덜하지만, 거동이 불편해지는 순간부터가 문제다.

 정신 대화사

군중속의 고독.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이 도시화, 산업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에 부대끼며 사는 현대인들이 느끼는 외로움과 소외를 표현한 말이다. 아는 사람은 많지만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드물고, 이웃은 많지만 인사하며 지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인터넷, 소셜서비스에 열광하지만 막상 시간을 내서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개인주의, 사생활이 강조될수록 고독의 그림자가 짙고 길게 드리우는 것이 현대사회다.

정신 대화사는 풍요 속에 빈곤, 군중 속에 고독을 느끼는 현대사회 인간의 고독문제를 전문적인 지식과 기능, 그리고 따뜻한 대화로 해결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외로움으로 고통 받는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나 방문하여 공감을 바탕으로 단순한 정서적 지원부터 전문적인 상담까지 대화를 통해 문제에 접근한다. 이들은 고령자, 은둔형 외톨이, 대인관계를 힘들어하는 사람, 간병에 지친 사람, 사고나 재해 피해자 등 다양하다.

상담사가 전문적 지식으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에 초점을 두는 반면 정신대화사는 대화 그 자체가 주는 위로와 소통에 방점을 둔다.

우리나라에는 정신 대화사가 정식 직업으로 막 시작되는 단계에 있는데, 각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독거노인들을 위한 말벗도우미 사업이 대표적이다. 자원봉사, 복지서비스전담요원 배치, 노인공동체 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고독사를 막고 안부를 확인하는 것이 일차적인 업무다.

독거노인의 생활을 관리하고 고독사를 막기 위해 주 2~3 차례 전화로 안부를 확인하거나, 직접 노인을 방문해 대화, 간병, 돌봄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 밖에도 장애인이나 새터민을 대상으로 한 말벗도우미, 투병 중인 환자들을 위한 말벗도우미 등이 있지만 대부분 자원봉사 활동으로 사회공헌의 성격을 띠고 있다.

▲말벗봉사 ⓒ (주)팔도
실버로봇서비스 기획자

일본에서는 노년층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말하는 인형이 인기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잘 들어오셨어요” 등과 같이 노년층에게 적합한 단어를 주로 사용한다. 다양한 센서를 내장하여 1,400만여 단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반응형 인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용자가 오랫동안 말이 없으면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대화의 맥락에 맞는 반응을 보이는 등 기능도 다양하다. 로봇이 산업현장에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듯이 지금 다양한 실버로봇이 개발되고 있다. 목욕, 간병, 청소 등은 물론 말벗까지 범위도 다양하다. 실버로봇서비스 기획자는 노인들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서비스가 실버로봇을 통해 구현될 수 있도록 콘텐츠를 기획하는 일을 담당한다.

노인의 연령, 성별, 경제력, 건강상태, 주거상태 등에 따라 요구하는 서비스도 다양하기 때문에 해당 집단별로 세분화된 수요조사가 필수적이다. 판매대상 및 서비스카테고리가 좁혀지면 상세한 서비스 콘텐츠를 기획하고 기계적 성능, 통신망과의 연결 등과 더불어 노인친화적인 디자인을 개발한다.

기존에 출시된 실버로봇이 제한적으로 보급된 데는 기계적 성능을 중시한 나머지 친밀감이 떨어진데도 원인이 있기 때문에 로봇의 사용방법, 메뉴의 폰트나 화면의 색상같은 디자인 등을 노인친화적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설계된 스토리보드를 프로그램개발자, 로봇엔지니어, 당뇨모니터링 같은 실버서비스 제공자들에게 설명하여 고객과 사용자가 원하는 실버서비스가 로봇을 통해 구현되도록 한다.

실버로봇테스트나 시범사업을 통해 실버서비스가 현실적으로 구현가능하고 노인들이 꼭 필요로 하는 것인지를 검증하기도 한다.

실버로봇서비스 기획자가 되기 위해 특별한 전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실버와 로봇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필요하며, 노인복지 관련전공, 소프트웨어, 콘텐츠 학과 등을 융·복합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유리하다. 노인복지사나 요양관리사 등 노인복지 관련 자격증을 취득해두면 깊이 있는 콘텐츠를 기획하는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