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해외생산, 국내 자동차산업은 위기
늘어나는 해외생산, 국내 자동차산업은 위기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5.05.11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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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기반 위협…노동자는 고용불안 우려
위기 대처 위해 국내공장 위상 재설정 필요
[커버스토리] 해외생산 확대를 통해 본 자동차산업의 현재 (1) 해외공장 생산 확대 현황

자동차산업은 반도체산업과 함께 우리나라를 이끌고 있는 쌍두마차 중의 하나다. 특히 여러 산업이 자동차산업에 연관돼 있어 그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친환경 차량이 강조되면서 대체에너지 개발에도 자극을 주고 있고, 각종 첨단장치를 탑재한 자동차들도 늘어나 전자산업이나 소프트웨어 산업과도 관련성이 커지고 있다. 넓게 보면 우리나라 국민 4~5명 중 1명은 자동차산업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산업에 종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자동차산업은 우리나라 산업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산업이다.

해외생산 비중 점점 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자동차산업의 해외 진출이 갈수록 늘고 있다. 우리나라의 완성차 업체 중에서 시장점유율 측면에서 압도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경우를 보면, 갈수록 해외공장 생산이 늘고 있다는 점이 우선 눈에 띈다.

<표>에서 보듯이 현대자동차의 경우 2010년부터 해외공장 생산 비중이 국내공장 생산 비중을 넘어섰다. 올해 생산계획에 따르면 국내공장에서 37%를, 해외공장에서 63%를 생산할 계획이다. 기아자동차의 경우 지난해까지는 국내공장 생산 비중이 근소하게나마 높았다. 그러나 올해 생산계획에서는 해외공장 생산 비중이 국내공장 생산 비중을 넘어서는 것으로 돼 있다. 국내공장의 생산량을 보면, 현대자동차의 경우 2012년을 정점으로 약간 감소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기아자동차의 경우에는 매년 약간씩 증가하지만 해외공장 생산량의 증가 속도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현대자동차는 현재 인도와 중국, 미국, 터키, 체코, 러시아, 브라질에서 공장을 가동하고 있으며, 기아자동차는 중국과 미국, 슬로바키아에 공장을 두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2017년까지 중국에 두 개의 공장을 새로 완공할 계획이며, 기아자동차도 중국에 추가 공장을 짓는 한편 멕시코에도 공장을 새로 설립할 계획이다. 반면 두 기업 모두 국내에 새로운 공장을 설립할 계획은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계획대로 두 기업의 해외공장이 완공된다면 해외공장의 생산 비중은 더욱 높아지게 된다.

세계적 흐름이지만 고용불안 올 수도

완성차 업체들이 이처럼 해외공장 생산 비중을 확대하는 데 대해 국내공장 노동자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엄교수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정책기획실장은 “국내 물량을 가지고 조합원들이 크게 불안해하지는 않지만 2020년까지 국내공장의 생산 비중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은 알고 있다”면서 “국내공장에 분규가 발생한다거나 채산성이 안 맞는다는 이유로 기업이 해외공장 의존도를 높여가면 고용불안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인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엄교수 실장은 다만 “단체교섭에서 국내공장의 생산량을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별도의 고용안정 협약서를 체결한다”면서 “그게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는 않을 수 있지만 매년 노사가 합의를 통해 선언하기 때문에 위안을 삼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치일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 광주지회 부지회장은 “물량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하지만, 실제 모든 생산이나 증산이 해외에서 이뤄지는 것을 보면 달갑게 생각할 수 없다”면서 “시장 수요가 감소했을 때 우리가 생산하던 수출 물량을 현지에서 생산하게 되면 1997년 부도 당시 경험했던 것처럼 고용과 직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치일 부지회장은 이 때문에 해외공장을 설립하고 물량을 배정하는 것에 대해 조합원들의 불만이 많다고 전했다. “해외공장이 증설되면 결국 국내공장에서는 국내 수요량만 생산하게 되고, 자본 입장에서는 인건비 등을 따져 가장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는 공장에서 생산할 것”이므로 “해외공장의 생산 비중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서 걱정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기아자동차지부도 지난 3월 19일자 <함성신문>에서 해외공장 생산 확대에 따른 위기의식을 나타낸 바 있다. 기아자동차지부는 “국내 자동차산업은 한계에 봉착해 있다”면서 “내수시장의 수입차 비중이 15%로 급격히 증가해 국내 메이커들의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고, 해외공장 확대로 국내공장 수출 물량은 줄어들 것이 자명하다”고 우려했다.

기아자동차지부는 특히 해외공장에서 생산된 차량이 해당 국가 밖의 나라로 수출되는 경우를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다. 국내공장의 인건비가 과도하게 올라 원가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해외공장 생산 차종을 다른 나라로 수출하면 국내공장의 수출 물량이 감소하고, 이는 생산량 부족으로 인한 고용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해외공장 생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고용불안을 사전에 막기 위해 현대자동차지부와 기아자동차지부는 매년 단체교섭에서 해외공장과 관련한 사항을 논의하고 있다. 특히 해외공장의 확대가 국내공장 조합원들의 고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두 지부가 회사와 체결한 단체협약에는 해외공장을 신설하거나 차종을 투입할 때 노동조합에 설명회를 열어야 하고, 국내공장 조합원들의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에 대해서는 노사합의가 있어야 시행할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것과 지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실제로 기아자동차의 멕시코 공장 신설 계획은 언론 보도를 통해서 조합원들에게 알려졌다. 강민성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 광주지회 정책고용3부장은 “회사가 단협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도 노조가 해외공장까지 가서 막을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의 우려와는 달리 이 같은 완성차 업체의 해외공장 생산 비중 확대는 세계적인 흐름이므로 당연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완성차 업체의 해외공장 생산 비중 확대를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면서 “일본의 닛산은 해외공장 생산 비중이 80% 정도 된다”면서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의 입장에서는 많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이, 세계적으로 글로벌 생산기지를 늘리는 것은 하나의 흐름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자동차산업은 대표적인 세계화 산업으로 수요가 있는 곳에서 생산한다는 기본 원칙이 작용하고 있다”면서 “이제 자동차와 관련해서는 ‘메이드 인 월드(Made in World)’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고용 문제와 관련해서도 “단기적으로 현대·기아자동차는 국내공장의 가동률을 적정 수준에서 유지하겠지만, 비용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경우 해외 생산물량을 늘리고 국내 생산물량은 축소할 것”이라면서 “세계 자동차시장의 성장 둔화, 선진 자동차 업체들의 본격적인 원가 경쟁, 선진업체에 비해 뒤처지는 신기술과 신모델을 지닌 현대·기아자동차는 글로벌 공급과잉이 발생할 경우 희망퇴직을 요구할 것이고, 이것이 노사분규로 이어지면 생산물량의 해외이전이 가속화되고 고용의 감소까지 이어지지 않을지라도 자동차산업 종사자 전원이 고통을 분담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현지 수요는 현지에서 생산한다

김필수 교수나 이항구 연구위원의 말에서 드러나듯이 해외공장 생산 비중 확대는 세계적인 흐름이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현지 소비자들이 원하는 모델을 현지에서 개발해 적기에 공급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 중국과 같이 수요가 큰 시장에서는 현지 생산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한다.

익명을 요구한 현대·기아자동차그룹 간부가 이야기하는 해외공장 생산 비중 확대의 이유도 이항구 연구위원의 분석과 일치한다. 이 간부는 “현지의 고객들이 원하는 바를 한국에서 만들다 보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수 있는데, ‘현지에서 필요로 하는 차를 현지에서 만들어야 현지에서 팔린다’는 게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의 전략”이라고 밝혔다.

노조에서도 기업의 현지화 전략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강민성 부장은 “해외공장 생산 비중 확대의 첫 번째 이유는 차량 적기 생산”이라면서 “신차가 나오면 1년 정도 신차효과로 물량이 증가하는데, 그때 적기 생산을 못하고 재고가 쌓이면 구매자들은 기다리다 지쳐 다른 차를 구매하기 때문에 회사는 현지 생산을 통해 적기에 공급하려고 한다”는 점에 공감을 표시한다.

여기에 관세를 해외공장 진출의 이유로 꼽기도 한다. 엄교수 실장은 “지금까지 해외공장의 생산량이 늘어난 가장 큰 이유는 관세 때문”이라면서 “현대자동차가 진출한 해외공장을 보면 관세장벽 때문에 해당지역에 공장을 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다”는 점을 꼽는다. 인도의 경우 관세가 60%에 이르고 멕시코의 관세는 20% 수준이다.

현지화 전략이나 관세뿐만 아니라 경쟁력 확보라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앞의 현대·기아자동차그룹 간부는 “인건비뿐만 아니라 품질, 생산성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국내공장의 경쟁력이 저하되고 있기 때문에 해외공장을 지어 현지 생산을 늘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자동차 업체들은 저비용 국가에서 자동차를 생산해 현지 수요를 충당하고 인접지역에 수출한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면서 “자유무역협정(FTA)을 비롯한 지역무역협정 체결이 확산돼 이러한 투자를 촉진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현대·기아자동차의 국내공장 단위노동비용은 미국의 자동차산업보다 높은 수준이지만 부가가치는 독일이나 일본 공장보다 낮다”면서 “선진국 자동차 업체들이 중국을 비롯한 신흥 개도국에 자국보다 많은 생산능력을 구축해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현대·기아자동차가 경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생산효율성이 높은 해외공장을 늘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한다.

하지만 국내공장이 ‘고비용 저효율 구조’라는 분석에 대해서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박치일 부지회장은 “국내공장의 인건비 비중이 해외공장의 인건비 비중보다 높다고 하는데, 순수하게 생산공장만 있는 해외공장의 인건비 비중과 연구소 등 R&D 시설까지 구비된 국내공장의 인건비 비중을 같은 기준으로 단순비교하면 안 된다”면서 “가장 최근에 지은 공장이 가장 효율적일 것은 분명한데, 이제 갓 지은 해외공장과 지은 지 50년이 다 되는 국내공장을 단순수치만으로 비교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지적한다. 이항구 연구위원도 지적하고 있는 바이지만, 설비나 연식, 합리적인 라인 배치 정도, 노동강도 등 여러 조건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엄교수 실장도 “효율 측면에서 본다면, 중국이나 인도나 터키나 이런 국가들의 노동환경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대단히 열악하고, 그런 조건 때문에 상대적으로 효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는 점을 지적한다. 효율성이라는 것도 상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완성차만의 문제는 아니다

해외공장의 생산 비중이 늘어나면서 국내공장의 역할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노동조합은 앞서 보았듯이 조합원들의 고용을 우려하는 만큼, 고용을 지키기 위해서는 국내공장의 위상을 다시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해외공장 확대에 대한 고민이 많다. 앞의 현대·기아자동차그룹 간부는 “아직은 GM이나 도요타 등에 비해서 해외공장 생산 비중이 낮은 편”이지만 “글로벌 기업과는 달리 국내 산업기반의 측면에서도 고민해야 하는 현대·기아자동차는 국내공장의 생산량을 계속 유지할 것이며, 국내공장을 폐쇄하고 해외로 나간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현대·기아자동차만으로 시야를 좁혀서는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위기를 제대로 인식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부품업체들 역시 완성차 업체에 비해 속도는 더딜지라도 해외 이전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독일의 자동차 부품업체들은 향후 5년 내에 해외 직접투자를 늘리고 독일 내 생산설비를 15% 감축할 계획이어서 3만 5천여 명의 실업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면서 “우리나라 역시 부품업체들의 해외 이전에 대한 대비책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은 향후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 그리고 그러한 길을 가기 위해 무엇을 변화시켜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