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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의 불신 이겨내는 신뢰 쌓기 필요해[커버스토리] ⑤ 노동, 시민에 손을 내밀다
지역사회로의 개입, 문제 해결의 주체로 나서다
2018. 01. 09 by 이동희 기자
노동자는 공장 안에서는 조합원이지만 공장 밖으로 나가면 시민이 된다. 하지만 우리사회의 노동과 시민은 그간 분리되어 있었다. 노동이 사회적 약자로 시민의 엄호를 받던 시대가 있었지만, 어느 순간 노동은 ‘그들만의 리그’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광주에서 그 경계를 허물고 있다. 노동자이자 시민인 그들이 주체로 나섰다. 첫 매개는 문화였다. 그리고 서서히 지방행정으로 확장하고 있다. 지방행정이야말로 시민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문제를 풀겠다는 노동조합의 행보가 주목된다. ‘광주 실험’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는 ‘문화야놀자’의 활동도 들여다봤다.

지역노동조합이 지역사회를 구성하는 주체로서 지역문제에 개입하고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참여와혁신> 특별기획 ‘광주, 노동을 만나다’ 취재 과정에서 “공장 안에서는 조합원이지만 공장 밖을 나서면 시민이 된다”는 한 취재원의 말에 취재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지역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이 곧 그 지역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시민들이기 때문에 사업장을 넘어 지역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광주에서 만난 노동조합 대표자들 역시 노동운동이 지역으로 확대돼야 한다는 것에 동의했지만 그간 노동운동이 사업장 노사관계 현안에만 집중돼 시민들에게 제 밥그릇 싸움만 하는 단체로 인식되어 온 것이 현실이었다.

하지만 움직임은 있다. 지금 광주지역 노동조합은 지역사회와의 거리를 줄이기 위한 ‘과정’을 겪고 있다.

노동조합 조합원에서 지역사회 시민으로

지역에서 결정하는 고용, 복지, 경제정책이 증가하면서 노동자의 삶을 바꾸고 있다. 아직 실현단계까지 가지 않았지만 광주형 일자리 모델도 마찬가지다. 광주시는 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통해 “지역에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그를 계기로 현존하는 노동시장의 구조화된 왜곡을 사회통합적 방향을 향하여 개혁하겠다”고 말한다.

여기서 노동시장의 구조화된 왜곡은 노동시장의 구조가 사회통합을 방해하고 있는 것을 말하는데, 한국노동연구원은 현존하는 노동시장의 구조적 왜곡이 발생하는 핵심 원인 중 하나로 노동조합의 ‘어떤 모습’을 지적했다. 노동조합이 자신의 사업장을 중심으로 조합원의 이해만 대변하게 되면 지역과 산업 전반의 다른 영역 종사자들의 이해를 헤아리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중소기업유통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노동조합이 지역공동체의 제반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조합원을 비롯한 전체 노동자, 나아가 취약계층을 비롯한 지역공동체 전체 구성원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데 기여한다”며 노동조합의 지역사회 개입을 강조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역할이 사업장의 임금협상, 복지개선에만 머무르지 않고 지역사회의 문제 해결로 확장돼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이에 공감하는 광주지역 노동조합 대표자들이 차례로 입을 열었다.

이소형 공공운수노조 광주전남지부 부지부장은 “노동조합의 역할은 단순히 임금인상과 임단협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며 “공공정책이나 지역의 의제를 풀어나가는데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많다”고 말했다. 이어서 “이제 시민들의 편의와 공공성을 추구하기 위한 역할을 현장노동자들이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본부 의장은 “사회적 연대를 통해 노동이 존중받는 광주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노동조합 대표자들과 발맞춰 김보현 광주시의회 행정자치위원장 역시 “노동도 행정에 들어와서 같이 일을 해야 한다”며 “행정과 정책이 가진 자들의 영역이고 노동이 그에 대항해 싸운다는 의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노조가 적극적으로 지역사회에 뛰어들다

많지는 않지만 국내 지역노동조합이 지역사회에 개입한 몇 가지 사례가 존재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노총 부천지역지부를 들 수 있다. 부천지부는 크게 두 가지 지역사업을 전개했는데 바로 ‘지역노사정협의회 참여’와 ‘근로자종합복지관 운영’이다.

부천지부는 1999년 부천노사정협의회가 출범하면서 협의회의 한 주체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해왔다. 1999년 맺은 노사정협약은 ▲노동쟁의에 대한 지역사회의 조정 제시 ▲기존 공단의 유지 및 신규 공단 조성 ▲공공근로사업 중 중소기업 인력지원사업 대책 마련 ▲관급공사에서 관내 건설인력 채용 ▲노동복지 시설의 확충과 민간 위탁 ▲근로자 자녀에 대한 장학사업 실시 ▲공익사업(택시, 청소)에 대한 합리적 대책 강구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부천지부는 공업 지역화 대정부 건의, 중소기업지원사업단 대책위 활동, 관급공사 부천지역 일용노동자 우선 채용기준 마련, 부천시 청소사업체계 개편 작업에 근로자 대표 참가 등의 활동을 이어나갔다.

두 번째로 근로자종합복지관 운영을 통해 지역주민 및 노동자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부천지역사회복지협의체 고용분과에 참여함으로써 지역차원의 복지정책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있다. 근로자종합복지관은 운영팀, 노동복지팀, 사랑나무 가족도서관, 사랑나무 어린이집, 근로자 고충처리센터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에게도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부산에서는 전국철도노동조합 부산정비창 지역본부가 2009년 지역아동센터를 설립했으며, 전교조 북부산지회는 지역시민단체와 연대하여 어린이도서관을 개관했다. 대전 전국과학기술노조는 지역사회 봉사뿐만 아니라 ‘과학상점’, ‘참과학열린교실’ 등 지역주민과 연계된 활동들은 전개해 오고 있다. 노동조합의 이러한 활동들은 지역과 결합력을 높일 수 있고 나아가 시민들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지금 광주는 노동조합과 ‘신뢰 쌓기’ 중

광주시가 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꺼내자, 동시에 노동조합을 이해당사자 중 하나로 집어넣자 노동계의 첫 반응은 한마디로 ‘불신’이었다. 이소형 공공운수노조 광주전남지부 부지부장은 “얼마나 생색을 내려고 하나, 치적일 뿐이라는 생각을 했다”며 “노동계에 합의를 강요하는 방식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이 있었다”고 전했다.

연대의 역사가 없기에,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 불신의 눈초리를 보낼 수밖에 없었지만 참여하게 된 이유는 광주에서 살아갈 다음 세대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본부 의장은 “광주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가겠지만 우리 아이들은 갈 곳이 없다는 것에 공감을 했다”며 참여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노동조합도 불신의 눈초리를 피해갈 수 없었다. “노동조합이 세력화하려는 것 아니냐”, “임금을 올리려는 것 아니냐” 등 지역사회의 불신이 따라왔다. 나태율 기아자동차지부 광주지회장은 “시민들에게 대기업 노동조합은 여전히 강력한 투쟁을 하는 집단이라는 부정적 시각이 존재한다”며 “노동조합의 투쟁이 동의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부지부장은 그렇기 때문에 더 강한 노조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그는 “이럴 때일수록 노동조합이 조합원 수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사회적 문제를 바꿀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며 “노동조합의 정책적 역량을 확대해 노정 간의 공공협약, 노동자의 경영참여 등 구조를 바꾸는 싸움에 노동조합이 뛰어들어야 한다”고 전했다.

광주시와 노동조합의 신뢰 쌓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광주시는 사회통합추진단을 노동조합과의 대화 창구로 열어 놓았다. 노동계는 광주시 안에 노동에 대한 인식을 확대하려는 행정부서가 존재하고 이 안에서 노동조합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은 의미 있는 변화라고 전한다.

생존부터 복지까지, 풀어나갈 의제는 많다

노동조합이 제기할 수 있는 지역사회 의제는 많이 있다. 고용보장 및 창출, 최저임금, 최저생계비, 실업급여, 취업훈련 등의 생존권적 요구부터 시작해 주택, 보건, 대중교통 확충, 교육 등의 지역복지 요구까지 무궁무진하다. 일자리 문제 외에 광주지역에서 노동조합이 의제화할 수 있는 의제를 묻자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김보현 의원(광주광역시의회 행정자치위원장)은 ‘노조 조직률 제고’를 제안했다. 광주광역시에 등록된 노동조합 조합원 수는 2010년 기준 16,686명으로 총사업체 종사자 359,757명의 4.6%이다. 김 의원은 “노조도 조직하지 못하는 열악한 근로조건과 장시간 노동시간에 시달리는 노동현장들이 너무 많다”며 “이것을 지방정부가 나서 해결하는 것은 물론 비정규직 정규직화도 공공부문에서 민간영역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소형 부지부장은 공공부문 안에서의 노동존중 정책을 이야기하며 “노동자들의 경영참여를 포함해 공공부문에서 지방정부가 최대사용자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영역을 시도해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윤종해 의장은 5.18 민주화운동과 광주형 일자리 등 광주를 알릴 수 있는 교육센터 설립을 제시했다. 윤 의장은 “5월이면 외부에서 많은 사람들이 광주로 찾아오는데 광주 관련 내용을 소개하는 교육센터를 만들어 운영해보고 싶다”며 “가능하다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함께 노동과 함께하는 센터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밝혔다.

광주는 지역발전의 출발이 구성원들의 동의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일각에서는 광주형 일자리에 대해 “실체가 없다”, “구체적 성과가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광주는 노동조합의 동의와 함께 이미 그 출발점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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