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자는 쏙 빼놓고 맘대로 투자 한다고?
가입자는 쏙 빼놓고 맘대로 투자 한다고?
  • 참여와혁신
  • 승인 2004.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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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금투자, 운용문제

“꼬박꼬박 명세서로 찍혀 나가던 봉급자들만 억울한 것 아닙니까”

연기금을 동원한 한국형 뉴딜정책에 불만을 호소하는 한 직장인의 말이다.

연기금 운용기구와 투자처를 둘러싼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정작 가입자들의 목소리는 배제된 채 불신과 의혹만 부풀려지고 있다. 최근에는 기금관리기본법 통과를 앞두고 연기금 운용의 독립기구 상설화 및 소관부처 문제로 보건복지부와 재경부가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경기부양을 목적으로 연기금을 동원한 한국형 뉴딜정책이 오히려 사회갈등만 부추기고 있는 꼴. 
 

정부가 발표한 한국형 뉴딜정책의 자금동원은 사실상 6월말 현재 122조원의 여유자금을 가진 국민연금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2026년에 고갈될 것으로 보이는 사학연금과, 2001년부터 적자를 기록해 올해 국민들의 혈세로 보전하고 있는 공무원연금은 사실상 여유재원이라고 불리기에는 미흡하다. 또한 사립학교교원연금도 3000억 가량 정부충당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2005년 기금운용계획안’에 따르면 운용기금 개수는 총 57개로 기금운용규모는 총 320조1808억원. 2004년 대비 7.3%가 증액됐다. 특히 2004년도 이후 총조성액(출연금, 부담금, 차입금, 운용수입 등으로 구성)이 90.0%에서 113.3%로 급격히 증가함으로써 기금관리의 중요성이 갈수록 부각되고 있다.

이렇게 적립액이 급격히 증가한 것은 국민연금이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1998년에는 적립금 누계액이 5279억원이었던 것이 2003년 말에 112조2695억원으로 뛰어올랐다. 이는 연금을 수령하기 이전까지 계속 적립되는 수정부과방식의 결과로 연평균 43%씩 급증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일반회계예산 118조원과 맞먹는 수준의 국민연금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는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미 국민들은 연금의 징수단계에서부터 불신이 가득한 상태. 최근 떠돌았던 ‘국민연금의 8대 비밀’에서부터 운용을 둘러싼 주무부처들 간의 갈등까지, 국민연금의 본래목적인 노후대책을 위한 안정적 수급재원 확보는 자취를 감춘 상태다. 

 

가입자는 쏙 빼놓은 기금운용기구

현재 지역가입자 보험료 징수율은 75% 수준. 징수율을 5% 높일 경우 보험료 수입은 약 2700억원 가량 증가하게 된다. 그만큼 기금관리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전문성이 부족한 정부가 연금운용을 재정정책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문제제기는 끊이지 않고 일고 있다.

국민연금의 운용을 담당하고 있는 기구는 보건복지부 산하 기금운용위원회다.

정부부처 공무원인 당연직 7인과 사용자대표 3인, 노동자대표 3인, 지역가입자대표 6인, 관계전문가 2인 등 14명의 위촉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가입자들의 직접적 결정권한은 부여되지 않고 있으며, 추천을 받아 위촉된 이들의 대표성에도 논란이 존재한다. 이 구성은 기금관리기본법의 개정으로 내년부터 바뀌게 된다.

그런데 바뀌는 내용을 살펴보면 가입자들의 요구가 제대로 반영될만한 여지는 오히려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은 운영위원의 총 인원수는 9명으로 축소시키고, 가입자 위원수는 4명으로 제한한다. 12명으로 형식적인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었던 자리마저 사라지고 있는 형편.

한국노총 정길오 정책본부장은 “노후 예탁금인만큼 직접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며 “기금운영은 가입자 대표들이 직접 참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운영위원회의 전문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은 경영계도 전적으로 공감하는 입장이다. 경총 이호성 경제조사본부장은 “현 운영위 구성을 보면 전문가를 요건으로 하지 않는다. 또 그런 구조도 아니다”고 위원회 구성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들 가입자들의 권한은 추천권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재편되는 위원회에서 직접 위원으로 참여할 수 없다. 여기서 참가위원의 자격은 관련분야 지식이 풍부한 금융전문가에 한정되는 것이다.

정부는 개정안에서 국민연금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므로 국무총리가 의장이 되는 국민연금정책협의회를 신설하려고 하고 있지만 이는 국민연금의 관치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민주노총 김태현 정책실장은 “과거에도 정부는 연기금을 빌려간 후 갚을 때는 싼 이자 붙여서 주는 등 안정성에 피해를 입혔다. 또다시 자신들의 재정정책수단으로 삼으려는 건가”라며 정부부처의 개입을 반대했다.

 

수익성만 챙기는 국민연금 

국민연금 여유자금의 89.49%는 수익성 위주의 금융부문에서 운용되고 있다. 반대로 사회복지분야의 운용실적은 여유자금 121조원의 0.33%인 4043억원에 불과하다.

이는 복지증진이라는 연금조성의 목적에 상응하는 운용체계가 아니었음을 반증한다. 연금을 내지 못할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실정에서 저임금 생활자나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을 돕는 데 운용되기 보다는 주로 수익성 위주의 금융부문에서 이루어졌다.

금융부문이라고 함은 채권, 주식, 수익증권, 정기예금 등으로 이 중에서도 채권에 90% 이상 들어갔다.   

 

국민연금, 공공성 · 안정성 확보되어야

연기금은 국민의 부담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용 또한 공공의 목적에 일치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논의 과정에서 가입자들의 입장이 반영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고갈에 따른 불안감, 그 동안의 부실재정운용상태 등을 고려했을 경우 계약체결의 당사자의 요구는 쏙 빠진 채로 운용되어 왔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막대한 규모의 연기금을 활용하겠다면 수익성을 따지기 이전에 운용의 안정성과 공공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국민연금의 성격상 소유권 이전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정부는 최종적인 의사결정 통제기능의 담당자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안정적인 투자처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앙대학교 김연명 교수는 “연기금의 투자는 수익을 내는 것을 목적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쪽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 “투자정책을 세우기 이전에 충분한 합의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필요하다”며 사회적 합의 없이 진행되고 있는 정책수립과정을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