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이냐, 도덕이냐
능력이냐, 도덕이냐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5.01.14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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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훈 기자 jhpark@laborplus.co.kr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쥘 베른의 ‘15소년 표류기’,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소년시절 꿈과 모험의 세계에 대한 온갖 환상을 심어줬던 애독서들이다. 비상식량 느낌이 나는 건빵 한 봉지를 씹어가며 읽어야 제 맛이다. 컴컴한 벽장 속이나 책상 밑에 보자기로 천막을 드리우고 쪼그리고 앉아서 정신없이 미지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나이를 먹고 어린 시절 애독서를 다시 읽을 때면, 가급적 재해석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과거에 몰랐던 부분이 새롭게 다가오는 장면이 있는가 하면, 소년시절처럼 환상을 동경하지는 않으니까 흥미가 떨어진 대목도 있다.

‘걸리버 여행기’를 한 번쯤 안 읽어본 사람이 있을까. 소인국 ‘릴리푸트’에 표류한 걸리버의 모험에서 역시 가장 흥미진진했던 대목은 역시 적국 ‘블레푸스쿠’의 함대를 몽땅 나포해 유유히 귀환하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조너선 스위프트는 소설 속에서 가상 국가의 제도나 관습, 문화 등을 꽤나 상세히 더듬는다. 어린이들에게는 가장 지루한 대목이다. 세월이 얼추 삼십년 가까이 지나면서 유감스럽게도 책을 읽는 내가 지루한 어른이 됐다. 그래서인지 아래와 같은 대목이 새삼 눈에 띤다.

“그들은 모든 직업에서 사람을 채용할 때 능력보다는 도덕성에 더 중점을 둔다. 왜냐하면 그들은 보통의 능력을 갖고 있는 모든 인간은 각자에게 맞는 자리가 반드시 있다고 믿으며 몇 사람의 천재만이 할 수 있는 직업은 별로 없다고 믿는 거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정의, 절제 등의 덕을 가질 수 있으며 그러한 미덕을 실천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전문적인 수련이 필요한 분야를 제외하고 국가에 봉사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고 그들은 믿는다. 그렇지만 그러한 정신적인 도덕성이 결핍된 사람은 아무리 훌륭한 재능을 천부적으로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자기의 덕망의 부족을 메울 수가 없으며 그런 사람들에게 공직을 부여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그리고 덕을 갖춘 사람이 저지르는 실수는 부정 행위를 하는 데 뛰어난 사람이 저지르는 행위보다 그 해로움이 적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우리보다 1/12 정도 작은 인간들이 모여 사는 릴리푸트는 고도화되고, 이성적이며, 세련되고, 복잡하며, 잔인한 사회다. 전제 군주에 의해 짜임새 있게 다스려지는 ‘제국’이며, 작은 인간들은 우리네 세상처럼 울고, 웃고, 싸우고, 시기하며 살아간다. 빼꼼 들여다볼 수 있는 궁정에선 온갖 종류의 음험한 모략들도 오간다.

어차피 소설 속 가상 세계인 릴리푸트가 아름다운 세상인지 아닌지 해석이 분분한 것은 차치해도 좋을 거 같다. ‘공직자’의 덕목에 대해 릴리푸트가 갖고 있는 기준들의 몇몇 대목은 우리도 눈여겨 볼만하지 않을까.

‘노블리스 오블리주’에 대해 실망이 넘쳐나 냉소로 변질되고 있는 우리 세상을 어떻게 해야 조금씩 바꿔갈 수 있을까. 지루하고 꼰대 같지만 자꾸 ‘도덕성’에 대해 얘기해야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