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관성 없는 정부 노동정책에 노동계는 “친사적” 재계는 “친노적” 딴소리
일관성 없는 정부 노동정책에 노동계는 “친사적” 재계는 “친노적” 딴소리
  • 하승립 기자
  • 승인 2006.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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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2주년 특집 전문가 조사Ⅱ


대한민국 노사관계를 전망한다


 

똑같은 컵 속의 물을 보면서 누구는 ‘물이 반밖에 안 남았다’고 하고 또 누구는 ‘물이 반이나 남았다’고 한다. 자신이 처한 위치에 따라, 사안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시각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정부의 노동정책을 바라보는 노사의 시각도 마찬가지다. 같은 노동정책을 두고 노동계는 ‘친사적’이라고 하고, 재계는 ‘친노적’이라고 한다.

<참여와혁신>이 창간 2주년 특집 전문가 조사에서 정부 노동정책의 균형감을 물었더니 극단적으로 상반된 결과가 나왔다.

 

노동정책이 균형감 있을 때를 0으로 두고 친노동 정책, 혹은 친기업 정책 여부를 1부터 5까지의 척도로 표시해 달라는 주문에 노동계는 친기업 3.18(민주노총 3.35, 한국노총 3.00)이라고, 기업 관계자들은 친노동 2.10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학계 전문가들은 기업으로 1.47 정도 치우친 정책이라고 대답했다. 종합적으로는 친기업 1.08의 척도를 나타냈다. 즉 정부의 노동정책이 약간 기업친화적이라고 답변했다는 뜻이다.

 

이렇게 노사의 인식이 극명하게 나뉘는 것에 대해 한국노동연구원 김정한 연구위원은 “우선 노사 모두가 상대 및 정부에 대한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 원인이 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의 노동정책에 일관성이 없었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노·사·정의 역할 점수는 올해도 ‘낙제’
노사정이 노사관계 측면에서 제역할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노사정 모두가 낙제점을 받았다. 전체 평균 점수는 10점 만점에 노 5.42, 사 4.72, 정 4.45점이었다. 지난해 노 5.27, 사 4.39, 정 4.03점에 비하면 약간 오른 수치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자기 역할을 못한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노사가 서로 상대에 대해 낮은 점수를 주는 불신 현상은 올해도 여전했다. 노동계의 역할 점수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노동계 스스로는 5.57점을 준데 비해 기업 관계자들은 5.13점을 줬다. 반대로 재계의 역할 점수를 노동계는 4.62점을 준데 비해 기업 관계자들은 5.05점을 줬다. 주목할 점은 학계 전문가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정부에 대해 높은 점수를 줬다는 점이다. 학계 전문가들은 노 5.53, 정 5.02, 사 4.52의 순으로 점수를 매겼다. 정부에 대해 노동계가 4.03, 기업 관계자가 4.42점을 준 것과 비교할 때 학계에서는 정부의 역할을 높게 평가했다고 볼 수 있다.

 

정책역량은 한국노총 첫손에 꼽혀
학계 전문가들은 노동부 높게 평가

노사정의 정책역량과 리더십이 노사관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지난해 조사에서는 없었던 문항을 올해 새롭게 도입한 것이 노사정 대표 단체나 기관의 정책역량과 리더십을 계량화한 질문이다.


정책역량을 묻는 질문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은 5.07점의 한국노총이었다. 뒤를 이어 노동부 4.91, 민주노총 4.81, 경총 4.76, 청와대 3.91의 순이었다. 한국노총은 정책역량 점수에서 민주노총 소속 응답자 4.95, 한국노총 5.70, 기업 5.07, 학계 4.75 등 비교적 고른 평가를 받았다. 청와대는 민주노총 3.50, 한국노총 3.60, 기업 3.80 등 노사 양 당사자로부터 비판을 받은데 비해 학계 전문가들로부터는 4.50점을 얻어 상대적으로 나은 평가를 받았다. 학계 전문가들의 평가만 따로 떼놓고 볼 때는 노동부 5.72, 한국노총 4.75, 민주노총 4.68, 청와대 4.50, 경총 4.38의 순으로 전체 평균과는 차이를 보였다. 


리더십은 민주노총·청와대 바닥권
리더십 점수는 전체 평균으로 봤을 때 한국노총 5.33, 경총 4.75, 민주노총 4.54, 노동부 4.53, 청와대 3.77점의 순이었다. 리더십도 전체 평균과 학계 전문가 조사는 차이가 있었다. 학계 전문가들은 노동부 5.30, 한국노총 5.07, 경총 4.50, 민주노총 4.40, 청와대 4.27점으로 평가했다.


이렇게 순위에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노동계에서 노동부, 청와대에 극단적으로 낮은 점수를 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민주노총은 노동부 3.45, 청와대 3.65점을, 한국노총은 노동부 4.00, 청와대 3.30점을 줬다. 민주노총이 한국노총에 비해 상대적으로 청와대 점수를 높게 준 점이 눈길을 끈다.


재미있는 점은 기업 관계자들의 선택이다. 이들은 노동부에 대해서는 4.83점을 줘 노동계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후한 반면, 청와대는 3.67로 평가해 노동계와 입장을 같이 했다. 재계의 현 집권세력에 대한 불만이 여실히 드러나면서, 한편으로 노동부에 대해서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반영하는 결과다.


노동계는 노사관계 ‘나빠졌다’…재계는 ‘그런대로’
지난 한해 동안의 노사관계가 이전 1년에 비해 어땠는지를 묻는 질문에서는 노사가 차이를 드러냈다. 전체 평균으로 보면 지난 1년 간의 노사관계가 ‘조금 좋아졌다’는 대답이 24%, ‘다름 없다’가 27%, ‘조금 나빠졌다’가 29%, ‘아주 나빠졌다’가 20%로 나타나 부정적 대답이 많았다.


하지만 응답 주체에 따라 분류해 보면 확연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민주노총은 ‘조금 좋아졌다’는 대답이 5%에 불과한 반면 ‘나빠졌다’는 응답이 무려 80%(조금 30%, 아주 50%)에 달했다.(다름 없다 15%) 반면 한국노총은 ‘조금 좋아졌다’는 대답이 20%, ‘나빠졌다’는 대답이 45%(조금 20%, 아주 25%)였고 ‘다름 없다’는 대답도 35%에 달했다. 기업 관계자들은 ‘조금 좋아졌다’는 대답의 비율이 더 높아져 30%에 달해 ‘나빠졌다’는 대답 33.3%(조금 23.3%, 아주 10%)와 별 차이가 없었다. (다름 없다 36.7%) 학계 전문가들도 ‘조금 좋아졌다’는 대답이 33.3%에 달했고 ‘조금 나빠졌다’ 40%, ‘다름 없다’ 20%, ‘아주 나빠졌다’ 6.7%였다.

 

민주노총이 크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과 비교할 때 한국노총, 기업, 학계에서는 상대적으로 긍정적이었다는 의미다.

민주노총은 ‘신자유주의 정책 강화’, ‘비정규 법안 관련 대치’, ‘정부의 사용자 편향 정책’, ‘노동유연화로 인한 고용불안’, ‘정부의 조정기능 약화’ 등을 노사관계 불안의 요인으로 꼽았다.

 

한국노총 설문 응답자들은 신자유주의 정책 등으로 인해 노사관계가 악화되었다는 응답이 있는 반면 ‘전체적으로 극단적 대립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답한 경우도 많았다.
기업 관계자 중 좋아졌다는 응답한 경우는 주로 ‘법과 원칙이 많이 정착되었다’는 점과 ‘지표상의 분규 건수 등이 줄어들었다’는 점을 그 이유로 들었다.
이런 엇갈린 반응은 지난해 조사에서 앞으로의 노사관계 전망을 물었던 결과와 비슷한 흐름을 나타낸다.


지난해 조사에서 노동계는 노사관계가 나빠질 것이라는 응답이 67.5%로 ‘좋아질 것’ 22.5%를 크게 앞지른데 비해, 재계는 ‘좋아질 것’이라는 응답이 47.1%로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 41.1%를 앞선 바 있다.


로드맵 때문에 노사관계 더 나빠질 것
하지만 앞으로의 1년 전망은 노사 모두가 비관적으로 내다봤다. 전체적으로 ‘조금 좋아질 것’ 22%, ‘다름 없을 것’ 17%, ‘조금 나빠질 것’ 34%, ‘아주 나빠질 것’ 27%로 전망했고 노사간 인식차이도 크지 않았다.

노동계는 ‘조금 좋아질 것’ 17.5%, ‘다름 없을 것’ 15%, ‘조금 나빠질 것’ 20%, ‘아주 나빠질 것’ 47.5%였고, 재계는 20%, 10%, 53.3%, 16.7%, 학계는 30%, 26.7%, 33.3%, 10%로 각각 대답했다.

 

이렇게 이구동성으로 노사관계가 나빠질 것이라고 전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노사관계 로드맵을 둘러싼 갈등이 심각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기 때문으로 대답했다. 노·사·학 모두 로드맵을 둘러싼 노사정의 첨예한 대립을 점쳤다. 또 지속적인 경제상황 악화도 노사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