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실은 다지고, 외연은 더 폭 넓게
내실은 다지고, 외연은 더 폭 넓게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5.02.16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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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중한 업무시간 줄일 제도 정비…업무 몰입도 향상
비정규직 문제·해외 자원봉사 등 나눔으로 눈길 돌려
[사람] 윤주필 한국기업데이터지부 위원장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kr
OECD 국가들 중에서 우리나라는 노동시간 분야에서 선두를 다툰다. 나날이 늘어가는 업무시간은 노동자들을 지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한 노동조합의 노력은 계속 된다. 한국기업데이터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기술신용평가기관(TCB)으로 지정된 뒤 폭발적으로 늘어난 업무량은 도저히 지금 인원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근로시간 단축 위한 강력한 장치 마련

한국기업데이터는 기업 신용평가 전문 기업이다. 2012년 민간 은행주주 지분확대를 통한 민영화 과정을 겪으며 노동조합의 위치가 더욱 중요하게 됐다.

한국기업데이터지부 조합원들의 가장 큰 고민은 업무량이 너무 과중하다는 점에 있다. 다른 사무직 노동자들처럼 이들도 야근을 ‘밥 먹듯’ 했다. 실질적으로 주당 70시간 이상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지난 2013년 한국기업데이터지부는 이와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끈질긴 투쟁 끝에 사측과 PC-OFF 제도에 합의했다. 사전에 시간외근로 설정을 해 두지 않으면 자동으로 PC가 꺼진다. 9시 반부터 하루 8시간 근무가 끝나면 야근을 신청할 건지 물어본다. 하루에 3시간 이상 야근을 하지 못한다. 일주일에 12시간이 넘으면 PC를 켜지 못한다.

“막강한 합의입니다. 엄연히 법이 있는데 현실에서 무시되기 일쑤였잖아요. 법을 어겨가며 일을 할 수 없게 시스템을 만들어 놓은 것이죠.”

타 사업장 중에도 PC-OFF 제도를 시행하는 곳이 있다. 하지만 한국기업데이터만큼 엄격하게 근무시간이 ‘규제’되지 않는다. 이런 저런 꼼수로 여전히 야근은 계속된다. 한국기업데이터지부는 퇴근 후 회사를 돌면서 이런 일들을 단속했다. 연장근무가 많은 부서는 부서별 인사고과에 낮은 점수로 반영된다는 점도 제도 안착에 한 몫 했다.

결국 직장 내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PC-OFF 제도가 자리를 잡은 지금, 과거와 가장 달라진 문화가 있다면 윤주필 한국기업데이터지부 위원장은 “업무에 대한 몰입도가 대단히 높아진 점”을 꼽는다.

“조합원들과 인터뷰를 해 봐도 확실히 달라진 점을 느낄 수 있어요. 전에는 ‘어차피 난 9시, 10시에 퇴근하니까’라는 마인드를 직원들이 갖고 있었어요. 차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느긋하게 일했던 거죠.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어차피 일이라는 게 줄어들지는 않으니까 시간 내 해내려면 더 집중해야 하죠. 생산성이 아주 높아졌다고 보면 됩니다.”

임금·고용 넘어 노조 활동 외연 넓히다

노동조합이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슈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비교적 임금이나 고용과 같은 기본적인 부분이 안정적인 조직들의 경우 특히 그렇다. 윤주필 위원장은 “주변을 돌아보고 나누는 것에서 조합원들이 행복을 찾도록 하고 싶다”고 밝혔다.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 전면에 대두되면서 한국기업데이터 역시 무기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노사가 협의해 추진 중이다. 이들 전환된 인원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승진하게끔 해서 정규직 직원들과 호봉을 맞춰나간다.

매년 임금협상이 끝나면 전체 직원들이 절반, 회사가 절반을 출연해 해외 극빈국에 봉사활동을 떠나기도 한다. 국제 NGO인 ‘해비타트’와 함께 네팔과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집짓기 봉사활동을 추진했고, 올해 3월에도 역시 계획 중이다.

이와 같은 폭 넓은 노동조합 활동이 가능했던 것을 윤 위원장은 “조합원들의 힘”이라고 공을 돌렸다. 국내 유수의 대학 출신에 대부분 석박사 학위를 가진 우수한 인력들이 모인 조직이면서, 자신의 일과 조직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높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런 조합원들이기에 내부 문화나 시스템을 더 건강한 방향으로 바로잡는 일, 그리고 더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동조합의 노력을 제대로 평가하고 기꺼이 참여하고 있다.

물론 이와 같은 것이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140여 명 수준의 작은 조직이면서도 투쟁 경험이 상당하다. 자신의 몫을 정당하게 요구하는 것에서 출발해, 주변을 돌아보고 나눌 수 있도록 조합원들의 의식을 바꿔내기 위해 노동조합은 치밀하고 끈기 있게 처음의 기조를 유지해 나갔다.

“더 행복한 삶을 누구나 꿈꾸잖아요? 노조는 조합원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고민하는 것이고. 직장에서든 밖에서든, 자기가 하는 일이 가치 있다고 느껴질 때 사람은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게 아닐까요.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는 조합원들에게, 네팔 오지 마을에서 벽돌을 나르던 조합원들 얼굴에서 그런 행복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국기업데이터지부는 한층 더 성숙한 노동조합을 향해 매진하고 있다고 윤주필 위원장은 말한다. 기존의 좋은 점은 더욱 발전시키고 나아가 주변을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이 ‘성숙’의 요지다. 내실을 다지고 더욱 크게 발돋움할 한국기업데이터지부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