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보다 과로에 먼저 쓰러지겠어요”
“메르스보다 과로에 먼저 쓰러지겠어요”
  • 박상재 기자
  • 승인 2015.06.02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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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에 무너지는 현장
힘들어도 ‘힘들다’ 말 못하는 간호사들

‘메르스’로 인한 사망자와 함께 3차 감염자까지 발생한 상황에서 병원 현장 간호사들이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급한 불부터 꺼보려 했지만…

지난 1일 보건의료노조는 ‘메르스 확산 방지와 국가방역체계 구축을 위한 특별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열어 현장의 열악한 메르스 대응시스템을 밝힌 바 있다.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 음압시설(균이 공기를 타고 나가는 것을 막는)을 갖춘 격리병상이 총 105병상에 불과해 메르스 확산 시엔 제대로 된 격리가 이뤄질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감염자 관리에 대한 문제와 함께 현장 간호사의 근무환경도 문제되고 있는 상황이다. 보건의료노조는 같은 기자회견을 통해 5명의 메르스 환자가 입원한 국립중앙의료원의 경우 30여 명의 간호사가 투입돼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고도 설명했다.

실제로 현재 다섯 명의 메르스 환자를 보호 중인 국립중앙의료원의 경우, 중환자실과 병동 2개를 폐쇄하고 메르스 전담 인력을 운용하고 있다. 지혜원 보건의료노조 국립중앙의료원지부 지부장은 “격리담당 병동 간호사와 함께 지원을 통해 인력을 운용하고자 했으나 메르스의 확산이 빠르다는 점과 인원이 부족한 현장 상황을 고려해 중환자실과 병동 2개를 폐쇄해 인력을 확보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메르스보다 무서운 '과로'

간호사들의 근무는 기존과 동일한 3교대 방식이지만, 일반 환자와 달리 많은 관리‧감독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전보다 업무 강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담당 의료진은 감염 예방을 위한 개인보호장구를 착용한 채로 일을 하는데, 현장에서는 보호장구를 놓고 “물에 적셨다가 꺼낸 옷을 입은 것 같다”고 한다. 그만큼 발열이 심하고, 땀이 배출되지 않아 서 있기만 해도 버티기 힘든 상황이다. 실제로 메르스 담당 간호사 중 몇몇은 진료 도중 쓰러지기도 해 메르스 감염보다 과로로 먼저 쓰러질 게 우려되는 상황이다.

현장 상황이 이렇다보니 간호사 전반적인 사기가 떨어지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이전부터 지적된 병원 내 간호인력 부족 문제가 이번 메르스 사태에 더욱 심각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지혜원 지부장은 “재난 상황을 대비해 훈련된 인력이 늘 있어야 한다. 늘 인력부족으로 병원을 운영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현장을 떠나는 간호사들

이전부터 업무 부담에 시달리던 간호사들이 육체적인 피로뿐만 아니라 전염병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까지 시달리니 사직서를 제출하는 간호사도 종종 생기고 있다. 지혜원 지부장은 “5년 넘게 현장에서 업무를 담당하던 직원들도 사직을 고민할 만큼 현장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고, 이미 몇 몇은 사직서를 제출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력 있는 간호사들이 사직서를 제출할수록 급한 대로 비교적 경력이 짧은 1~2년차 간호사를 응급 상황에 투입해야 하니 현장은 더욱 다급해진다. 응급 상황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빠른 대응은 무엇보다 경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대해 다들 쉽게 말을 꺼내기도 어렵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메르스로 인한 불안감이 점차 높아지고, 위급한 환자들이 눈앞에 있는 상황에서 대외적으로 간호사들이 ‘힘들다’는 말을 꺼내기엔 부담스러운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지쳐가는 간호사들을 더욱 기운 빠지게 하는 건 이들을 바라보는 정부의 태도이다. 국립중앙의료원의 한 관계자는 “과거 애볼라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위험한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에게 수당을 지급한다거나, 감염에 대한 보상책이 뚜렷하지 않으니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면서도 “응급한 상황에서 간호사들의 처우를 말할 여유도 없고, 다들 힘든 상황이니 웬만하면 동료들끼리도 불평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게 현장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응원의 말 한마디가 간절하다

보건복지부는 이러한 근무환경에 대해 “여러 곳에서 지적되는 사항인 만큼 염두에 두고 있지만, 응급상황인 만큼 환자 나름의 우선순위에 따라 최대한 정리를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국립중앙의료원지부도 “병원에서도 현장 인력을 배려하는 모습이 눈에 보일 만큼 이번 사태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는 걸 느낀다”고 설명하면서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고민이 많다”고 밝혔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보건의료노조는 1일 기자회견을 통해 보건복지부에 ▲환자와 격리대상자를 위한 전면적인 치료 ▲의료진에 대한 보상체계 수립 ▲메르스 환자 치료 기관에 대한 충분한 보상 및 지원책 마련 ▲메르스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 공개 등을 요구했다. 한미정 보건의료노조 사무처장도 “3차 감염자와 사망자가 생겼고, 의료진도 감염자가 생긴 상황에서 일선 노동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혜원 지부장은 현장에서 무엇보다 바라는 것은 고생하는 이들에 대한 관심이라고 설명했다.

“공적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해요. 국가적인 재난 상황을 담당하면서도 누구 하나 수고한다는 말을 하지 않아요. 간호사가 환자를 돌보는 게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응원의 말이라도 한 마디 해주면 조금이라도 힘이 날 것 같아요. 보건복지부 장관이라도 현장에 응원의 말 한마디라도 던져주지 않는 상황이 너무 아쉬운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