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의 방향 합의 했지만, 내용 보면 곳곳에 ‘지뢰’
논의 방향 합의 했지만, 내용 보면 곳곳에 ‘지뢰’
  • 하승립 기자
  • 승인 2015.01.14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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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 이중구조 심화 해결할 ‘묘수’ 찾을 수 있을까
‘3월중 마무리’ 촉박한 시한 설정이 뇌관 될 수도
[커버스토리] 노동시장 구조개선 ①노사정 합의, 어떤 내용?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2014년 12월 23일,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본위원회를 열어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원칙과 방향’에 대한 기본합의안을 의결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른바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논의가 공론화된 것이다.

민주노총에 대한 경찰병력 투입에 항의해 한국노총이 노사정위원회 불참을 선언하고 소강상태를 맞았던 노사정 대화는 2014년 8월, 한국노총이 다시 노사정위에 복귀하면서 복원됐다.

이 때 노사정위는 ‘노동시장 구조개선 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이 특위는 김대환 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이 직접 특위 위원장을 맡으면서 그 위상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더군다나 하반기 들어 여당은 물론, 기재부를 시작으로 청와대까지 직접 나서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강조하고 나서면서 정부의 ‘최우선 정책 과제’로까지 부각됐다.

이번에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한 것은 말 그대로 ‘원칙과 방향’이다. 따라서 향후 구체적 내용을 둘러싼 노사정 간의 ‘밀당’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 ‘밀당’이 로맨틱할 것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자칫 잘못하면 파국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선과제’에 난제 수두룩

이번에 합의된 것은 ‘원칙과 방향’ 그리고 ‘5대 의제 및 14개 세부과제’이다. 원칙은 두 문장으로 정리됐다.

<원칙>
1. 노사정은 동반자적 입장에서 장기적 관점과 노와 사, 현세대와 미래 세대를 아우르는 공동체적 시각을 가지고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추진한다.

2. 노사정은 노동시장 현실에 대한 책무성을 바탕으로 향후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사회적 책임과 부담을 나누어진다.

당초 12월 19일 노동시장 구조개선 특위에 제출된 전문가그룹의 초안과 비교할 때 ‘원칙’ 2항에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사회적 책임을 나누어진다’고 되어 있던 항목에 ‘부담’을 추가해 ‘책임과 부담을 나누어진다’로 변경했다.

‘방향’은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5대 의제별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방향’에서도 초안과 비교할 때 1항에 ‘원하청·대중소기업의 상생협력을 통한 동반성장의 기틀 마련’이라는 내용에 ‘공정거래’를 포함시키자는 한국노총의 의견을 반영했다.

<방향>
1. 노동시장 이중구조 완화와 소득분배 개선을 위해 원하청·대중소기업의 공정거래와 상생협력을 통한 동반성장의 기틀 마련, 비정규직 고용 규제 및 차별 시정 제도 개선, 노동이동성 및 고용·임금·근무방식 등 노동시장의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며 이에 대한 대책을 우선적으로 추진한다.

2. 임금·근로시간·정년 등 현안문제는 산업현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노사간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노사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최우선적으로 해결토록 하고, 산업현장에서의 소모적인 분쟁을 줄이기 위하여 노사정 공동으로 노력한다.

3. 노동기본권 사각지대 해소와 비조직부문 대표성 강화, 합리적 갈등관리와 사회적 책무성 강화를 위해 중앙·지역·업종을 포괄하는 사회적 대화를 활성화하고, 노사정 파트너십을 강화한다.

4.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 해소와 효율성 제고, 취약 근로자 소득 향상, 그리고 직업능력개발 및 고용서비스선진화 등 선제적 보호 장치 강화를 통해 촘촘하고 두터운 사회안전망을 구축해 나간다. 특히 실업급여제도 개선방안을 우선적으로 마련한다.

5.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관련 법제도를 개선하고 정책연계를 강화하는 한편, 생산성 향상과 일터혁신을 노사파트너십의 정신으로 추진한다.

노사정은 이러한 원칙과 방향 하에 노동시장 구조개선에 필요한 분야별 세부과제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와 추가협의를 진행한다. 다만, 우선과제는 2015년 3월까지 논의를 마무리한다.

‘방향’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마지막 단서 조항처럼 붙어 있는 ‘다만, 우선과제는 2015년 3월까지 논의를 마무리한다’는 부분이다. 당초 ‘다만’이 붙은 단서 조항은 ‘2015년 내 단기, 중기, 장기과제로 나누어 논의한다’는 안과 우선과제를 3월까지 마무리한다는 복수안이 제시되었고,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통해 우선과제 3월중 마무리로 확정되었다.

합의된 ‘방향’을 잘 보면 1, 2, 4번 항목이 우선과제에 해당한다. 특히 1번 항목의 경우 정부가 그간 줄기차게 강조해 왔던 ‘노동시장 이중구조 완화’가 핵심인 셈이다. 여기에는 ‘고용 유연성’ ‘비정규직 대책’ 등 첨예한 쟁점들이 포함돼 있다.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한 5대 의제 및 15개 세부과제는 다음과 같다.

단서 조항으로 인해 노동 분야는 물론, 우리 사회 전반의 핵심의제로 떠오르고 있는 사안들이 초읽기에 몰린 셈이다. 하나 같이 폭발성이 높은 사안들인만큼 어떤 형태로 합의가 이루어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3월 안에 합의 안 이루어지면, 그 다음은?

그간 기재부가 언론을 통해 ‘간보기’ 해왔던 내용들과 최근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비정규직 종합대책 등을 볼 때, 비정규직 기간제한을 기존의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방안, 경영상의 위기에 따른 정리해고가 아닌 저성과자 등에 대한 일반해고 기준 완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가능, 55세 이상 파견 허용 등의 내용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런 방안과 함께 노동계가 요구해온 노동조합의 차별시정 신청 대리권 부여, 차별시정 명령 효력 확대, 고의·반복적 차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명령 활성화 등을 딜 하는 방식으로 추진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부는 대중소, 원하청 등 기업 규모와 고용 형태에 따른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심화 때문에 이를 해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 통계로도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심각성은 드러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2013년 고용 형태별 근로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기업 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을 100으로 했을 때, 대기업 비정규직은 66, 중소기업 정규직은 54,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3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정부의 이런 정책방향에 대해 노동계가 ‘정규직의 수준을 끌어내리는 하향평준화’라고 반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노동계로서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시장 구조개선’에 대해 동의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는 협상의 당사자로 참여하고 있는 한국노총으로서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3개월의 기간 동안 노사정이 협의를 진행한다고는 하지만 접점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3월까지 노사정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그 다음이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로서는 청와대까지 나서서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밀어붙이는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상황에서 합의가 나올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합의가 동반되지 않은 정부의 일방적 추진으로 결론 날 경우는 노사, 노정관계의 파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두 번째 의제인 임금·근로시간·정년 등 현안문제도 그리 녹록한 사안이 아니다. 통상임금 문제는 아직도 많은 사업장에서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한 상태로 잠재적 뇌관으로 남아 있고, 실근로시간 단축은 임금 보전이라는 암초가 도사리고 있다. 정년연장은 이와 연동한 임금피크제 도입 과정에서 그 방법을 둘러싼 갈등의 소지가 많다.

그나마 두 번째 의제는 ‘딜’의 가능성은 있다. 여러 기업 노사가 이미 개별적 협상과 합의를 이뤄낸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도 근로조건을 저하시키지 않는 수준의 합의가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노동계 일각에서는 이 사안들의 경우 노사정위원회의 논의틀이 아닌 개별 기업 노사의 합의와 법원의 판결 결과를 따르면 될 일이라는 시각도 있어 갈등의 소지는 상존한다.

네 번째 항목인 사회안전망 확보는 노동계가 강력하게 요구하는 있는 부분이다. 안전망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논의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가운데 어떤 것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지를 둘러싸고도 논란이 예상된다.

결국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방향성에 대한 거대담론에는 동의를 이뤄냈다고는 하지만, 정작 어디로 갈 것인지가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즉 가자는 것에는 동의했지만, 목적지를 못 정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