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차등 성과는? 도찐개찐이다!
개인 차등 성과는? 도찐개찐이다!
  • 오도엽 객원기자
  • 승인 2015.04.17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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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것 급한 줄 알지만 내 것 해놓고 도와줄게”
임금체계에 대한 서울지역 직장인의 솔직한 고백
[호모파베르 VS 호모루덴스 1편](1) 임금, 톡! 톡! 말하기

 

호모파베르 VS 호모루덴스?

직장인들이 잘 알고 있다고 여기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문제들을 콕! 콕! 찝어 해부하는 기획 꼭지이다. 왜 나는 남들보다 돈을 더 적게 벌고, 왜 퇴근시간이 지나도 집에 갈 수 없는지, 왜 보장된 정년을 누릴 수 없는지, 왜 술 잘 마시는 김 대리가 먼저 과장이 되는지, 왜 일터에서는 내 생각을 펼칠 수 없는지까지. ‘호모파베르 VS 호모루덴스’를 통해 현재 논의되고 있는 노동시장구조개혁 문제를 재밌고, 쉽게 심층 분석해 보자..

한국기업 열 곳 가운데 예닐곱은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를 채택하고 있다. 성과중심의 임금체제로 바꿔야 한다고 정부가 앞장서지만 그 성과는 그리 크지 않다. 성과급 중심의 연봉제를 도입한 곳도 호봉제의 변형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한국사회에서 직무와 능력, 성과에 따른 임금체계를 머리로는 긍정하나 몸으로 받아들일 때는 알레르기반응이 일어난다. 평가의 객관성과 공정성 때문이다. 군사문화와 가부장적 권위주의 체계가 직장문화 깊숙이 침투했기 때문이다. 특히 기업조직의 상층부가 끼리끼리와 줄서기를 생존법칙으로 여기는 한 성과중심의 임금체계 정착은 어렵다. 문제는 임금체계의 낙후성이 아닐 수 있다. 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공정성의 결여가 임금체계의 후진성을 극복하지 못하는 원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지난 3월 한 달 동안 서울지역의 빌딩 숲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주로 설계, 영업, 관리 파트에서 일하는 전문직 또는 사무직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사회적으로는 자신의 연봉이 낮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노동력에 비해서는 낮다고 여긴다. 연봉이 낮다고 여겼을 때 직장생활 5년차 이하는 이직을 고민했다. 40대는 연봉상승에 대한 자신의 능동적 역할보다는 주는 대로 받아야지 별 수 있느냐는 체념이 컸다. 물론 연봉보다는 고용에 무게를 둔 이들도 있었다. 많은 이들이 쉰 살 전후를 자신의 은퇴시기로 여겼다. 자신의 회사에서 55세 정년을 채운 이는 딱 한 사람밖에 못 봤다는 이도 있었다. 부장급에 오른 이는 연봉에 대한 관심보다는 임원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에 신경을 날카롭게 세웠다.
이번 호에는 인터뷰이 가운데 임금체계가 대비되는 3인의 이야기를 싣는다. 회사명은 알파벳으로 하고, 인터뷰이도 가명을 썼다.

A사 3년차 박그래
“회사에서는 거의 연기를 하는 것 같다.”

박그래가 다니는 A사는 직원이 2,000명이다. 국내 토목 관련 엔지니어링 회사로는 선두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재벌 그룹사를 제외하면 연봉 수준도 수위다. 하지만 요즘 박그래는 취업 사이트를 들락거린다. 입사하고 1~2년 동안은 회사 일 배우고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3년차가 되니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지금 다니는 회사도 괜찮지만 이왕이면 좀 더 편한 환경과 높은 임금을 주는 곳은 없는지 곁눈질한다.

서울의 4년제 대학 토목과를 졸업한 박그래는 20곳 이상 이력서를 썼다. 국내 굴지의 그룹사 시험에서는 낙방했다. 동료들은 대기업을 위해 취업 재수의 길을 택했지만 박그래는 A사에 입사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갈등한다. S, H그룹 계열사에 입사한 친구들과 연봉차가 나기 시작한다. 갈수록 그 격차가 커질 것을 생각하니 그냥 현실에 만족하고 있어서는 안 될 것 같다.

박그래는 재벌사보다는 못하지만 동종 업계에서는 자신의 일터가 괜찮다고 생각한다. 시공사로 가면 좀 더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지만 현장을 떠도는 것보다는 사무실에서 설계도면을 만지는 게 자신의 적성에 맞다. 하지만 달마나 확인하는 급여명세서를 보면 내가 한 일의 대가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가 하는 고민이 든다. 일주일에 사흘은 9시나 10시까지 잔업을 하는 게 기본이다. 야근에 주말 특근까지 석 달 내리 한 적도 있다. 이 계통에서는 주3일 야근은 양호한 편이다. 동기들 가운데는 이보다 빡세게 일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하지만 앞으로 재벌그룹사에 다니는 친구들과 연봉 격차가 더 커질 것을 생각하면 지금 옮기지 않으면 늦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실제 같은 부서에 배치 받은 입사 동기는 지난해에 공기업 입사시험을 보겠다며 사직서를 냈다.

A사는 호봉제를 채택하고 있다. 상여금은 기본급의 500%다. 한 달 급여의 25%가량은 시간외수당이 차지한다. 노동조합이 없는 관계로 임금인상은 경영진 마음대로다. 주는 대로 받는다는 인식이 강하다. 인사고과가 좋으면 남들보다 호봉이 두세 단계 더 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누가 호봉이 더 올랐는지는 모른다. 서로 자신의 연봉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입사 4년차에 대리로 승진하는데, 대리까지는 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과장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박그래는 상사들이 승진하고, 못하고를 보면 성과나 업무능력을 가지고 객관적인 인사평가를 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한다. 때론 능력보다는 스펙(기술사 자격증, 대학원 진학 여부 등)이 중요하다. 또한 술자리에 미숙한 것 빼고는 업무처리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이가 승진에서 미역국을 먹는 경우가 있다.

“회사에서는 거의 연기를 하는 것 같다.”
여전히 인간관계가 제일 힘들다는 박그래, 오늘도 ‘윗분’ 기분에 맞춰 술자리에서 ‘심하게 노는’ 연기를 하며 ‘끝까지’ 달린다.

B사 15년차 조대리
“니 것 급한 줄 알지만 내 것 해놓고 도와줄게.”

남들은 과장 달고 차장 다는데, 조대리는 여전히 대리다. 그래선지 업무관계가 아니면 절대 자신의 명함을 꺼내지 않는다. 조대리가 다니는 B사는 대한민국 3대 보험사 가운데 하나다. 정직원만 4,000명 정도다.
조대리 입사 당시 B사의 임금체계는 호봉제였다. 차츰 성과를 중시하는 급여체계로 바뀌기 시작했다. 정기상여금이 사라지고 성과급이 생겼다. 직무를 중심으로 기본급이 정해지고 해마다 개인역량 평가에 따라 마이너스가 되기도 했다. 2008년도 이후에는 개인별 성과급 격차가 커지며 2배에서 3배까지 차등을 두었다.

기본급은 직무에 따라 구분되고, 역량에 따라 4개 등급을 두어 -20%에서 +20%까지 차등을 둔다. 이 결과는 승진을 위한 포인트 제도와 관련되어 매우 중요하다. 성과급은 상하반기 2차례 지급되는데, 등급에 따라 최하와 최고 등급 간에 3배 차이가 난다. 조직장의 판단에 따라 성과급을 1,000만 원 받는 이가 있는가 하면 3,000만 원을 받는 이가 있다는 말이다. 이러니 조직장의 권한은 막강하다. 결국 노동조합에서 진행하는 임금협상에는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임금인상률보다는 조직장에게 어떤 평가를 받느냐가 한 해 연봉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조직장도 괴롭긴 마찬가지다. 본사에는 영업을 지원하는 부서가 많아 객관적 수치로 개개인의 성과를 따지는 일이 쉽지 않다. 조직장도 평가 때가 되면 도찐개찐이라고 한다. 조직장의 평가에 대해 피드백 제도가 있긴 하다. 하지만 이의를 제기하는 직원은 거의 없다. 조직장에게 한 번 찍히면 헤어날 길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아예 술자리에서 눈물로 호소하며 다음 평가에서 선처해주기를 호소하는 편이 이득이다.
조대리가 6년째 과장 승진을 못하는 것도 대리 때 한 번 찍힌 낙인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업점에 나가서 소위 말하는 ‘보험 아주머니’를 모질게 다그치지 못한 성격이 그를 10년 넘게 대리에 머물게 하고 있다.

“니 것 급한 줄 알지만 내 것 해놓고 도와줄게.”
성과급 격차가 커지며 동료 간 서로 돕는 문화는 사라졌다. 우선 내가 먼저 살아야하는 전쟁터가 됐다. 조직장은 빨간펜을 들고 밀림의 사자처럼 군림하고 있다.

C사 12년차 권차장
“제도에 사람을 끼워 맞추니 조직이 굴러가겠어요.”

권차장이 다니는 C사는 1,300명의 직원을 둔 해운회사다. 권차장이 처음 입사할 때 임금체계는 호봉제였는데, 2000년대 중반에 성과급 중심의 연봉제로 바뀌었다가 2014년 호봉제에 가까운 연봉제로 바뀌었다. 연봉제로 처음 바꿀 때는 성과급 격차를 크게 두었는데, 사실 성과급 격차만큼 개인의 역량이나 성과의 차이가 나지 않았다. 반면 팀별 조직력이 낼 수 있는 시너지 효과는 갈수록 떨어졌다. 인사팀도 구성원이 아닌 제도에 맞춰 큰 폭의 격차가 있는 성과급을 개개인에게 적용하자니 일이 힘들었다. 팀장은 팀원의 평가등급을 물레방아처럼 돌려가며 매겼다. 올해 너는 S등급 받았으니 내년에는 A, 당신은 지난해 D를 받았으니 올해는 S식이다. 이게 가장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였다.

C사는 지난해 통상임금 이슈에 맞춰 제반 수당과 상여금을 기본급화한 연봉제로 바꾸었다. 성과급은 있으나 연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대폭 줄었고, 개인 간 격차도 미미하게 만들어 호봉제에 가까운 임금체계가 되었다.

권차장의 연봉은 한국 노동자의 중위소득을 꽤 높이 상회한다. 하지만 두 자녀를 둔 외벌이 가장이기에 급여명세표를 받을 때마다 늘 절망이다. 해운회사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낮다. 권차장은 지난해 회사가 올린 엄청난 영업이익을 들추며 얼마 되지 않은 임금 인상에 인색한 경영진을 원망한다. 2000년대 중반 성과급 중심의 연봉제로 바꾸던 시기, 경영진은 노동조합을 사라지게 했다. ‘글로벌’ 기준을 적용하려는 C사의 경영방침에 노동조합은 걸림돌이었다. 경영진은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노동조합을 말살하겠다는 작전에 들어갔고, 마침내 성공했다. 그이후로 C사에서 임금협상은 사라졌다.

“제도에 사람을 끼워 맞추니 조직이 굴러가겠어요?”
해운회사의 영업은 개인의 역량보다는 팀의 조화가 성과를 낸다. 글로벌 기준을 좋아하며 덩치만 키우던 경영자는 2013년 회사 경영에서 손을 떼고 물러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