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 괴리 극복하고 성숙한 민주주의 정착시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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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4.11.03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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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 넘어 사회구성원 요구도 자기 과제로 받아야
우려 있다고 직선제 안 할 수는 없다
[분석 1] 민주노총의 아젠다

ⓒ 민주노총
민주노총이 새로운 변화를 앞두고 있다. 지난 수년간 이슈의 중심이었던 임원직선제가 드디어 시행되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오는 12월 3일부터 9일까지 진행되는 제8기 임원선거를 직선제로 치른다. 기존에는 대의원대회서 간선으로 위원장과 사무총장 후보조를 선출했지만, 이번 제8기 선거에서는 위원장과 수석부위원장, 사무총장 후보조를 조합원들의 직선으로 선출한다. 직선으로 선출될 민주노총 제8기 지도부 앞에는 어떤 과제가 놓여 있을까?

우여곡절 끝에 실시되는 직선제

민주노총이 밝히고 있듯이 임원직선제는 공직선거를 제외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선거다. 민주노총이 이번 제8기 임원선거를 직선으로 치르게 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김영훈 전 위원장은 ‘임기 내 직선제 완수’ 공약을 이행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임기가 끝나기 전에 사퇴를 하기도 했다.

민주노총에서 처음으로 직선제가 제기된 것은 제2기 위원장인 이갑용 집행부 때였다. 이갑용 전 위원장은 민주노총 조합원의 주권 보장을 주장하며 직선제를 실시할 것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갑용 위원장의 제안은 1999년 열린 대의원대회에서 대의원 2/3의 찬성을 얻는 데 실패해 부결됐다.

한 차례 부결된 직선제는 지난 2006년 보궐선거에서 다시 이슈로 떠올랐다. 앞선 2005년 2월 대의원대회가 폭력사태로 유회되면서 정파 간의 갈등이 표면으로 떠올랐고, 2005년 10월에는 강승규 전 수석부위원장이 사용자단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이로 인해 지도부가 총사퇴하기에 이르렀고 민주노총의 도덕성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민주노총은 조합원과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이런 상황에서 실시된 2006년 보궐선거에서, 이른바 좌파는 선거 운영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며 선거를 보이콧했다. 정파구도가 굳어진 민주노총 선거는 정파 간의 지분을 확인하는 과정일 뿐이며, 정파 구도에서 넘기 힘든 조직세가 확인됐는데 굳이 선거에 참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 좌파가 선거를 보이콧하며 제기한 것이 정파 구도를 넘어설 수 있는 선거제도의 혁신, 바로 직선제였다.

좌파의 직선제 제기는 다수 조합원의 호응을 얻었다. 각 정파들도 직선제를 도입하자는 데에 공감했다. 하지만 직선제를 규약에 명시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다. 제5기 임원선거를 앞두고 열린 2006년 8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는 성원 미달로 유회됐고, 직선제를 도입되지 못했다.

2007년 1월 대의원대회에서도 직선제가 안건으로 상정됐다. 하지만 제5기 임원선거를 마친 대의원들이 다수 퇴장하면서 논의가 미뤄졌다. 당시 제5기 위원장으로 선출된 이석행 전 위원장은 차기 대의원대회에서 직선제를 1호 안건으로 상정할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그 약속에 따라 그해 4월 열린 대의원대회에서 마침내 직선제 규약개정이 이루어졌다. 당시 민주노총은 3년간의 준비를 거쳐 제6기 임원선거부터 직선제를 적용키로 결정했다.

하지만 제6기 임원선거를 앞둔 2009년 8월, 직선제를 유예하자는 주장이 공식적으로 제기됐다. 가맹·산하조직별로 구성하기로 했던 선관위가 구성되지 않은 곳이 많을 뿐만 아니라 투표권 부여기준 등도 정리되지 않아 직선제를 치를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 외에도 우려되는 부정선거 방지대책이 충분치 않고, 당시 민주노총은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공기업 선진화 방안에 대한 대응 등 굵직한 현안을 앞두고 있어 직선제를 실시할 여력이 되지 않는다는 점도 직선제 유예의 근거가 됐다. 결국 그해 9월 대의원대회에서는 직선제를 3년간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2010년 1월 열린 대의원대회에서 제6기 임원으로 당선된 김영훈 전 위원장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직선제 시행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임기 내에 직선제를 완수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임기가 끝나가던 2012년 하반기에도 직선제 준비는 여전히 미흡했고, 그에 따라 직선제 유예가 다시 대의원대회 안건으로 상정되기에 이르렀다. 김영훈 전 위원장은 결국 직선제 완수 공약을 이행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그해 10월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사상 초유의 지도부 공백사태를 거쳐 2013년 7월 대의원대회에서 선출된 제7기 신승철 위원장에게도 직선제는 반드시 완수해야 할 과제였다. 더구나 제7기 임원의 임기는 직선제 시행을 전제로 2014년 말까지로 단축됐다. 사실상 2014년 말에 직선제를 시행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진 것이다.

ⓒ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민주노총 선거, 관심을 높여라

이 같은 과정을 거쳐 민주노총은 드디어 오는 12월 사상 처음으로 임원직선제를 시행한다. 이에 따라 10월말 현재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는 후보군들도 다수다. 그러나 오랜 논란 끝에 시행되는 직선제이지만 여전히 우려되는 점도 남아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아직까지 임원직선제가 민주노총 조합원들 사이에서 이슈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난점이다. 실제로 모 가맹조직의 경우, 선거인명부 작성을 위해 조합원 명단을 올리면서 각 산하조직에서 실인원이 아닌 축소된 인원을 보고했다는 이유로 민주노총에 축소된 조합원 명단을 올렸다. 해당 가맹조직의 산하조직에서 실 조합원은 200명이지만 100명만 선거인원으로 보고해, 이 가맹조직은 민주노총에 해당 산하조직의 선거인원이 100명이라고 명단을 올린 것이다.

이와 같이 일부 가맹조직에서 명단을 축소해서 올린 것은 무엇보다도 조합원들의 선거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선거가 1주일간 진행되지만, 민주노총 임원선거에 참여하려면 일부러 시간을 내야 하는 것이 현실이고, 많은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일부러 시간을 낼 만큼 선거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조합원의 관심이 낮은 것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우선 2007년 4월 직선제가 도입된 이후 실제로 시행되기까지 6년 8개월이라는 시차가 있었다는 점이 큰 원인이다. 처음 도입될 때만 해도 민주노총의 혁신이라는 내부적 과제가 중요한 이슈였지만, 예정된 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유예되면서 조합원들의 관심도가 낮아졌다. 조합원들이 속한 사업장의 현안 하나를 해결하는 데에도 벅찬 상황에서 총연합단체인 민주노총의 혁신은 자연스럽게 묻혀버린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임원선거를 위한 투표시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도 큰 장애물이다. 대선이나 총선 같은 공직선거가 있는 날은 해당 날짜를 임시 휴무일로 지정해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투표시간이 주어진다. 하지만 민주노총 임원선거를 위한 투표시간은 보장되지 않는다. 따라서 선거에 관심 있는 조합원이 투표를 하려면 별도로 자기 시간을 쪼개서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 민주노총이 ARS 방식을 활용한 투표도 허용하기로 했지만 조합원들이 짧은 시간이나마 자기 시간을 쪼개야 한다는 점은 변함없다.

민주노총에서는 입후보자가 결정되고 실제로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조금씩 관심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민주노총은 기관지인 <노동과세계>는 물론 온·오프라인을 통해 다양하게 홍보하면서 조합원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만 공직선거처럼 행정력을 동원해 홍보를 하는 것이 아닌 만큼 조합원들이 스스로 관심을 가지고 선거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선거관리의 문제다.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이 전국 방방곡곡에 산재돼 있는 만큼 투표소만 해도 2만여 개에 이른다. 문제는 투표소를 설치한다고 해도 이를 관리할 수 있을 만한 인력이 확보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민주노총의 재정과 여건상 투표관리를 위한 상근인력을 배치하는 데에는 한계가 따른다.

이 때문에 한 가맹조직의 간부는 “민주노총에 임원직선제가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3년마다 한 번씩 치러질 직선제선거를 위해 민주노총이 재정을 적립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간부는 “혹시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2차 투표를 하게 되면 예산이 그만큼 늘어날 텐데, 그에 대한 준비까지 고려하면 직선제 한 번 치르는 게 보통 문제가 아니다”고 이야기한다.

이 간부는 또 “현재 임원직선제가 완전한 선거공영제가 아닌 만큼, 홍보물 종류 등은 제한을 둔다 하더라도 결국 선거운동을 위한 자금을 동원할 능력이 있는 후보들에게 유리한 것은 아닌지도 중요한 이슈”라면서 “민주노총 임원직선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완전한 선거공영제를 달성해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결과 불복, 우려는 여전

선거과정에서의 문제점도 우려된다. 우선 제기되는 문제가 투표 결과에 대한 승복 여부다. 비록 총연합단체 선거는 아니지만 그동안 임원선거에서 결과에 불복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05년 진행된 금융노조 임원선거와 올해 진행된 전국공무원노조 임원선거다.

두 후보조 간의 경선으로 치러진 2005년 금융노조 임원선거에서는 전자투표 시스템이 도입됐다. 하지만 선거 당일 시스템에 에러가 발생하는 등 선거관리에서 미숙함이 발생했다. 선거에 앞서 유권자 인증을 위한 인증카드를 발송하기로 했지만 일부에서 인증카드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했고, 결국 인증카드 시스템은 전량 폐기됐다. 그뿐만 아니라 전자투표 시스템에 발생한 장애를 복구하지 못해 수기투표로 전환했지만, 개표과정에서 일부 지부가 중앙집중식 개표 방침을 어기고 투표함을 개봉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그 결과 새로운 선관위가 구성돼 선거 43일 만에 개표를 진행했으나, 1달여 만에 일부 지부에서 선거무효소송이 제기됐고, 결국 법원에서 선거무효 판결이 내려졌다.

역시 두 후보조 간의 경선으로 치러진 전국공무원노조 선거도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올해 1월 전국공무원노조 제7대 임원을 선출하기 위한 투표가 진행됐지만, 7만여 명이 참여한 투표 결과 두 후보조 간의 표차는 불과 10표였다. 선관위가 최다득표자를 결정하고 1위 후보조에 대한 찬반투표로 결선투표를 진행한다고 공지하자, 상대편 선거운동본부에서 투표관리 상의 문제점 등을 들어 이의를 제기했다. 결국 선관위의 미숙한 선거관리로 인해 선관위가 새롭게 구성됐고, 처음 결정했던 1위 후보조에 대한 결선투표가 아니라 재투표가 치러진 끝에 임원선출이 이뤄질 수 있었다.

이들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상황은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는 문제다. 더구나 수기투표와 ARS방식의 투표가 동시에 진행되는 점을 감안하면 선거관리 상의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민주노총은 후보등록이 마감된 후 룰 미팅을 통해 민주노총 직선제가 ‘조직 혁신’ 과제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것이며 따라서 정정당당하게 정책을 겨루고 결과에 승복하는 자세를 각 후보조에 주문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각 후보조의 이해관계에 따라서는 결과에 불복하거나 최악의 경우 법적 소송까지 제기할 수 있다는 점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동안 각종 선거에서 나타났던 투표 과정에서의 문제점도 우려를 낳는다. 예를 들어 해당 사업장의 집행부와 다른 견해를 가진 후보조의 출입을 막는다든지, 투표함을 들고 돌아다니면서 투표를 유도하는 행위(이른바 통돌이), 대리투표 등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완전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공직선거처럼 특정한 날짜에 충분하게 부여된 투표시간이 보장되고 선거를 관리할 충분한 인력이 있다면 이 같은 문제를 차단할 수 있겠지만, 그런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각종 부정선거에 대한 완전한 해결책을 가지기 어렵다.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것은 이번 직선제가 조직 혁신을 위한 과제인 만큼 후보자와 조합원, 선거관리자 모두 그런 사명감을 가지고 임원직선제에 임할 것이라는 기대뿐이다.

ⓒ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민주노총, 노동자·민중의 희망 되려면

한 가맹조직의 지역지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간부는 이번 선거를 두고 “상층부 중심의 활동과 사고방식을 고집한다면 대중과의 괴리감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만큼, 대중적 공감대를 얻으려면 사고방식과 활동의 전면적인 혁신이 필요하다”면서 “하지만 지금 민주노총을 보면 내부적으로 정파들 간의 정치만 있을 뿐 조합원들의 공감대를 얻기 위한 노력은 미흡하다”고 비판한다. 이 간부는 이 같은 상황을 “답이 안 보인다”는 말로 표현했다.

하지만 민주노총 직선제를 준비하고 있는 박석민 직선제본부 총괄팀장은 “상황이 만만치 않지만 직선제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르고 나면 최초로 직선제로 임원을 선출한 만큼 조직의 운영과 위상도 높아질 것”이라며 “직선제로 구성된 지도부인 만큼 어떤 사업을 하더라도 힘 있는 결정과 집행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여러 가지 우려되는 상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우려가 있다고 해도 직선제가 가지는 장점을 고려하면 직선제를 포기해서는 안 되며, 그런 우려가 현실화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의미다.

반면 한 가맹조직 임원은 “지금 민주노총은 직선제를 어떻게 하면 잘 치를 것이냐 하는 문제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면서 “문제는 직선제 이후에 민주노총이 어떤 활동을 통해 낮아진 민주노총의 위상을 높이고, 노동자와 민중의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결국 민주노총에는 이번 임원직선제를 간부들과 조합원들 사이의 괴리감을 극복하는 과정으로 만들어가야 할 뿐만 아니라, 성숙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계기로 만들어야 할 과제가 주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조합원들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자, 사회구성원들의 문제를 자기 요구로 전환해 해결하려는 노력도 중요한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