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으로 버티던 삶의 현장, 벼랑 끝에 서다
손끝으로 버티던 삶의 현장, 벼랑 끝에 서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06.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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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의 외침


김경아 기자 kakim@laborplus.co.kr

 

눈이 멀쩡한 사람에게도 위태로운 다리 난간을 손끝으로 더듬어 ‘점거’했다. 미처 오르지 못한 사람들은 마포대교 남단에 앉아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난생 처음, 어색하게 팔을 치켜들어 격한 구호를 외쳐본다.
다리 위 아래로 마주보고 있으나 목소리로만 서로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들은 그렇게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시작했다.

 

“목숨줄 끊어놓을 거요?”
‘앞이 보이지 않는’ 이 싸움은 헌법재판소가 지난 5월 25일 ‘안마사에 관한 규칙 제3조 제1항 제1호’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시작됐다.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을 주는 것이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으며 법률유보 법칙에 위배된다는 것. 2003년에도 헌법소원이 청구됐지만 헌법재판소는 합헌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3년 전의 결정을 스스로 뒤집었다.


손을 ‘눈’삼아 살아온 사람들에게 그 ‘눈’마저 감으라 하는 판결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남들처럼 살아 보겠노라 안간힘을 쓰던 그들이 ‘죽음’이란 말을 거론할 정도로 물러설 수 없는 선을 헌법재판소는 쉬이 넘었다.


“우리한테는 하나 밖에 없는 일을 뺏어가는 거라. 목숨줄을 끊어놓는 일이란 말이지. 보이는 사람들이야 다른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우리는 정말 이것밖에 없어.”


시위 현장에서 만난 시각장애인들은 입을 맞춘 것은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한 목소리를 냈다. 취재 전날 다녀갔다던 보건복지부 장관 얘기를 꺼내자마자 날선 목소리가 쏟아졌다.


“마포대교 위에만 잠깐 왔다 갔나봐. 여긴 코빼기도 안 비췄다고. 그러면서 뭐? 할당제?”


안마사 자격증이 있어도 자리를 구하지 못해 놀고 있는 시각장애인이 많은 현실 속에서 비시각장애인과 경쟁을 하게 되면 장애인 안마사가 설 자리는 좁아질 것이라는 점은 이미 기정사실화 된 듯했다. 특히 아직까지 장애인의 편견이 존재하고 있는 사회에서 ‘안마’만으로 실력을 인정받기란 어려운 일이다.
“지금도 안마사 자격증 있는 사람이 50만 명은 되는데 안마사는 많아야 7,8천입니다. 지금도 이런데….”


“몸은 힘들어도 이게 유일한 삶의 보람인데…”
안마사로 일하다가 지금은 잠시 쉬고 있다는 임해식(53) 씨가 시위 도중 잠시 무리를 빠져나와 한숨을 돌린다.


“보통 3~4시간씩 자면서 일합니다. 그것도 조각잠을 자기 일쑤고… 그런 점이 힘들죠. 일하는 날은 늘 긴장상태로 손님 기다려야하는 거랑 밤에 일하는 거….”
뿐만 아니다. 밤에는 늘 만취한 손님들이 찾아든다. 행패를 부리는 손님이나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무시하는 손님을 맞닥뜨릴 때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또 1980년대 이후 안마업과 윤락업이 연결되는 일이 늘면서 사람들에게 인식도 나빠졌다. 여성 안마사들의 경우 때로 위험스런 상황에 고스란히 노출되기도 한다. 이름을 밝히지 말라는 33살의 한 안마사는 “여성 안마사들에게 불미스런 일이 생기면 번거로워질 수 있으니까 아예 처음부터 남성 안마사만 쓰는 데도 있다”고 털어놨다.


그래서인지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이 겪는 이런 어려움에 비하면 손이 붓고 몸이 힘든 것쯤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듯 했다. 같이 일하는 안마사들과 교대로 시위에 나오고 있다는 강 모(48)씨는 스스로 돈 버는 일이 좋다고 말한다.
“손님들이 ‘고맙다’고 전하는 말 한마디에 ‘나도 사람을 치료할 수 있구나’ 싶어서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뿌듯해요. 단골도 제법 있다니까.”

 

‘당당한 생활인’ 되고 싶다
안마사로 일하며 가장 뿌듯한 순간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풀었다’고 느낄 때다. 안마사 이 모(50)씨는 “안마가 끝나고 손님이 몸이 개운해졌다고 하고, 몸 상태가 좀 달라졌다며 고마워할 때가 제일 좋죠. 그런 얘길 들으면 내 손으로, 내 힘으로 살아가는구나, 라고 느껴 더욱 보람돼요”라며 웃는다.


이번 판결이 있은 후 스스로 삶을 꾸려가는 법을 배우고 있는 맹학교 학생들은 이런 보람을 느끼기도 전에 좌절 직전이다. 서울맹학교 양회성 교사는 위헌 판결 이후 자신은 물론 학생들도 참담함을 느낀다고 전한다.


“시각장애인이 배운 것으로, 시각장애인 힘으로 일하고 싶다는 것뿐입니다. 시각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을 달라는 것이지 가족이나 국민에게 짐이 되자는 것이 아닙니다. 할당제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웃깁니다. 할당제는 기본적으로 비장애인이 가져야 할 부분을 장애인에게 나눠주는, ‘수혜’라는 발상 아닙니까?”


취재진이 만난 시각장애인은 이구동성 “장애인은 수혜의 대상이 아니”라고 외쳤다. 정부의 보조금도, 혜택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현재 시각장애인을 위한 거의 유일한 직업교육은 안마와 침술 등 손으로 몸 상태를 진료하고 치료하는 이료교육. 시각장애인은 이 교육을 통해서 맹학교 교사, 복지관 등의 헬스키퍼, 안마사 등이 된다. 여전히 시각장애인에게 열려있는 직업군이 안마사가 중심인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빼앗지 말아 달라’고 외치고 있는 그들의 절규는 당연해 보였다.

 

예민한 손끝으로 더듬는 희망
시위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모두 ‘짝궁’이 있었다. 물을 마시러 가거나 화장실에 갈 때면 조금이라도 시력이 나은 사람들과 짝을 이뤄 다니는 것이다. 손을 맞잡고, 팔짱을 꼭 끼고 서로를 의지하며 가는 뒷모습에 ‘일할 권리’를 지키기 위한 굳은 의지가 내비쳐졌다. 시위참가자 강모(48)씨. 마포대교가 떠나가라 꽹과리를 치며 흥을 돋는 그는 “어려서 2달 배운 꽹과리를 이런데서 쓰게 될 줄 몰랐다”며 품고 있는 소박한 꿈을 들려준다.


“조금이라도 돈을 좀 모아서 경남에 있는 고향에 내려가서 말이요, 나같이 갈 곳 없는 사람 4~5명 모여 사는 게 내 꿈 아니오. 그런데 이런 판결이 나고 나니…, 꿈은 이미 물 건너갔소.” 어두워가는 강 씨의 얼굴 뒤에 ‘위헌 판결’에 대한 원망이 실린다. “나야 쉰이 다 되가니 다 살았지만 정말 어린 친구들이 걱정이지. 그 친구들이 이제 어딜 가서 사람구실 하며 살 수 있을지…”


안마사가 되기 위한 훈련을 하면서 시각장애인들이 손끝은 보통 사람보다 몇 배는 더 예민해 진다고 한다. 그 손끝으로 더듬었던 것이 어디 안마비 몇 푼일까. 예민한 손끝에 담겨 있던 자활의 의지도, 누군가를 위해 일할 수 있다는 희망도 위태롭게 떨리고 있었다. 


 

 손 청진기’,
‘손 안테나’ 가지기 까지

 

시각장애인에게 ‘하나밖에 없는 일’인 안마는 단숨에 배울 수 없다. 안마와 지압, 침술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전에 기초과정으로 의대에서나 배울 법한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을 배우고 경혈학 등을 통해 온몸에 있는 침 자리와 혈을 일일이 짚어가며 익히고 나서야 안마를 배우기 시작한다.

 

고등학교 과정 3년, 일반적으로 대학으로 볼 수 있는 전공과 3년을 거치면  ‘진짜’ 안마사가 한 명 탄생하게 된다.

 

서울맹학교 전공과 안마 수업 시간.

10명 남짓의 학생들이 각자 짝을 이뤄 안마 실습을 하는데 받는 사람의 반응이나 상태를 묻고 답하면서 하나씩 배우는 모습에서 활기참과 진지함이 동시에 묻어나온다.

전공과 양회성 교사는 “후천적인 장애를 가진 분들은 시력을 잃었을 때 모든 걸 잃었다고 느낀다”며 “하지만 안마를 배우고 안마사로 일하면서 자신이 사람들의 건강도 지켜주고 다른 사람의 짐이 되는 게 아니라 돈을 벌어 가족을 지킬 수도 있다는 것에 다시 행복을 찾는다.”고 했다.

 

전공과 학생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안마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이 입학하는데 이렇게 고등학교 3년, 전공과 3년을 거치면 학생들의 손은 이미 ‘청진기’가 되어 있다.

긴 시간 다듬어진 손끝은 사람들의 뭉치고 아픈 근육을 풀고 마음도 풀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