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대대로 술을 즐겼다?
인류는 대대로 술을 즐겼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15.01.14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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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년 전 현생인류부터…조금 즐기는 수준은 OK
아직 유전적으로 ‘미흡’한 알코올 소비
과학칼럼니스트

매년 연말연시가 되면 술자리가 많아진다. 가는 한 해를 잘 보내고 다가오는 새해를 더 잘 맞이하기 위한 인사들이 오가는 흥겨운 자리다. 물론 매일 술을 마셔야 하면 몸이 좀 힘들기는 하다. 하지만 사람은 기본적으로 술 몇 잔 정도는 즐길 수 있는 동물이다. 주량이야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좋은 자리에서 몇 잔 정도를 마시는 건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최근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사람은 언제부터 술을 마셨을까?

사람들은 언제부터 왜 술을 마시게 됐을까. 이를 설명하는 이론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8,000만 년 전 초기 영장류가 우연히 에탄올이 많이 들어 있는 발효 과일을 먹고 알코올 소비를 시작했다는 주장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이 먹고 남은 음식을 보관하게 되면서부터 술을 마시게 됐다는 이론이다. 인류는 약 9,000년 전부터 농경을 시작했는데, 그 결과 먹고 남을 정도로 식량이 생겼다. 이걸 오래 보관하기 위해 인간이 의도적으로 음식을 발효시키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에탄올이 음식에 포함됐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 게놈이 알코올에 적응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해 알코올 중독 등이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최근 사람이 술을 마시게 된 것은 현생인류가 탄생하기 전인 약 1,00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현생인류의 조상이 알코올 분해 능력을 갖게 되면서 숲속에 떨어져 부패하거나, 발효된 과일을 먹을 수 있게 됐다는 주장이다.

인류 음주 역사는 천만 년 전 유전자 돌연변이서 시작

미국 산타페대와 인디애나 의대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 술을 마실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 게 대략 1,000만 년 전 일어난 유전자 돌연변이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를 미국립과학원회보(PNAS) 12월 1일자 온라인판에 발표했다. 1,000만 년 전이면 인간과 침팬지, 고릴라가 아직 갈라지기 전이다. 다시 말해 공통조상에서 이런 변이가 일어났다는 이야기다.

연구진은 여러 영장류에서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 가운데 하나인 ‘알코올디하이드로게나제4(ADH4)’의 유전자를 분석해 비교했다. ADH4 효소는 영장류의 위와 혀, 목에 있으며 알코올을 섭취할 때 가장 먼저 접하게 된다. 연구진은 17종의 영장류를 포함한 28종의 포유동물에서 ADH4를 채취해 분석했다. 우선 28종의 진화 계통도로 약 7,000만 년에 이르는 영장류의 진화 과정을 전체적으로 살펴본 뒤, ADH4 유전자가 어떻게 진화했는지 파악했다.

그 결과 사람과 침팬지, 고릴라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특이한 변이가 밝혀졌다. 294번째 아미노산이 알라닌에서 발린으로 바뀐 것이다. 효소 활성을 시험한 결과 변이된 ADH4는 다른 영장류들의 ADH4보다 에탄올을 산화시키는 능력이 40배나 더 컸다. 술에 들어있는 알코올을 잘 소화할 수 있도록 진화한 것이다.

오랑우탄에게는 이런 변이가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들은 사람·침팬지(보노보)·고릴라의 공통조상과 1,200~1,300만 년 전에 갈라졌다고 알려졌다. 대형유인원 가운데 오랑우탄만이 유전적으로 술을 제대로 못 마신다는 이야기가 된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기후변화로 바뀐 식단… 떨어져 자연 발효된 과일도 먹어

미국 산타페대의 고생물유전학자 매튜 캐리간은 “돌연변이로 인한 효과는 매우 컸으며 그 결과에 깜짝 놀랐다”며 “돌연변이가 일어난 시기가 생활방식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자들은 신생대 마이오세 중반 일어난 기후변화에 주목했다. 대략 1,600만 년 전 동아프리카가 건조해지면서 밀림이 사바나로 바뀌게 됐다. 이렇게 변화된 환경은 나무 위에서 살던 영장류들에게 큰 시련이었고, 여러 종을 멸종하기에 이른다. 여기서 살아남은 종들은 나무에서 내려와 땅을 밟았고 식단도 바뀌게 됐다.

원래 열매를 좋아했던 유인원들은 땅에 떨어진 열매까지 주워서 먹게 됐다. 땅에 떨어진 열매들은 많이 익은 상태인데다 상처도 생긴다. 그러니 표면에 묻어 있던 효모가 자연적으로 발효해 에탄올이 꽤 품게 된다. 그러다 1,000만 년 전 어느 순간에 이런 식으로 자연 발효된 과일도 잘 먹을 수 있는 변이체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변이체가 아무래도 생존에 유리했을 것이고, 다수가 됐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침팬지·고릴라의 공통조상이 변이 유전자를 표준적으로 가지게 됐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캐리간 박사는 “에탄올의 소비 능력은 인류의 조상에게 다른 음식이 부족할 때 부패하거나 발효된 과일을 먹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며 “인류 조상은 물론 침팬지, 고릴라가 상한 과일과 일반 과일 중 선택권이 있었다면 일반 과일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알코올을 먹을 수 있도록 적응됐다고, 선호하게 된 건 아니라고 보고 있다. 에탄올을 완전히 대사시킬 수 있을 정도로 적응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섭취한 알코올도 소량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심장병과 간질환, 정신질환 등 음주와 관련된 문제는 인간이 에탄올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도록 유전자를 진화시켜 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연구진의 판단이다.

결국 이번 연구 역시 인간 게놈이 알코올에 적응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는 데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인간은 술을 조금 마셔도 괜찮을 정도로 진화했지만, 술을 이기는 수준까지 오지는 못했다. 새해부터는 우리가 진화한 수준에 맞춰 적당한 음주를 즐기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