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이미 현장에 답이 있다
최저임금, 이미 현장에 답이 있다
  • 박상재 기자
  • 승인 2015.06.05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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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1만 원, 타협하지 않겠다
점차 고립되는 저임금 노동자들을 위해
[사람] 김진숙 홈플러스노동조합 서울본부장

여느 때보다 최저임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요즘, 김진숙 홈플러스노동조합 서울본부장이 2015년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으로 위촉됐다. 김진숙 본부장은 현장에 뿌리를 둔 진정성이 그녀의 강점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수시로 현장을 찾아 대형마트 조합원(김진숙 본부장은 그들을 ‘언니’라고 불렀다)과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삶을 엿본다. 어떤 언니는 쌓여가는 빚을 말하며 한숨 쉬고, 다른 언니는 택시비가 아까워 새벽 12시에 한참을 걸었다며 눈물 흘린다. 그래서 그녀에게 최저임금 1만 원은 ‘이상’이 아닌 ‘현실’이다.

▲ 김진숙 홈플러스노동조합 서울본부장
마트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

“2009년 백화점 협력업체에서 일을 시작해 2010년부터 마트 협력업체 일을 하게 됐다. 협력업체에는 이중 삼중의 ‘갑’들이 있다. 나를 고용한 회사도 있고, 아웃소싱일 때도 있고, 개인사장도 있다. 그러다보니 업체의 관리도 받아야 하고, 사장의 관리도 받아야 하고, 마트 관리자들의 관리도 받아야 하고 너무 힘들더라. 홈플러스, 이마트 등 대형마트를 돌아다녔는데 관리자들의 횡포도 심했다. 쌍욕도 하더라. 더 힘들었던 것은 휴무가 없다는 것이었다. 심할 때는 16일을 연속으로 일해야 했다. 그게 신혼 때였는데, 육체적으로도 힘들고, 감정노동도 있다 보니 마음도 힘들었다. 집에선 남편에게 너무 미안하고, 집안도 ‘개판’이고.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다시 2011년에 계산원으로 일하게 됐다.”

마트에는 특히 여성노동자가 많다. 한국 사회의 여성노동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최근 자료를 봤는데 200만 원 이하를 받는 임금노동자가 전체 노동자 중 절반가량이고, 그 절반 중 여성의 비율이 높고, 비정규직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여성의 일자리는 비정규직 일자리고, 저임금 일자리가 된 것이다.

조합원 언니들과 얘기하다 보면 여성의 경력단절 이야기가 나온다. 대부분 결혼과 출산 후에 일을 그만뒀다가 자녀교육 때문에 다시 일자리를 찾아보면 선택권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대부분 여성이 아이를 키울 수밖에 없는 구조이지 않나. 그러다 아이를 중학교에 보낼 쯤엔 교육비 감당이 안 되니 다시 일을 해야 한다. 결국 저임금 일자리로 몰리게 되는데, 가까이서 찾을 수 있는 일자리 중 한 가지가 대형마트가 된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업장에서는 최저임금의 ‘최고임금화’ 현상이 굳어졌다. 지금 일하고 있는 여성들 중에는 IMF를 거치며 남편이 명퇴를 당했거나 무너진 경우가 많다. 남편이 택시 운전을 하거나 동네에서 조그만 가게를 하거나 일용직이다. 정규직 남편이 없다. 부부가 맞벌이를 해도 경제적으로 불안정해진다. 남성들의 일자리가 불안하기 때문에 일하는 여성들이 저임금 노동에 시달려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

현장에서 바라는 것도 많을 텐데,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가?

“내게 특별히 바라는 것은 많지 않다. 언니들은 마트에서 일하는 평범한 아줌마들이 실제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이야기할 수 있는 대표가 있다는 것이 기쁨이라고 말한다.

개인적으로는 회의를 할수록 생각이 조금 변했다. 애초에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와 대형마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담아내는 데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저임금위원회 일정을 소화하면서 현장방문을 하고, 생계비 전문위원회 회의를 하면서 더욱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들이 있다. 통계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우리나라 비정규직이 지금 800만 명 가량이고, 노동조합이 조직된 사업장은 2~3% 수준이다. 지금의 최저임금은 여성·청년임금이라는 말도 있지만, 더 확장하면 미조직 사업장 노동자들의 임금이다. 사업장에서 자기 임금에 대한 결정력이 없는 비정규직의 임금이 최저임금위원회 손에 달려있고, 그런 사람들이 전체 일자리 중 50%를 차지하고 있다. 결국 대한민국 노동자 50%의 임금을 결정한다는 게 최저임금위원회의 핵심 고민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저임금 1만 원’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결국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있는데 스스로 생각하는 조정안이 있는가?

“마지노선 같은 것은 없다. 민주노총의 관계자나 정책 전문가도 아니고, 2인 가구의 최소생활비 통계는 모르겠지만 2인 가구가 기본적인 생활을 하려면 월 200만 원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저임금 1만 원이 단지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월 200만 원이라는 액수를 받기 위해 그 정도는 돼야 하는 것이다. 지금 중간 타협점을 생각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현장을 방문하면서 들었던 말 중에 인상 깊었던 것들이 있다. 우선 현장방문을 통해 만난 최저임금 당사자 중 외벌이가 많았다. 40~50대 여성 노동자가 이혼하고 외벌이로 애를 키우는 경우가 많다. 가계부 조사도 했는데, 초등학교 6학년 애를 키우는 여성 가장이 정말 아껴서 쓰는 지출이 180만 원이더라. 우정 실무국에서 일하는 남성은 아내랑 맞벌이를 하는데도 둘의 임금을 합쳐 250만 원 수준이더라. 자녀가 셋이라는데, 어떻게 자식을 키우나 싶더라. ‘자기나 동료들을 돌아보면 모든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고, 정상적인 사회관계가 불가능하다’고 하더라. 결국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사회적으로도 고립시키는 것이다. 국가가 주목해야 할 현실이 이런 것이구나 생각했다.”

▲ 김진숙 홈플러스노동조합 서울본부장
새롭게 근로자위원으로 위촉된 입장에서 기존 틀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그동안 최저임금 논의 자체가 취지와 목적과 의미에 맞게 이뤄지지 않았다. 사용자, 공익위원이 정부안을 놓고 10원, 20원 흥정하는 식으로 논의가 됐다. 최저임금위원회에 들어와 내가 놀랐던 것은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미혼 단신 근로자를 기준으로 놓고 생계비 수준을 정하더라. 그럼 최저임금 받는 사람들은 결혼하지 말라는 것인가. 이 기준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더니 사용자측은 그저 88년부터 기준이었다고만 한다. 그런데 공식적인 기준은 없다. ILO에서는 최저임금은 가족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하는데, 이를 위해 가구생계비 내용을 봐야 한다. 최소 2~3인 가족이 생계를 꾸리려면 209만 원이 산출이 된다. 통계적으로도 그렇고, 지금 임금은 숨만 쉬고 살라는 것이다. 노동환경도 개선될 수 없고 사회 발전에도 기여할 수 없다. 나도 결혼을 하고 아직까지 출산 계획을 못 세운 게 전세금으로 빚을 안았기 때문이다. 이런 건 국가가 보장해주는 방법밖엔 없고, 최저임금 법적 기준을 높이는 방법밖에 없다.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빚도 갚고 소비도 늘어날 것이다.

노동자들이 바라는 것은 많지 않다. 최저임금 1만 원이 되면 빚 갚고 애들한테 치킨이라도 맘 편하게 사주고 싶다는 사람들이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들의 바람이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최저임금 논의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가장 큰 힘은 현장의 노동자이다. 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