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월급에 감춰진 비밀을 캐다
내 월급에 감춰진 비밀을 캐다
  • 오도엽 객원기자
  • 승인 2015.04.1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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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능력보다 힘세든가 줄서는 능력 탁월해야 연봉 빨리 오른다
합당한 임금수준 절실…산업별 적정임금 위한 사회적 대화 나서야
[호모파베르 VS 호모루덴스 1편](2) 임금, 쿡! 쿡!

고용되어 일하는 사람의 최대 관심사는 임금이다. 면접 볼 때는 꿈과 적성으로는 부족해 뼈를 묻겠다는 충성심까지 증명한다. 그 밑바탕에는 임금이 있다. 당장에는 일만 시켜줘도 감지덕지라고 여기지만 한두 달 지나면 내 월급과 내 이웃의 월급을 비교하기 시작한다. 취업난을 틈타 ‘무급인턴’에 ‘열정페이’ 마저 판치고 있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이런 임금착복의 덫에 걸려든 청년도 더 나은 임금을 향한 처절하게 몸부림친다.
또박또박 임금을 받는 사람도 임금이 무엇인지, 임금은 어떻게 결정되는지, 합당한 내 임금은 얼마인지, 임금명세서는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근로소득세는 어떻게 떼어가는지에 대해서는 큰 고민이 없다. 단지 액수가 얼마인가가 중요하다. 내가 정당한 급여를 받는지에 대한 측정도 합리적이지 못하다. 내 이웃과 비교할 뿐이다. 나보다 많이 받는 이웃을 보면 손해 보는 느낌이다. 나보다 적은 이웃을 만나면 어깨가 저절로 올라간다. 나보다 능력이 부족해 보이는데 임금을 많이 받는 이웃을 만나면 배알이 뒤틀린다. 이런 이는 능력을 중심으로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순이 발생한다. 나보다 근속연수가 짧은 데 임금이 높으면 임금 결정방식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내 월급을 감추는 진짜 이유는

갈수록 내 이웃의 연봉을 알기 힘들어진다. 연봉제가 퍼지면서 나와 책상을 나란히 한 이웃의 월급도 알 수가 없다. 서로가 말을 하면 좋을 텐데, 대부분 입을 다문다. 여기에는 ‘자존심’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이를 교묘히 이용하는 회사도 있다. 몇 해 전 한 외국계 화장품 회사 노동자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이 회사는 임금인상을 개별협상으로 결정하고, 연봉을 절대 공개하지 못하도록 했다. 연봉 공개가 징계사유로 된다. 인터뷰를 한 대부분이 자신의 연봉이 동료보다 높다고 여겼다. 임금협상 때, 당신만 특별히 더 준다는 임원의 말을 찰떡같이 믿었다. 이웃보다 나만 특별히 더 준다는 말에 내 임금이 합당한지를 따질 겨를이 없었다. 실제 이 업체의 매출과 수익은 동종업계의 톱 클래스였지만 임금수준은 이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아무래도 께름칙해서 몇몇이서 서로의 급여를 깠고, 임원의 말이 거짓임이 드러났다.

급여명세서에 찍힌 숫자만으로 연봉수준을 판단할 수 없다. 연말에 1년 연봉의 50%의 성과급이 나오는 회사도 있고, 때론 연봉보다 많은 보너스를 안기는 회사가 있다. 고액연봉자들이 파업을 한다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떠든 적이 있다. 그러자 노동자들이 급여명세서를 공개했다. 초라했다. 기본시급은 열악했고, 대통령이 말한 연봉을 받기 위해서는 20년을 근속하고, 연장 야간 특근 수당이 더해져야 겨우 도달할 수 있는 금액이다. 1년에 2,000시간을 일한 사람과 3,000시간을 일한 사람의 임금을 총액으로 비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뿐만이 아니다. 업계 최고의 연봉수준을 자랑한 업체가 동종업체를 인수합병했다. 인수한 기업의 노동자들은 인수된 업체와 임금체계를 통합하면 손해라고 여겼다. 막상 통합 과정에 들어갔더니, 업계 최고 연봉이 허울이었음이 드러났다. 연봉 총액으로는 30%정도 차이가 났는데, 막상 제반 수당과 복지수준을 합산해 비교하니 두 기업의 차이가 거의 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이 숫자로 드러나자 합병당한 기업과 임금체계를 통합하는 걸 반대했던 ‘업계 최고 연봉’ 노동자들의 마음들이 급속하게 유턴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제껏 숫자에 속고 살았다는 걸.

남이 얼마를 받았느냐가 아니라 ‘합당한’ 연봉을 받았느냐가 중요하다. 그런데 이 합당함을 찾는 게 쉽지가 않다. 노동자는 자신이 한 일의 가치를 높게 받고 싶다. 하지만 경영진의 생각은 다르다. 임금은 지출항목이다. 비용을 줄여 이익을 더 많이 남기는 게 경영이 아닌가. 그래서 월급을 받는 입장과 주는 입장은 충돌한다. 얼마나 갈등이 컸으면 임금협상 시기를 ‘춘투’라 부르겠는가.

☞ 최저임금은 국가가 노·사간의 임금결정과정에 개입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하고, 사용자에게 이 수준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법으로 강제하여 저임금 근로자를 보호하는 제도다. 한국에서는 1988년에 처음 제도가 도입되었으며, 2015년 최저임금은 시급으로 5,580원이다.

☞ 생활임금은 노동자가 가구 부양 능력을 갖추고 자녀교육과 문화생활 등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도로 최저임금을 넘어서는 개념이다. 국내 지자체 중에는 서울 성북구와 노원구, 경기 부천시가 구청장 행정명령이나 조례를 통해 시행 중에 있다. 서울시는 2015년 서울형 생활임금을 시급 6,687원으로 밝히고 시행에 들어갔다.

☞ 적정임금(prevailing wage)은 미국에서 실시하고 있는 제도로 공공부문 건설 공사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에게 지급되는 지역별·직종별 최저임금이다. 정부가 발주한 건설 프로젝트에 고용된 노동자들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임금을 보장하는 것으로, 공사 계약자는 노동자들에게 공사가 시행되는 지역의 일반 건설공사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 이상을 지불하도록 하고 있다.

내 월급은 누가 정할까?

 

물건 값은 판매자가 정한다. 물론 수요와 공급을 비롯한 다양한 변수를 고려하지만 결정은 판매자가 한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 하지만 자신의 노동력의 가격인 임금은 대부분 사는 사람이 결정한다.

연초에 한국을 대표한다는 삼성전자가 임금동결을 선언했다. 노동조합이 없는 회사니 협상도 필요 없다. 노사협의회가 있지만 이 회사의 경영방침 결정에 걸림돌은 아니다. 웃긴 일이 이어진다. 삼성전자 계열사들도 줄줄이 임금동결을 결정했다. 동결 이유도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적자를 보아서 동결한 게 아니다. 예전보다 이익이 줄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줄어든 이익이 다른 기업들은 상상할 수 없는 규모다. 이 논리라면 대한민국의 기업들은 2015년에 임금을 동결하는 정도가 아니라 삭감해야 할 판국이다.

대통령이 월급을 정한 적도 있다. 노사가 합의해 임금을 인상했는데, 뒤늦게 정부가 임금가이드라인을 정해 이보다 높은 인상률이면 노사합의문을 다시 쓰게 했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을 경우는 온갖 불이익이 가해져 저항하다가도 기업의 생존을 위해 정부의 지침을 따라야 했다. 다른 기업의 임금협상 결과에 따라 임금인상률을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한동안 지방은행의 경우 시중은행의 임금협상이 끝나기 전에는 노동조합이 있어도 임금협상을 타결하지 못했다. 각 업종에서 선두 기업이 임금협상을 타결해야 여타 기업들이 임금협상을 마무리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이런 경우도 있다. 노사가 협상을 하는데, 우리 회사의 규모와 수익률이 업계 5위니 업계에서 다섯 번째로 임금을 타결하자고 협상을 미루는 경영자도 있었다.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권위주의 체제가 지속된 한국에서 볼 수 있는 특이현상이다. 결국 내 임금이 정부나 큰 기업 눈치보기로 결정된 셈이다.

인건비 비중이 낮다는 기업인을 만나기 힘든 것처럼 내 임금이 높다는 노동자도 찾기가 어렵다. 그만큼 합리적인 임금결정방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 임금생존비설, 임금기금설, 노동가치설, 한계생산력설, 임금계약설, 임금세력설, 행동과학적 임금설…, 이처럼 숱한 임금결정이론이 있다. 하지만 현실의 임금결정을 일목요연하고 과학적으로 증명하지는 못한다.

먼저 노동계의 임금인상요구안의 살펴보자. 한국노총은 ‘한국노총 표준생계비를 기초로 노동자 가구원수, 근로소득 충족 생계비 비중, 물가상승률을 고려’해 월고정임금 총액 기준 7.8%(24만 5,870원)를 요구했다. 민주노총은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 소득분배개선치를 반영’해 정액임금 23만 원(8.2%) 인상을 제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국민경제생산성을 감안해 1.6% 범위 내에서 조정’을 권고했다. 1.6%는 국민경제생산성 증가율 2.9%에서 정기승급분 1.3%를 빼서 나온 거다.
임금수준을 결정하는데 이처럼 복잡한 계산이 동원된다. 생계비, 물가상승률, 경제성장률, 국민경제생산성에 소득분배개선치까지. 그러나 실제는 이보다 더 복잡하다. 경제적 요인만이 아니라 기업의 투자와 같은 경영계획과 손익, 경쟁업체의 임금수준, 배당금 규모와 같은 경영적 요인이 중요하다. 여기에 임금격차 해소와 같은 사회적 요인도 더해진다.
그래서 내가 일한 만큼 임금을 받기가 쉽지 않다. 같은 공장 같은 라인에서 왼쪽 바퀴 다는 사람과 오른쪽 바퀴 조립하는 사람의 임금도 큰 격차가 있지 않는가.

내 임금 총액이 높아지는 몇 가지 일반적인 경향이 있다. 우선 GDP 등 국가의 경제규모가 커지면 임금도 높아진다.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면 내 임금도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경우 물가상승 폭보다 임금인상 폭이 적으면 생계는 더 어려워진다. 그래서 자신이 급여명세서에 얼마가 오른 금액이 찍혔는가보다는 실질임금이 얼마인가를 알아야 한다. 실질임금이란 물가상승 효과를 제거한 임금이다. 내 급여명세서의 액수는 명목임금이라고 한다. 실질임금을 구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실질임금 = (명목임금/소비자물가지수) X 100

내 이웃 일터의 임금도 중요하다. 공단 내의 다른 사업장의 임금수준이 올라가면 내 임금도 올라간다. 다른 지역에 있지만 내가 다니는 일터의 경쟁기업의 임금도 내 급여명세서에 영향을 준다.
권위주의 시대가 지나갔지만 여전히 정치사회적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2008년 금융위기 때 금융권 신입사원의 급여 20%를 일괄 삭감한 경우도 있었다. 공무원을 비롯한 공기업의 임금은 여전히 정치·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결정된다.

결국 힘이 판가름한다

 

자신의 임금수준을 결정하는 데 가장 큰 힘은 뭐니 뭐니 해도 노동조합이 있느냐 없느냐다. 혼자서 경영진과 맞서 임금을 결정하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뭉쳐서 협상을 한 기업의 임금수준은 높아진다.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탄압하는 기업도 노동조합을 꾸리려는 세력이 생기면 우선 임금수준부터 높인다. 임금을 올리면서 노동조합 주도세력을 고립시켜 어떻게든 노동조합 설립을 막으려고 하는 기업들이 있다. [그림 3]을 통해 기업규모와 노동조합 유무가 임금에 미치는 영향을 알 수 있다. [그림 4]는 기업규모와 노동조합 유무에 따른 근속연수의 차이를 보여준다. 기업의 규모도 중요하지만 노동조합의 있고 없음이 노동자에게는 하늘과 땅을 오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노동조합의 교섭력은 그 기업의 임금수준을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노동조합 설립 초창기에는 대립과 투쟁을 거치며 누가 힘이 센가에 따라 임금인상폭이 정해진다. 때론 경제적 요인, 경영적 요인은 꺼낼 필요가 없다. 물가상승률이나 경제성장률의 몇 배 이상의 임금인상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파업이나 태업 같은 단체행동보다는 교섭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게 중요하다. 조합원들도 조금 덜 오르더라도 싸우지 않고 임금과 복지수준을 높일 줄 아는 노동조합 간부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내 이웃의 월급봉투보다 얇아질 경우에는 교섭보다는 투쟁력이 강한 집행부에게 투표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낮다. 노동조합의 교섭력에 등을 기댈 수 있는 노동자는 열 명 가운데 한 명밖에 되지 않는다. 연봉협상을 한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직장인은 자신의 요구보다는 경영진의 방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협상은커녕 통보에 머무는 경우도 허다하다. 임금수준은 양심적인 기업인을 만나느냐 악덕 기업주를 만나느냐에 따라 차이가 날 수도 있다.

남들보다 내 월급이 높은 까닭

내 이웃보다 내 월급이 높다고 무조건 좋아할 필요는 없다. 높은 임금을 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임금을 정할 때 세 부류의 사장이 있다. 될 수 있으면 어떻게든 다른 회사보다 덜 주려는 사장. 남들만큼은 주어야 한다고 여기는 사장. 남들보다 10원이라도 더 주려는 사장. 월급을 받는 입장에서는 세 번째 사장을 만나면 복이라고 생각할 거다. 하지만 사장이 급여를 많이 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 급여만 보고 달려갔다가 ‘덫’에 걸린 경우가 있다.

창원의 한 공단에 다니는 50대 기능을 지닌 노동자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다. 비슷한 규모의 업체 가운데 한 곳에서 임금을 높여 사람을 끌고 갈 때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갑자기 큰 사업을 따내 인력이 다급하게 필요할 때다. 이런 경우라면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급성장을 하는 곳이라 노동강도는 만만치 않다고 한다. 그런데 부도를 앞둔 회사일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한다. 대부분 높은 임금을 주겠다는 곳은 인력의 이동이 심한 경우이고, 인력이동이 잦다는 것은 기업 내부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연륜이 쌓인 이 노동자는 임금보다는 직원들의 이직률을 본다고 한다. 평균적인 임금이나 그보다 약간 낮더라도 이직률이 낮은 공장이 결국 자신의 생계를 튼튼히 해준다는 말이다.

동일 업종보다 좀 더 높은 임금을 주는 게 회사의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경영인도 있다. 이 경영인은 필요인력보다 적은 인원을 채용하되 임금은 높이 책정한다고 한다. 이래야 직원들의 의욕이 높아 생산성이 올라간다고 한다. 낮은 임금으로 많은 사람을 고용하기보다는 그보다 약간 적은 수의 사람에게 높은 임금을 줄 때 이윤이 늘어난다는 논리다. 직원들이 자신의 임금수준을 남들과 비슷하거나 낮다고 생각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일을 게을리 하는데, 다른 일터보다 높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나태해지는 걸 억제하는 작용을 한다. 이 직장을 나갈 때 자신이 포기해야 하는 대가가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임금이 낮아야 기업이윤이 커질까

대부분의 회사는 평균적인 수준에서 위아래로 약간의 폭을 둔다. 이 사람을 채용해 높은 성과가 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쉽게 평균 이상의 임금을 설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한 사람을 채용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효과를 평균적으로 계산해 임금을 책정한다. 평균 이하의 생산성을 가진 직원을 채용했을 때 발생하는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채용하는 사람의 속마음은 어떨까? 될 수 있으면 평균 이상의 생산성을 갖춘 이가 많이 들어와 이윤을 많이 안겨주기를 바랄 것이다.

그런데 구직난이 극심하지 않는 한 높은 생산성을 갖춘 이가 낮은 임금을 받으며 일하려 하지 않는다. 대부분 평균치로 계산한 임금의 평균치의 생산성을 지닌 이나 그보다 낮은 이가 지원하기 마련이다. 다수의 직장인은 효용이론(임금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일 자체가 재미있거나 보람이 있다)보다는 가치이론(받는 만큼 일한다)을 따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효용이론에 충실한 사람은 승진이 빠르거나 좀 더 나은 직장으로 스카우트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고용이 보장된다면 꼭 몸을 혹사하며 승진을 해야 하나 하는 이도 있기 마련이다. 고용보장이 탄탄한 일터의 경우에는 가치이론에 충실한 직장인이 가장 효용성이 높다는 분위기가 퍼진다. 경영인에게는 최악이다. 한국에서 이런 기업은 많지 않다. 갈수록 철밥통 일자리 수는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높은 임금은 노동시장에서 채용의 역선택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역선택이란 채용자의 정보가 부족해 최선의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경우다. 스펙은 화려한데 막상 업무에서는 폭탄인 사람을 채용한 셈이다. 실제로 설정해둔 임금보다 낮은 생산성을 가진 인재를 채용하는 역선택 기업은 임금이 낮을수록 많다고 한다. 낮은 인건비 지출이 기업에 이익을 주지 못하고 더욱 낮은 수익성을 초래한다는 말이다. 이런 기업은 뛰어난 인재라 할지라도 가치이론이 활발히 생성돼 받는 만큼 일하거나 그 이하로 일하려고 한다.

그래서 업계의 선두기업이 되려는 2위 기업 임금이 1위 업체의 임금보다 높다는 말도 있다. 2위 이하 기업들은 훌륭한 인재가 1위 업체로 옮겨갈까 걱정한다. 숙련된 노동력을 빼앗기고 이를 대체할 인력을 뽑아 새로 교육을 시키려면 임금 이상의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1위 업체에 인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더 높은 임금을 주기도 한다.

높은 임금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높은 임금이 훌륭한 인재를 끌어당기기에 생산성이 높은 거다.

연봉 오른다고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건 아니다

회사가 4,500만 원을 제시할 때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여기서 나의 업무능력과 성과를 설득해 200만 원을 더 올려 4,700만 원을 받을 것인가, 그냥 수긍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 손익계산이 복잡하다. 근로소득세에는 누진세율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특히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뀐 요즘에는 계산기를 잘못 눌렀다가는 그야말로 폭탄을 맞을 수가 있다.

※세율적용방법: 과세표준×세율- 누진공제액
<예시> 2013년귀속 _ 과세표준30,000,000 ×세율15% - 1,080,000 = 3,420,000

결론적으로는 과세대상 소득이 얼마인가를 알아야 한다. 연봉이 많이 오른 줄 알았더니 실지급액 숫자에는 큰 변동이 없는 경우가 있다. 급여내역이 오른 폭보다 공제내역 액수의 증가폭이 클 수 있다. 이것을 설명하려면 쉽지는 않다. 연말정산 방법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 공제를 받을 수 있는가를 귀신처럼 뽑아내 연봉 인상의 황금률을 찾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말하자. 1,200만 원 이하는 세율이 6%, 4,600만 원 이하는 15%, 8,800만 원 이하는 24%, 8,800만 원을 초과할 때는 35%다. 누진세율이 적용되는 인근에 연봉이 도달할 때는 신중하게 협상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업무 능력보다는 줄서기

임금을 어떻게 결정해 지급하느냐에 따라 연공급, 직무급, 직능급 등으로 나눠진다. 연공급은 호봉제라고 말한다. 호봉제의 경우 근속연수, 나이, 학력, 성별 등이 임금의 결정요소다. 직무급은 업무의 중요성이나 난이도에 따라 각 직무의 상대적 가치를 매기고, 그에 따라 임금을 결정한다. 직능급은 업무수행능력을 등급화해 직계를 만들고, 각 직계의 호봉을 정해 임금을 결정한다.

☞ ‘직능급’은 직무담당자의 과거부터 축적되어 온 직무수행능력을 기준으로 잠재능력과 발휘된 능력을 모두 고려하여 직원의 등급을 평가하고 등급 및 숙련도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 ‘직무급’은 현재 담당하고 있는 직무의 가치를 기준으로 직원의 등급과 임금을 결정하되 대부분 잠재능력은 고려하지 않고 발휘된 능력만을 기준으로 성과 평가가 이루어지는 특징이 있다.
☞ ‘역할급’은 현재 담당하고 있는 직무의 ‘역할가치’ 크기에 따라 등급과 임금이 결정되는 방식이다.

호봉제 중심이던 한국의 경우 연봉제가 도입되면서 호봉을 기본으로 하되, 직무직능급, 성과급을 뒤섞어 임금을 결정하는 실정이다. 아직 많은 기업이 호봉제를 채택하고 있으나 직무직능과 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를 위해 연봉제로 전환하고 있다. 연봉제 도입 초기 한국식 대표 모델로 두산형(플러스 섬)과 삼성형(제로 섬)이 있었다. 플러스 섬은 실적이 나빠져도 연봉액이 줄어들지 않는데, 제도 도입 당시 직원들의 반발을 막고 연봉제를 안착시키기 위해서 이 방식을 도입했다. 제로 섬은 프로야구 선수의 연봉을 떠올리면 된다. 철저한 가감방식으로 일 잘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의 차별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 플러스 섬(두산형)은 잘하는 사람에게 임금을 더 많이 주는 방식이다. 실적이 나쁜 사람도 연봉이 줄어들지 않는다. 이 경우 대체로 연봉산정방식이 누적식이다. 지난해 연봉이 기준이 된다. 제로 섬의 경우 실적이 나쁜 부서, 능력이 모자라는 사람의 급여는 줄이고 이를 실적 좋은 부서와 사람에게 나눠준다. 산정기준은 매년 결정되는 직급의 평균인상율이다.
☞ 제로 섬(삼성형)을 채택한 경우 대부분은 비누적식 연봉방식을 쓰고 있다. 지난해 연봉은 고려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 매년 공평한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패자부활식이라고도 부른다. 대체로 IMF 이전에 자발적으로 연봉제를 채택한 기업들은 두산형이다. 경제위기 상황이 심화된 이후 합류한 업체들은 대체로 삼성형을 택하고 있다.

직무직능급과 성과중심의 연봉제가 정착되려면 올바른 평가제도를 갖는 게 중요하다. 성과를 평가할 때 정확히 수치를 확인할 수 있으면 편할 건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많은 기업들이 정량적 평가시스템을 도입하고 있으나 실제는 그마저도 정성적 평가로 치우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인사평가에 대한 구성원의 수긍 정도가 낮다. 결국 직원 간의 위화감을 조성해 조직의 발전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기업들은 성과중심의 임금체계를 도입하기를 주저하거나 호봉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객관적 기준으로 평가하고, 투명하게 공개된다면 구성원의 수용성이 클 거다. 하지만 평가하는 이도 평가를 받는 사람도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문화다.

공정한 평가제도에 대한 의구심 때문에 업무능력보다는 줄 서는 능력이 중요하다. 줄을 잘 서는 사람은 능력이 부족해도 성공하는 반면, 능력이 있어도 줄을 잘 서지 못하면 연봉이나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줄을 잘 서는 능력은 후천적인 학습능력이라고 한다. 능력이 열등한 사람은 조직에서 살아남으려고 줄 서는 능력이 발달한다고 한다. 이를 통해 주도하는 집단에 속하게 되어 기업에서 살아 남고 이후에는 조직을 주도하기도 한다. 업무능력이 부족하기에 어디가 주류세력인지를 파악해 편입하려는 노력을 한다는 말일 거다. 반면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면 생존을 위해 굳이 주류세력에 편입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진화경제학에서는 줄을 잘 타는 열등 투입요소들은 기업의 생존에 가장 적합한 사람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산업별 적정임금과 사회적 대화가 절실하다

임금에 얽히고설킨 이야기들을 살펴봤다. 임금, 많이 받으면 좋지만 마냥 좋아라만 할 수 없다. 기업인 입장에서는 적게 주면 좋지만 그렇다고 이윤이 더 늘어난다는 보장은 없다. 개별 회사의 경영성과로만 임금을 책정할 수도 없다. 때론 경제적 요인이나 정치·사회적 요인이 크게 좌우할 수도 있다. 노동조합의 유무나 노동조합의 교섭력이 임금인상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만 점점 그 영향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노사가 상생하기 위해서는 한쪽이 완승하는 결과보다는 균형에 맞춰 타협점을 찾는 규칙이 나름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규칙이 세워지지 않고 갈등이 이어진다면 그 기업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을 것이다.

경제가 튼튼해지려면 임금에 대한 사회적 룰이 만들어져야 한다. 2015년 들어 최저임금제가 시행되고 나서 처음으로 정부가 최저임금을 높여야 한다는 말을 꺼냈다. 이례적이지만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저소득층의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임계점에 왔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있어 작으나마 사회적으로 이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거다.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최저임금보다 한 발 더 나가 생활임금을 도입하고 있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산업별 임금협약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커진 데에는 산업별 협약에 시큰둥했던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경영자들, 그리고 정부의 왜곡된 노사관이 큰 몫을 차지한다. 임금의 문제, 노사의 문제를 개별 기업 안에서 해결할 때 노사 갈등만이 아니라 사회 양극화가 심화될 수밖에 없다. 사회양극화가 크지 않는 나라의 경우 산업별 또는 사회적 대화가 뿌리 깊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요즘 박근혜 정부가 노동시장의 롤모델로 삼는 네덜란드도 노동조합과의 대화가 중요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강행하려 했다면 극심한 갈등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임금에는 개별 사업장의 경영요인만이 아니라 경제, 사회, 정치적 요인이 담겨 있다. 합당한 임금체계나 수준을 개별 직원과 사장, 단위 사업장의 노사에게 맡겨 둘 경우 힘세고 목소리 커야 한다는 논리가 되풀이될 뿐이다. 산업별 적정임금과 인간다운 삶이 보장될 수 있는 생활임금 논의를 확산하고 사회에 뿌리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경영계, 그리고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대화 의지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