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워지는 주머니 사정 속 “계속 일할 수 있을까” 불안
가벼워지는 주머니 사정 속 “계속 일할 수 있을까” 불안
  • 참여와혁신
  • 승인 2004.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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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판매직 조문찬씨의 하루
차 한 대 팔면 10만원 남는데 그것도 다 떼 주고…

“영업직이 나름대로 보람 있다고 생각했지만, 요즘에는 영…”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이것 말곤 할 게 없네요.”

“정규직으로 일하는 마지막 직장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실적에만 급급한 경쟁을 하다보니, 보람을 느끼기가 힘들어요.”


자동차판매직에 종사하는 이들의 자조 섞인 하소연들이다.

계속되는 경기침체와 그에 따른 내수판매 부진은 자동차판매직 종사자들뿐 아니라 자동차산업 전체에 비상등을 켜게 만들었다.

최근 완성차 업체들은 비상경영체제에 돌입, 생산물량 조절 및 영업소 축소 등 위태위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또 환율급락, 한일FTA, 고유가 등 외부환경의 변화는 관련 종사자들의 주름살에 깊이를 더한다.

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2004년 1월부터 9월까지의 내수판매량은 80만대로 작년 동기에 달성한 100만대에 비해 20만대나 줄어들었다. 그리고 올해 초 150만대 가량으로 예상됐던 내수판매 실적이 100만대 선까지 떨어지자 지난 11월 초 완성차업체들은 내년 실적에 대해서도 어두운 전망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같은 상황은 판매환경의 변화를 민감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판매직노동자의 한숨만 나오게 한다.

‘비정규직화’ 될까봐…

내수시장이 어려워짐에 따라 판매직 노동자들의 스트레스도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 D사 J영업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조문찬 과장(43세)은 월급으로는 생활유지가 안 돼 매일 새벽 3시부터 신문을 돌리고 있다.

“한 번 서민이면 영원한 서민 아닌가요? 희망이 자꾸 사라집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이 회사는 2001년 SR(Sales Representative)과 CM(Car Manager)으로 임금체계가 분할된 이후, 공채모집을 통한 정규직 채용자 CM의 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반면, 정규직이지만 ‘반비정규직’이라 불리는 SR은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CM은 기본급과 수당이 8 : 2의 비율인 반면 SR은 2 : 8이다.

조 과장은 “같은 정규직이라도 회사는 고정급보다 수당 비율이 높은 쪽을 더 선호하고 있어요. 경기가 안 좋아지니까 아무래도 고정급을 줄이려고 하는 거죠”라고 말한다.

같은 영업소에 근무하는 김상만 과장(45세)도 “수당제로 전환이 되다 보니까 수익의 편차가 너무 큽니다. 경기에 민감한 직업이다 보니 고정 실적이 없죠. SR로 전직한 친구들을 보면 후회를 많이 합니다. 말이 자율적 전환이지…”라며 말끝을 흐린다.

이들 ‘진짜 정규직’들은 ‘반비정규직’으로 자리를 옮기게 될까봐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타 회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J영업소 근방에 위치한 다른 회사 자동차 판매직 김진수(가명 40세)씨는 “회사가 자꾸 수당제 형태의 임금체계로 바꾸려 한다”며 걱정을 털어놨다.   

 

실적 채우기에 급급한 판매시장

경기가 좋던 2~3년 전만 해도 한 달 평균 4.8대 가량을 팔 수 있었던 것이 최근 들어 2대로 뚝 떨어졌다. 한 달에 한 건도 실적을 올리지 못하는 직원들도 허다한 것이 지금의 실정.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실적을 강요하는 지점장과의 마찰은 더욱 심해지고, 동료들 간에 눈에 안 보이는 경쟁이 치열해 졌다. 작은 파이를 놓고 마진을 남기지 않더라도 ‘무조건 팔고 보자’는 심리가 전체 시장에 팽배한 상태다.

조 과장은 “4~5대 팔면 300만원은 손에 쥐어야 하는데, 경쟁이 심해지다 보니 결국 손에 쥐는 건 고작 몇 십만원입니다”라고 말한다.

가령 M제품을 팔면 대리점은 60만원, SR은 24만원, CM은 10만원의 수당이 떨어지는데, 실적 올리기용으로 가격이 할인되는 만큼 수당으로 보전해 주다 보면 수익은 온데 간데 없다는 것. 조 과장의 경우 10만원에 해당하는 수당을 받고 있기 때문에 수당 보전은커녕 오히려 손해를 보기 십상이다.

손해를 보느니 아예 뛰어들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같은 이유로 실적이 없는 상태를 계속 유지하다가 결국 실적부진으로 일터를 떠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또, 내수 침체가 장기화되자 계약서 상 표시는 하지 않고 구두로 가격을 할인해 주는 ‘이면 디스카운트’가 성행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판매사정이 좋을 때도 성행을 했었지만, 상황이 악화되자 전체 자동차 유통시장을 더욱 문란하게 만든다고 지적하고 있다.

관리직도 영업직으로 전환

경영사정이 나빠지면서 사무직, 관리직 사원들을 영업직에 배치시키거나, 영업소를 축소 또는 폐소를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이창섭 대리(가명·42세)는 관리직으로 입사를 했다가 회사의 힘든 사정을 이유로 영업직으로 전환된 후 다시 본 부서로 돌아온 경험을 가지고 있다. 취업 시 ‘모든 사무직은 영업을 겸한다’는 점을 알고 입사했으나 3년간 90대를 팔아야 하는 것은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 대리는 “동료들 중에는 못 견디고 나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당시 사무직에 있었던 사람들도 1년간 영업을 시킨 걸로 알고 있어요. 이유는 영업인력 부족과 회사 경영이 어렵다는 것이었죠”라고 당시 상황을 털어 놓았다. 전환 근무자들 중에는 제자리로 돌아가는 사람보다는 영업직으로 눌러 앉게 되거나, 견디기 힘들어서 나가는 경우가 훨씬 많다.

또, 이 대리의 주변에는 진급이 적체돼 한 직급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입사 동기 중 50%가 만년 대리만 하고 있어요”라고 허탈한 웃음을 짓는다. 신규채용이 없다보니 내부 승진이 적체되는 현상이 자꾸만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영업소 축소에 따른 해당 직원들의 자리 이동 또한 엄청난 스트레스 중 하나다. 영업직의 경우 적게는 몇 일, 많게는 몇 년에 걸쳐 일궈놓은 영업망이 큰 자산이기 때문에 자기 활동영역에서 업무를 보는 것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내수가 침체됨에 따라 관련 업계들은 판매본부 수를 줄이고 있는 실정이다. 김상만 과장은 “영업소를 옮긴지 벌써 4번째예요. 한 번 옮길 때 마다 너무 불안합니다”라고 심정을 밝힌다. 

 

“동네 관리를 잘 해야 잘 살 수 있는데…. 이 같은 논리로 보면, 내수기반 없으면 수출로도 못 먹고 사는 거죠. 안 그래요?”

 

영업할 수 있는 근무조건 필요해

판매가 부진하다 보니 주머니는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실적이 없으면 직장상사와 가족들 보기가 민망해 힘이 들고, 실적이 좋으면 좋은 대로 자기보다 못한 동료들 보기가 영 껄끄럽다.

같은 영업소 최진혁 과장(41세)은 “금전적 보상이 아니더라도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는 또 “영업직이 돈이 더 많이 드는데 통신비나 활동비를 관리직이 더 많이 받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돈에 더 쪼들릴 수밖에 없죠”라며 회사 내 차별대우가 없어졌으면 하는 심정을 얘기했다.

다리품 팔아서 무조건 열심히 하면 된다는 시대는 이제 옛말이 됐다. 실적이 고르지 못해 생활고를 겪고 있는 이들은 회사를 옮겨 다니며 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