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벽두부터 평범한데 낯선 묘한 광경이 펼쳐졌다. 한국노총 김동만 위원장과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만났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노동단체 수장의 만남이 낯설 이유는 하나도 없다. 하지만 여지껏의 관행을 보건데 꽤 낯설고도 신선한 광경이다.
김동만 위원장이 한상균 위원장의 당선을 축하하기 위해 예방하는 형식으로 마련된 이 자리에서 엘리베이터 앞에 마중 나와 기다리던 한 위원장은 “오늘의 자리를 ‘단금지교’의 계기로 삼자”고 말했다. 여기에 대해 김 위원장은 “‘유력동천’의 자세로 난국타개를 위해 손잡고 나가자”고 화답했다.
단금지교(斷金之交)는 ‘쇠붙이를 끊을 수 있을 만큼 단단한 교분’이라는 말이다. 주역의 ‘이인동심 기리단금, 동심지언 기취여란(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에서 비롯된 말로 ‘두 사람이 마음을 하나로 하면 쇠를 자를 만큼 날카로워지고, 하나된 마음에서 나온 말은 난과 같은 향기가 풍긴다’는 뜻이다.
흔히 쓰는 또다른 단금지교에는 ‘斷琴之交’가 있다. 거문고의 대가였던 백아와 그 소리를 알아주는[知音] 유일한 벗이었던 종자기의 고사에서 나왔다. 백아는 종자기가 죽고 나자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거문고 줄을 자르고[斷之], 끊고[絶之], 치고[觸之], 부수고[破之], 밟아[踏之]버렸다고 한다. 아무래도 금속노동자 출신인 한 위원장에게는 거문고보다는 쇠가 더 잘 어울리는 듯 싶다.
유력동천(惟力動天)은 ‘노력의 힘은 하늘도 움직인다’는 말이다. 사실 이런 한자성어는 없다. 원래 서경에 나오는 ‘유덕동천(惟德動天, 덕의 힘은 하늘도 움직인다)’에서 ‘덕’을 ‘력’으로 바꾼 것으로 김동만 위원장이 평소 자주 쓰는 표현으로 알려져 있다. 누구보다 많은 발품을 팔며 현장을 누벼온 금융노동자 출신 김 위원장에게는 노력이 더 어울려 보인다.
지난 연말 최초의 직선 위원장으로 선출된 한상균 위원장 체제의 출범 이후 양 노총의 관계가 껄끄러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간 양 노총이 공조를 진행했던 두 번의 경험(박인상-권영길, 이용득-이수호)은 모두 민주노총에 이른바 온건 우파 성향 집행부가 들어섰을 때였다.
하지만 한상균 위원장은 1998년 이갑용 위원장 이후 17년만의 좌파 집행부이고, 최근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둘러싸고 논의 테이블에 앉은 한국노총과 이를 비판한 민주노총의 입장이 갈리면서 더 멀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강했다.
올 한해 노사관계는 요동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부가 우선과제로 노동시장 개혁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두 위원장의 만남은 의미심장하다. 쇠를 끊든 거문고를 끊든, 덕의 힘이든 노력의 힘이든, 두 노총이 지혜와 노력을 모으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