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주도권을 확보하라
시간의 주도권을 확보하라
  • 최영우 한국노동교육원 교수
  • 승인 2006.05.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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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우
한국노동교육원 교수
‘D사는 지난 4월부터 임금협상을 진행하고 있는데, 7월에 있을 중국공장 오픈 전에 임금협상을 마무리하기 위해 협상타결을 서두르고 있다. 노동조합도 11월에 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있어 가급적 협상을 조기에 마무리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회사측의 협상 데드라인을 알아채고는 계속해서 협상을 지연시키고 있다’

 

협상에서 ‘시간’(time)은 정보(information)·힘(power)과 함께 협상력을 결정하는 3가지 변수 중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협상을 준비할 때에는 협상할 수 있는 시간을 어떻게 설정하고 어느 시점에서 협상을 타결할 것인지를 기획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국가간에 분쟁이 발생하였을 때 일정기간 안에 이를 외교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는 것처럼 노사관계에서도 협상이 적절한 시점에서 타결되지 못하면 많은 시간과 비용을 허비하거나 파업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협상자들이 협상테이블에서 아무리 느긋하고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일지라도 사실은 누구나 시간적인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협상의 고수일수록 자신의 협상마감시간을 드러내지 않는 법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협상의 주도권을 잡아 나간다. 

시간활용전술은 상대의 마감시간을 알아채고 상대를 압박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 외에도, 언제까지 계약하지 않으면 그 다음날부터 가격이 인상된다고 선전하는 것처럼 스스로 마감시간을 정해 상대방에게 통보함으로써 상대방이 시간에 쫓겨 그릇된 판단을 하도록 활용되기도 한다. 

또한 시간활용전술은 상대에게 협상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내가 의도한대로 협상을 끌고 가기 위해서도 사용된다. 남북협상에서 남한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공연관람이나 행사참석 등으로 허비하게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결과적으로 회담할 시간을 줄임으로써 뭔가 표면적인 성과를 얻어가고자 하는 남한 쪽으로부터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그런데 노사협상에서 ‘시간’의 문제는 일반적인 협상에서와는 다른 특징을 내포하고 있다. 회사는 노사협상도 경제성의 관점에서 가능한 한 빨리 끝내고 싶어할 것이다. 

반면 노동조합은 경제조직이 아닌 정치조직으로서 경제성보다는 명분을 중요시하고, 오히려 협상을 빨리 끝내면 능력 있는 집행부라는 칭찬보다 ‘어용’이라는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더 크다. 1년 내내 협상을 끌다가 연말에 타결해도 임금인상은 소급되어 지급되므로 협상타결을 굳이 서두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 회사측에서 법적으로 시간활용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카드가 있다. 임·단협은 2년 이내의 유효기간이 정해져 있는데, 그 기간이 경과하고 3개월의 여후효 기간도 지나면 기존의 단체협약은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 이런 상황이 되면 노동조합은 무협약 상태를 피하기 위해 오히려 협상을 서두르게 될 것이며, 비록 자동연장조항이 있더라도 사측에서 단체협약 일방해지권한으로 대응할 수 있다. 

그러면 협상에서 시간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인내는 쓰고 그 열매는 달다’는 격언을 기억하라. 협상시한을 여유 있게 잡고 조급하게 굴지 말아야 한다. 수많은 사례를 통해 검증된 것 중 하나는 시간을 많이 들인 협상일수록 서로가 협상결과에 만족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둘째, 상황에 따라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한다. 스스로 협상시한에 쫓기고 있거나 상대의 압박에 밀리고 있다고 생각되면 그 상황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36계’의 마지막 계인 주위상(走爲上)의 계에서처럼 물러나서 다시 준비하는 것이다.

셋째, 80:20의 법칙을 기억하라. 까다로운 협상일수록 협상초기에는 잘 풀리지 않다가 마감시간이 임박해서 타결되는 경우가 많다. 협상에서 양보의 80%는 마지막 20% 시간을 남겨놓고 이루어진다. 

글머리의 사례에서 회사측은 노조측의 시간지연과 압박전술에 밀려 양보하지 않아도 될 것을 양보하면서 허겁지겁 임금협상을 마무리하였다. 협상을 시작하면서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시간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