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삶 조화 이루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일과 삶 조화 이루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5.03.1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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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관·노사 구분 없이 모두가 힘 모을 때 가능
첨단산업화 맞춰 연구개발 기능 강화 필요
[커버스토리]_ 산업단지와 제조업의 미래 (5)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나라는 산업단지를 활용해 경제발전을 이끌어왔다. 산업단지에 기업을 집적해 경제개발에 따른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고,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이렇게 집적된 기업 간의 연계와 클러스터화를 통해 공동의 발전을 추진해 왔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았던 문제점들도 드러났으나, 산업단지가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중심축으로 기능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산업단지에는 지금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조성된 지 오래돼 노후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산업구조가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는 점도 산업단지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이제까지의 경제성장에서 산업단지가 중심축으로 기능했듯이, 앞으로의 성장에서도 산업단지가 중요한 기능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 울산광역시

변화의 기로에 놓인 제조업

산업단지를 둘러싼 여건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산업기술의 융·복합화, 인구의 고령화, 기후변화와 환경 문제, 자원과 에너지 위기, 국제경제의 동향 등 내·외적 여건이 모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산업단지는 특히 제조업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산업단지가 변화를 요구받고 있는 만큼 제조업 역시 변화의 기로에 놓여 있다. 전통적인 제조업의 이미지는 대부분 퇴색되고, 기술의 융·복합화, 첨단산업화가 제조업의 경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전통적인 제조업이라 하더라도 이 같은 경향을 접목해 새롭게 변모할 것을 요구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하면서도 그 구체적인 방향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일치하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제조업이 당면한 위기를 풀어나가기 위한 전략으로 ‘제조업 혁신 3.0’ 카드를 꺼내들었다.

경공업을 중심으로 추진했던 수입대체형 전략을 제조업 혁신 1.0으로, 조립 및 장치산업을 중심으로 추진했던 추격형 전략을 제조업 혁신 2.0으로 각각 규정한 정부는 융합 신산업 중심의 선도형 전략을 제조업 혁신 3.0 전략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정부가 밝힌 제조업 혁신 3.0 전략의 기본 방향은 정보기술(IT)과 소프트웨어(SW)를 융합한 융합 신산업을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기존의 선진국 추격형 전략에서 선도형 전략으로 전환을 시도해 우리나라 제조업의 경쟁우위를 확보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융합형 신 제조업 창출, 주력산업 핵심역량 강화, 제조혁신 기반 고도화를 3대 전략으로 설정하고, 3대 전략을 중심으로 6대 과제 및 후속대책을 추진한다는 구상을 밝혔다.

정부가 밝힌 3대 전략 중 첫 번째인 신 제조업 창출의 2대 과제는 정보기술과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한 공정 혁신과 융합 성장동력 창출이다. 또 후속대책은 13대 산업엔진 프로젝트 추진, 에너지·기후변화 대응 신산업 창출, 스마트공장 보급 및 확산을 포함하고 있다. 13대 산업엔진 프로젝트는 시스템 산업 분야에서 ▲ 웨어러블 스마트 장치 ▲ 자율 주행 자동차 ▲ 수직이착륙 고속 무인항공기 시스템 ▲ 극한환경용 해양플랜트 ▲ 첨단소재 가공시스템 ▲ 국민 안전·건강 로봇을 개발하고, 에너지산업 분야에서 ▲ 고효율 초소형화 발전시스템 ▲ 저손실 직류 송배전 시스템을 개발한다. 또 소재·부품산업 분야에서는 ▲ 플라스틱 기반 수송기 핵심 탄소소재 ▲ 첨단산업용 타이타늄 소재를 개발하고, 창의 산업 분야에서 ▲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 시스템 ▲ 나노 기반 생체모사 장치 ▲ 가상훈련 플랫폼 개발을 추진한다.

이 중 수직이착륙 고속 무인항공기 시스템은 어군 탐지용으로 시범사업을 시작했으며, 극한환경용 해양플랜트 개발과 관련해서도 부산에 심해해양공학 수조를 설치하는 공사를 시작했다. 또 타이타늄 산업발전협의회를 발족해 타이타늄 소재 기술 개발도 시작했다.

3대 전략의 두 번째인 주력산업 핵심역량 강화와 관련해 정부는 소재·부품 주도권 확보, 제조업의 소프트 파워 강화를 2대 과제로 설정했다. 세계 일류 수준의 10대 핵심 소재를 2019년까지 조기 개발하고 한·중 FTA를 활용해 글로벌 소재·부품 기업의 국내 유치와 인수합병(M&A)을 활성화한다는 계획이다. 또 우리나라의 취약점인 엔지니어링, 디자인,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등 제조업 3대 소프트 파워를 강화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핵심인력을 육성할 계획이다.

3대 전략의 세 번째는 제조혁신 기반 고도화다. 정부는 이를 위해 수요 맞춤형 인력·입지 공급과 동북아 연구개발(R&D) 허브 도약을 과제로 삼고 관련 대책을 추진한다. 산업별 인적자원협의체 기능을 강화해 산업계 수요에 맞게 인력 양성체계를 혁신하고 2017년까지 25개 노후산업단지를 혁신산업단지로 재창조한다. 우수한 해외 인력 유치와 이를 통한 국내 인력을 양성하며, 동북아 R&D 센터 도약을 위해 글로벌 기업의 본사와 R&D 센터를 한국에 설립하면 소득세 감면, 국제조세 절차 지원, 과세서류 간소화, 출입국 편의 및 입지 지원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산업단지와 관련한 정책으로는 노후산업단지 혁신이 제조업 혁신 3.0 전략에 포함돼 있다. 그리고 산업통상자원부와 국토교통부의 주관 아래 노후산업단지를 혁신하기 위한 과제도 이미 실행에 들어간 상태다. 제조업 혁신 3.0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만큼 큰 틀에서는 방향이 일치할 것으로 보인다.

ⓒ 울산광역시

트래포드 파크의 ‘탈바꿈’

정부가 앞장서서 제조업을 혁신하기 위한 전략을 추진하고 있고, 그 안에 노후산업단지를 개선하는 과제도 포함돼 있다. 지금은 노후산업단지 중 25개만 포함돼 있지만, 이러한 전략이 그 타당성을 인정받는다면 그 성과를 산업단지 전체로 확산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제조업 혁신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터전이 될 산업단지는 창조적 인재와 기술, 정보, 물자가 집중되는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해야 한다. 이를 통해 안전하고 쾌적한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그곳에서 부가가치가 생산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세계 최초의 산업단지인 트래포드 파크(trafford park)의 변화는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트래포드 파크는 1896년 영국 맨체스터 시에 조성된 세계 최초의 산업단지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유럽의 많은 공업도시들이 철도와 항만에 인접한 곳을 중심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는데, 맨체스터는 1890년 개통된 철도와 1893년 개통된 운하로 인해 교통의 요지로 부상한 지역이다. 트래포드 파크는 이러한 입지조건을 바탕으로 생겨났다.

트래포드 파크의 전성기는 역설적이게도 제2차 세계대전과 맞물려 있다. 다른 도시들이 전쟁으로 파괴되는 동안, 트래포드 파크는 고르게 발달된 육상·해상 교통을 바탕으로 한 군수물자 제조와 운반으로 전성기를 누린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무렵에는 세계에서 가장 제조업이 집적된 단지로 성장했다.

그러나 전쟁을 배경으로 한 성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전쟁 후 1960년대로 들어서면서부터 트래포드 파크는 최대의 제조업 집적지로서의 아성을 위협받게 됐다. 도시개발이 활발해지면서 영국 곳곳에 교통시설이 들어서고, 트래포드 파크보다 교통이 편리한 지역이 속속 등장했기 때문이다. 트래포드 파크가 이처럼 새롭게 부상하는 도시들에 투자를 빼앗기면서 전성기에는 75,000명에 달하던 노동자가 1967년에 이르러 50,000명까지 감소하게 됐다. 세계 최초의 산업단지의 몰락이 시작된 것이다. 이런 몰락은 1970년대까지 이어진다. 1976년에는 노동자 수가 15,000명으로 감소할 정도로 몰락은 급속하게 진행됐다.

투자자와 공장들이 빠져나가고 노동자들이 떠나면서 1985년에 이르면 트래포드 파크의 일부 지역은 미이용토지로 전락하게 된다. 최초의 산업단지라는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트래포드 파크가 쇠락하자, 마지막까지 남은 노동자들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의기투합했다. 이들은 중앙정부 부처와 지방의회 등을 설득해 트래포드 파크를 되살리기 위한 부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987년 영국의회는 트래포드 파크 개발공사(Trafford Park Development Corporation, TPDC)를 공식 출범시켰다. TPDC는 물리적 기반시설 구축, 환경과 경관 개선, 가용 토지 매입과 부지 조성, 인적기반 구축, 산업지원체계 구축, 홍보 및 마케팅 등 트래포드 파크 부활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TPDC가 추진한 전략은 전면적인 탈바꿈이다. 세계 최초의 산업단지이기는 하지만, 역으로 보면 그만큼 낙후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상태에서 옛 명성만 좇는 게 아니라 전면적인 변화를 선택한 것이다. TPDC는 1998년까지 운영됐는데, 그 기간에 990개의 기업을 유치하고 29,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또 17억 파운드(약 2조 8,733억 원)에 달하는 민간투자를 유치했다.

현재의 트래포드 파크에는 공업시설은 물론 입주기업과 노동자를 위한 쇼핑 및 레저 시설 등이 갖추어져 있다. 또 교육지원도 강화됐다. 낡고 명성만 남은 산업단지를 문화와 교육시설이 복합된 새로운 산업단지로 되살린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점은 새로운 산업단지에 문화와 복지시설이 결합됐다는 점이다.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생활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깨끗한 환경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요소다.

우리나라에서도 노후산업단지를 개선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다. 노후산업단지를 개선하는 데에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은 장밋빛 청사진을 그리는 것보다 실제로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산업단지를 조성할 때 간과했던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주거 지역과 산업단지를 따로 구분했던 것이다. 앞으로 산업단지를 혁신하는 데 있어서 큰 방향의 하나로 설정해야 할 부분은 일과 삶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 울산광역시

돌아오는 제조업 가능하려면

트래포드 파크의 부활과 같이 노후산업단지가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민간과 정부를 아우르는 노력이 필요하다. 트래포드 파크에서도 마지막까지 남은 노동자들이 먼저 시작한 변화에 정부가 응답하면서 결국 거대한 규모의 민간투자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같은 산업단지가 조성되고 있다. 경기도시공사가 경기도 평택에 조성하고 있는 고덕국제신도시가 그것이다. 고덕국제신도시는 우리나라 최초의 자족형 복합도시를 표방하고 있다. 완성된다면 일자리와 주거, 교육, 교통 등을 하나로 아우르는 융·복합도시로 기능하게 될 것이고, 신개념 산업단지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우선 산업단지와 주거 및 생활공간의 기능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도록 관련된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는 이 같은 공간이 들어설 용지가 차질 없이 공급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고, 입주하는 기업에 혜택을 지원하는 등의 노력도 필요하다. 입주하는 기업은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하고, 사업을 운영함에 있어 안전과 환경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여기에 덧붙여 교육기관이나 연구기관도 새로운 기술 개발을 통해 이 같은 기업을 지원할 때, 이 같은 산업단지는 일과 삶이 조화를 이루는 산업단지로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정부와 민간, 학교, 연구소 등을 망라한 역량이 모일 때 이 같은 산업단지의 조성이 가능해질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트래포드 파크에서 TPDC를 통해 정부와 민간의 협력을 이끌어냈던 것처럼, 민관을 아우르는 기구를 통해 소통해야 한다는 점이다. 어느 일방의 노력만으로는 융·복합도시 또는 새로운 유형의 산업단지 형성이 어려운 만큼, 이해당사자를 모으고 소통을 이끌어낼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가령 지방자치단체나 지방의회가 이런 역할을 하게 된다면 중앙정부는 물론 입주할 기업과 일하고 거주할 노동자 또는 노동조합, 지역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까지 관련 이해당사자들이 모두 협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새로운 산업단지의 방향과 관련된 부분이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새로운 산업단지는 연구개발 기능을 강화한 산업단지로 조성돼야 한다는 점이다. 산업을 둘러싼 여건이 변화함에 따라 제조업 역시 변화하지 않을 수 없는 조건에 놓여 있는데, 그러한 변화는 연구개발 기능의 강화를 조건으로 한다. 이는 정부가 제조업 혁신 3.0 전략에서 표방하고 있는 것처럼 기존의 선진국 추격형 산업구조에서 선도형 산업구조로 변화하기 위한 필수조건이기도 하다.

이러한 조건들이 어우러져 산업단지와 제조업이 변모할 때, 더 이상 떠나지 않는 제조업, 다시 돌아오는 제조업, 일과 삶이 조화를 이루는 노동자의 생활이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