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하는 사람은 모두 마음의 부자다”
“봉사하는 사람은 모두 마음의 부자다”
  • 임성봉 기자
  • 승인 2014.11.03 15:28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매월 한 번씩 노인들에게 점심 제공
부부가 시작한 나눔, 대를 잇고 가지치다
[사람향기]8년째 사랑 전하는 정춘란·유효근 부부
▲정춘란, 유효근 부부 ⓒ 김효진 객원기자 kkimphoto@laborplus.co.kr

가을향이 코끝을 스치던 지난 10월 13일, 개봉3동에 위치한 한 과메기 가게로 향했다. 여느 가게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이 가게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가게를 운영하는 정춘란·유효근 부부가 매월 셋째 주 월요일에 노인들에게 무료로 점심을 대접하는 것. 점심값으로만 약 100만 원이 지출되는데, 이들 부부는 나누면 부자가 된다며 오히려 싱글벙글이다. 이들 부부가 만든 8년 동안의 미담, 그 속을 들여다봤다.

셋째 주 월요일은 과메기 집으로!

이들 선행의 시작은 소소했다. 과메기란 음식이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때깔이 변하는 데, 이를 버리기가 아까워 폐지 줍는 노인들, 인근 가게 사람들에게 조금씩 나눠 준 것이 발단이 됐다. 이후 정춘란 씨는 유효근 씨에게 노인 분들을 모시고 제대로 식사대접을 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유 씨는 걱정부터 앞섰다. 혹시나 음식을 먹고 탈이라도 나면, 좋은 일하고도 욕먹을까 싶어서다. 또 아내가 가게 일도 부치는데, 너무 혹사될까 싶은 염려도 있었다.

결국 유 씨는 동사무소에 정식으로 보고하고, 봉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동사무소에서는 인근 어르신들에게 식사봉사 날짜와 장소를 홍보하기로 했다. 이들 부부는 봉사 전날 가게 문을 닫고 밤새도록 음식을 준비했다. 약 100명 분. 혹 부족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하며 봉사 당일, 가게 문을 열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가게를 찾아온 어르신은 10명.

속상한 마음에 정춘란 씨는 이 날 밤 펑펑 울었다. 유 씨는 동사무소에 전화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봤다. 어르신들에게 연락을 돌리기로 했던 담당 직원이 이를 깜빡한 것이 문제의 이유였다. 화가 난 유 씨는 동사무소에서 이것조차도 지원해주지 않는데 무슨 봉사냐며 아내 정 씨에게 ‘그만 때려치자’고 했다. 하지만 담당 공무원이 부부를 찾아와 거듭 사과하고,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했다.

다음 봉사일, 정 씨는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100명도 넘는 어르신들이 줄을 서 있었기 때문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가 지나고, 이들 부부는 봉사하기 참 잘한 것 같다며 서로를 다독였다.

그렇게 시작한 봉사가 벌써 8년째, 이제는 찾아오는 어르신이 300명에 달한다. 심지어는 광명동에서도 찾아온단다. 이제는 동사무소에서 어르신들에게 연락할 필요도 없다. 8년째 식사를 대접하다 보니, 셋째 주 월요일은 당연히 ‘과메기 집으로 가는 날’이 됐기 때문이다.

어려울수록 나눠라

300명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데 드는 비용은 100만 원. 적지 않은 비용이다. 그럼에도 이들 부부가 봉사를 할 수 있는 건, 장사가 잘되기 때문은 아니다. 겨울이 제철인 과메기는 그야말로 한 철 장사다. 당연히 여름에는 장사가 잘 되지 않는다. 여름에는 봉사를 쉴 법도 한데, 부부는 오히려 대출까지 받으며 봉사를 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 봉사를 쉴까도 했지만, 무료 식사를 위해 전날 저녁부터 굶고 오는 어르신들을 보면 차마 쉴 수가 없었다. 특히 겨울에는 손님이 줄을 설 정도로 많아, 봉사활동을 하기 빠듯했지만 일종의 사명감으로 밤새워 식사를 준비한다.

사실 이들 부부가 봉사활동을 하게 된 데는 부모님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친정 포항에서 정 씨의 아버지가 남은 물고기를 집으로 가져오면 어머니는 항상 이웃들에게 이를 나눠줬다. 받은 사람들이 먹는지 안 먹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나눌 뿐이었다.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에게 잔소리를 하기도 했지만, 친정 엄마는 정 씨에게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이를 보고 자란 정 씨의 마음속에 ‘나눔’의 씨앗은 아주 어릴 적부터 싹이 텄다.

힘들었던 기억, 그곳에서 새로 핀 새싹

1998년 대한민국을 흔든 IMF의 한파 속에 많은 아버지들이 거리로 내몰렸다. 이들 부부도 피할 수 없었다. 당시 유 씨는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정 씨는 서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기가 얼어붙으며 서점은 매출이 점점 빠듯해졌다. 가게 임대료도 내기 버거워졌다. 전에는 제법 장사가 됐지만, 결국 서점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어려워지자 성격도 날카로워졌다. 상황이 실타래처럼 꼬이며 ‘같이 죽자’는 악다구니도 나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두 아들에게도 문제가 생겼다. 대학에서 운동선수였던 큰아들이 군에 입대하면서 학교를 자퇴해야 했다. 전역 후 재입학을 하면서 입학금을 다시 내야 했다. 적지 않은 돈이었다. 여기 저기 돈을 빌렸다. 막내아들이 형사사건에 연루되면서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변호사 선임 비용을 비롯해 큰돈이 필요했다.

▲정춘란 씨
ⓒ 김효진 객원기자 kkimphoto@laborplus.co.kr

서점을 접고, 친정에서 떼다 파는 과메기로 장사를 시작했다. 다행히 상황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가게도 점차 자리를 잡아 나갔다. 시간이 지나 큰아들은 올봄에 결혼식도 올렸다. 막내아들은 겨울이면 이들 부부를 도와 가게를 꾸렸다.

부부의 속을 썩였던 막내아들은 후에 부모님의 뜻을 이어 식사대접 봉사활동을 이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친정엄마에게 받았던 나눔이, 다시 대를 물려 넘어가고 있다. 큰아들도 8년째 봉사활동을 하는 부모님을 보며 틈틈이 봉사활동을 실천하고 있다.

봉사에 손을 더하다

300명의 어르신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다. 음식을 준비하는 일은 밤을 새기 일쑤다. 그렇다고 음식만 준비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어르신들을 안내하고, 음식을 채워 넣고, 쏟아져 나오는 설거지를 처리하는 일은 꽤 곤욕스럽다. 당연히 이들 부부와 막내아들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다. 다행히 이들을 위해 봉사에 손을 더한 사람들이 있다. 그 주인공들은 조금 의외다. 꾸준히 이들 가게를 찾아 도와주는 이들은 다름 아닌 군인들이다.

정 씨는 구로여성예비군 소속이다. 전에는 분대장까지 했지만, 현재는 임기가 끝나 분대장 자리는 다른 사람에게 넘겨준 상태다. 봉사를 시작한 당시, 일손이 부족하자 정 씨는 동대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봉사활동증명서를 발급해줘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마음을 돌렸다. 순수한 마음에서 봉사를 했으면 좋겠다는 이유에서였다.

대신 군인들에게 맛있는 밥 한 끼 대접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협력단에서도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그때부터 군인들은 매 봉사 날에 맞춰 가게를 찾아왔다. 가장 힘든 설거지는 이들 몫이었다. 처음에는 억지로 왔을 이들도 봉사활동을 하면서 점차 보람을 느꼈다. 협력단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봉사에 참여했던 군인들은 전역 후 어르신들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며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정 씨는 ‘우리 애들’이 마음의 부자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에게는 특별히 고마운 사람이 두 명 있다. 한 명은 정 씨가 제1공수여단에서 병영체험을 하며 알게 된 보급담당관이다. 이들 부부의 선행을 알게 된 담당관은 자신도 함께 하고 싶다며 부하들을 데리고 왔다. 비상훈련이 아닌 이상, 이들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가게를 찾아와 일손을 거들었다. 심지어 담당관은 다른 부대로 전출됐음에도 휴가를 써서 봉사를 돕고 있다. 이를 알게 된 국군방송에서도 이 담당관을 인터뷰 하려 했으나, 그는 끝내 거절했다. 자신의 선행이 워낙 보잘 것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단다.

또 한 명은 인천에서 개봉3동까지 매 월 찾아오는 한 자원봉사자다. 9시 뉴스에 잠깐 출연했던 정춘란·유호근 부부의 사연을 듣고 찾아온 것이다. 수년간 부부를 도운 봉사자는 어르신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다 팔이 빠지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설거지 다음으로 가장 힘든 일이 밥을 퍼 나르는 일인데, 봉사자는 이 일을 하다 팔이 빠져 수술을 해야 했다. 부부는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했는데, 봉사자는 오히려 수술 이후에도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봉사활동을 돕고 있다.

혹 일손이 많이 부족할 때는 동사무소 직원들도 팔을 걷고 나선다. 하지만 당장에 쌓인 업무를 처리하기도 바쁠 이들을 생각해, 부부는 가급적 동사무소에는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부부는 감당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자신들의 손으로 봉사활동을 꾸리고 싶다고 했다.

나눔은 주면 줄수록 받는 것

나눔이라는 게 요즘 같은 세상일수록 더 빛나는 법이다. 밤이 깊을수록 별이 더 반짝이는 것처럼 말이다. 이들 부부의 선행이 더 찬란한 것도 주변이 어둡기 때문일 테다. 과메기 집을 찾는 어르신들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식사량이 많다. 정 씨는 “생각보다 굶으시는 분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들 대부분이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이들 부부가 돕고 싶어 하는 분들이 이런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다. 손자만 덩그러니 맡겨놓고 도망 간자식 내외, 이런저런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을 받을 수 없는 노인 등 과메기 집을 찾는 어르신들 대부분은 힘든 사연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늘 어려움에 놓여있다 보니 늘 찾아오시던 어르신이 안 보일 때면, 이들 부부는 “돌아가셨구나”하고 생각한다. 슬픈 일이지만, 그래도 가시는 길에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해드릴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 조금 위안이 된다.

▲ 유효근 씨
ⓒ 김효진 객원기자 kkimphoto@laborplus.co.kr

이들 부부라고 매번 나누기만 한 건 아니다. 얼마 전에는 큰 선물을 하나 받았다. 바로 올 봄에 얻은 큰며느리가 그 주인공이다. 부부는 아들 내외가 알콩달콩 사는 모습이나 며느리가 웃어른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며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다. 정 씨는 “우리 며느리는 열심히 봉사하는 우리를 보고 하늘에서 내려준 선물”이라고 말했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정춘란 씨는 인터뷰 내내 좋은 남편을 만나 이렇게 좋은 일도 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주변에서 오지랖 부린다고 타박할 때도, 유효근 씨는 항상 아내의 편이었고 든든한 지지자였다. 이들 부부는 올해로 결혼 34주년을 맞았다. 10월 30일이 결혼기념일이다. 정 씨는 유 씨에게 “그러고 보니 참 오래도 살았네요, 우리”라며 남편의 손을 꼭 잡았다.

과연 이들에게 나눔이란 무엇일까? 마지막으로 이들에게 나눔에 대해 물었다.

“욕심내지 않는 것. 욕심이 과하면 문제가 생기죠. 저도 젊어서는 욕심을 많이 냈는데,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자꾸 욕심이 없어져요(웃음). 작은 것 하나도 나눠먹고, 나눠 갖는 것, 그것이 나눔이라고 생각해요.” - 유효근 씨

“나눔은 평화·행복·부자와 같은 말이에요. 나눠주면 서로가 평화롭고, 그러면 상대가 행복하고, 또 나도 행복해지죠. 마지막에는 받는 사람, 주는 사람 모두 마음의 부자가 돼요. 물질적인 부자보다 마음의 부자라야 행복한 거죠.” - 정춘란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