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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끼리’가 아니라 다 같이 사는 길 모색[커버스토리] ② 광주와 노동은 어떻게 만났나윤종해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의장
소통으로 쌓은 신뢰, 연대의 실마리를 찾다
2018. 01. 09 by 박종훈 기자
광주시의 행보에서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당사자들의 참여를 통해 정책이 준비되고 추진된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노동계의 참여가 눈길을 끈다. 일종의 지역 차원의 사회적 대화가 진행중인 것이다.
노동계는 그간 중앙 차원에서의 사회적 대화에 소극적이거나, 혹은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왔다. ‘늘 뒤통수를 맞고 배신 당했다’는 경험론에 의거한 수긍할만한 피해의식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광주에서는 어떻게 양대 노총 모두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가 가능했던 것일까.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의장과 이소형 공공운수노조 광주전남지부 부지부장의 목소리도 직접 들어봤다.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는 ‘광주형 일자리’는 물론, 지역 내 다양한 사안에 대해 노동자를 대표하는 한 축의 목소리로 참여와 실천을 지속해 오고 있다. 이와 같은 활동이 늘 긍정적으로 평가되진 않았다.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확인 없이 조직이 ‘한국노총’이라서 백안시되기도 했으며, 다른 목적이 있는 게 아닌지 오해를 사기도 했다.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의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형 일자리와 노동의 의제화가 지속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앞서 언급된 내용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아이들이 광주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의장

광주형 일자리 추진에 있어서 지속적으로 함께 해 왔다. 계기는 무엇인가?

나의 문제의식은 우리들 곁의 개인사만 돌아봐도 알 수 있는 부분에서 출발한다. 자녀들에 대한 걱정부터 시작해 보자는 거다. 나부터가 공기업에서 어느 정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었지만 과연 자식들도 그럴 수 있겠냐는 거다. 군대 갔다 오고, 대학 졸업하고 나서도 공무원이나 공기업 시험만 치고 있는 자식들 생각을 하면 걱정이 크다.

과연 우리 아이들이 광주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계속 인턴이나 알바로 떠도는 젊은이들이 과연 언제쯤 정착을 할 수 있을까? 다른 대표자들과도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런 얘기에서부터 출발했다.

광주지역에서 한국노총 사업장들을 보면, 기아차라는 대기업 밑의 협력사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기아차 정규직들의 임금이 올라가는 만큼, 협력사 노동자들은 임금이 깎인다는 말이 그냥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임금인상 부분만큼 협력사의 납품단가를 후려친단 얘기가 어제 오늘 말이 아니지 않나.

그렇다면 과연 우리 자식들부터 광주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직장은 어떻게 구하며, 결혼이나 출산, 육아는 감당할 수 있을까? 애초에 젊은이들이 광주에 더 이상 남아 있으려고 들까? 이런 고민들이 절실한 거다. 시장과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광주형 일자리라는 정책의 기본 취지와도 맞아떨어진 것이다.

이견이 분분하지만, 예를 들어 우리 아이들이 광주에서 연봉 4천만 원 수준의 일자리를 구한다고 볼 때, 주거나 식비처럼 기본적인 생활비 면에서 부모와 같은 지역에 있다는 이점을 감안하면, 서울에서 6, 7천만 원 수준의 벌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큰 그림들이 있지만 산업단지에 행복주택을 지어 공급하고, 교육을 비롯한 삶의 인프라를 정비한다면 구태여 지역의 젊은이들이 누가 서울로 가겠나. 이런 접근 방법이 광주를 비롯한 지역의 큰 고민들을 해결해 나가는 올바른 방향이라고 본다.

잠시 언급한 것처럼 소통의 과정은 만만치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쉽지 않은 과정일 거라고 예상은 했다. 심지어는 (성이 같다는 이유로) 시장과 무슨 친인척 관계가 되는 거 아니냐, 그래서 시장을 밀어주기 위한 게 아니냐는 얘기도 들어보았다. 처음에는 지역의 한국노총 쪽 대표자들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산별이나 단위 사업장의 대표들이고, 이들은 한 단체를 책임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기 고집들이 있다. 각자 생각하는 바나 목표가 있고. 일단 지역본부의 의장이 설명하는 것이니 들어는 주지만, 완전히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또한 잘 알려진 것처럼 노동단체도 상급단체를 달리하는 것과 관련해 이질감이 크다. 초창기에 양대 노총 조직들이 함께 참여하는 행사를 추진해도 상당히 냉소적인 반응이었던 게 사실이다. 왜 자꾸 민주노총과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선입견이 큰 상태였으니까.

그런데 자꾸 접촉을 늘리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면서 조금씩 생각이 달라졌다. 우리와 성향이 다른, 강성인 조직, 뭐 그런 선입견이 풀리는 거다. 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하고 있고,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공감대 형성도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시에서 사회통합추진단을 만들면서 기아차 위원장 출신이 단장으로 와서 시작했던 점이다. 앞서 언급처럼 한국노총 대표자들이 생각하기엔 엄청나게 강성일 거 같은 기아차 위원장 출신이 계속 만나며 지켜보고, 이야기를 나눠보고, 함께 소주잔을 기울여보니까 ‘우리와 똑같이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야기가 통할 수 있구나 싶은 거다. 그렇게 조금씩 신뢰감이 쌓이면서, 기아차 노조의 현직 간부, 지회장도 접촉해 보고 이야기도 나눠보고 하면서. 그러다보니 함께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이 사람들이 한국노총만 괜히 발 담그게 하고, 나중에 발 빼진 않겠구나.’ 그런 확신이 드는 거다.

노동계 안에서의 소통과 공감대 형성 부분도 그랬지만, 각 당사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정책을 묶어내는 것은 시의 역할이니 공무원들과의 관계 역시 느낀 점이 많다. 기본적으로 공무원들은 공무원이라는 자긍심과 자존심이 있다. 그래서 뭐랄까, 모든 걸 주도권을 쥐고 끌고 나가야 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관이 중심에 있고, 나머지는 곁에서 협력해야 하는 것처럼. 그리고 아무래도 수장의 임기에 따라, 초반에는 좀 움직이더라도 후반에는 점점 복지부동하는 입장도 있는 거 같다.

여하간 이왕에 노동이 이렇게 참여하고 있으니까 채찍질을 해서라도 끌고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무원들이 노동조합을 좀 유연하게 바꾸려고 노력해야 할 텐데, 적어도 광주에서는 좀 입장이 뒤바뀐 게 사실이다. 광주 지역은 노동계가 공무원보다 더 유연하다.

▲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의장

노동이 참여하면 분위기가 바뀐다

이러한 참여의 과정, 노동이 의제가 되는 과정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지난 9월 상급단체의 벽을 넘어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소속 노동조합들이 광주형 일자리 성공을 기원하는 행사를 열었다. 이후로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랄지, 많은 이들이 광주형 일자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거 같다.

아마 깜짝 놀랐을 것이다. 다른 곳에서는 상급단체의 차이 때문에 연대가 쉽지 않은 분위기인데, 광주라는 곳은 그걸 뛰어넘어 광주형 일자리의 성공을 위해 함께 한다. 그때부터 여러 각도로 노동계를 달리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그간 민주노총 쪽에서는 참여하지 않는, 반쪽짜리 참여라는 얘기였는데 조직의 운영 상 안에서 입장정리라는 게 있으니까 언젠가는 함께 할 것이란 믿음이 있었음에도, 마음고생이 심했다. 소통을 통한 신뢰가 쌓이는 과정이 이와 같은 연대의 실마리를 만든 것이다.

노동에서 참여하면서 분위기를 바꾸고 추진력이 생긴다는 것은 많이 느끼지 않을까 싶다. 광주시도 시장도, 아마 시정 초기부터 임기 막바지까지 고통이 심할 것이다. 구체적인 실체가 무엇이냐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으니까. 노동계 역시 마찬가지로 노상 트집이나 잡고 반대만 할 거 같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협조를 해주고 중앙정부 등과 함께 만나며 일을 만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광주라는 도시의 이미지는 5.18 광주 정신으로 대변되는 민주화 투쟁의 도시 아닐까? 그래서 시민사회단체라든지 사회운동 진영에서 광주의 대우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기업의 입장에선 어떨까? 기업들의 투자가 발길을 끊고, 일자리가 사라지고, 지역 경제와 산업이 낙후되는 현실이 노동계는 우려스럽다. 결국 노동조합도 존립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일 테니까.

전국 단위 노조 조직률이 10% 수준인 걸 감안할 때, 광주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점은 없다. 기아차와 금호타이어처럼 대기업 사업장 두 곳에, 여타 중소기업들, 공공부문들을 제외하면 노동조합이 조직된 곳이 드물다.

두 갈래의 고민을 감안해서, 노동조합이 이제는 시민들 속으로 파고드는 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민들과 함께 하는 행사도 갖고. 그렇게 노동조합이 스스로의 이미지를 바꿔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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