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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불신의 벽 넘어, 무엇을 도모해야 하나?[커버스토리] ② 광주와 노동은 어떻게 만났나
노동의 참여, 지역과 미래를 바꾸다
2018. 01. 09 by 박종훈 기자
광주시의 행보에서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당사자들의 참여를 통해 정책이 준비되고 추진된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노동계의 참여가 눈길을 끈다. 일종의 지역 차원의 사회적 대화가 진행중인 것이다.
노동계는 그간 중앙 차원에서의 사회적 대화에 소극적이거나, 혹은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왔다. ‘늘 뒤통수를 맞고 배신 당했다’는 경험론에 의거한 수긍할만한 피해의식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광주에서는 어떻게 양대 노총 모두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가 가능했던 것일까.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의장과 이소형 공공운수노조 광주전남지부 부지부장의 목소리도 직접 들어봤다.

‘고용절벽’ 시대라는 표현은 지역으로 갈수록 더욱 절실히 와 닿는다. “이미 지역에서 일자리를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라는 말처럼 광주의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오래 전부터 타 지역으로 떠났다. 취업하지 못한 청년들은 인턴이나 알바를 전전하며 기약 없는 '공시족'으로 부모에게 생활을 의지한다. 이제 청년 한 사람의 아픔이 아니라 가족 전체의 근심이 된 것이다. 

▲ 127주년 노동절 기념행사가 지난해 4월 28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참여해봤자 이용만 당했다고 느끼는 노동

일자리에 대한 고민이나 걱정이 비단 청년들의 문제만은 아니다. 광주 역시 지난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지역의 핵심 사업장인 기아자동차의 부도 사태를 겪은 바 있다. 무수한 이들이 일자리를 잃고 가족들도 함께 고통을 겪은 경험도 있다.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의장은 앞서 언급한 청년들이 겪고 있는 일자리에 대한 고민과 고통이 노동계가 광주형 일자리를 적극 지지하며 참여하게 된 계기라고 말한다. 윤 의장 스스로가 겪고 있는 고민이기도 하며, 주변에 어떤 집이든 비슷한 종류의 걱정 없는 가정이 없다는 것이다.

광주형 일자리든, 무엇이 되었든 지방‘정부’의 정책 추진에 노동계가 참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중앙 차원이든 지방 차원이든, 사회적 대화와 합의라는 형식으로 노동이 참여했던 많은 사안에서, 노동계는 “늘 뒤통수를 맞고 배신 당했다”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특히 이러한 인식이 한국노총보다 민주노총 쪽이 크다는 점도 잘 알려져 있다. 광주형 일자리를 추진해 온 광주광역시 민선 6기 시정이 시작될 무렵만 하더라도 과거와 다르지 않은 분위기였다. 이소형 공공운수노조 광주전남지부 부지부장은 “민선 6기 사업들이 시작될 2015년만 하더라도 공무원들의 인식은 전임 시장 때와 다르지 않았다. ‘무슨 직접고용이냐?’라는 분위기였다”라고 말한다.

당시만 하더라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개념은 기간제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었다. 윤장현 시장이 인수위 시절부터 비정규직을 제로화하는 정책을 만들겠다고 선언했을 때 노동조합은 믿지 않았다고 한다. 정치적인 치적을 위한, 아니면 생색내기를 위한 말잔치로 여겼다.

▲ 대구광역시와 광주광역시 노사 단체의 '달빛동맹' 발전을 기원하는 행사가 지난해 11월 개최됐다.

노동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보려는 노력

오해와 불신의 벽은 사실 한두 번, 하루이틀에 가로막힌 게 아니었다. 그만큼 인식의 차이가 컸고, 그만큼 상호간 소통, 만남, 교류, 공감의 자리는 없었다. 이소형 부지부장은 “광주시가 그냥 자신의 치적을 포장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어려운 조건이지만 무엇인가 해보려고 했다”면서, 과거와는 무언가 다른 변화가 생겼던 지점을 설명한다.

당시만 해도 공공운수노조 광주전남지부는 시 외부의 노동조합이었다. 조합원들은 광주시 소속이 아니라 외부 용역업체 소속의 조합원이었다. 광주시는 이들을 노동조합과의 대화를 통해 전환시키겠다고 약속한 것이었고, 이는 지역사회에서 큰 사건이었다고 말한다.

공공운수노조는 그동안 당연히 직고용 하라, 용역이나 민간위탁을 없애라고 요구해 왔지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특히 도시철도공사나 도시공사 같은 기관에서 “어마어마한 반발이 있었다”고 한다. 시 예산실에서도 절대 안 된다고 했던 사안이다.

윤장현 시장은 지난 2015년 4월 현역 지방정부 수장으로서는 전국 최초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비정규직 고용 처우개선 협약을 체결했다. 이후 시와 공공운수노조는 노정 파트너로서 소통과 협력을 해왔다.

지난 11월에는 조상수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김선수 광주전남본부장, 시 산하 출자출연기관 노조 위원장 등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광주시-공공운수노조 2018 사회공공협약식’을 열기도 했다. 이날 협약에는 ▲공공부문 광주형 일자리 성공 추진 ▲공공기관 (명예) 근로감독관, 근로자 (노동) 이사제 도입 ▲공공부문 노동자 처우 개선 등 노동존중 행정시스템 구축 ▲일터 민주화 상호협력 등의 내용이 담겼다. 또한 모범 사례로 알려진 ‘광주시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개선 정책’의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공공부문 노동자 처우개선 방안을 지속적으로 협의하기로 했다.

이소형 부지부장의 표현에 따르면 노동조합이나 현장의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목소리를 광주시는 그냥 여러 의견 중 하나가 아니라 좀 더 특화해서 그런 목소리를 존중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정규직 전환 이후에도 임금과 관련된 교섭권이라든지, 노동 3권을 존중하는 사례들을 볼 수 있었다. 물론 그동안 노조가 요구하고 투쟁해 온 역사가 있었지만, 시에서 노동에 대해 뭔가 다른 콘셉트, 화두를 가지고 접근했던 거라고 느꼈다. 과거와 달리 사회통합추진단이라는 노동전담부서도 만들었고, 비정규직개선팀이라는 부서도 만들었던 것처럼. 이들은 계속 노동조합과 만나는 것이 주된 일인데, 단순한 의견수렴 수준이 아니라, 노동권이나 교섭 등 노동조합에 대해 모르고 있었거나 미숙한 부분을 어떻게든 배우려고 노력하면서 다양한 시도와 합의를 만들어가려는 점을 높이 평가할만 하다는 것이다.

어찌됐든 대화와 소통의 물꼬는 한번 터졌고, 이제는 다시 그 터진 물꼬를 틀어막는 일이 더 힘든 지경이 되었다. 한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려기보다, 가능한 지점부터 하나씩 문제를 풀어나가려는 노력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 공무직으로 최종 전환된 광주시청 노동자가 신분증을 받아들고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상대방 속으로, 시민들 속으로

지난 9월 광주지역에서 상급단체를 달리하는 노동조합 7곳이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행사를 열어 주목을 받았다. 우선 양대 노총 소속이 모여 하는 행사로도 규모나 주제 면에서 드문 일이며, 노동계가 지역경제와 지역민을 위한 행사로서도 예를 찾기 힘든 일이었다.

‘연대와 공동체가 부르는 희망의 노래, 함께 날자! 광주야!!’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 행사는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 광주형 일자리의 성공을 기원하기 위해 노동계의 자발적 참여로 추진됐다. 행사에 소요되는 비용은 물론, 행사 진행과 안전을 담당하는 인력 역시 각 노동조합에서 자원해서 진행됐다. 주요 노동조합 대표자들과 시민 대표, 그리고 객석의 모든 관객들은 본격적인 공연에 앞서 ‘광주형 일자리 성공’이라고 적힌 손피켓을 일제히 흔들며 행사의 의미를 되새겼다.

이와 같은 모습은 각종 매체에 앞다퉈 보도되면서 광주형 일자리라는 이름을 다시 한번 사람들에게 회자되게 만들었다. 이번 행사를 계기로 광주지역 노동계는 사단법인을 구성해 시민들과 함께 하는 다양한 문화행사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첫 문화행사에 뒤이어 호프데이 행사를 갖고 수익금의 일부를 사회연대를 위한 기금으로 기부하기도 했다. 2018년에도 본격적인 문화행사를 이어나갈 예정이며, 참가 단위는 점차 확대 추세에 있다.

이날 행사에서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의장은 “광주에서 노동조합이 상급단체의 벽을 허물고 함께 모여 광주형 일자리 성공을 기원하는 문화행사를 진행하는 것 자체가 획기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각 이해당사자 참여형 정책인 광주형 일자리의 시작부터 함께 해 왔던 윤 의장의 이러한 말은 그동안 과정의 지난함을 설명한다. 타 지역도 비슷한 실정이겠지만 광주 역시 노동계 내부의 연대나 교류가 거의 없었다. 기업별 노사관계가 거의 전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한국의 문화를 감안하면, 지역 차원 혹은 산별 차원의 연결끈은 가늘디 가늘다. 하물며 상급단체를 달리하는 조직 간 교류는 더욱 드물었다.

단지 만나지 않는 차원이 아니라, 오해와 불신의 벽은 노동계 안에서도 높고 두터웠다. “의장, 미쳤다는 얘기도 들었지요. 왜 자꾸 민주노총을 만나라고 하냐고.” 윤 의장이 웃으며 꺼낸 소회에서 그런 점이 잘 느껴진다.

조금씩 변화가 생겼던 점은 어찌됐든 자꾸 만나고 부딪치는 자리를 가지면서 부터다. 그 과정에서 기아차지부 광주지회장 출신의 박병규 광주광역시 일자리정책특보의 역할이 컸다. 당시 사회통합추진단장으로서 노동계와 만남과 교류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갔다.

윤 의장에 따르면 “한국노총 사업장 대표들의 기존 생각에는 기아차 노조 출신이라면 강성 중의 강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자꾸 만나서 이야기하고, 식사를 하고, 함께 술잔을 부딪치다보니 그네들도 우리와 똑같이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 생각이 약간 다를 수 있지만 걱정하고 고민하는 지점이 같은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계기로 양대 노총 활동가들이 만남 자리를 갖고 교류의 폭을 넓혀간 것이다.

이와 같은 간극 좁히기의 밑그림은 광주광역시와 노동계 사이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만나서 어려운 문제부터 상의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쉬운 주제부터, 우선 공감대 형성이 가능한 지점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앞서 언급되었던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위해 이들은 무려 130차례의 공식적인 사회적 대화를 가졌다. 비교적 노동단체의 참여가 활발하다는 지역에서조차 네다섯 번의 공식 회의로 결론을 도출하려고 했던 것에 비해 집요한 노력이다.

처음 물꼬를 트기가 어려웠지, 한번 공감대가 형성된 이후에는 훨씬 더 과정이 순조로웠다. 노동이사제 도입과 관련한 논의에서는 불과 3달만에 결론을 도출했다. 광주보다 앞서서 제도를 도입한 서울의 경우 3년 동안의 지난한 과정이 필요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속전속결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논의에 참여했던 당사자가 대화가 불충분했다고 느끼지도 않았다. 이미 형성된 공감대를 바탕으로 빠르게 문제의 본질로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노동의 참여, 두려워할 필요 없다

광주형 일자리가 처음 회자되던 무렵,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는 이른바 ‘반값 일자리’로 대표되는 내용이었다. 광주형 일자리가 추구하는 적정임금의 양질의 일자리가 마치 고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깎아 새로운 일자리를 늘리는 제도인 것처럼 왜곡됐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의 근로조건을 보호하려는 노동계의 반발이 있을테고, 광주형 일자리는 실현가능성이 낮다고 예단하는 이들도 있었다. 또한 무엇보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는 사례를 찾아볼 수 없었던 시도였기 때문일지 모른다.

국내 사례는 빈약할지 모르겠지만 잘 알려진 독일 폭스바겐의 ‘아우토(AUTO) 5000’이나 미국 GM의 ‘새턴(Saturn)’ 사례 등을 보면 광주형 일자리의 향후 가능성도 보인다. 두 사례 모두 자동차의 생산량 및 경쟁력 감소, 그에 따른 고용 감소와 고용 불안에 직면해 기업과 노동조합,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 방안을 모색한 내용이다.

지역의 핵심 산업, 거점 기업의 이와 같은 위기는 필연적으로 해당 지역 경제의 큰 타격이고 공동화 상태까지 우려되는 위기였다. 광주형 일자리가 추구하는 바와 다르지 않다. 노사 신뢰를 바탕으로 노동조합의 의사결정 참여가 확대된 가운데,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 합심해 나아가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안은 무엇보다 우선 대량의 정리해고로부터 노동자들의 고용을 지킬 수 있는 한편, 생산성과 경쟁력 향상을 위해 보다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다.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한 협치가 가능한 가운데, 더 인간적인 일터, 안전한 일터를 만들어가는 데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 노동조합의 의사결정 참여를 두고 ‘경영권 침해’로만 바라보는 인식은 이미 구시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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