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서평_생생한 현장 이야기 또는 우리의 서글픈 자화상
독자서평_생생한 현장 이야기 또는 우리의 서글픈 자화상
  • 참여와혁신
  • 승인 2006.07.11 00:00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사관계를 이분법으로 규정짓지 않고 구조를 보여준다

박준우 <공인노무사, IRHR Consultant>

아마도 작년 이맘때로 기억된다. 당시 기업에서 노무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임단협 마무리가 길어지면서 뜻하지 않게 여름휴가를 정상적으로 보낼 수 있는 행운이 생겼다.

그 때 ‘누가 노동조합을 자판기로 만들었나’를 만나게 되었다.
사실 별다른 기대를 하고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책이 옆에 있기에 그냥 집어 들어 읽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노사관계 책들을 통해 갖가지 시각과 생각과 주장을 접했지만, 노사관계의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 볼 때 대부분의 내용들이 현실과는 거리감이 큰 이론적이거나 너무 거시적인 이야기로 일관하여 추상성이 높거나 심지어는 주의주장만을 담은 목소리에 불과하기도 했다.

물론 노사관계는 노동법, 노동정책, 인사노무관리, 산업심리, 산업사회, 노동경제 등 다양한학문 간 연구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현실적인 사회문제를 다루는 것이고 그 이해관계를 둘러싼 대립과 갈등이 심한 편이기에 이해관계자 간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인식의 공유가 필수적이다.

 

처음에는 책제목이 주는 선정성을 빼고 나면 그저 그런 수많은 책들 중 하나일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첫 장을 열고난 이후 마지막 문장을 다 읽을 때까지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마치, 자화상을 그리면서 자세하게 자기 귀를 보고 그리려고 자신의 손으로 귀를 자른 고호의 자화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너무나 생생한 이야기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책은 노사관계를 노사라는 거시적이고 이분법적으로 구분 짓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 대의원, 집행부, 중간관리자, 현장감독자 등 노사관계의 구조 속에서 구조의 수인(囚人)으로 살아가는 행위자들을 미시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살아 움직이는 사람이 없는 풍경화를 그려놓고 그것이 전부인양 떠들어 대던 글이나, 사람의 일부분만을 강조하여 시대성과 역사성 그리고 사실감이 거세된 인물화를 그리면서 이것이 현실이라고 목소리 높였던 얕은 지식이나, 특정 사실을 성급하게 일반화하여 성공과 실패를 과장하던 조급한 시각과는 사뭇 다른 접근이고 내용이었다.

노사관계의 현장에 있는 사람들만이 서로 공유하고 같이 느낄 수 있는 문제들과 실상이 활자화된 모습을 읽어가면서 조금은 흥분도 되고, 얼굴이 화끈 달아오를 정도로 부끄러움을 주는 대목도 있었지만, 그동안 간과했던 문제들을 지적한 대목에서는 현장 노사관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사람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 책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물론, 주요 내용들이 제조업 대기업의 생산직 노사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최근 이슈로 등장한 비정규직 문제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만, 문제가 가장 심각하고 가장 대표적인 부분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봄으로써 다른 업종이나 현장에 시사하는 바도 크다 할 것이다.

다만, ‘생산적 참여와 노사관계 혁신을 위한 5가지 솔루션 15가지 매뉴얼’은 ‘참여와 혁신’이라는 기본기를 강화하자는 취지는 좋으나 실행이라는 측면에서 솔루션과 방법이 다소 투박하고 과거의 수많은 유사 행위들과의 차별성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 책은 선정적인 제목 못지않게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그리기 꺼려했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내는 우리시대의 노사관계에 있어 자화상을 그려내었다.
앞으로 우리는 대안을 만들어 가고 인식을 공유하는 일을 통해 더 이상 우리 앞의 문제를 뒤로 미루지 말고 당당하게 맞서 해결해야 할 것이다.

이 작은 책 한 권이 그러한 시작을 위한 출발선 역할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