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사장’이 오리무중?
진짜 사장’이 오리무중?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4.11.03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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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 협력업체 인력운영구조, 대대적으로 뜯어고칠 필요
업무지시에 성과 포상까지, 허울뿐인 도급
[분석 5] 통신 협력업체 근로감독결과 발표

지난 9월 29일 고용노동부는 SK브로드밴드 및 LG유플러스 협력업체 27개 사에 대한 노동관계법 위반 수시감독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5월부터 대상 업체를 선정해 근로감독에 들어갔던 것에 비하면 대단히 ‘뜸을 들이다’ 발표한 격이다.

많은 사업장이 기초고용질서를 준수하지 않고 있으며, 최저임금 위반, 금품 미지급 등의 사례도 적발했다. 아울러 문제가 되고 있는 ‘개통 기사’들의 근로자성 인정 부분도 언급되었다.

ⓒ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3개월 뜸 들인 근로감독결과 발표

고용노동부는 7개 지방청과 광역근로감독팀을 구성하고 지난 5월 19일부터 6월 20일까지 한 달여에 걸쳐 수시 근로감독에 들어간다. 특히 중점적으로 점검했던 항목은 근로조건 명시의무 위반과 근로계약서 미교부, 법정근로시간 한도 초과근로, 시간외 근로에 대한 수당 미지급, 연차유급휴가의 미보장 등이다.

그 결과 27개 대상 업체 중 23개 업체 소속 근로자 839명에게 임금, 퇴직금, 연차유급휴가수당 등 합계 4억 9,192만 원의 금품 미지급 사실을 적발했다. 또한 20개 업체 소속 근로자 474명에 대해 서면근로계약 미작성 또는 작성 후 미교부, 주요사항 일부 누락 등의 위반 사실도 적발했다.

아울러 인터넷 신규 개통, 설치를 주 업무로 하는 ‘개통 기사’의 근로자성 인정 여부 역시 확인되었다. 업무 건 당 수수료 방식으로 보수를 지급받아온 이들 개통 기사의 근로자성 인정 여부는 논란이 되어 왔다. 보수의 성격, 사업주의 지휘감독 여부, 업무 대체 가능성과 전속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19개 업체 개통 기사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해 근로자성을 인정했다고 고용노동부는 밝혔다. 489명의 전체 대상 개통 기사 중 332명이 해당한다.

고용노동부는 이들 업체의 법 위반에 대해서는 확인서 징구 및 위반 사항 시정지시를 내렸으며, 향후 이들 협력업체의 인력운영체제 전반에 대한 개선계획을 수립하고 지도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을의 반란’ 속속, 노사 갈등 더해가

가히 ‘乙의 반란’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다. 인터넷·케이블티비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그간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속속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단체 행동에 나섬으로써 목소리를 더욱 키우고 있다.

특히 주 70시간 이상 살인적인 노동 강요, 시간외 근로 강요 및 수당 미지급, 점심 휴게시간 미보장, 개통 기사들의 근로자성 부정, 다단계하도급 및 하청업체 변경 시 고용 불안 조성, 각종 페널티 및 4대 보험, 퇴직금 명목으로 불법 급여 차감 지속 등의 사례를 꼽으며 이를 바로잡길 요구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점점 사측과는 갈등 폭이 커지고 있다.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비정규직 노조를 비롯해, 씨앤앰, 케이블 비정규직지부 등은 일방적으로 기존 담당지역과 업무를 변경하고 계약도 하지 않은 채 일감을 거의 주지 않는 식의 말려죽이기로 일관하고 있다고 증언한다. 업체 변경 과정에서 대량 해고가 벌어지고,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노조 탈퇴 종용 등의 부당노동행위도 성행하고 있다고 한다.

SK브로드밴드 인천계양 지역센터에서는 2차 하청업체 대표가 노동조합 지회장을 부당 해고하고 조합원에 대한 감시와 회유, 협박 등의 부당노동행위가 계속되고 있다고 노조는 주장한다. 양천센터에서도 하청업체 대표가 노조를 탈퇴하지 않으면 고용을 승계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원청이 사실상 고용한 것

민변 노동위원회 권영국, 류하경 변호사는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의 인력운영체계 분석’ 보고서에서 삼성전자서비스, 티브로드와 같은 전자서비스업, 방송통신산업에서도 위장도급의 지표가 발견되고 있다고 밝혔다. 소위 ‘스마트워크’ 시스템을 통해 스마트폰, PDA 단말기, 인터넷 웹 전산망 등으로 원청의 지휘, 감독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에서도 이와 같은 양태는 그대로 발견된다는 것이다.

SK브로드밴드의 경우를 보자.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지역센터(행복센터)는 개통, 설치, AS, 철거, 영업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센터의 사장(센터장)뿐만 아니라, 센터 상위에 있는 중간 업체, 원청 등 직간접적인 사용자가 이중, 삼중으로 존재하고 있는 형태다. 중간업체의 부장급이 센터장을 겸하고 있는 등 진짜 사장이 누구인지 모호하다.

또 AS의 경우 외주업체 정규직으로 개통, 철거, 영업기사는 건당 수수료를 지급하는 개별 도급계약 및 소사장제로 운영된다. 이때 근로계약서나 도급계약서 등 서류 작성 없이 구두로 계약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본사 책정 단가의 60%~70%를 주겠다는 등으로 말이다. 서류가 존재하더라도 본인에게 전달하지 않고 사인만 하고 수거하는 경우도 많다.

이들의 일반적인 업무처리 과정을 보면 원청의 사용자성이 더욱 뚜렷해진다. 고객이 SK브로드밴드 대표 번호로 전화를 걸어 개통이나 AS를 요구하면, 이를 접수한 원청의 콜센터에서는 전산시스템을 통해 해당 지역 기사에게 업무를 배분한다. 각 기사들은 ‘B 스마트’라는 모바일 전산시스템이나 온라인 전산시스템에 접속해 업무 내용을 확인한다. 고객을 방문해 업무를 처리하고, 업무 종료의 보고 역시 B 스마트에 접속해 등록한다. 센터장이나 하청업체 중간관리자가 이와 같은 업무 프로세스에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다.

일반적인 업무 지시 이외에도 신입 인력과 기존 인력의 직무 교육 역시 원청이 주관하고 있다. 신입 기사의 경우 1년 이내 필수적으로 받게 돼 있는 ‘입문과정’ 교육은 도심 외곽의 원청 교육원에서 진행되며, 강사 역시 원청 직원이거나 원청의 위탁 강사이다. 교육 자료 역시 원청이 제작한다.

기존 인력도 마찬가지다. 정기적으로 1년에 1회 씩 업무 교육이 진행되며, 교육 내용을 바탕으로 평가가 치러진다. 일정 점수 이상을 얻으면 원청의 평가기준에 따라 기사의 등급이 상승한다. 5단계로 나뉜 등급이 올라가면 원청에서 차등 인센티브도 지급한다. 20만 원에서 100만 원까지 수당이 갈린다.

일을 하다 수시로 발생하는 고객불만사항에 대한 관리 역시 원청이 주관한다. 원청의 팀장이 개별 기사를 직접 감독하고 주의를 주기도 하며, 주요 사례를 분석해 대응 개선안을 내려 보내는 것도 원청이다.

LG유플러스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특히 지난해 6월을 기점으로 근로계약서가 도급계약서로 전환된 사례가 눈에 띤다. 고객센터 신규 입사자에 대해서는 근로소득공제가 아닌 사업소득공제 확약서를 일방적으로 받기도 한다. 이 확약서에는 “일체의 노동관계 법령을 적용하지 않는데 동의한다”라거나 “법적인 문제 발생 시 본인이 전적으로 책임진다” 등의 불법적인 내용도 첨부되어 있다. 또 원청이 각 센터에 적정 채용 인원을 정해주고 이를 적용하지 않을 경우 패널티를 적용하기도 한다.

일반적인 업무처리 과정도 SK브로드밴드와 동일하다. ‘U 큐브’라는 이름의 모바일 전산시스템을 통해 원청으로부터 직접 업무를 지시받는다. 업무 기준이나 프로세스에 대한 지시는 물론, 직원 교육 역시 원청이 직접 시행한다.

실적이 우수한 직원들을 원청이 직접 포상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신규개통 유치 상위 실적자에게 LED TV를 지급하는가 하면, 개통 기사들의 실질적인 임금이 되고 있는 ‘건 당 수수료’ 역시 원청이 총합을 각 기사별로 계산하여 협력업체에 내려주고 있다. 명목은 도급비라고 하지만, 실질적인 임금 지급자가 원청이라고 볼 수도 있는 지점이다. 그밖에도 야간, 휴일근로 장려금 역시 원청이 지급한다.

원청의 인턴사원이 개통 기사들과 동행하여 근무를 하기도 한다. 원청의 신입 직원들이 업무를 배우기 위함인데, 원하청 혼재 근무의 지표로 보이기도 한다.

ⓒ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사실상 이들 센터는 협력업체로서 사업경영상 독립성이 없다. 원청과 AS, 개통 기사들은 묵시적인 근로계약 관계에 있거나, 사업경영상 독립성이 있는 센터라고 해도 근로자 파견 관계에 있다는 것이 보고서의 결론이다.

근로자 파견 관계에 있다고 할 경우 해당 업무는 파견 가능 업종이 아니다. 가령 파견이 가능한 업종이라고 해도 고용노동부 장관으로부터 파견업 허가를 득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불법 파견에 해당한다.

불법 파견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위법 행위이고, 원청은 협력업체 직원들을 고용한 것으로 자동적으로 간주되거나(구 파견법), 현행 파견법의 직접 고용의제 조항의 적용에 따라 이들을 직접 고용해야 하는 의무가 발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