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8개월, 드디어 꿈에 닿았다
10년 8개월, 드디어 꿈에 닿았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14.12.19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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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타 탐사선, 인류 첫 혜성 착륙…태양계 생성 실마리 잡을까
혜성 찾아 64억㎞… 섬세한 터치다운!

기원전 196년 고대 이집트에서 검은색 비석 하나가 세워졌다. 이 비석은 1799년 7월 나일강 어귀 로제타(Rosetta) 지역에서 발견된다. ‘로제타 석(Rosetta stone)’이다. 흔히 발견되는 고대 유물쯤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재밌는 점이 있었다. 여러 계층이 읽을 수 있도록 이집트 상형문자와 민중문자, 고대 그리스어가 모두 쓰여 있었던 것이다. 고고학자들은 잘 알고 있던 그리스어를 바탕으로 나머지 두 문자를 해독했고, 이로써 이집트 문명의 비밀이 세상에 공개됐다. 10여 년 전 발사된 우주탐사선에도 ‘로제타’라는 이름이 붙었다. 우주의 비밀을 풀고자 하는 인류의 소망이 반영된 것이다.

ⓒ 유럽우주국(ESA)

“필래(Philea)가 착륙했습니다!”

모니터만 뚫어져라 지켜보던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박수를 쳤고, 서로 껴안았고, 샴페인을 따며 소리를 질렀다. 한바탕 큰 축제가 벌어진 2014년 11월 12일의 유럽우주국(ESA) 모습이다. 무려 10년 8개월 전 지구에서 출발한 우주탐사선 로제타호가 탐사 로봇 필래를 혜성에 무사히 내려놓은 걸 감격하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인류가 혜성 위에 올라서게 된 것이다. 우주 탐사선이나 탐사선에서 쏜 물체가 혜성과 충돌한 적은 있지만, 혜성 자체에 착륙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필래가 모은 자료들로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은 태양계의 비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커졌다.

로제타 탐사선의 여정은 2004년 3월 2일 시작됐다. 목성 근처에 있는 혜성 67P(추류모프 게라시멘코)를 탐사하는 임무를 받은 이 우주선은 10년 8개월 동안 64억㎞를 비행했다.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보다 42배 더 먼 거리를 항해한 것이다.

그 사이 행성의 중력을 이용해 추진력을 얻으려 지구와 화성을 네 번씩 지나쳤고, 3년 전부터는 혜성 궤도에 진입할 에너지를 모으려 모든 전원을 끄고 동면에 들어갔다. 지난 1월에는 겨울잠에서 깨어나 8월에 혜성 67P의 궤도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이후 세 달 동안 혜성 주변을 돌며 지질구조와 가스 성분 등을 분석하고 착륙 장소를 물색했다.

드디어 11월 12일, 로제타 탐사선은 혜성 착륙에 도전했다. 혜성 표면까지 7시간 동안 22㎞를 조심해서 내려갔는데, 역시 한 번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혜성 중력이 지구의 10만분의 1에 불과해 로봇을 잡아당길 힘이 거의 없고, 혜성 속도가 총알보다 40배 정도 빠른 초속 18㎞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가정용 세탁기만 한 필래를 혜성 67P에 착륙시키는 일은 ‘눈을 가린 채 말을 타고 날아가는 총알을 맞히는 것’이라 비유하기도 했다.

유럽 과학자들은 필래 몸체를 혜성 지면에 고정시킬 작살 2대와 역추진 로켓을 준비했다. 역추진 로켓은 작살이 발사되는 힘에 밀리지 않도록 반대로 힘을 실어줄 계획이었다. 그러나 착륙 하루 전에 역추진 로켓에 이상이 발생했고, 작살도 발사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필래는 두 번이나 튕겨나간 뒤 착륙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로봇의 다리 끝에 박힌 나사가 제 역할을 해줘 지면에 안착할 수 있었다.

‘태양계 타임캡슐’ 탐사해 생명 기원 밝힌다

필래가 혜성에 올라타면서 과학자들은 태양계와 생명의 기원을 밝힐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혜성은 46억 년 전 태양계 생성 당시에 만들어졌다. 이 덕분에 혜성은 태양계 탄생의 비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의미를 담아 혜성을 ‘태양계의 타임캡슐’이라고도 부른다. 혜성에서 얻은 자료를 잘 분석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 지구에 생명체가 살게 된 까닭을 설명하는 가설 중 ‘혜성기원설’도 검증할 수 있다. 혜성이 지구와 충돌하면서 물과 함께 아미노산 등을 전해줬다는 내용이다. 아미노산은 자연계에서 단백질을 구성하는 물질인데, 이것이 혜성에서 왔다고 추정하는 것이다. 만약 이번 탐사를 통해 혜성에서 아미노산을 발견한다면 ‘혜성이 지구 생명의 기원’이라는 가설을 입증할 수 있게 된다.

필래는 배터리가 작동한 57시간 동안 이들 장비를 통해 중요한 임무를 대부분 수행했다. 지표 아래 25cm까지 파서 혜성을 이루는 물질을 분석했고, 라디오파로 혜성 깊숙한 곳도 조사했다. 이후에는 태양전지를 펼쳐 내년 3월까지 정보를 모을 계획이었으나 착륙 장소에 햇빛이 잘 들지 않아 일단은 동면에 들어간 상태다.

ESA의 대변인인 마크 맥카우프린(Mark McCaughrean) 박사는 “필래의 장비는 애초에 목적했던 내용을 모두 수행했고,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를 지구로 보내왔다”며 “필래는 혜성이 태양과 조금 더 가까워지면 충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커다란 꿈에, 오랜 도전에 박수를

로제타 탐사선과 필래 로봇의 혜성 착륙은 영화 속에서나 펼쳐지던 상황을 현실로 보여줬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인류가 보낸 우주 탐사선이 항해한다는 것도, 혜성에 내려앉는다는 것도 이전에는 도전하지 못한 일들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과학자들은 모든 변수를 계산해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하고 10년 동안 로제타 탐사선을 조종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들어간 돈은 14억 유로(약 1조 9,000억 원), 시간은 20년 이상이라고 한다.

거대한 꿈을 품고, 치밀한 계산을 하고, 오랫동안 같은 길을 갈 수 있는 유럽의 과학기술자들이 존경스럽다. 꿈에 대한 믿음과 인내심이 이룬 쾌거다. 이번 혜성 착륙 소식을 들으며, 10년 뒤를 내다본 목표를 한 가지씩 품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도 그들처럼 믿고 노력한다면 그 꿈에 못 닿을 리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