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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과 시민이 만나는 광주만의 특별한 방법[커버스토리] ⑤ 노동, 시민에 손을 내밀다
함께 날고 함께 놀자
2018. 01. 09 by 이동희 기자
노동자는 공장 안에서는 조합원이지만 공장 밖으로 나가면 시민이 된다. 하지만 우리사회의 노동과 시민은 그간 분리되어 있었다. 노동이 사회적 약자로 시민의 엄호를 받던 시대가 있었지만, 어느 순간 노동은 ‘그들만의 리그’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광주에서 그 경계를 허물고 있다. 노동자이자 시민인 그들이 주체로 나섰다. 첫 매개는 문화였다. 그리고 서서히 지방행정으로 확장하고 있다. 지방행정이야말로 시민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문제를 풀겠다는 노동조합의 행보가 주목된다. ‘광주 실험’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는 ‘문화야놀자’의 활동도 들여다봤다.

지난 12월, 사흘간의 광주 취재 일정을 소화하면서 만난 취재원들의 공통 화제가 있었다.

“광주지역 양대 노총이 광주형 일자리 성공을 기원하며 행사를 진행했다.”

“광주형 일자리 성공을 위해 상급단체를 뛰어넘어 함께하는 모습에 사람들이 놀랐다.”

이들이 한결 같이 입에 올린 것이 바로 지난 9월 노동계 대표자들이 모여 개최한 ‘문화야놀자’ 행사였다. 이 화제는 노동계, 경영계, 지방정부 등 소속을 가리지 않고 등장했다. 이들은 노동조합이 광주형 일자리라는 지역의제를 가지고 시민과 함께했다는 점, 이를 위해 광주지역 양대 노총이 함께 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노동조합이 시민에 손을 내밀다

“시민의 참여가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을 바꿉니다. 광주전남 소재 노동조합이 조합원, 시민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지난 9월 8일 광주광역시청 3층 대강당에서 ‘연대와 공동체가 함께 부르는 희망노래, 함께 날자! 광주야!!’라는 제목의 문화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는 광주형 일자리 성공을 기원하기 위해 개최됐으며 ‘문화야놀자’가 주관했다.

문화야놀자는 광주전남 지역 노동계 대표자들이 모여 결성한 단체로, 문화를 통해 시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날 행사가 특별한 의미를 가진 이유 역시 문화야놀자를 중심으로 노동계의 주도와 자발적 참여로 행사가 이루어졌다는 데 있다. 광주은행노동조합, 금속노조 금호타이어지회,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 광주지회, 보해노동조합, 한국전력노동조합 광주전남지부, 한국농어촌공사노동조합, KT노동조합 전남본부 등 광주전남 지역을 대표하는 노동조합이 상급단체를 가리지 않고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이들은 고립된 노동운동이 아닌 시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을 보여주기 위해 ‘문화’라는 친숙한 방식으로 다가왔다. 행사에 소요되는 비용은 노동조합이 십시일반 모아 마련했으며 행사 진행과 안전을 담당하는 안전요원 역시 각 노동조합 조합원의 자원봉사를 통해 해결했다. 광주광역시 역시 행사 취지를 환영하며 장소를 제공했다. 각 노동조합 소속 조합원들의 참여 공연과 강허달림 밴드의 메인 공연을 중심으로 공연이 채워졌다.

당시 기아차지부 광주지회장이었던 박주기 전 지회장은 “광주시가 추진하는 일자리 창출 사업에 대해서 노동조합도 동의하고 함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행사를 마련했다”고 전했다.

첫걸음은 노동조합 인식 개선 위해

노동조합의 주도로 노동조합과 시민이 함께하는 문화행사를 가졌다는 사실은 광주지역 관계자들에게 큰 화제가 됐다. 박주기 전 지회장은 “오히려 행사 당일보다 행사가 끝난 뒤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고 전하며 새로운 사실을 덧붙였다. 문화야놀자가 진행한 사업이 10여 년 전에도 있었다는 것이었다.

문화야놀자가 처음으로 진행한 문화행사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기곤 문화야놀자 집행위원장은 특히 두 사람에게 감사를 전했다. 당시 기아자동차노동조합 광주지부장이었던 김준겸 전 지부장과 광주은행노동조합 하희섭 위원장이 그들이다. 김 전 지부장은 이 집행위원장과 소속 현장조직이 다르다. 하 전 위원장은 상급단체가 아예 다르다.

당시 한국노총이 참여한다는 이유로 미온적이었던 조직이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김준겸 지부장의 주도는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김준겸 지부장은 구례농민회와의 연대도 시작하는 등 지역사회와의 연대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시작된 지역과의 연대는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 집행위원장은 “그동안 노동조합에 대한 시민들의 이미지가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라며 “노동조합이 주관하는 행사를 통해 시민들에게 한 발짝 가까이 가고자 했다”고 전했다. 노동조합을 떠올렸을 때 사람들이 가지는 부정적인 인식을 문화행사를 통해 없애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또한 지역민들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주기 위한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는 것도 중요한 추진배경 중 하나였다. 광주 시민들은 광주에 위치한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두 팔 걷고 나선 과거가 있다. 2003년, 2006년 기아자동차 사주기 운동이 대표적인 예이다. 기아자동차의 판매실적이 지지부진하여 위기를 겪자 광주상의와 시민단체가 나서 기아자동차 사주기 운동을 전개했다. 시민들은 기업들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앞장서온 것을, 기업들은 시민들의 도움과 사랑이 있었기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문화야놀자는 2006년 7월 광주광역시청 야외음악당에서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행사를 개최했다. 당시 행사는 기아자동차노동조합 광주지부, 광주은행노동조합, 금호타이어노동조합, KT노동조합 광주전남본부 등 4개 노동조합이 주도했다. 이들은 국악 실내악단 ‘황토제’ 공연을 선보이며 시민과 조합원 모두가 함께하는 첫자리를 선보였다. “같은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노동조합이 모여 시민들과 소통하는 자리를 가지자”라는 취지로 첫걸음을 뗀 것이다.

하지만 문화야놀자의 활동은 이후 긴 공백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문화야놀자를 결성한 대표자들의 임기가 끝나고 집행부가 바뀌면서 활동이 이어지지 않은 것이 원인이었다. 이 집행위원장은 “2013년 광주지회장을 맡았던 당시 끊겼던 활동을 이어가자는 의견이 나왔고 ‘지역과 노동’이라는 주제로 6개월 동안 교육을 진행하면서 문화야놀자 활동에 시동을 걸었다”고 전했다.

 

새출발 도화선 역할한 광주형 일자리

본격적인 활동의 시발점이 된 것은 광주형 일자리 모델의 등장이었다. 박주기 전 지회장은 “광주형 일자리를 통해 지역의 노동조합들도 지역의 일자리 창출에 동의하고 함께하기를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자 했다”며 “단순히 주장이나 캠페인으로 전달하면 식상하다고 판단돼 공연 등의 문화를 접목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쉽지만은 않았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상급단체를 달리하는 노동조합들을 한데 모으는 작업은 인내심이 필요했다. 연대의 역사가 없었기에 긴 시간이 걸렸지만 곧 공통분모를 찾았다. 광주형 일자리의 방향에 동의하고 같은 지역 안에서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끼리 방향을 같이 가는 게 맞다는 것이었다.

이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지난 9월의 ‘연대와 공동체가 함께 부르는 희망노래, 함께 날자! 광주야!!’ 문화행사였다. 이 집행위원장은 “앞으로도 보다 많은 노조와 함께할 수 있도록 결과를 보이고 설득하는 것을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본부 의장은 “행사 이후로 광주형 일자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많이 달라진 것을 느낀다”며 “광주라는 지역이 상급단체를 뛰어넘어 광주형 일자리 성공을 위해 함께 한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예”라고 설명했다. 윤장현 광주광역시장 역시 “광주 지역의 양대 노총 소속 조합원 600여 명이 10년 만에 함께 손을 맞잡고 (광주형 일자리에 대한) 공감과 성원을 보내고 있다”며 문화야놀자를 통한 노동계 행보에 환영의 뜻을 보냈다.

공백을 뒤로하고 지속적인 사업으로

현재 문화야놀자는 2018년 사업을 준비 중이다. 올해는 봄과 가을, 두 번의 행사를 기획하고 있으며 초안을 마련중이다. 올해 행사는 작년 행사보다 시민들의 참여를 높이는 쪽으로 구상하고 있으며 미리 준비하는 만큼 완성도 높은 행사를 성공시키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문화야놀자는 10여 년 만에 재개된 사업인 만큼 지역에 자리잡기 위해서는 연속성을 가지고 활동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내부에서는 사단법인 출범을 준비하고 있으며 지난 11월 29일에는 일일 호프데이를 통해 기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호프데이를 준비한 문화야놀자 관계자는 “일일호프는 티켓만 사고 안 오는 게 관례인데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 곤혹스러웠다”며 웃었다. 호프데이에서 모인 돈 중 일부인 518만 원은 올 초 연대기금으로 광주시에 전달할 예정이다.

이 집행위원장은 “사단법인은 노조 집행부가 바뀌더라도 안정적으로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는 방법”이라며 “연대기금이나 사회공헌을 통해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보다 많은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고 전했다.

나아가 문화야놀자가 좋은 선례로 남아 다른 지역 노동조합에서도 이를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박주기 전 지회장은 “노동조합이 지역 문제를 의제화할 수 있다면 다른 지역에서도 충분히 시도할 수 있는 모델”이라며 “핵심은 노동조합이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나간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화야놀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투쟁과 집회가 아닌 ‘문화’를 앞세워 노동조합이 지역에 녹아들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했다. 이들의 활동이 광주지역의 진짜 ‘문화’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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