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10% 고임금 동결해 청년일자리 만들자?
상위 10% 고임금 동결해 청년일자리 만들자?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5.05.18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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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의’보다 ‘논란’ 만들기에 능했던 정부
노사 당사자, “합의 가능성은 물음표”

지난해부터 진행된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논의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불발됐다. 논의틀이었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노동시장구조개선특위는 “노사정이 함께 노동시장의 여러 이슈들을 노동시장 구조개선이라는 큰 틀에서 논의하고 미래지향적인 효율적이고 공정한 노동시장 제도 개편 방안을 마련”한다는 취지의 설치 목적을 명시하고 있다.

고임금과 저임금,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갈수록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비롯해 근로시간 단축, 정년 등 당면한 현안 문제,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청년 고용 문제 등 다양한 이슈가 혼재돼 있는 가운데, 애초부터 노사정이 원만한 합의점을 찾아가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대타협’을 만들어내지 못한 노사정 각 당사자는 책임 소재 논란과 함께 여전히 각자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프레임 바꾸기만 계속

논의는 한 발짝도 진전이 없는 가운데, 논란은 계속해서 가지를 쳤다. 웹툰과 드라마로 인기를 끌었던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로 대변되는 비정규직 이슈가 대중들에게 인상을 남겼는가 하면, 원청과 하청, 고용주와 직원 간의 ‘갑질’ 논란도 화제가 됐다. ‘삼포세대’인 청년들은 이제 인생에서 다섯 가지, 일곱 가지씩 포기해 가며 취업을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고 항변한다. OECD 국가 중 보기 드문 장시간노동 국가라는 오명을 어떻게 벗을까도 고민해야 하고, 그와 함께 대갓집 족보처럼 얽혀 있는 임금구조를 어떻게 손 봐야 할지도 골머리를 앓는다.

앞서 언급한 다양한 ‘노동 이슈’들은 이번 노동시장 구조개선 노사정논의에서 번갈아가며 전면에 등장한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5월 6일 ‘노동시장 구조개선 전문가 간담회’를 열고 향후 노동시장 구조개선 추진 방향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구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한국노동연구원 안주엽 선임연구위원은 상위 10%의 고소득 임직원 임금인상을 기존의 인상 수준보다 3%p 자제하고, 이렇게 마련된 재원을 신규채용을 위한 인건비로 활용할 때 15.1~21.9만 명의 신규채용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발표한다. 2013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보고서를 기준으로 상위 10% 근로자는 134.7만 명, 평균 연봉은 8,826만 원에 해당한다.

이보다 앞서 4월 9일, 고용노동부는 정부 입장을 발표한다. 지난 3개월 동안의 집중적 협의로 많은 부분의 공감대를 이루고 몇 가지 쟁점을 남겨두었지만, 한국노총의 일방적 결렬 선언으로 노사정 대타협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상위 10% 고소득 임직원의 임금인상을 자제해 청년 채용규모를 확대하도록 지원하여, 청년일자리를 확대한다는 내용은 여기서도 전면에 부각된다.

노동시장 구조개선 특위가 출범한 2014년 9월 19일 당시에는 어땠을까? 상위 10% 고소득 임직원 임금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다. 청년일자리에 대한 문제의식도 드러나지 않는다. 특위 출범 당시 전면에 부각됐던 이슈는 ‘통상임금, 근로시간 단축’ 등의 현안 해결이었다. 고용률 정체와 정규직/비정규직 양극화 심화와 같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보다 오히려 앞서 등장한다.

음습한 사회갈등, 거적을 걷어야

상위 10% 고임금을 받는 이들의 임금인상을 줄이자는 이야기는 언뜻 매력적이다. 벌이는 늘어났는데 살기는 퍽퍽한 현실을 감안하면 그렇다. 임금인상률과 물가상승률을 비교하는 숫자놀음이 아니라도, 사용자도 근로자도 체감하는 살림살이가 그렇다. 상대적인 박탈감이 커지는 가운데, ‘상위 10% 고임금’을 받는다는 ‘누군가’는 기분풀이 대상이 된다.

이들의 임금을 줄이거나 동결해서 청년들의 일자리를 만든다. 단군 이래 최대 스펙이라는 청년들이 취업을 못해 고통 받는 것을 해결해 주겠다고 한다. 청년층이 기성세대에 갖고 있는 불만은 사소한 구석에서도 표출된다. 방송을 시작한 지 10년째인 인기 예능 프로그램의 새 멤버를 뽑는 데 몇 주씩 방송 분량을 들이는 것을 보며, 청년들은 어영부영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기성세대를 비판한다.

정부의 역할은 무엇일까? 세대간 갈등, 계층간 갈등, 우리 사회 곳곳에서 곰팡이처럼 사회갈등이 피어난다. 거적을 걷어내고 볕을 쬐어 갈등을 해소해 가는 게 제 역할 아닐까?

불신, 뿌리내리다

사회적합의를 통해 해결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해관계 당사자를 조율해 나가는 정부의 역할은 아쉬움이 크다. 현재의 방식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앞서 언급한 것 이외에도 다양한 현안이 함께 엮여 있고, 이해관계가 분명하며, 우리 사회의 미래를 가늠하는 사안이라면 좀 더 종합적인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평가가 계속되고 있다.

노사정 특위에 참여했던 한국노총은 ▲ 기간제 기간연장 및 파견대상 업무 확대 ▲ 휴일근로의 연장근로포함 단계적 시행 및 특별추가연장 ▲ 임금피크제 의무화 ▲ 임금체계 개편 ▲ 일반해고 및 취업규칙불이익변경 요건완화를 위환 행정개입 등의 이른바 5대 수용불가 사항을 경영계와 정부가 고집하기 때문에 협상을 결렬한다고 선언했다.

특히 MB정부 때 쐐기가 박힌 정부에 대한 불신은 뿌리가 깊다. 한국노총은 협상 결렬 선언 이후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에 합의를 이루지 못한 가장 큰 장애요인은 경제 주체들 간 현상 진단과 원인 규명, 해결방향과 처방 및 해결방식에 대한 인식의 차이 못지않게, 굳건한 불신구조가 있었다”고 밝혔다.

노동계 한 관계자는 “공무원연금 문제도 그렇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정책을 추진하려는 성향이 우선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 제조업 노동조합 관계자는 “정부나 경영계의 주장대로 조합원들이 고임금 노동자라고 쳐도, 노조의 입장에선 이들의 희생이나 양보를 설득하기 위해 아무 할 말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미 MB정부 시절 배신감을 느꼈던 금융노조도 마찬가지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지난 2009년 신입행원의 임금 20%를 삭감해 더 많은 일자리를 채용하겠다는 ‘고통분담 일자리 나누기’를 시행했지만, 실효성은 없고 오히려 계약직, 인턴만 늘어났다는 것이다.

개별 기업 역시 ‘합의’가 현실적으로 가능할 지 여부에 대해선 물음표라고 말한다. 경영 상황이라는 것이 ‘일 더하기 일은 이’, 사칙연산처럼 간단한 게 아니라고 한다. 고임금자의 임금을 동결하면 비용이 줄어든다는 차원으로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신규채용을 위해 어차피 인건비가 소요된다는 점, 그리고 일률적인 규제를 통해 이와 같은 ‘경영’이 통제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선 의구심을 갖고 있다.

한 관계자는 “임금이라는 것이 내부적인 충성도나 기여도, 능력 등에 의한 급부라고 보기 때문에 차별적인 성격을 갖는 것인데, 이런 근본적인 의미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고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대표성 논란은 차치하고서라도, 이번 노사정 논의의 각 주체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에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밝혔다. 논의를 외곽에서 바라보는 각계각층도 “유럽 사례를 비롯해 참고할 만한 모델도 있다”고 말한다. 개별 사안 위주가 아닌 더 종합적인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당사자 간 신뢰 형성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이와 같은 시선이 개별 사업장의 노사, 개별 노동자들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단언하기가 쉽지 않다. 지속적인 설득과 홍보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보기엔 부족함이 있다. 동상이몽만 계속할 게 아니라 더 시간과 노력을 들여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