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의 시대, 함께 삶을 꿈꾸는 전태일 정신
갈등의 시대, 함께 삶을 꿈꾸는 전태일 정신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5.04.17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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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주기 맞아 ‘젊은이’에 눈을 돌리다
‘전태일역’에서 ‘전태일의 집’까지...체험하는 공간으로 탈바꿈
[사람]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전태일재단이 지난 6일 정기총회를 열고 제 10대 이사장으로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선출했다. 전태일 열사 45주기 추모사업을 비롯해 더 왕성한 활동으로 다소 위축돼 있었던 재단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수호 이사장과 전태일 열사는 동갑내기다. “동시대를 정말 치열하게 살다 간” 열사를 기리며 앞으로 어떤 활동을 펼쳐갈지 이야기를 들었다.

전태일재단 이사장으로 선출되신 소감이 어떠십니까?

“솔직히 참 부담이 많이 돼요. 노동운동에 몸 담았던 사람이라면 전태일이 하나의 계기랄까, 또는 마음의 기준이 아닌 사람이 없을 텐데요. 특히 내 경우에는 우연이지만 전태일 열사와 나이가 같아요. 과거를 돌이켜보면 교사로서 운동에 뛰어들었는데, 비록 그 부름은 다르더라도 현장의 여러 가지 어려움, 부조리함, ‘도대체 이 현실을 그대로 두고는 아무 것도 안 되겠다’라는 절박한 문제의식이 열사의 마음과 같았던 점도 있다고 봅니다.

이런 건 나중의 생각이고(웃음), 어려운 시기에 전태일 평전을 접하고 정말 동시대를 이렇게 치열하게 살다가 간 열사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어떻게 해야 전태일을 닮은 삶을 살아갈 지에 대해 생각을 한 것이지요. 또 모친이 작고하신 뒤로는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 어머니를 내 엄마처럼 느끼고 찾아뵙곤 했습니다.

게다가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이 계속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절망감을 느끼고 있지요. 나 역시 ‘아,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저런 일에 개입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러던 와중에 전태일재단으로 오게 됐지요. 이제 내가 어떤 행동을 하든, 어떤 말을 하든, 전태일을 바라보듯, 전태일재단을 바라보듯 하니 두려움이 많지요.”

열사 45주기 준비를 비롯해 새로운 사업들을 구상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에 맞는 전태일 정신을 구현하고 그걸 발전, 계승시키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다보니까 전태일 열사도 생전에 각별하게 애정을 보인, 청년들이나 젊은 학생들이 전태일을 올바르게 바라보게 하는 사업들이 필요하겠지요.

이제 청년위원회도 만들고 해서 청년들이 자기들이 주체가 되고 중심이 되어, 전태일 정신을 생각하며 살아가도록 하는 사업을 구상 중입니다. 겉은 리모델링이 되었지만 아직도 평화시장이 남아 있고, 5년 전 그렇게 싸워가며 이름을 지켜냈던 전태일다리도 있고. 그 거리에는 전태일 동상과 10년 전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았던 동판도 깔려 있지요. 바보회를 만들고 드나들었던 명보다방도 아직 있고, 전태일의 집이라고 부르고 싶은 재단도 근처에 있지요.

이런 내용들을 묶어서 역사 속의 전태일을 젊은이들이 찾아보고 느껴볼 수 있는 현장으로 만들고 싶어요. 지금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이지만 전태일역으로 지하철역 이름도 바꾸고. 지금 재단만 하더라도 전태일의 집답게 새로 꾸며서 향기를 내고 싶습니다. 마침 오늘도 그런 작업을 위해 전문가들을 모시고 어떻게 꾸밀지 의논을 하던 차였습니다.”

최근의 상황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민주노총은 신임 집행부가 총파업 선언을 했습니다. 위원장으로 있을 때 경험도 있어서 소회가 남달랐을 거 같습니다.

“모든 활동들이 보면 상대적이잖아요. 지금의 두 정권이 노동운동 자체를 부정하고, 부인하고, 무시하고. 그런 상황 속에서는 민주노총 지도부가 택할 수 있는 당연한 길이 아닌가 싶어요. 그 외에 다른 방법이 없을 거 같아요. 싸우는 수밖에. 그럴수록 정말 정면돌파하는 결기를 보여야 그나마 뭔가 풀려가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지금의 모습이 참 잘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직선제라는 굉장히 어려운 고비를 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운동 정신으로 넘어냈습니다. 굉장히 귀한 성과를 바탕으로 지금 준비하는 대로 열심히 싸우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싸운 만큼 성과를 남길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역사라는 건 무시할 수 없어요. 우리 민주노조운동 역사 자체가 아무리 탄압하고 함부로 하더라도 굴하지 않았잖아요? 현 지도부가 그런 점에서 상당히 힘들고 어려운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한편으로는 참 열심히 잘 한다고 박수를 보내면서도, 마음 한 편으로 짠한 생각이 드는 거지요. 그게 얼마나 고생스러울 거야? 총파업을 조직하기 위해 위원장 이하 전 간부가 지방으로 뛰면서 난리잖아요. 옛날 생각도 나고 그렇죠.

경험에서 조언 말씀을 드리자면 우리 노동조합의 사업들이 그래요. 우선 노동자, 조합원, 노동 대중에 의한 신뢰가 중요한 거 같아요. 그건 항상 증명이 됐어요.

지도부는 늘 의심을 하죠. 어떤 집회 하나를 하더라도. 이게 과연 잘 될까? 이런 정세 속에서 과연 누가 모여줄까? 그런데 아무리 엄혹한 시기여도 노동자대회든 뭐든 노동자들은 부응을 하거든요.

거기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다수 국민들, 서민, 민중들 속에 우리의 역사와 민주노동조합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 같은 게 있다고 저는 믿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고요. 그렇다면 가장 진정성 있게, 가장 성실하게, 가장 부지런히 사업을 펼치면 그만큼 반응이 온다고 생각해요. 당연히 지금 집행부도 그렇게 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래줬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시대의 전태일 정신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십니까?

“전에도 자주 읽었지만, 이사장으로 오고 나서 가방에 아예 전태일 평전을 넣고 다니고 있어요. 몇 번이라도 다시 읽고 있는데, 새록새록 아주 구체적인 점들이 다가오더라고요. 잘 알려진 것처럼 ‘풀빵’으로 비유되는 희생이라든지, 그런 모호한 수준이 아니라, 그 시대가 요구하는 문제에 굉장히 깊이 들어가고, 해결해 나가는 방식도 새롭게 바꿔왔던 점이 마음에 다가옵니다.

지금의 상황이 45년 전과 달라졌다고는 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거의 회복할 수 없는 말기에 접어들면서 전태일 당시의 평화시장 여공들을 지금도 여전히 찾아볼 수 있잖아요? 비정규직이라든지, 이주노동자라든지. 양극화가 극단적으로 진행되면서 우리 사회는 거의 붕괴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럴 때 전태일은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하려 했을까. 어떻게든지 문제를 완화시키고 해소하고, 우리 민중의 삶을 평등하게 제대로 만들어가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을까요. 지구별을 제대로 유지해 나갈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하면서요.

사용자는 적으로만 규정돼 있고, 거기에 대항해 노동자가 손해보지 않도록 싸우는 것만을 제시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자기가 제대로 된 모범 기업을 만들어서 노동자들에게는 법을 준수하며 권리를 보장해 주는, 그러면서도 수익을 내고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그런 걸 구상했습니다. 선순환시켜서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가는 고민 말입니다.

이 엄청난 갈등의 시대에 그걸 해소시키면서 서로서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시대를 만들어가려는 노력이 이 시대 전태일 정신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재단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늘 함께 하고, 지원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