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투쟁, 항상 나를 울린다
비정규직 투쟁, 항상 나를 울린다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4.12.19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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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만 비정규직 조합원, 새로운 도전 만들어갈 의제
민주노총은 여전히 노동자들의 삶이자 희망
[기획인터뷰]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

민주노총 새 지도부의 선출이 그동안 여러 차례 유예되었던 직선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뜨거운 이슈인 직선제를 성공적으로 치러내고, 민주노총이 앞으로 더욱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길 바라는 것은 조합원 누구나가 같은 생각이지 않을까.

다른 누구보다 마음을 졸이며 고민해온 이는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이 아닐까 싶다. 선거가 파행으로 치닫고 지도부 공백이 장기화되면서 무거운 짐을 떠안고 임기를 시작했던 신승철 위원장에게 그동안의 소회를 물었다.


ⓒ 김효진 객원기자 kkimphoto@gmail.com

잊을 수 없는 민주노총 침탈

선거 국면에 들어섰으니 부담을 좀 덜었을 것 같습니다. 임기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입니까?

“마음은 좀 후련한 게 있는데 더 바빠져서 미치겠어요(웃음). 임기가 마무리되면서 일이 없어야 되는 게 정상인데. 올해 세월호 때문에 연기됐던 일들이 계속 이어지고, 연말이라서 제도 개선 문제가 걸려 있어서 그런지 위원장의 일정은 더 많아요 사실.

임기 동안에는 아무래도 민주노총 침탈의 하루가 가장 기억이 나죠. 그날 아침부터 들어온다더라 하는 얘기는 있었는데, 실제로 들어 왔고. 밖에서는 조합원들이 이리저리 뛰면서 온갖 노력들을 다 했죠. 안에서도 마찬가지로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때 청량리차량지부 조합원들이 민주노총에 들어와 있었어요. 경찰이 13층 정도 올라올 무렵에 보니까 표정들이 말이 아닌 거예요. 이게 끝이 아니다, 다시 힘 모아 싸우자고 집회 마무리에서 독려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날 경찰이 14층에는 들어오지 못했어요. 조합원들이 못 들어오게 막았는데, 13층하고 15층만 들어왔었고. 16층도 올라갔었는데 ‘없다더라. 체포영장도 없다더라’ 이런 상황이 되면서 분위기가 확 바뀌었죠.

밖에 조합원들이 모여 있으니까 나와 달라는 연락을 받고 실제 내려가기까지 족히 두 시간은 걸렸던 거 같아요. 그날 날씨가 정말 추웠잖아요. 5천 명이 넘는 인원이 물 맞고 최루액 맞은 상태에서 그 추위에 두 시간을 넘게 위원장을 보겠다고 그냥 기다리고 계셨죠. 제대로 기다릴 수 있는 물리적 공간도 아닌데, 거기에서 조합원들을 만나는 사실은 뭐랄까, 감동 이상이었던 것 같아요. 세포 하나하나가 곤두서는 느낌, 소름이 돋을 정도로 벅찬 감동이었죠. ‘야, 이거 민주노총이 별 게 아닌 게 아니구나(웃음). 장난 아닌 대단한 조직이구나.’

그 이후부터 제가 이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민주노총은 정동 경향신문사 사옥에 있는 게 아니다. 민주노총은 싸우는 노동자들 마음 속에 있고, 탄압 받는 사람들 마음 속에 있다. 자본이 아무리 우리를 억눌러도 민주노총은 결코 꺾일 수 없다고요.”

공식 석상에서 목이 메거나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어떤 게 떠올라서 감정이 격해졌던 것입니까?

“비정규직 동지들의 투쟁이 감정을 건드리죠. 청소용역 노동자들, 삼성전자서비스 열사 두 분, 이런 것들이 머릿속에 떠오르지요. 민주노총에 네 번째 올라왔는데, 그 동안 수많은 열사대책위원회에서 집행위원장을 맡았습니다. 배달호 열사부터 대책위를 맡았던 거 같아요. 전에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류기혁 열사하고 현대중공업 박일수 열사 때 되게 힘들었어요. 왜냐하면 그때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정규직들이 비정규직 열사 투쟁에 동의를 안 했거든요.

위원장이 되어서 모시는 비정규직 열사, 계속 마주치는 비정규직 투쟁들. 제가 다른 곳에선 그렇게 눈물이 나지 않았던 거 같아요. 비정규직 얘기나, 어렵고 힘들게 싸우는 사람들의 얘기, 안타까운 현실과 더 안타까운 죽음들을 접하면 감정이 격해지는 대목이지요. 노동조합 운동을 처음 접하고, 민주노총을 처음 접하면서 그 당시 사회적으로 노동자들이 처했던 위상이 지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과 겹쳐진다고 해야 할까? 참 세상은 시간이 지나도 착취되고 탄압 받는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지요.”

실망하거나 분노를 느끼셨던 경우는 없었습니까?

“민주노총 침탈 외에도 세월호 사고는 저뿐만 아니라 전 국민적인 공분을 샀던 경우였지요. 너무나 참담한 일이라 사실 애도하는 분위기에서 그 어떤 조직에서도 행사를 만들 수 없었지요. 민주노총만 집회를 할 수 있었어요. 4월 28일 산업안전과 관련해 추모 집회를 가졌고, 노동절 노동자대회를 했고. 그때 정말 분노를 느꼈죠. 대회사도 그랬고, 민주노총이 구호를 외쳤던 것이 ‘기억하고 분노하고, 분노한 만큼 행동하자’는 것이었죠.

실망스러웠던 것은 2월 25일 총파업과 관련한 부분이었어요. 공권력의 민주노총 침탈 이후에 즉각 총파업을 때릴까 했는데, 연말연시가 겹치면서 시기를 잡을 수 없었어요. 전 오히려 즉각 총파업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는데, 연맹 대표자라든지 다른 이들은 좀 더 준비한 파업을 가져가자는 입장이었죠. 그래서 날짜를 2월 25일로 잡았던 건데 실제로 그 파업이 성과 있게 조직되지 못했어요.”

20만 비정규직 조합원 중심으로 다시 도약해야

지도부 공백이 길어지던 가운데 임기를 시작하셨습니다. 자평해 보자면 어떠십니까?

“시간이 지나고 대중들에게 받는 평가가 옳은 것이지요. 다만 집행부의 역할에 대해선 생각을 해봤어요. 안정적인 조직 기반 위에서 한 단계 도약하는 과업이 주어졌던 임기는 아닌 거 같아요. 내부적으로는 지도부를 못 꾸리고, 외부에서도 여러 가지 일들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을 때 민주노총의 역할을 그나마라도 가져가야 한다는 관리 기능 정도? 조직을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임무 같은 게 주어졌다고 생각해요.

제게 주어진 역할이 그런 것이었다면, 역시 많은 분들이 우려하고 관심을 갖고 있는 직선제 임원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러내고, 그래서 다음 집행부를 문제없이 선출하는 것까지가 제 임무인 거지요.”

그런 시기에 올라왔으니 ‘민주노총의 위기’에 대해 고민이 많았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항상 위기는 이야기되었던 것 같아요.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민주노총의 조직적 문제들을 중심으로. 뭐 정파적 위기니, 정파운동의 폐해로 인한 위기니, 여러 가지 얘기들이 많지요. 위기는 기회라는 의례적인 이야기는 저도 해왔던 거고요.

위기의 실체에 대한 고민을 올해 전국노동자대회의 대회사에서 이야기했습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조직된 대공장 중심 노동운동이 지금 이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 왔다면, 변화된 조합원들의 정서에 맞는 내용을 중심으로 노동조합 운동을 새롭게 해야 하지요. 공장 울타리 바깥으로 나오고, 사회적 연대를 만들어내는 도전을 해야 합니다. 이제 눈앞의 그 도전을 피할 수도 없고요.

민주노총의 조합원 중 비정규직이 20만을 넘었습니다. 이 조합원들의 참여나 사회 변화에 대한 요구들을 투쟁의 중심에 놓으면 여전히 희망적이고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연대할 수 있고, 융합할 수 있도록 만들어낼 수 있느냐 없느냐, 민주노총이 위기냐 희망이냐를 가늠할 수 있는 가늠자 역할을 하는 거예요.

제가 민주노총 위원장이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자면, 직선제를 추진하고 있는 바쁜 와중에도 미래전략위원회가 6개 지역본부에서 토론을 진행한 게 있어요. 민주노총의 미래를 고민하는 다양한 의견들이 개진되는데, 생활 정치, 지역 정치를 중심으로 일상 속에서 노동조합운동을 고민해야 한다, 그 방향과 의제는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 사업을 중심으로 지역의 근간을 만들어서 추진해야 하고, 간부들의 선순환 구조를 위해서도 비정규 노동자들의 조직화에 오래 몸담은 이들을 재교육해서 투입해야 하고, 이런 고민들이 쏟아지거든요.

2009년 민주노총 혁신위원회에서도 이와 같은 의제들이 비슷하게 나왔습니다. 그때에는 벽에 부딪친 느낌이었습니다. 내용엔 동의하지만 나는 할 수 없다는 거지요. 3, 4년이 지났는데 지금은 오히려 지역 간부들이 그걸 고민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런 변화의 시작이 어떤 계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십니까?

“권력의 속성에 변화가 있었던 것도 있고요. 그것도 중요한 문제죠. 일관되게 탄압하고 있고, 상시적으로 착취 구조가 공고하게 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진보정당 운동의 분열이 희망적이지 않잖아요. 민주노총, 노동 진영만으로 변화의 가능성을 만들어가야 하는데, 그건 되게 힘든 일이거든요. 대중과 함께 외연을 넓혀 국민적 의제도 가져가야 해요.

그런데 그 부분이 내부의 갈등적 요소로 비쳐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라든지 아주 처절한 투쟁이 계속되거든요. 왜냐하면 관심을 안 가져주니까. 한 200일 농성하고, 노동자가 어디 높은 곳에 올라가야 언론이 그나마 집중하고 연대할 수 있는 단위가 모이기 시작하니까요. 이런 판국에 무슨 국민과 함께하는 운동이냐, 자본과 노동 간에 강도 높은 투쟁의 전선을 형성해야 한다는 논쟁이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저는 이게 충돌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봐요. 여전히 두 종류의 사업은 민주노총 내에서 같이 가야 하는 거죠. 비정규직 문제든, 안전, 생명, 민영화의 문제든 민주노총의 모든 핵심 의제들이 결국 저변을 넓혀서 국민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그래서 우군이 되었을 때만 사회적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게 확인되지 않습니까?”

ⓒ 김효진 객원기자 kkimphoto@gmail.com

총연맹 위원장? 당선 직후부터 ‘외로워’

역사적인 직선제로 당선될 새 지도부에게 위원장의 일상에 대해 조언할 만한 게 있습니까?

“그게 사실 자리를 위해 열심히 뛸 때가 좋지요. 당선되고 화분 들어온 다음부터는 외로워요(웃음). 잘해야 돼요. 외로움을 어떻게 극복할 건가에 대해선 정말 슬기롭게 해야 돼요. 민주노총 위원장이란 자리는 그런 거 같아요. 당선이 확정된 순간부터 양 어깨에는 커다란 짐이 있는 거고, 그 무게는 남들이 상상하는 이상의 것이에요.

저라고 뭐 딱히 그런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노하우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현장에서 일할 때는 수영도 하고 배드민턴도 하고 그랬는데, 위원장이 되어선 그런 게 전혀 없었죠. 받는 스트레스를 발산하지 않는 방식을 찾아서 애를 쓰는 거지, 그게 해소될 순 없어요. 속병 되는 거지. 진짜 안심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무총국 동지들과 술을 편하게 마시는 거 외에는 낙이 없어요. 다른 데선 가급적 술도 안 취하려고 하지요.

전 자꾸 뭘 먹게 되더라고요. 폭식은 아닌데, 제가 막 화가 나서 왔다 갔다 하면 총국 간부들이 사탕이나 초콜릿 같은 걸 줘요. 단 거 먹고 화 풀라고. 그게 장난 같지만 진짜 진정이 돼요. 남들처럼 낚시가고 등산가고, 취미로 해소하는 건 스케줄 상 나올 수 없어요.”

위원장 당선 후 3분 연설을 약속하기도 했고, 집회의 변화 등 ‘일상적 혁신’에 대해 강조한 게 기억에 남습니다. 변화가 좀 있었습니까?

“짧게 하려고 했는데 못 지켰죠(웃음). 여전히 연설은 짧게 하는 게 좋긴 한데, 경우에 따라선 길게 해야 할 경우도 있어요. 예를 들어 집회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같은 분량의 연설이라도 시간이 길어집니다. 대중의 반응을 기다려야 하고 그런 게 있지요.

의외로 최근 얘기가 많이 나오는 것은 메시지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위원장으로서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예전에는 보면 노동자대회 시작부터 웅성대고, 술 마시러 가고 이런 게 많았는데, 철도 파업, 민주노총 침탈, 세월호 사고 같은 게 이어지면서 연설을 듣는 기운이 다르다는 걸 느껴요. 무대 위에 올라가서 대회사를 하면 위원장의 말을 들어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변명인데(웃음), 얘기를 내용 있게 하려고 하다가 깨진 것은 있어도 3분을 안 지켰다고 욕 먹진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관철시켰던 부분도 있어요. 내가 동의하지 않는 이야기는 연설하지 말자는 스스로의 약속은 지켰습니다. 어떤 자리, 어떤 상황이라도, 정권이 어쩌고 투쟁이 저쩌고 하는 의례성 연설을 하진 않았습니다. 나도 동의하지 않는 얘기를 대중에게 암만 해야 소용없는 거 아니냐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조합원들에게 호소하는 내용이 많았던 거 같습니다. 무게 잡는 연설보다 내 마음 속 얘기들을 조합원들에게 하는 거였지요.

집회문화에 대해선, 사무총장 때도 그랬고 위원장이 되어서도 처음에는 대회사를 안 해도 좋다고 할 정도로, 바꿔보자는 주문을 했어요. 문화팀에서 전권을 갖고 다 알아서 하라고 했을 정도였지요. 저는 여전히 좀 바뀌었으면 좋겠고, 새로운 시도를 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틀을 바꾸는 것은 어렵지요 사실.

바뀌어서 제 마음에 드는 점을 지목해 보라면, 민중의례 때 임을 위한 행진곡을 반주 없이 전 대오가 합창으로 부르는 것, 민주노총가를 맨 마지막에 자막과 함께 다 같이 부르는 것, 이런 게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대중들이 그 집회에서 기운을 함께 느낄 수 있었으면, 집회가 주는 메시지를 위원장 연설이 아니라 함께 행동으로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위원장님에게 있어 민주노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하실 수 있습니까?

“민주노총은 저에게 삶이고 희망이죠. 여전히 전 …(잠시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다) 민주노총은 모든 노동자들에게 삶이고 희망이듯 특히 저에겐 그렇습니다. 아, 민주노총을 진지하게 생각하면 감정이 이렇게 격해지는구나.

인생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요. 남들은 모르겠지만 민주노총가를 부르면 눈시울이 찡해져요. 그런 느낌을 연설에서 얘기한 적도 있었어요. 여러분들은 민주노총가를 부르면 가슴이 울리십니까? 민주노총의 깃발을 보면 가슴이 떨리십니까? 전 계속 그래요. 민주노총은 그런 곳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