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말씨에 영향 준다고?
날씨가 말씨에 영향 준다고?
  • 참여와혁신
  • 승인 2015.02.16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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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한 기후선 목소리 촉촉…중국어 성조도 기후 탓
언어뿐만 아니라 인류 문화 전반에 영향 미쳐

과학칼럼니스트
해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이 세우는 대표적인 목표 중 하나가 ‘외국어 배우기’다. 영어 실력은 필수처럼 여겨진 지 오래됐고, 최근에는 제2외국어까지 섭렵하려는 사람이 많다. 제2외국어 중에서도 인기 많은 언어는 중국어다. 하지만 중국어를 배우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다른 언어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성조’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같은 글자라도 발음할 때 높낮이를 조절하는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뜻이 되는 중국어는 그만큼 현란한 언어다. 중국어에 유독 성조가 발달된 이유가 있을까. 그 비밀을 국제 공동연구팀이 밝혀냈다.

“언어 형태 형성에 기후가 중대 요소 중 하나였을 것”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말’이다. 뜻을 전달하고 마음을 나누고 사회를 운영하려면 서로가 이해하는 언어를 써서 표현해야 한다. 만약 사람들이 말하지 못하는 존재였다면 아마 이만큼 발전된 문명도 없었을 것이다. 온 지구가 같은 말을 사용하고 소통에 어려움이 없으면 좋겠지만 현재 지구에는 5,000여 개가 넘는 말들이 존재한다.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말을 하며 문화를 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역마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이 다른 까닭은 무엇일까. 과학자들은 그 이유 중 하나가 기후일 것이라고 추정해왔다. 이 부분을 오랫동안 연구한 미국 마이애미대 연구진은 최근 ‘기후가 인간의 언어 음색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카렙 에버렛(Caleb Everett) 마이애미대 박사팀은 중국처럼 성조가 발달된 언어를 중심으로 연구했는데, 이런 언어가 발달하는 데는 습한 기후의 영향이 컸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전 세계 수많은 언어는 단어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나름의 음조와 음색을 가지고 있다. 성조가 발달된 언어들은 같은 소리도 3가지 이상의 음색을 가져 다른 의미를 전달하는 복합음을 가진다. 연구진은 이런 성조 발달과 기후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3,700개 이상의 언어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성조 언어를 사용하는 지역이 열대나 아열대 아시아, 중앙아프리카 등 대체로 습한 지역이라는 게 밝혀진 것이다. 반대로 음색이 단순한 언어는 혹독하게 춥거나 사막처럼 건조한 지역에서 생겨났다.

습한 날씨가 언어 발달에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었을까. 연구진은 습한 날씨가 목을 촉촉하게 젖게 만들어 탄력 있는 목소리를 만든다고 봤다. 우리가 마시는 공기가 건조하면 후두 부위가 건조해지고 성대주름의 탄력이 떨어지게 된다. 그러니 건조하고 냉랭한 환경에서는 따뜻하고 습한 환경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음색을 내는 것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또 순간적으로 소리의 파형이 흐트러지거나 흔들리는 현상은 춥고 건조한 지역과 좀 더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물론 언어가 완전히 기후의 영향만 받아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장기간에 걸쳐 언어의 형태가 만들어지는 데 기후가 중대한 영향을 미친 여러 가지 요인 중 하나였을 것이라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영국의 기후가 습한 정글이었다면 영어도 중국어처럼 성조가 발달한 언어가 됐을지 모른다.

기후 급변기에는 문화 혁신이 일어난다

사실 기후는 언어뿐 아니라 인류 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준다. 마짓 사이먼(Margit Simon) 영국 카디프대 박사팀이 지난해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논문은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이 연구결과에 따르면 8만~4만 년 전(중석기 시대)에 일어난 급격한 기후 변화가 복잡한 상징 등을 사용하는 문화 발달을 가져왔다.

ⓒ 서산류방택천문기상과학관
기존 학계에서는 북반구가 차가워지면서 대서양 순환에 영향을 줬고, 이것이 북반구 고위도로 유입되는 따뜻한 물의 양을 줄였다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북반구의 온도가 내려간 반면 사하라 사막 아래의 남아프리카 지역 등은 건조한 환경이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이먼 박사팀은 이와 반대되는 증거를 발견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남아프리카는 강우량이 늘어나는 쪽으로 기후가 바뀌었는데 이는 전 지구적인 열대 몬순벨트가 남하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대략 중석기 시대로 분류되는 이 시기에는 대규모의 농경 등 여러 산업이 발달하고 언어 발달과 관련 있는 상징 등이 등장했다.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시기가 강우량 증가 시기와 일치하는 것이다. 이처럼 기후가 변화는 시기에 문화적인 변화가 있었다는 건 인구가 늘고 사람 간의 상호작용이 늘어났다고 해석할 수 있다. 문화적 변화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 천리안 위성 첫 가시영상 ⓒ 국가기상위상센터
당장 내일 아침의 온도가 1℃만 내려가도 컨디션이 달라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하물며 전체적인 날씨가 변한다면 삶에 큰 변화가 생기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말씨도 날씨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혹시 새해 계획으로 중국어를 배우겠다는 결심을 했다면 먼저 습한 날씨에서 얻을 수 있는 탄력 있는 목소리를 만드는 게 좋겠다. 물을 많이 마셔 목을 촉촉하게 한 후 성조에 도전하면 한결 좋은 효과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