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위한 거라고? 천만의 말씀
아이들을 위한 거라고? 천만의 말씀
  • 이상동 기자
  • 승인 2015.05.1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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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립 집중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혼자만이 아니라 손맛을 공유하다
[일.탈_ 나만의 힐링을 공개한다] 레고

얼마 전부터 키덜트(Kidult)라는 신조어가 새롭게 등장했다. 아이를 뜻하는 영어 키드(Kid)와 어른을 뜻하는 어덜트(Adult)가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다. 아이 같은 취미를 가진 어른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되는데, 2015년 1월에 열린 키덜트 페어는 관람인원이 7만여 명에 달할 정도로 흥행했다. 이제 어른이 아이와 같은 놀이를 즐긴다고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대는 끝났다.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어른이 돼서도 가지고 노는 게 어떻단 말인가.

ⓒ 최호준

조각을 모아 집 한 채를

조각조각 나눠져 있는 부분들이 모여 하나의 완성품을 이룬다. 물론 직접 맞춰야 한다.

“매뉴얼을 보고 순서대로 따라서 조립을 하긴 하지만 작은 부품들이 모여 집 한 채가 되는 걸 보니까 신기한 거예요. 재밌고.”

최호준(37) 씨는 레고를 시작한지 6년이 넘었다.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호기심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찮게 완성된 레고 사진을 보게 되고 ‘나도 해볼까?’라는 생각에 주문을 하고 빠져들게 된 것이다.

9시 출근, 저녁 10시에 퇴근하는 반복된 생활, 인터넷밖에는 다른 취미생활을 즐길 여유도 없었다. 그렇지만 레고를 시작하면서 작은 쉼표가 하나 생겼다.

“조각과 조각이 연결되고, 연결된 게 또 다른 것과 연결 돼요. 이걸 왜 이런 식으로 연결해야 하는지 나중에 알게 되는 경우도 있고요. 손맛이라고 표현하거든요. 작은 것들은 순간에 뚝딱 만들기도 하고 손맛이 큰 것들은 7~8시간 혹은 며칠에 걸쳐 나눠서 만들기도 해요.”

퇴근 후에 TV나 라디오를 틀어놓고 귀로는 방송을 듣고 손으로는 레고를 조립한다. 물론 조립 설명서도 틈틈이 봐야 한다. 몇 시간이고 계속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30분 정도만 집중해서 만들다 보면 일에 지친 마음은 충분히 회복된다. 몸을 쓰거나 힘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기에 체력이 부족할 것도 없다. 주말에 시간이 많이 남을 땐 작정하고 몇 시간씩 만든다.

권장연령은 11살

제품 상자에 보면 권장 연령은 9~11세로 되어 있지만 어른이 조립 매뉴얼을 보고도 이해가 안 돼서 조립을 잘못하기도 한다.

“2천 조각이 넘는 레고도 있는데 그런 것들은 엄청 복잡해요. 매뉴얼을 봐도 이게 왜 11살이 권장연령인지 모를 정도에요. 심지어 매뉴얼을 보고 조립했는데 정상 작동이 안 되는 거예요. 레버를 감으면 시계방향으로 작동하게 돼 있는데 안 돼서 보니까 첫 번째 구멍에 조립해야 할 것을 두 번째 구멍에 넣어버린 거죠. 아니면 하나가 빠져 있다거나, 그렇게 조립이 어려운 것들도 많아요. 근데 그것도 하나의 재미죠.”

레고도 취향에 따라 몇 가지로 갈래가 나뉜다. 여자아이를 위한 프렌즈(Friends), 마을을 꾸미는 시티(City), 중장비 종류를 만드는 테크닉(Technic) 등 수많은 종류가 있다. 취향에 맞춰 구매하고 조립하면 된다.

테크닉은 조립하고 나면 무선 조종도 된다. 굴삭기를 조립해서 흙을 뜨거나, 다른 중장비도 그에 맞는 역할을 전부 할 수 있다. 일부 마니아는 개조해서 즐기기도 한다. 무선으로 동작되는 부분이 두 부분인 것을 세 부분으로 늘린다거나 속력을 더 빠르게 하거나 하는 방식이다.

만들고 조종하는 것뿐만 아니라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놔두고 감상하기에도 좋다. 하나의 완성품을 전시해놓기도 하고 디오라마(Diorama, 하나의 형태를 이루는 축소 모형)를 꾸며 놓기도 한다.

ⓒ 최호준
레고 하나 팔아, 레고 두개가

완성한 레고를 계속 진열해 놓다 보면 공간이 부족해진다. 그래서 레고의 끝은 집 마련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공간 많이 필요해요. 레고는 모든 게 공간인 것 같아요. 작은 거 사면, 그 녀석으로 만든 것은 얼마 안 커요. 조립 시간도 짧고 난이도도 낮고 하니 점점 큰 규모로 가게 되죠. 그렇게 하다보면 완성품도 커요. 책상 위나 집 안에 만든 걸 전부 놔둘 수 없으니까 며칠 보다가, 해체해서 원상태대로 넣어두고 새로 산 것을 조립해서 며칠보고 하죠.”

크기가 큰 제품은 5천 조각이 넘고 완성하면 가로, 세로 각각 80cm를 넘는다. 그렇기 때문에 무한정 전시해 놓을 공간이 없는 한 다시 분해하게 된다. 힘들게 조립한 제품을 분해하다보면 아까운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다른 제품을 조립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상자에 넣어둔다고 해도 상자가 차지하는 공간이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상자를 버리진 않는다. 제품 상자는 레고를 중고로 판매할 때 가격에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레고는 출시한 제품을 2년만 판매하고 단종 시킨다. 따라서 일부 제품은 프리미엄이 붙어 원래 판매 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재판매 된다. 이를 노리고 레고를 구매하는 사람도 있는데 ‘레테크’한다고 말한다.

“처음 발매될 땐 25만 원 정도였는데 1~2년이 지나니 가격이 확 뛴 거예요. 1년 지나서 살려고 보니 60만 원으로 올랐어요. 그렇다보니 괜찮은 제품은 2개씩 사게 됐죠. 사고 2년 뒤에 파니 가격이 올라서 10만 원이 남더라고요. 60만 원에 산 제품은 나중에 120만 원에 팔았어요.”

같은 제품을 사서 판매용으로 묵혀뒀다가 가격이 오르면 판다. 제품 하나를 팔아 새 제품 2개를 사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레고는 계속 늘어난다. 물론 가격이 오르지 않는 제품도 있다.

수집 혹은 ‘레테크’

‘레테크’를 하게 되면 제품 상자의 보존 상태도 중요해진다.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레고는 분실을 방지하기 위해 테이프로 상자를 감아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상자를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아니면 레고 전문점에서 사거나 해외 직구를 하기도 한다.

“방 하나를 레고로 가득 채웠어요. 계속 상자 오는 것대로 뜯지도 않고, 순서대로 주문을 하니까 이 상자에 무슨 제품이 들어 있는지 알거든요. 포스트잇으로 뭐 들어있다 써서 붙여놓고 쌓아놓는 거예요. 나중에 보니까 100개도 넘는 상자가 쌓여 있더라고요. 그러다 보면 조립보다는 수집하는 게 목적이 돼요.”

조립하는 재미로 시작한 레고인데, 계속 사서 모으다 보면 어느새 조립보다는 수집에 목적이 맞춰지기도 한다. 그리고 재판매로 다른 레고를 또 사 모은다. 새로 시작하려는 사람이라면 가격이 높게 올라버린 레고는 살 엄두가 안 날지도 모른다.

이처럼 레고의 가격은 고가이기 때문에 어른들도 다양한 제품을 계속 구매하는 건 쉽지 않다. 최호준 씨는 6년 간 천만 원이 넘는 돈을 레고 사는데 썼다고 한다.

ⓒ 최호준

손맛 함께 느끼기

가격이 부담이 되기 때문에 온라인 동호회에서는 레고를 서로 교환해서 조립하기도 한다. ‘손맛’을 느껴보는 것이다. 완성을 하고나면 사진도 찍고 감상하다가 분해해 다른 사람과 다시 교환한다. 아니면 카페 같은 장소에 모여서 함께 조립하기도 한다. 몇 번이고 분해하고 재조립해도 쉽게 망가지지 않는다.

“가격이 비싸다보니까 구하기 어렵고 고가인 제품은 그런 식으로 하기도 해요. 너는 이걸 사고, 나는 이걸 사서 서로 바꿔서 즐기는 거죠. 몇 상자를 새로 개봉해서 함께 만들기도 하고요. 오프라인에서 만나서 술도 한 잔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면서 손은 계속 움직이는 거예요.”

몇 개의 제품을 모아 디오라마를 구성한다. 혼자 즐기기도 하고 여럿이서 함께 즐기기도 한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더 크게도 만들 수 있다.

“체육관을 빌려서 몇 층짜리 빌딩 올리고, 바다 만들고 유조선에 모터도 달아요. 한 쪽에는 마을이 건설되고 있고 건설 중이니 중장비들이 움직이죠. 철도도 놓고 기차도 돌아다니죠. 동호회 사람들이랑 3일을 꼬박 걸려서 만들었어요.”

최호준 씨는 체육관을 빌려 전시회를 열었던 기억이 떠오른다고 했다. 가족단위로 와서 구경도 하고 한 쪽에는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도록 공간도 마련한다.

어른의 취미

레고 전문점에는 아이보다 어른이 많다. 아이를 데려오는 경우도 있다.

“레고 코너에서 어른들이 서성거려요. 아빠가 아이 앞에 놔두고 아이보고 이거 하고 싶지 않냐고, 네가 갖고 싶어 해서 산다고 그러고 같이 만들자 그러는 거죠. 물론 집에 가면 아빠가 뜯고 조립하고 있죠.”

아이가 손으로 조립을 하고 만드는 행동이 정서발달에 좋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아직까지 레고는 아이들의 장난감이라는 인식이 크다. 하지만 가격을 보나, 조립 난이도를 봐도 어른들을 위한 장난감이라고 해도 충분하다.

“어른이 사회생활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니까. 옛날의 향수를 못 잊어서 그런 것 같아요.”

이제는 키덜트가 더 각광 받는 시대다. 아이들은 부모님이 사주는 장난감에 의존해야 하지만 어른은 자신이 원하는 장난감을 마음대로 살 수 있다.

일을 마치고 휴식을 위한 취미생활을 하는데 애 어른을 구분하고 따져야 할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레고를 즐기는 사람들이 말하는 ‘손맛’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