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바람? 혼돈의 바람? 산별노조 시대가 열린다 2
변화의 바람? 혼돈의 바람? 산별노조 시대가 열린다 2
  • 승인 2006.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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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완성 공언한 금속산별노조, 곳곳에 암초


원칙은 동의했지만 각론은 어떻게?


조직·교섭체계·조합비 등 논쟁거리 수북

 

완성차노조들의 산별노조 전환투표 가결로 노동계의 ‘10년 숙원’이던 산별 전환에 청신호가 들어왔다. 하지만 누구도 앞에 놓인 길이 쭉 뻗은 신작로가 될 것이라는 장담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완성차 3사 노조의 산별전환 투표 성사 직후인 7월 3일 열린 ‘산별 전환에 따른 긴급 기자회견’에서 금속산업연맹 전재환 위원장은 “산별완성위원회를 조속히 소집, 조직체계와 재정, 교섭체계 등에 대해 논의를 시작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의견을 모아나갈 것이며 늦어도 올해 10월에 산별완성 대의원대회를 개최해 금속산업노조를 완성시킬 것”이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놓여 있는 사안들은 한두 달 안에 정리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지금은 각 사가 임단협에 몰두하고 있지만 임단협이 정리되는 8월 중순 이후면 그간 수면 아래에 있던 문제들이 하나씩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기업지부냐, 지역지부냐’ 교섭구조와도 맞물려
가장 먼저 ‘교통정리’가 필요한 부분은 조직체계와 관련된 문제다. 금속연맹 내에서도 최대 규모인 노조들이 산별노조로 전환했기 때문에 이들을 당장 ‘지역지부-기업지회’의 금속노조 체제로 재편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때문에 연맹 내에서는 3년 정도 기업지부 체제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이 경우 당분간 금속산별노조는 지역지부와 3000명 이상 사업장으로 구성된 기업지부를 함께 운영하게 된다. 금속노조 산하에 울산지부와 함께 현대자동차지부가 공존할 수 있다는 것. 따라서 대공장 노조의 이해관계에 전체 산별노조의 의견조율이 삐걱거릴 가능성도 있다.


기업지부의 한시적 존속 문제는 현실적으로 가장 가능성 있는 안이기는 하지만 ‘산별의 원칙’을 둘러싼 논쟁을 또다시 촉발시킬 가능성이 있다. “산별의 기본 정신을 살리기 위해서는 지역과 업종을 근간으로 운영되는 것인데 지역지부를 둔다는 것은 기업별 노조의 특권과 관행을 그대로 가져가는 것 아니냐”는 과거의 논쟁이 고개를 들 공산이 크다는 것. 10년 이상을 반복해온 이 논쟁은 정리되지 못한 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금속노조의 한 간부는 “원칙대로라면 바로 기업노조를 해체하고 지역지부-기업지회 체제로 재편하는 것이 정답이겠지만 완성차와 같은 대공장 노조가 이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금속산업연맹과 금속노조, 이번에 산별노조로 전환한 기업노조들 모두가 통일된 안을 갖고 있지 않다. 금속산업연맹 김연홍 정책국장은 “현재로서는 (산별전환)투표가 가결된 사업장을 중심으로 산별완성위원회를 새로 구성해 논의를 시작하는 것과 지난 5년간의 금속노조 운영 경험을 최대한 참고한다는 원칙만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불안한 동거’의 향방은?
조직체계와 교섭체계, 재정 문제 등을 정리해 나가는 과정에서 그간 잠복되어 있었던 정파 간의 입장 차이도 또 다른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 지난 2003년 실시된 산별전환 투표가 부결된 데는 ‘산별노조는 시기상조’라는 사용자의 강력한 의지와 개입, 산별노조에 대한 조합원들의 인식 부족만큼이나 현장조직 간의 입장 차이도 한몫을 했다. 대산별이냐 소산별이냐의 지향점에 관한 논쟁부터 조직체계와 교섭구조, 노조의 역량 문제, 수 십 년간 계속되어 온 기업별노조 관행의 처리 문제까지 논란을 거듭하다 결국 문턱에도 가보지 못하고 멈춰선 것.


이번에는 2003년과는 달리 모든 조직들 간에 “어쨌든 문턱은 넘고 보자”는 동의가 형성됐고 이런 분위기가 찬성률을 높이는 데 기여도 했다. 그러나 현장조직들은 이것이 ‘불안한 동거’라고 입을 모은다. 기아자동차의 한 현장조직 간부는 “현장조직들이 모두 한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산별노조로의 전환 자체에는 큰 이해관계가 걸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세부적인 내용으로 들어가게 되면 과거의 입장 차이는 고스란히 드러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때문에 조직체계에 대한 논의에서부터 중앙차원의 정파별로 입장이 나뉘고 이것이 현장조직들에도 그대로 반영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한 간부는 “조직체계가 어떻게 결정되든 중앙에서부터 자리다툼이 치열해 질 것이고 이런 전국적인 갈등이 공장 단위에도 그대로 반영되면서 현재의 현장조직들도 이합집산을 거듭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8월 이후 논쟁 치열할 듯
노조로서는 기업별노조의 기득권에 익숙해 있는 조합원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것도 하나의 숙제다. 완성차노조의 간부들은 대체로 “통과가 급하다보니 산별노조의 진면목을 조합원들에게 이해시키는 과정은 부족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민주노총 울산본부 하부영 본부장은 “일정에 쫓겨 조합원들에게 산별노조의 정신과 사상에 대해서 충분하게 동의시키고,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와 목적, 내용을 채우지 못한 것은 꼭 풀어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복수노조 시대를 맞을 경우 산별노조의 활동 방식에 동의하지 못하는 조합원들이 별도로 기업노조를 설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그간 노동계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열쇠로 산별노조를 주장해 왔지만 ‘한 테두리’ 안으로 들어온 비정규직과 정규직간의 갈등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이 외에도 풀어야할 숙제들은 ‘산 넘어 산’이다. 사용자단체의 구성 문제나 산업이슈에 대한 정책개발 능력, 교섭 비용의 최소화 문제, 기업별노조의 기득권 등 어느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노사가 함께 풀어야할 숙제보다 노조 내부적으로 ‘교통정리’를 해야 할 문제가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산별전환 투표 가결 직후 현대자동차노조 박유기 위원장은 “이제부터가 진짜 골치 아픈 문제들의 시작”이라며 앞으로 전개될 상황이 만만치 않음을 시사했다. 혼란을 수습해 나가는 과정은 산별노조와 산별교섭의 성공 가능성을 점치는 하나의 잣대로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