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한 교육 없이 안정적인 노후 없다
탄탄한 교육 없이 안정적인 노후 없다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5.05.11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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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앞두고 복지논란 커지는 영국
경제성과 말하지만 현실은 밝지 못해
[사건]고령화사회와 정치

현저히 떨어지는 출산율에 비해 과학기술, 의학의 진보에 따라 기대수명은 늘어난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예상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담론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영국,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며, 정부정책이나 제도의 변화도 적극적으로 모색되고 있다.

영국, 65세 이상 인구가 16세 이하보다 많아

영국 정부는 인구 통계상의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16세 이하 인구수를 처음으로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2010년 인구 통계로도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전체 인구의 약 1/6인 1천만 명에 달한다. 2033년에는 현재의 약 두 배에 이르는 1,9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5% 가량을 차지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령화 사회를 넘어 초 고령 사회가 본격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추이는 나라의 사회,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선 고령자 부양비율(dependency ratio)이 급증한다. 영국은 현재 4명의 노동자가 1명의 은퇴자 연금을 충당하는 고령자 부양률을 보이고 있다. 2035년 경에는 2.5명의 노동자가 이를 부담해야 한다. 2050년이면 2명이 은퇴자 1명의 연금을 부담하게 된다.

과세 대상이 되는 노동인구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함께 급격히 감소하면서 정부는 부족한 세금을 메우기 위해 지금보다 더 높은 세율을 곧 적용할 거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

또 고령층을 위한 의료서비스나 여타 사회복지에 대한 수요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영국 국가보건 의료서비스(NHS, National Health Service)가 2008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은퇴자 가정의 보건의료서비스 평균 지출은 5,200파운드로 비은퇴자 가정 2,800파운드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된다. 특히 85세 이상 노년층의 병원비 및 의료서비스 지출은 65세~74세의 평균 지출액의 3배에 달한다.

▲ 영국 제1야당의 수장인 에드 밀리밴드  ⓒ 영국 노동당
이와 같은 상황에서 영국 정부는 점점 더 늘어나는 보건의료서비스에 대한 국가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자국민들에게 규칙적인 운동의 중요성, 건강을 해치는 식습관이나 습관에 대해 대대적인 홍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개별 국민들에게는 노년의 건강한 삶을 향유하도록 권유하는 동시에, 국가적으로는 노년층 의료서비스 지출을 줄이기 위함이다.지난 2013년 영국 정부는 파격적인 연금개혁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고령화 시대에 정부 예산 편성의 신축성을 연금개혁을 통해 확보하기 위해서다. 조지 오즈번 재무장관은 기대수명이 올라가면서 연금 수령 나이를 현 남성 65세, 여성 62세에서 향후 점진적으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2018년에는 남녀 모두 65세로, 2020년에는 남녀 모두 66세가 되어야 연금 수급자가 될 수 있다. 이후 2028년까지 연금수령 개시 연령을 67세로 올리고, 2046년까지는 최종 68세까지 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향후 50년 동안 약 5천억 파운드(한화 약 860조 원)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초유의 경합 벌이는 총선 국면, 핵심은 ‘세금, 복지’

5월 7일, 앞으로 5년 동안 영국을 이끌어나갈 새 정부와 총리를 뽑는 총선이 한 치 앞도 점치기 어려운 각축전으로 향하면서, 정권 재창출을 노리는 캐머런 총리와 보수당이 유권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지점은 경제의 회복이다. 이미 2010년 정권을 잡자마자 혹독한 긴축재정 정책을 펼쳤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영국 총선의 핵심 의제 중 손꼽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세금과 복지에 대한 이슈이다. 복지 부문의 경우 보수당 정책은 ‘개인의 책임 강화’라고 정리할 수 있다. 근로연령 실직자에 대해선 2년간 실업 수당 등 복지혜택을 대폭 삭감하며, 은퇴자의 재정 자립을 유도하고, 이주민에 대해서는 4년간 사회복지 혜택을 제공하지 않으며, 실직한 이주민에 대해선 2년간 실직 수당을 제공하지 않는  것 등이 핵심이다.

그에 반해 노동당은 NHS 재정 25억 파운드 증액, 의사 및 간호사 고용확대, 대학 등록금 3,000파운드 삭감, 2년 이상 실직한 성인 및 1년 이상 실직한 25세 이하에 대한 구직 지원, 시간 당 최저임금 8파운드로 인상, 2017년까지 에너지 요금 동결, 근무시간 및 횟수 규정 없이 일하는 고용계약인  ‘제로-아워스 계약’ 금지 등을 내놓고 있다.

▲ 영국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 ⓒ 영국 보수당
17세기 토리당-휘그당 시절 이후, 19세기 보수당-노동당 형태로 굳어진 뒤 지금까지 영국의 정치 구도는 양당 구도가 뿌리 깊다. BBC를 비롯한 영국 대부분 매체와 각종 기관은 이번 선거의 양당 지지율이 33~34%로 거의 동률을 이루고 있다고 본다. 이번 총선은 영국 선거 역사상 가장 피말리는 각축전이 될 거라는 전망도 있는데, 이미 지난 2010년 보수당 캐머런 정권이 ‘헝 의회(Hung Parliament)’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허공에 매달려 있듯, 기반이 허술한 정치구도라는 의미인데, 지난 선거에서 보수당은 37.8%를 득표해 노동당을 젖히고 원내 제1당이 되었지만, 과반의석을 확보하는 데 실패해 자유민주당과 연정을 폈다. 1929년과 1974년, 그리고 2010년 단 세 차례만 헝 의회 사태가 발생했다고 한다.

보수당과 캐머런 정권은 지난 5년 동안 이룩한 경제회복 성과를 강조하고 있다. 경기침체 국면에서 벗어나 선진국 중 가장 빠른 성장세를 실현했다는 것이다. 이는 실업률 하락, 임금 상승 등으로 나타났으며, 재정 적자의 경우에도 2010년 약 1,500억 파운드에서 2014년 810억 파운드까지 줄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접국인 프랑스의 경우 재정 적자가 더 크게 감소했고, 독일의 재정수지는 흑자로 전환되었다. 무엇보다도 영국의 노동생산성은 독일과 프랑스에 비해 크게 뒤처진다는 점은 과연 영국 정부가 좋은 성적표를 받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점을 남긴다. 약 28% 정도 낮은 수준이다.

▲ 독일, 프랑스, 영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노동투입량 1단위 당 산출량) 증가율 추이
전문가들은 영국의 낮은 노동생산성은 고용 구조상의 특징에 기인하는 면이 있다고 말한다. 금융동향센터는 영국의 실업률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으나, 대다수 신규고용 창출은 저숙련노동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초등학교 교육 수준이 요구되는 신규 일자리가 전체 일자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독일의 경우 약 5% 수준에 불과한 데 반해, 영국의 경우 20%를 상회하고 있다. 또 OECD 회원국들 중 스페인을 제외하고 영국이 저숙련노동자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저숙련노동은 저임금, 노동빈곤, 낮은 국민소득, 높은 복지비용 소요 등으로 이어진다. 영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독일, 벨기에, 아일랜드 등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서 낮고, 스위스의 약 절반 수준이다.

조지 오즈번 재무장관은 조만간 영국이 독일이나 프랑스를 대신해 유럽 경제를 견인하는 최강국이 될 거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보수당이 정책적으로 복지 축소를 감행하는 이면에는 이와 같은 어려움이 깔려 있다.

일관되지 않은 교육·직업훈련 프로그램

독일과 프랑스의 사례를 함께 살펴보면,  이들 양 국은 노동생산성 제고와 숙련노동자의 확대를 위해 정책 시행에서 영국보다 훨씬 앞서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교육, 직업훈련 병행제도의 시행이다.

독일과 프랑스의 학생들은 16세부터 학업과 함께 자동차수리, 농업, 건설 등 다양한 산업 영역에서 파트타임 일자리훈련을 병행하고 있다. 전문지식이나 기술을 일찍부터 접하면서 고숙련노동자로 길러질 수 있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 ‘히든 챔피언’인 자국 중소기업 성공신화를 기반으로 자동차산업 등에 대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는 와인 명산지에서의 포도주 생산 가족기업, 토양화학, 미세기후변화, 재무관리 등을 포함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대기업 등지에서 농업 도제교육 훈련프로그램은 운영한다.

양 국 모두 직업훈련 프로그램 이수자들에게 전문교육 수료증이나 학위증을 부여하고 있으며, 이를 취득한 학생들이 6개월 이내에 일자리를 구하는 비율은 매우 높아서 사회적으로도 공신력을 획득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게 증명되고 있다.

그에 반해 영국의 중등교육과정 직업훈련은 교과목의 혼선, 자격증 기준의 일관성 부재 등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학업이냐 직업훈련 프로그램이냐, 선택과 집중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으며, 교사 노동조합 등 이해집단의 저항을 극복하는 것도 난관이라고 한다.

의료서비스 부문을 예로 들더라도 영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해 경쟁성과 다양성을 꺼려하는 경향이 짙으며, 법적으로도 여타 유럽 국가들에서 일반적으로 시행되는 교육, 직업훈련 병행제도에 요구되는 (정부-교육기관-산업현장) ‘3자간계약’이 용인되지 않고 있다. 일부에게 보다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보다는 모두에게 동일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정책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의료교육 부문을 독점하고 있는 상태에서 질적인 향상을 기대하는 것은 회의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단순하게 도식화하자면 사회가 점점 더 고령화될수록 일할 수 있는 이들은 더 힘껏 일해야 이들을 부양할 수 있다. 연금을 비롯한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선 천문학적인 예산이 필요하고, 이는 대부분 조세를 통해 충당된다.

미래를 위한 준비 차원에서라도 젊은이들을 교육하고 훈련하는 프로그램을 앞 다퉈 마련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치적 역학관계나 포퓰리즘을 위한 접근이 아닌, 우리 사회의 백년지대계를 마련하는 의미에서 영국의 사례가 보여주는 바는 국내 실정과도 무관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