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여행을 마주하는 방법
진짜 여행을 마주하는 방법
  • 홍민아 기자
  • 승인 2015.02.16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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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으로 수다 떠는 남자 탁재형
대중과의 유쾌한 소통 속에 빠지다
[사람] 탁재형 PD

‘여행’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자 단조로운 일상을 견뎌 낼 수 있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한국관광공사 공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1,608만 684명의 국민들이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2013년도 대비 약 120만 명이 증가한 수치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국내를 떠나 세계 각국으로 여행을 떠나고 있지만 여행의 진정한 맛을 즐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오지 다큐멘터리 전문 PD로 등장

팟캐스트의 진행자이자 두 권의 책을 낸 작가, 대형 포털사이트에서 뉴스펀딩 취재 활동, 간간히 강연자의 역할까지. ‘여행’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변태 중인 탁재형 PD를 대학로에서 만났다.

탁재형 PD는 10여 년 동안 방송사 외주 프로그램을 제작하던 프로덕션의 PD로 일했다. 탁 PD가 제작한 프로그램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세계테마기행>이라는 EBS 시리즈다. PD가 직접 여행자로 둔갑해 그 나라를 소개한다. 처음의 기획 의도는 아니었지만 방송국 외주 제작이라는 상황과 PD가 직접 움직이면 기동성 면에서도 이점이 있다는 생각에 방송사를 설득해서 직접 프로그램의 얼굴로 나섰다.

“프로덕션 들어와서 처음엔 여행이 아닌 해외 콘텐츠를 다루는 일을 했다. 휴먼도 했고 시사도 했었고 때로는 분쟁 지역도 갔었다. 그러다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프로그램이 세계테마기행이었다. 직접 몇 번 출연했었는데 반응이 좋아서 그 포맷으로 프로그램이 진행 된 거다. 세계테마기행을 하면서 느꼈던 점은 ‘PD로서 고민하던 것과 여행자로서 고민하던 바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프로그램을 본 시청자들도 더욱 진정성 있게 느꼈던 것 같다.”

작년 3월에는 독일의 유명한 탐험가 알렉산더 훔볼트의 행적을 추적하기 위해 2달을 남미 에콰도르와 콜롬비아에서 보냈다. 알렉산더 훔볼트는 전기뱀장어를 포획해 당시 설이 분분했던 동물전기를 실험을 통해 증명했고, 이 실험은 심전도검사기 개발의 밑바탕이 되었다. 이 전기뱀장어를 찾기 위해 그 마을에서 고기 좀 잡는다는 사람들 3명을 섭외해 개울을 뒤지고 다닌 끝에 전기뱀장어를 찾는 데 성공했다.

“기억의 농도라는 것은 고생의 정도와 비례한다”는 탁 PD는 “그 사람의 업적을 추적하는 기획이었기 때문에 에콰도르에, 사람들이 다 벗고 사는 그런 정글까지 들어가서 사냥에 쓰는 독을 채취하고 독 있는 가오리를 만나기도 했다”며 가장 기억에 남는 촬영 장소로 이곳을 떠올렸다.

내가 콘텐츠가 된다?

현지에 가서 촬영하는 것도 힘들지만 하나의 프로그램을 완성하는 일은 더 만만치 않다. 예를 들어 하나의 시리즈를 만들기 위해 2주간 기획 회의, 2주간 현지촬영, 귀국 후 또 2주간 편집 작업, 그리고 일주일 동안 방송국 심사 통과, 원고 작성과 더빙의 과정을 거쳐야 프로그램이 마무리된다. 한 달하고도 2주의 시간이 걸리는 셈이다. 휴가는 알아서 틈틈이 가야 했기에 주말을 반납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많은 나라들을 다니다 보면 의미 있는 장소와 시간들이 많아지는데 업무적으로만 다니다 보니 슬프더라. 그런 장소들을 내 의지대로 다니면서 지속가능하게 할 수는 없을까를 고민하던 시기였다.”

한이 맺힐 정도로 열심히 일했기에 하루에 방송이 연속 4편까지 나오던 때가 있었다. 그 시기에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을 사람들과 함께 보면 어떨까를 떠올렸고, 영상을 볼 수 있는 펍을 섭외해서 모인 사람들과 함께 방송을 봤다. 사람들과 같은 주제에 대해 공유하고 어울리는 것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만든 결과물을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좋았다. 예전엔 프로그램을 만드는, 콘텐츠를 만드는 작업을 했다면 이제는 내 자신이 콘텐츠가 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원래 노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다. 예전엔 나는 왜 노는 걸 좋아할까, 수양이 부족하다, 왜 남들 속도를 따라 가지 못할까 하는 생각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런데 40대를 넘어서부터 삶의 태도가 바뀌었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구나’를 인정한 거다. 변화를 요구받지 않을 때, 내가 생긴 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선택할 때 편해졌다.”
 
탁 PD는 2012년 겨울, 홍대에서 직접 토크 콘서트를 열었고 팟캐스트(인터넷이나 스마트폰 등을 통해 오디오 및 비디오 등의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이다. 스마트폰에 관련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하면 원하는 장소,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프로그램을 정취 또는 시청할 수 있다)에 게스트로 출현하기 시작했다.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무거나 전문가’의 타이틀을 달고 게스트 활동을 하던 중 팟캐스트 방송을 진행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귀만 있으면 떠날 수 있는 여행의 시작

2013년 1월 26일, 남미편을 시작으로 ‘탁PD의 여행수다’ 팟캐스트 방송을 시작했다. 팟캐스트 방송의 매력은 공개 라디오 같이 관객들이 함께 한다는 점이다. 평균 1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이는데, 2015년 첫 녹음을 할 때는 200여 명의 사람들이 찾아와 녹음 장소를 가득 채웠다. 이야기는 탁PD와 게스트들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을 한 ‘썰’풀이로 시작된다. 매 회 주제만 정해진다면 사전에 짜여진 원고 없이 녹음을 시작하고 그때그때 관객 반응을 보면서 흐름을 이끌어 간다. 직접 편집해서 방송을 업로드 하는데 거의 편집하는 분량 없이, ‘날 것’의 이야기들을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팟캐스트 진행으로 인지도가 올라가자 출판사의 제안으로 여행과 술에 관련된 책도 두 권을 냈다. 대형 포털사이트에서 독자들에게 취재비용을 지원받아 기사를 작성하는 뉴스펀딩 참여 제안을 받아서 다양하고 우수한 품질의 맥주문화를 위한 기사도 연재 중이다. 틈틈이 강연을 다니기도 한다.

“다니던 회사는 작년에 그만뒀다. 방송 일을 하면서 팟캐스트도 할 때, 마음이 불편했다. 사람들에게 여행 가라, 쉬자, 놀자는 이야길 하면서 정작 나는 그렇게 못하고 있으니 불편했다. 회사에는 일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마음 한 구석에서는 계속 놀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 또 불편하더라. 그런 것들이 부딪히면서 사람이 생긴 대로 살고, 언행일치하게 살자는 생각을 많이 했다. 금전적인 부분은 이전만 못하지만, 지금이 행복하다.”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예전에는 지금처럼 커피전문점이 많지 않았다. 무조건 인스턴트커피, 다방 커피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원두커피의 맛을 알게 되었고 아메리카노, 핸드드립 커피도 마시게 됐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번잡스럽고 기존의 맛보다 달지도 않아서 이상했을 거다. 그런데 사실 그게 진짜 커피다. 진짜는 매력이 있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패키지여행을 많이 다닌다. 편리하고 짧은 시간에 고민 없이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진짜 여행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짜 여행에 근접하려면 일단 자기주도적이어야 한다. 어디를 갈 것인지 무엇을 먹을 건지에 대해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어야 한다. 식당이나 쇼핑도 프로그램이 이끄는 대로 따라 가다 보면 결국은 남의 여행에 구경꾼으로 갔다 오는 거나 마찬가지인거다.

자신이 그 감정을 느끼려면 자기 몸으로 부딪히는 경험을 늘려야 하고, 소규모여야 한다. 사람들이 많을수록 어디를 가야 한다, 저기는 가고 싶지 않다, 이걸 먹으니, 저걸 먹으니 등등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한 사람만 만족한다면 다른 이들의 불만이 생길 테니, 대규모일수록 누구 하나 만족시킬 수 없는 여행이 된다.

지금은 여행의 시대라고 할 만큼 여행하기 편한 시대이다. 어느 나라를 가도 기본적인 치안은 마련되어 있고 각국에서 여행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영어를 못 해도 현지 여행사에 가면 사진으로 소개되어 있고, 우리가 알아들을 때까지, 이해할 수밖에 없는 영어로 설명해 준다. 그래서 여행자들이 많이 가는 거리에 첫 숙소를 잡으면 여행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하나 더, 자기주도적이고 소규모의 여행을 떠나야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

일상에서 사색할 수 있는 여유가 없으니 여행에서 그 시간을 가지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그래야 그 여행이 자신에게 뭔가를 주는 거다. 새로운 아이디어, 내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 잃어버린 감성을 되살릴 수 있는 기회도 된다.

그래야 우연한 일이 생기고 인연이 생긴다. 나도 2007년 네팔 취재를 하면서 만난 인연 덕분에 네팔에 양어머니가 생겼다. 일이 바빠서 못 갔었는데 작년에 만나러 갔다. 7년 만에 만난 거다. 영화 <비포선라이즈> 속 에피소드가 나에게 안 생길까 생각하지만 그런 경험이 안 생길 수밖에 없는 여행을 하는 거다. 멍 때릴 시간도 없이 숨 가쁘게 여행을 하니까 그런 멋진 일들이 안 생기는 거다.

물론 처음이라 긴장하고 예상치 못한 일들이 발생하면 겁부터 나니까 피하게 되고 그렇지만, 경험들이 한 번 두 번 쌓이다 보면 여유가 생긴다. 진짜 재미는 우연함 속에 있고, 그런 경험이 재밌는 추억이 되는 거다. 그런 경험들이 쌓여 가는 것이 진짜 여행의 모습에 가까워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천천히 할수록 멋진 일들이 생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