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성에 ‘고용유연성’만 있는 것 아니다
유연성에 ‘고용유연성’만 있는 것 아니다
  • 하승립 기자
  • 승인 2015.01.14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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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비정규직 관련 입법 취지 되새겨 보자
입법보다는 노사의 합의 우선되는 분위기 필요
[커버스토리] 노동시장 구조개선 ⑥학계의 시선

노동시장 구조개선이라는 화두는 점점 노사정의 테이블을 넘어 사회적 의제로 넘어가고 있다. 대기업들은 해마다 사상 최대의 실적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지만, 정작 ‘내’가 느끼는 ‘골목 경제’는 바닥을 계속 치고 있다.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그나마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계약직, 파견, 도급, 용역이라는 이름의 비정규직이다. 2014년 8월 현재 비정규직이 600만 명을 돌파해 전체 임금근로자의 32.4%라는 것이 정부의 공식 통계다. 하지만 이 비율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고용률 65.6%의 함정

이렇게 통계와 체감 경기 사이에 괴리가 생기는 것은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통계의 자의적 해석 때문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당시 ‘고용률 70% 달성’을 주요 경제 목표로 내세웠다. 고용노동부는 2014년을 결산하면서 고용률 2014년 목표인 65.6%를 달성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단국대 하갑래 교수(법학)는 이를 ‘함정’이라고 표현했다. 하 교수는 “고용률은 취업자수를 생산가능인구로 나눈 비율인데, 그간 우리나라는 ‘15세 이상 전체’를 생산가능인구로 보고 고용률을 산출해 왔다”면서 “그런데 최근 생산가능인구를 ‘15세부터 65세까지’로 보는 OECD 기준으로 변경하면서 고용률이 순식간에 5%p 올랐다”고 지적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급격한 고령화로 가만히 있어도 매년 고용률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15세로 진입되는 숫자는 적고, 65세를 넘어서는 인구는 많아지기 때문에, 분자인 취업자수만 유지해도 분모인 생산가능인구가 줄어 고용률이 높아진다.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어도 고용률 70% 달성은 그냥 된다”는 설명이다.

하 교수는 “고용률의 함정에서 벗어나 일자리 창출의 기반을 조성하는 실체적 내용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공식적인 발표나 통계와는 상관 없이 나의 일자리가 불안하고, 내 아이들의 일자리 찾기가 힘들어지면서 노동시장 구조개선이 사회적 의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의 해법찾기는 더욱 신중해져야 한다.

일자리 부족과 격차 확대가 가장 큰 문제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회장 김동원)가 노사공포럼(수석 공동대표 유용태)의 의뢰로 진행한 ‘노동시장 구조개선 국민의식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 국민들은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문제점으로 ‘일자리 부족’(43.1%)과 ‘임금 근로조건 격차’(41.6%)를 가장 많이 꼽았다. ‘대립적 노사관계’(7.1%)와 ‘사회안전망 미흡’(6.4%)이라는 응답보다 훨씬 많은 비중을 보였다. 이 조사는 2014년 11월 27, 28일 양일간 전국의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유무선 전화 혼용으로 현대리서치연구소에 의뢰해 실시한 것으로 표본오차는 ±3.1%였다.

조사에 참여한 한국노동연구원 이장원 선임연구위원은 “일자리 부족과 격차 확대 문제가 우리 노동시장 문제의 쌍벽을 이룬다”고 전제하고 “다만 연령별로 보면 20, 30대의 청년층은 일자리 부족보다는 임금 및 근로조건 격차의 문제를 더 심각하다고 보고 있으며 50, 60대 장년층은 반대로 임금 및 근로조건 격차보다는 일자리 부족을 더 심각하다고 보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장원 연구위원은 또 “많은 청년들이 실업 및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지만 그 원인에는 청년층의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낮은 인금수준 및 근로조건의 취약함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갑의 횡포’가 가장 큰 문제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문제점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묻는 질문에는 ‘원·하청간 불공정한 거래관계’(29.8%)와 ‘대기업 노사의 이기주의’(27.9%)를 비슷하게 꼽았고, 이어 ‘취약 근로자에 대한 보호 미흡’(17.9%), ‘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과보호’(15.0%), ‘일자리에 대한 정부의 재정투자 부족’(8.4%)이 뒤를 이었다.

주목할 점은 원·하청 불공정거래나 대기업 노사의 이기주의처럼 상대적 우위에 있는 쪽의 문제를 지적한 응답이 57.7%에 이른다는 점이다. 정부여당이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큰 축으로 보고 있는 ‘정규직 과보호론’에 대한 동의보다 훨씬 많았다. 즉 정규직이 문제가 아니라, 일부 대기업과 원청 업체들의 ‘갑질’에 대한 문제의식이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좋은 일자리를 보다 많이 만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을 묻는 질문에는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을 위한 경제체제 구축’이 40.4%에 달해 압도적이었다. 이어 ‘취약 근로자에 대한 보호 강화’(19.2%), ‘대기업 노사의 사회적 책임 강화’(17.1%), ‘정규직 근로자의 고용 유연화’(14.8%), ‘일자리에 대한 정부의 재정투자 확대’(7.7%) 순이었다.

앞선 질문과 마찬가지로 대기업이 동반성장을 위해 나서야 하고, 대기업 노사가 사회적 책임을 느껴야 한다는 응답이 57.5%였다. 정규직 고용 유연화보다는 취약 근로자 보호 강화가 우선한다는 시각도 가지고 있었다.

 

공정성보다 효율성이 우선?

최근 고용노동부는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논의의 과정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방향을 엿볼 수 있는 단면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효율적인 노동시장과 공정한 노동시장의 두 축을 함께 움직이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공정’보다는 ‘효율’에 무게추가 있어 보인다는 지적이 많다. 단국대 신은종 교수(경영학)는 “그간 우리 기업들은 유연화된 경제 하에서 비정규직은 정상적인 형태거나 적어도 불가피하다고 주장해 왔다”면서 “불가피성은 유연성의 측면인데, 지금 한국의 비정규직은 기업이 유연성과 비용절감을 모두 취하려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유연성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노동계도 인정할 수 있겠지만, 임금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라면서 “유렵의 여러 나라에서 보듯 유연성을 위해서라면 (비정규직에 대해) 같은 임금 수준을 넘어 해고 위험수당까지 더해 주는 정도의 보호가 있을 때 공정한 룰”이라고 강조했다.

단국대 하갑래 교수는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총량규제를 하거나 보호 측면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게 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문제는 풍선효과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있다”고 지적했다.

하 교수는 “기간제와 파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니까 용역이 늘어난다”면서 “총량규제를 할 경우 풍선효과가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남용을 막는 것보다는 차별금지에 초점을 맞추는 정책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기존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적 목소리가 많았다. 아주대 이원희 교수(법학)는 “일각에서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겠다는 것은 정규직 전환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숙련된 비정규직으로 계속 쓰겠다는 의미”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근로기준법의 기본정신은 정규직이고 비정규직은 극히 예외적일 때만 허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정규직은 기본적으로 ‘땜빵’ 개념으로 봐야 한다. 즉 잠시 일하는 것만 비정규직이지 상시적으로 한다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성재 선임연구위원(경제학)은 “2007년 입법 취지와 타협 과정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 연구위원은 “당시 사용사유제한과 기간제한을 놓고 여러 논쟁을 하고 나서 기간제 2년으로 정했다”면서 “2년 이상 쓸 정도면 상시업무로 판단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하자는 것이 취지였다”고 상기시켰다. 7년여가 흐른 지금 기간제한을 바꿀 근거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여유 갖고 사회적 합의 이끌어야

노동시장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과 철학, 이를 기반한 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조성재 연구위원은 또 “그간 우리나라의 경제운용 원리는 성장극대화였는데,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이윤극대화로 변했다”면서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저비용 논리가 들어오고 중심과 주변을 재규정 하면서 주변부를 떨궈내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 연구위원은 “그 전까지는 비정규직이라도 성장하는 경제 속에서 정규직으로 갈 수 있다는 기대를 가졌는데, 2000년 이후에는 한 번 비정규직은 영원한 2등 시민이 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성균관대 조준모 교수(경제학)는 노사 협치역량을 강조했다. 조 교수는 “고용노동부가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했지만 그 표지에 ‘정부안은 노사정위원회에서의 논의를 위한 안으로, 노사정위원회 논의 결과를 반영하여 추후 확정될 예정’이라고 명시하고 있다”면서 “입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노사가 합의만 할 수 있다면 그 내용을 최대한 정부안에 반영하는 방식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정부가 너무 개입적인 법을 만들어서 의도와는 달리 변질될 경우 또다른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면서 “장그래법이니 안그래법이니 법 타령을 할 것이 아니라 장그래를 위한 노동시장 가교를 우리 노사가 만들어주자는 운동이 펼쳐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성재 연구위원은 “우리 사회가 고용유연성에만 매달리고 있는데, 다른 유연성의 측면을 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 연구위원은 “노동시간의 유연성은 물론이고 임금의 유연성, 그리고 기능적, 네트워크적 유연성도 발휘할 수 있는데 너무 손쉽게 고용유연화에만 신경 쓴다”고 비판했다.

이원희 교수는 “노사관계는 본질적으로 이해갈등이 대립되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따라서 양 당사자에게 균형 있게 발언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노사관계의 균형추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숙명여대 김장호 교수(경제학)는 “노동체제라는 것은 경제적인 측면과 사회적인 측면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부분이고, 두 요소가 균형을 잡을 때 노동체제의 지속가능성과 건강성이 유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특히 “3월말이라고 시한을 정해놓고 있는데 그것도 장점이 있겠지만, 노동체제의 실체를 좀더 정확하게 인식하고 공감대를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시간에 쫓기기보다는 여유를 갖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가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