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시대 정책, 신뢰 형성이 먼저?
고령화시대 정책, 신뢰 형성이 먼저?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5.05.11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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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임금피크제 10년, 노사정 불신 골만 깊어져
구체적 직무개발 등, ‘활용’보다 ‘절감’에 방점
[사건]금융 임금피크제로 본 고령화 정책 허실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초반 출생한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 국내 베이비붐 세대는 약 7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는 2000년대 중후반부터, 한국의 고령화 담론은 본격화된다. 저출산 문제와 더불어 고령화 이슈는 사회문제로 자리 잡는다. 사회안전망이 충분히 구축돼 있지 못한 상태에서 기업도 개별 노동자도 고령화 사회에 대한 준비는 여전히 미흡하다. 이해당사자들의 일정부분 양보가 필요한 사안이지만 아직 신뢰와 공감대 형성이 되었다고 보기에도 부족하다.

일하는 이들이 부족하다

무엇보다 일할 수 있는 이들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우선적으로 대두된다. 한국의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2016년을 정점으로 감소해, 2020년 즈음에는 152만 명 규모로 인력공급의 부족이 예상된다.

정년까지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복 받은’ 이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이들이 50대 중반 즈음에 직장에서 퇴직하게 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국민연금 수령 연령인 65세까지 10여년 가량을 공적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셈이다. 기업이나 개인이 가입한 민간 연금의 수급도 60세를 기준으로 하는 점을 감안하면 노후 생활고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진다.

노사정은 지난 2010년 노동계, 경영계, 공익위원 16명으로 구성된 베이비붐세대고용대책위원회를 발족해 정년연장에 관한 논의를 시작했고, 2013년 3월 정년을 만 60세 이상으로 연장하는 법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와 법안 심사소위를 거쳐 통과된다. 2016년 1월 1일부터 공공기관, 공기업, 지방공기업, 30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되고, 2017년 1월 1일부터는 30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된다.

이와 같은 현실은 금융노동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다가왔다. 금융권 대표적인 사업장인 은행들의 경우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산업의 구조적인 변화를 반강제적으로 겪고 있는 한편, 고령화 시대를 염두에 두고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이중고를 안고 있다.

1997년 기준으로 국내 시중은행은 모두 26개였다. 수익구조가 열악한 상황에서 은행 수가 급증하는 과잉 현상을 보였다. IMF 외환위기를 맞으며 BIS(국제경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 8% 미만인 12개 은행 중 5개 부실은행이 퇴출되고 은행 간 합병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2001년 이후 2차 은행 구조조정이 진행되는데, 전자의 구조조정이 정부 주도의 부실은행 퇴출이었다면, 후자는 자발적인 구조조정이었다. 특히 은행의 대형화가 추진된다.

▲ 외환위기 전후 국내 은행 합병 현황
2차 구조조정의 대표적 사례는 한빛, 평화, 광주, 경남은행과 한국, 중앙, 한스, 영남 등 4개 부실 종금사를 통합해 탄생한 우리금융지주회사,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합병, 조흥, 제주, 신한은행의 합병으로 탄생한 신한금융지주회사, 하나은행을 주축으로 한 하나금융지주회사 등의 탄생을 들 수 있다.

은행의 대형화를 통해 자기자본의 확충 등으로 영업규모를 키우고 변화를 모색하려고 했으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산업의 성장세는 둔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은행 점포 수의 감소 추세는 물론, 자산 증가율은 2001년 10.6%에서 2011년 기준 7.2%로 하락했다. 국내 전체 산업에서 은행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2001년 9.9%에서 2011년 1.2%로 현저하게 낮아졌다.

정년, 점점 높아지는 게 고령화시대 추세

주요 선진국들의 경우 정년 연령은 사회보장 차원에서 연금 수급 연령에 맞춰서 정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제도적으로 정년제를 연령차별로 봐 금지하거나 공적연금의 수급개시 연령에 맞춘 정년제 허용이나, 정년연장의 제도화 등을 가져가고 있다.

일본의 경우 1970년대 중반부터 고령자의 고용확보를 위해 정부 주도로 정년연장 정책이 추진됐고, 기업도 이에 호응해 60세 정년제가 주류로 자리 잡았다. 1988년부터는 강행규정으로 60세 미만의 정년을 정한 단체협약과 취업규칙 또는 당사자 합의는 무효라고 했으며, 1994년에는 ‘고연령자 고용안정법’을 개정해 60세 정년을 의무화했다. 2004년 즈음에는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고령화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 정년연장, 계속고용 제도를 도입해 65세까지 고용을 확보했으며, 2006년 4월부터는 개정 고연령자 고용안정법을 시행해 2013년까지 단계적으로 모든 기업이 정년을 65세로 연장할 것을 의무화했다. 2008년 말 기준 이미 일본 기업의 98% 이상이 65세 정년 의무화 규정을 따르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일정한 연령 도달을 이유로 근로관계를 끝내는 정년제는 연령에 의한 고용 상의 차별로 법적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 1967년에 65세 미만 강제퇴직을 연방정부 차원에서 금지했고, 1987년에는 강제퇴직 연령의 하한이 70세로 상향 조정됐다. 1986년에는 ‘연령차별금지법’을 개정해 정년제가 법적으로 완전히 폐지됐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부터 1964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전체 인구의 26%인 7,8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1980년대부터 이를 대비하는 정책을 추진해 왔다. 이와 같은 정책적 대비의 제도적 산물이 연령에 의한 고용차별의 폐지인데, 2009년 기준 미국의 은퇴 연령은 65.8세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유럽 역시 고령화, 저출산으로 인한 노동인구 감소에 몸살을 앓고 있다. 초고령화 문제에 대비하기 위해 프랑스(60세), 스웨덴(61세), 헝가리(62세)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정년은 65세에 맞춰져 있다.

덴마크는 2024년부터 2027년까지 단계적으로 정년을 67세까지 올리기로 했으며, 독일은 2012년부터 2019년까지 공적연금 대상자의 퇴직 연령을 65세에서 67세로 늘리기로 했다. 영국도 65세 정년을 지난 2011년 폐지했다.

금융권 임금피크제, 10년째 제자리걸음

한국 정부와 경영계가 추진하는 고령화 시대 대비 정책 중 대표적인 것은 임금피크제다. 하지만 이는 인건비 절감의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고령자 경제활동을 촉진함으로써 노동력 부족을 보완하고, 고령화 문제에 대비한다는 본래 취지와 거리가 멀다는 주장이다.

▲ 금융권 주요 사업장  임금피크제 도입 현황
금융권의 임금피크제는 지난 2003년 신용보증기금을 시작으로 2005년 우리은행과 산업은행,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2006년에는 하나은행, 2007년 외환은행, 2008년 국민은행 등에 도입됐다. 금융권의 임금피크제 도입률은 75% 수준으로 병원이나 제조업 등 타 업종에 비해 월등히 높은 편인데, 임금피크제 기간 동안 평균 임금지급률이 직전 임금의 50~60% 수준으로, 제조업의 경우 80~90% 수준인 것과 달리 임금저하·비용절감의 경향이 짙다.

이와 같은 시선으로 중·고령자 적합 직무에 대한 고민이나 충분한 준비 없이 제도부터 도입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은행산업을 둘러싼 환경 변화와 거기에 따른 직무의 변화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연수원의 강사나 상담 업무 등 극히 일부의 업무 영역 외에는 제도와 제대로 연계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이 확산되고 또 지난 10여 년 동안 제도 시행 경험을 통해 현행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고령자의 전문성과 경험 등을 통해 변화에 대한 대응이 가능할 수 있는 다양한 직무개발의 가능성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점차 확산되고 있는 은행산업의 비대면거래, 탄력적 근무시간제 및 성과제, 다양한 상품개발, 경력개발 및 교육 프로그램 개발 등의 영역에서 다양한 직무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기존의 은행들은 물론이고, 임금피크제를 이미 도입한 금융기관에서도 현재 대부분의 업무는 기존 인력만 활용하는 데 그치고 있다. 중고령자는 단순업무에 제한적으로 활용하고 있어, 경력자의 전문성을 사장시키고 있다.

은행업무에 대한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중고령자들의 인력풀은 전무하다. 오히려 금융공학 전문가,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인력들은 외부에서 자신들의 인력풀을 형성하고 경쟁을 통해 스스로의 몸값을 올려가고 있음에도 말이다. 은행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들을 고용하기 위해 높은 인건비를 지불하고 있다.

한양대 경영학부 임상훈 교수는 이러한 중고령 인력을 각종 분야에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를테면, 은퇴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품개발 및 영업, 각종 경력개발이나 교육 프로그램 개발 및 참여, 은행의 신규 인력에 대한 직무, 인성 멘토 프로그램의 활용 등을 꼽을 수 있다. 또 대출심사역의 경우 기존의 인력과 이들 중고령 인력을 적절히 결합해 대출위원회를 구성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다양한 고객층에 대해 특화된 상담을 제공하여 신뢰감을 형성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은퇴가 늘어나면서 고령화 문제가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되는 마당에, 이들에게 특화된 금융상품이나 서비스 개발에도 금융기관이 눈을 돌리고 있다. 소비자들과 상호 인식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임금피크제 해당 직무를 개발해 중고령 은행원들이 상담과 영업에 뛰어든다면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거라는 게 임 교수의 주장이다.

내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도 꼭 필요한 것이 전문적인 기술과 자격을 갖춘 현장 경험자이다. 20년, 30년 동안 은행의 업무에 숙련된 중고령 인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고객관계관리(CRM), 기업금융 RM, 개인금융 PB 등에 대한 경력개발 프로그램에 이들의 노하우는 유용하다.

금융노사의 합의에 의해 임금피크제가 도입된 지 10여 년이 흘렀지만, 아직 고령화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책을 마련해 나간다는 의미에서 노사정의 입장 차와 괴리감은 여전하다. 특히 금융노조 산하 금융기관들이 도입한 임금피크제를 통한 정년연장 방식을 타 업종 전체 사업장으로 확산해 가려는 식의 정부 정책은 안일하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시행된 제도의 영향과 장단점을 제대로 검토하고 보완해야 함에도 그러한 과정이 결여돼 있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금융 사업장 대부분에서 제도 대상자들의 경우, 업무 집중도나 조직 충성도가 하락하는 점, 일반 직원들과의 갈등, 개인적으로 자괴감에 사로잡히는 등의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이를 방비하고자 하는 고민은 적다.

정부는 이와 같은 정책이 이해당사자의 양보가 필요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수립되어야 한다는 점을 좀 더 고려해야 한다. 단순히 제도를 홍보하고 강제로 시행을 밀어붙이는 방식으로는 반발이 심해진다. 사용자는 비용삭감 측면에서만 제도를 고민할 게 아니라, 은행산업 변화와 함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노동계 역시 고임금과 고용안정을 둘 다 가져가려는 경직성에서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노사정이 신뢰를 쌓아가고 바람직한 정책 대안을 마련해 나가는 과정을 금융권 임금피크제 개선에서 볼 수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