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노믹스와 초이(CHOI)노믹스의 한판 대결?
KY노믹스와 초이(CHOI)노믹스의 한판 대결?
  • 하승립 기자
  • 승인 2015.02.16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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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증세 없는 복지’ 논란의 중심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얘기 중 하나다.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당최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이 표현 속에 등장하는 K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Y는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뜻한다. 연초 김무성 대표의 수첩이 언론사 카메라에 노출되면서 부각된 이른바 ‘문건파동의 배후 K, Y’에서 비롯됐다. 초이는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뜻한다.

얼핏 보면 “증세 없는 복지는 거짓말”이라는 집권여당 당대표와 원내대표의 공세와, 여전히 청와대의 의중에 따라 증세 없는 복지 정책의 유지라는 기조를 이끌고 있는 경제부총리의 정책 대결처럼 읽힌다.
영문 이니셜을 이용한 정치인 표기법은 삼김 시대를 거치면서 보편화됐다. 유력 정치인 3인의 성이 모두 김씨이다 보니 구분하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YS, DJ, JP라는 표현이 연일 신문지상을 오르내리면서 영문 이니셜을 갖는 것은 정치인의 위상을 드러내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전직 대통령인 MB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청와대 직원들은 현직 대통령에 대해 VIP라고 부른다. 5년에 한 번씩 VIP가 바뀌는 셈이다.

사실 정치인들만 이니셜을 쓰는 것은 아니다.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재벌 총수에 대해서도 내부적으로는 이니셜을 쓰는 것이 암묵적 룰로 되어 있다. ‘땅콩 회항’ 파문을 처음 수면 위로 부각시킨 대한항공 직원들이 사용하는 폐쇄형 SNS에 최초로 올라왔던 글은 “마카다미아를 서비스하던 승무원이 DDA에게 혼이 남. DDY의 하사품인 갤럭시노트 10.1을 꺼내 규정을 보여줌”이었다. 여기서 DDA는 조현아 전 부사장, DDY는 조양호 회장을 뜻한다. 내부 직원들이 사용하는 일종의 코드 네임이다.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처럼 이니셜을 따서 MK라고 불리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남들이 들으면 그 뜻을 알 수 없는 코드 네임을 사용한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알파벳 첫 글자를 따서 A, 부인 홍라희씨는 A-라고 불리는 것으로 세간에 알려졌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최고의 자리에 있다는 의미의 TOP, CJ그룹 이재현 회장은 회사 첫 글자와 숫자 1을 합친 C1이다.

문제는 이런 표현 속에 본질이 숨어버린다는 것이다. KY노믹스냐 초이노믹스냐가 아니라 이들이 한국 경제정책을 쥐락펴락할 위치에 있다면, 그들의 지향하는 바가 무엇이냐이다. DDA건 DDY건, 혹은 A건 C1이건 누구라도 비행기를 돌릴 권한이 없다는 데 있다.

지금은 이니셜 놀이를 할 때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경제정책, 노동정책의 철학과 방향을 다시 세울 때다. 기업과 기업인의 역할을 되짚어볼 때다. 지금 이걸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어이없는 정부의 정책을 보게 될 것이고, 군림하는 재벌 일가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