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명예도 사라진 장기투쟁
사랑도 명예도 사라진 장기투쟁
  • 박상재 기자
  • 승인 2015.06.0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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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부·조합원 모두 쉽게 회복되지 않는 상처
조인식 치렀지만 “지금이 더 힘들다”
[사람] 경상현 엘지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 지부장

길었던 케이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이 일단락됐다. 지난 3월 엘지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도 싸움의 종지부를 찍으며 조인식을 치렀다. 한겨울 길바닥에서 칼바람을 맞고, 80일간 고공농성을 하며 얻은 결과물이다. 하지만 현장으로 복귀한 경상현 엘지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 지부장은 투쟁이 끝난 뒤 미안함과 후회가 뒤섞인 회의감에 짓눌려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조인식을 마쳤다.

▲ 경상현 엘지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 지부장
“마지막에 우리가 조인식을 하기 까지 과정을 보면 뭔가에 등 떠밀리듯 되는 게 있었다.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고 다들 지쳤다. 시간이 지나면서 본조(민주노총 희망연대노조)도 지치고, 나도 지치니깐 완벽하게 무언가를 정리하기보단 ‘이런 것까지 들어가면 투쟁이 길어지니’라고 생각하면서 두루뭉술하게 만들어놓고 끝낸 느낌이었다.

그게 현장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사측은 단체협약 이후 기본급 150만 원만 딱 받도록 하고 있다. 기사들에게 원성이 나오는 게 150만 원 받고 어떻게 생활하느냐는 거다. 건 바이 건 수수료(접수한 업무 건수에 따라 지급받는 수수료. 회사는 이를 근거로 직원들을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분류했다)를 받을 때와 비교해 아무리 일을 해도 예전만큼 벌기 힘들다는 거다. 토요일 격주로 빠지고, 일요일 일 안하고, 6시 이후에 일 안하고. 좋은 면도 있다. 직원들이 휴일이면 캠핑이나 래프팅을 간다는 말을 한다. 노는 것도 다 빚이지만.”

현재 지부 분위기는 어떠한가?

“아직까지 상생이 안 된다. 아직 서로를 견제하고, 사측이든 노조든 흠 잡을 것은 없는지 물어뜯는 중이다. 그런 과정 중에 약한 노동자가 피해를 본다. 이전에 투쟁 중엔 모 센터에서는 지회장이 회유당해 조합원 19명을 탈퇴시켰다. 팀장이 ‘니들 내가 다 챙겨줄게, 힘들잖아’ 이렇게. 노사 갈등이든, 구성원들이든 서로가 서로를 온전히 믿지 못하는 상황이다.

돌아보면 그렇게 해선 안됐구나, 하고 생각한 순간들이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본조나 지부를 원망하기도 한다. 안 하니만 못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물론 우리가 얻어낸 것은 많고,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걸 몸소 느끼기엔 너무 힘들다. 내 수중에 돈이 몇 푼이라도 있으면 즐기겠지만, 이미 남은 게 없기에 현실이 힘들다.

투쟁하며 함께 한 조합원들끼리는 가까워지긴 했다. 노동조합 설립 직후엔 기본급과 4대 보험을 적용받는 A/S기사와 갈등도 있었지만, 함께 싸우며 많이 친해졌다(설치 기사의 경우 기본급과 4대 보험 적용을 못 받는 상황이었다).하지만 비조합원이나 투쟁 도중에 현장으로 복귀한 직원에 대한 벽이 더욱 두텁고 높아졌다. 지부장 입장

에선 이 둘의 갈등을 조율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한가. 이미 한 번 생겨버린 불신과 벽을 넘을 길이 없다. 어느 지회장은 투쟁기금으로 조합원에게 사비를 털어 빌려줬는데, 그 조합원이 현장으로 복귀하면서 모른 척 했다고 한다. 당연히 불신이 생긴다.”

투쟁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민주노총이나 노동자들의 투쟁 방식이 너무 몸으로 때우는 것 같다. 너무. 전략적으로 영업을 방해하거나 실질적인 타격을 가하거나 해야 하는데 진입하고 올라가고 노숙한다. 이슈화는 성공해도 이젠 그런 것이 통하지 않는 것 같다.

또 자본가들과 싸워야 하는 곳이 민주노총인데 자본이 없다. 사내유보금이 몇 조다, 이런 말 하면서 비판하는데, 민주노총 내 정규직이 그렇게 하고 있다. 언제 투쟁할지 모르니 아껴놓겠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에서 그거 풀라고 해도 안 풀고. 그러니 투쟁이 되겠나.

민주노총이 과연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지금 지부의 빚이 2억이 넘는다. 사실 작년 12월에 투쟁기금은 모두 다 썼다고 봐야 한다. 그 이후엔 다 빚이었다. 지금 나도 경찰에서 조사받아야 할 것이 세 건이나 남아있다. 이후 벌금 문제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비정규직에 대한 지원이 없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지쳐 나갔다. 붙잡을 수도 없었다. 정말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힘쓰겠다고 한다면, 왜 이런 식으로밖에 투쟁할 수 없는지 모르겠다. 기업은 숨어서 기관총을 들고 있는데 우리는 대놓고 칼을 들고 싸우러 뛰어나가는 식이다.

희망연대노조도 싸울 때 준비과정이 미흡하지 않았나 싶다. 전략은 좋았다. 다만 돈도 없이 싸우는 게 문제였다. 솔직히 떠밀려서 투쟁한 것도 많다. 조합원들이 노조 생기면 뭔가 될 것 같이 생각했다. 그래서 조합원들도 계속 총파업을 하자고 했었고, 본조나 지부도 떠밀린 것이고. 뭐라도 될 것 같았지만 이런 것들 때문에 첫 단추가 잘못 꿰어 있던 것 같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돌아가지 않았을까 싶다. 지부장 임기는 내년 1월까지인데, 내년 임금 협상을 해야 하니 10월까지 마무리하고 2기를 선출해 넘겨줄 것 같다.”

장기투쟁으로 이어지며 가족관계는 어땠나?

“좋을 리가 있겠는가. 투쟁하면서 돈독해진다고도 하지만 우리는 부부관계가 매우 좋지 않아졌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1학년, 3학년인데 아이들에게 짜증도 많이 냈다. 와이프가 내게 변했다고 하더라. 직장과 집을 반복했는데 외박이 잦아지니 다른 여자가 생긴 것 아니냐는 말부터 시작해서 많은 말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무엇을 위한 싸움이었는지 회의감이 들 때가 많았다. 행복하게 살자고 투쟁하는 건데 투쟁하면서 가정이 불화를 겪으니 아이러니했다. 힘들 때면 사무실에서 술을 먹고, 거기서 자고, 외박하는 일도 종종 생겼다. 솔직히 놀고 싶었다. 아무 생각 없이 먹고 잘 시간이 필요했다. 언젠가 와이프가 묻더라. ‘정말 이거 하면 행복해지는 거 맞느냐.’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데 할 수가 없었다. 가장의 책임과 지부장의 책임은 공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SK브로드밴드지부와의 연대투쟁도 주목받은 부분이다.

“연대투쟁은 사실 많이 아쉽다. 물론 서로 힘이 된 건 맞다. 함께 투쟁하며 다독일 수 있던 부분은 있지만, 사실 전략적으론 다르게 접근했어야 하는 게 아니었나 싶다. 아쉽다. 이상하게 내부적으로 경쟁 구도가 된다. 예를 들면 SK가 먼저 합의를 했을 때 우리는 당연히 SK 합의 수준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각자 개별적인 합의를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연대투쟁으로 묶이며 어느 한 쪽도 더 나은 수준, 더 못 한 수준이 없다. 둘이 맞춰져야만 하는 상황에서 겪는 한계가 분명 존재했다고 본다.”

고공농성을 바라보며 힘들었을 것 같은데.

“처음엔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오히려 괜찮아졌다. 그저 저마다의 역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고공농성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투쟁 방식에 대해 거부감이 있다. 왜 누군가가 희생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많은 조합원들이 무뎌져 있었다. 사실 개인적인 친분이 깊지도 않고, 저마다 힘든 상황에서 얼마나 고공농성 노동자에 대해 관심을 갖겠는가. 그런 부분이 아쉽다. 충분히 좋은 이슈메이커 역할을 했지만 그들이 고공농성에 돌입한 순간 사실 거의 끝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패를 다 보여준 셈이었다. 그들이 내려오면 합의는 끝나는 것이었다. 이들을 내려오게 하려면 합의를 빨리 했어야 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사실 씨엔앰 고공농성을 생각하면서 언젠간 우리도 떠밀려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느꼈다. 투쟁 방식을 얘기하다 보면 ‘어디 센터장, 과장을 날려버리자’, 이런 말을 하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불법적으로 회의장에 진입해 면담을 한다고 한들, 그 벌금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게 돌입하면 개인당 100만 원 가량의 벌금이 떨어진다. 단지 면담했다는 것 외엔 남는 게 없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렇다면 이번 투쟁 결과 얻은 것은 무엇인가?

“나는 이번 투쟁에서 열사가 없었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누구 한 명도 죽지 않고, 잘 버텼다는 것. 그게 성공이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대의를 얻는 방식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단계 하도급 문제도 분명 얻은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근무 외 수당은 포인트, 건 바이 건으로 진행된다. 기본급 150만 원이고 통상임금의 1.5배가 오히려 건 바이 건보다 못하다. 그래서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 앞으로 지켜봐야 할 문제이다.”

지부장 역할을 더 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가?

“이 싸움은 믿음과 자부심만으로 버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람을 설득하고, 함께 일을 하는 과정에선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지회장에게 명령을 하달하거나 무언가를 촉구하거나 하는 것도, 이 사람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젠 그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투쟁을 끝내고 고생한 지회장들에게 무언가라도 나눠주고 싶었다. 장수가 싸우고 돌아오면 포상이 있어야 하지 않나. 하지만 줄 수 있는 게 없다.

지금 부정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얻은 성과에 대해선 충분히 의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는 것이다. 투쟁 중간에 몇 번이라도 이기고 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니 힘이 들기만 하다. 매번 지기만 하는데 하고 싶은 생각이 들겠나. 처음 하는 조합원이나 간부는 이런 게 힘들다. 밖에선 싸우고, 안에서는 더 싸우고.”

새롭게 노동조합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장기투쟁은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장기투쟁에 돌입하는 순간 한없이 수렁으로 빠진다. 사실 우리의 처음 목표는 A/S 기사 기본급 10만 원 올리고, 정규직 고용이었다. 건 바이 건 수당을 계속 유지해도 좋았다. 이 두 가지를 먼저 이룬 다음, 합의를 한 뒤 차선책을 선택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이것저것 양념을 많이 치다 보니 음식 맛이 없어진 셈이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니 본조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면서 조합원들과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나중에는 투쟁을 하며 느낀 것이 있기에 정책에 대한 반론도 제기했지만, 난 경험이 부족하니 결국 다시 끌려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지금의 조인식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생계에 위협을 받는 조합원들이 늘어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에 오히려 지금이 더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