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호르몬, ‘옥시토신’을 아시나요?
사랑의 호르몬, ‘옥시토신’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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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5.1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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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 분비가 뇌 활동에 영향
쥐·강아지 등 다양한 동물 실험서 역할 규명돼
과학칼럼니스트

5월은 온갖 관계의 사랑을 표현하는 달이다. 월초부터 어린이날, 어버이날에 스승의 날까지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기념해야 할 날들이 줄을 섰다. 초록이 온 세상을 뒤덮는 화창한 날씨 덕분에 주말마다 예식장도 붐빈다. 평생을 함께할 대상과 약속하는 것도 사랑의 표현 중 하나이리라. 이 달에 꼭 어울리는 호르몬이 하나 있다. ‘옥시토신(oxytocin)’이라는 귀에 익은 이름을 가진 물질이다. 사랑이 충만한 5월을 맞아 옥시토신에 대한 최근 연구를 소개한다.

엄마가 아기 울음에 민감한 이유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어대는 갓난아기. 그 울음소리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사람은 아기의 엄마다. 분명히 같은 자리에 누워 있는데도 아빠들은 울음소리에 반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엄마가 늘 아빠보다 울음소리에 더 민감한 이유는 호르몬에 있다. 출산 이후 여성의 몸에서 옥시토신 분비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대 로버트 프륌케(Robert Froemke) 교수팀은 “출산한 여성의 몸에서 활발하게 분비되는 옥시토신이 아기 울음소리에 대한 민감도를 크게 높여준다”고 네이처 4월 16일자에 발표했다. 옥시토신은 사람 사이의 사회적 교감이나 사랑, 모성 본능 등을 자극하는 신경 호르몬이다. 남성과 여성 모두의 몸에서 분비되는데, 여성은 출산 이후 분비량이 늘어난다.

연구진은 쥐를 이용해 옥시토신의 역할을 확인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일반적으로 새끼 쥐들은 집에서 멀어지거나 어미 쥐가 보이지 않으면 사람 귀에는 잘 들리지 않는 초음파로 울음소리를 낸다. 연구진은 이 사실을 이용해 새끼 쥐들을 둥지에서 멀리 떨어뜨린 뒤 초음파 울음소리를 내도록 했다. 이 소리에 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핀 것이다.

호르몬이 뇌 속 청각피질에 작용

고통스러운 새끼 쥐의 울음소리를 들은 어미 쥐들은 새끼 쥐에게 달려가 둥지로 데리고 왔다. 심지어 자신의 새끼가 아니더라도 초음파 울음소리를 듣고 반응했다. 하지만 수컷 쥐나 처녀 쥐들은 새끼의 울음소리를 거의 듣지 못했다. 도움을 청하는 새끼 쥐의 울음소리를 무시하기 일쑤였다.

연구진은 어미 쥐와 수컷 쥐, 처녀 쥐의 옥시토신 분비량을 각각 살폈다. 그 결과 옥시토신은 어미 쥐에게서만 많이 분비됐고 수컷 쥐와 처녀 쥐에게서는 분비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처녀 쥐에게 옥시토신을 주입하자 태도가 달라졌다. 울음소리를 내는 새끼 쥐를 물고 둥지로 되돌아 온 것이다.

프륌케 교수는 “어미 쥐의 뇌를 관찰한 결과, 새끼 쥐의 울음소리를 수컷 쥐나 처녀 쥐보다 훨씬 크게 느끼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옥시토신이 어미 쥐의 뇌에서 새끼 쥐가 보내는 청각신호를 증폭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다른 연구를 통해 새끼 쥐의 울음소리가 어미 주의 청각피질에 저장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약물을 투입해 좌측 청각피질의 기능을 방해하자 어미 쥐가 새끼 쥐의 울음소리를 무시했던 것이다. 또 처녀 쥐의 좌측 청각피질에 옥시토신을 주입하자 다른 어미 쥐보다 훨씬 빨리 새끼 쥐를 되찾아왔다. 옥시토신은 ‘사랑의 호르몬’으로 청각피질에서 작용한다는 게 증명된 것이다.

개-사람 유대 관계도 ‘옥시토신’ 때문

옥시토신의 강력한 역할은 반려동물에게도 영향을 줬다. 사람과 개가 서로 마주보면 둘 모두에게 옥시토신이 증가하는 것이다. 이는 오랫동안 사람에게 길들여진 개가 인간의 소통양식을 획득한 것이라는 게 연구진의 분석이다.

일본 아자부대 기쿠스이 다케후미 박사팀은 이런 내용의 논문을 4월 16일자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방 안에 개와 주인을 함께 두고 30분 동안 둘 사이에 일어나는 말하기, 쓰다듬기, 서로 마주보기 등을 기록하고 소변 검사를 통해 호르몬 변화를 측정했다. 그 결과 서로 마주보는 행동을 할 때 사람과 개의 뇌에서 옥시토신 호르몬 수치가 급격히 늘어난 것을 발견했다.

또한 개의 코에 옥시토신 호르몬을 뿌린 다음에는 주인과 마주 보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개를 바라본 주인의 옥시토신 수치도 증가했다. 반면 사람 손에서 길러진 늑대는 똑같은 실험을 해도 옥시토신이 늘지 않았다. 사람과 개가 오랫동안 함께 하면서 공유한 소통방식이라는 걸 뒷받침하는 결과다.

두 연구는 모두 옥시토신이 무언가를 돌보려는 마음을 키우고, 서로에 대한 관심을 늘린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 놀라운 물질을 잘 활용하면 외롭거나 우울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지 모른다. 개와 사람이 마주보는 것만으로도 옥시토신이 늘어난다니, 사랑의 호르몬을 활용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할 것 같다. 아끼는 마음을 듬뿍 담고 바라보는 것, 언제나 믿고 응원하는 것, 이 작은 행동이면 더 따뜻한 세상이 온다. 이 좋은 계절에 누구라도 힘껏 사랑하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