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 허용 앞둔 노사정 움직임
복수노조 허용 앞둔 노사정 움직임
  • 승인 2006.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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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 불꽃 튀는 ‘눈치작전’ 개시


민주노총 자율교섭·산별교섭 법제화 요구


한국노총 ‘로드맵 저지’와 함께 조직확대 박차


정부·재계 교섭창구 단일화 없이 복수노조 못 가

 

산별 복수노조 시대를 앞둔 노사정의 불꽃 튀는 ‘눈치작전’이 시작됐다. 민주노총이 노사정 대표자회의에 복귀하면서 신경전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노사 누구에게도 득이 될 것이 없는 혼돈이냐, 아니면 어느 한쪽에 위기나 기회로 다가올 것이냐에 대한 ‘계산’은 끝나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로 득실을 계산하며 요구안을 정비하고 있다.

 

민주노총, 산별노조 제도적 기반 마련에 사활
먼저 노동계의 대응. 민주노총은 산별노조 전환 및 완성과 노사관계 민주화방안(정부가 제출한 노사관계 로드맵에 대해 민주노총이 제시한 대안) 관철을 중심으로 대응전략을 세우고 있다. 이와 달리 한국노총은 조직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복수노조 시대가 주는 기회를 십분 활용, 조직규모를 다시 ‘1등’으로 올린다는 전략이다.


민주노총은 각 산별연맹 담당자로 구성된 ‘2007년 종합보고서’ 연구팀을 가동해 올 12월까지 복수노조 대응 종합 계획을 완성할 계획이다. 정책연구원도 복수노조가 노동조합 교섭 및 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사례연구와 국제 비교적 관점에서 연구 중이며, 오는 9월에 최종보고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또 ‘산별노조 건설 및 발전특위’를 설치해 산별노조체계에서의 민주노총 조직발전방안을 마련해 나간다는 계획도 나와 있다. 일단 산별노조 건설 방침은 금속연맹 소속의 완성차 3사 노조가 지난 6월 말 산별노조 전환 투표를 가결함으로써 단초는 마련됐다.


민주노총은 이와 함께 산별 복수노조 시대에 맞도록 제도를 정비할 것도 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5월 제출한 ‘노사관계 민주화방안’에서는 복수노조 하 자율교섭 보장과 더불어 산별교섭 보장 및 산별협약의 제도화를 요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특히 사활을 걸고 있는 부분은 산별교섭의 법적 제도화 부분. 내부 논란으로 노사정대표자회의 복귀를 결정하지 못하던 민주노총이 지난 6월 전격적으로 복귀를 결정한 데는 이 문제로 의제로 삼기 위해서라도 분석이다.

 

노사정대표자회의 ‘순항’ 어려울 듯
하지만 노사정대표자회의의 또 다른 주체인 사용자측은 물론 정부도 이 같은 요구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경총 이동응 전무는 “산별교섭에 응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사용자들이 결정할 문제이지 법적으로 강제할 문제는 아니”라며 “노동계가 법적으로 어떤 특정 노조의 조직형태 보장을 요구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노동부 송봉근 노사정책국장도 “민주노총이 어려운 결정 끝에 대표자회의에 복귀한 만큼 제시하는 의제에 대해 최대한 성실히 논의는 하겠지만 노사가 결정할 교섭 체계의 문제를 법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산별노조로의 전환 이후에도 사용자단체의 구성이나 법·제도의 미비 등의 문제 때문에 수년간 산별교섭을 진행하지 못한 보건의료노조, 금속노조 등의 경험으로 놓고 볼 때 산별노조의 전환을 위해서는 이번 요구를 반드시 관철하겠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복수노조 허용과 맞물린 교섭창구 단일화 문제도 최대의 난제가 될 전망이다. 노동계는 자율교섭 또는 모든 노조에 교섭권 부여를, 경영계는 창구단일화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어 이에 따라 노사정대표자회의의 진통도 불가피해 보인다.

 

한국노총, “제 1노총 자리 수성하겠다”
한국노총도 노사관계 로드맵 반대, 전임자임금 자율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조직 확대에 더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노총은 지난 2월 창립 60주년을 맞이해 ‘조직 확대를 위한 6대 전략사업’을 선정하고 사무직노조연맹, 공무원연맹, 교원연맹 설립 및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와 상급단체 없는 중간노조의 가입 조직화 등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국노총의 한 임원은 “복수노조 시대를 앞둔 시점에서 조합원 14만 명에 이르는 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 가입을 결정하고, 최근 기아차 사무관리직 노동자를 비롯해 일부 사무직 노동자들이 민주노총을 가입한데 따른 내부적 위기감이 큰 편”이라고 말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노총은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공노총)의 가입을 유도하고, 중앙부처 및 교육청 소속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노조 결성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또 한국교원노동조합(한교조), 한국교총과의 연대사업을 통해 한국노총 내 교원연맹을 설립한다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경영계, 교섭창구·전임자 문제 양보 어려워
경영계의 관심은 무엇보다 교섭창구단일화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다. 복수노조 시대가 가져올 수 있는 교섭비용의 증가와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법적으로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입장. 하지만 노동계와의 입장이 워낙 커서 쉽게 풀릴 것이라는 예상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다른 흐름도 있다. 이제까지 무노조 정책이나 협조적 노사관계를 유지해 왔던 일부 대기업에서는 복수노조 허용 시기를 한 차례 더 연기하자는 주장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는 것. 익명을 요구한 전경련의 관계자는 “최근 일부 대기업들이 노동계 인사들을 접촉하면서 복수노조 시행 시기를 한 번 더 유예하는 것에 대해 ‘딜’을 시도하고 있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고 말했다.

 

정부는 9월에 노사관계 로드맵을 입법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지만 비정규직 법안의 표류로 리더십이 구설수에 올라 있는 만큼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기에는 애매한 입장에 놓여있다.


이런 가운데 민주노총이 참여하는 노사정대표자 회의가 시작됐다. 당분간은 서로의 동태 파악을 위한 치열한 ‘눈치작전’이, 하반기에는 한바탕 ‘진통과 폭풍’이 점쳐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