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가기
변화 가능성에 대한 지역사회 지지가 정책 성공의 관건[커버스토리] ⑥ 당사자로 함께 한 지역사회
광주형 일자리 지역에 노동의제를 심다
2018. 01. 09 by 김민경 기자

우리사회는 언젠가부터 당사자는 사라지고 평론가가 넘쳐났다. 지역에서 일자리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면 행정기관인 지방정부가 모든 것을 주도하고 나머지는 객(客)이 되었다. 노동조합, 경영계, 시민단체, 학계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 발짝 밖에서 평론을 했다.
하지만 일자리 정책의 당사자는 노동자이고 경영자이고, 그리고 시민이다. 이들 당사자들이 행정의 중심으로 들어가서 방향성을 잡고 실행을 주도할 때 제대로 된 정책의 입안과 시행이 가능하다. 광주가 바로 그 일을 하고 있다. 광주시 노사민정협의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윤영현 광주경총 상임이사, 광주시 더나은일자리위원회 실무위원장을 맡은 박해광 전남대 교수, 그리고 광주형 일자리에 대해 비판적인 김보현 광주시의회 행정자치위원장의 목소리까지 담았다.

광주형 일자리는 지난해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에 포함되면서 전국적으로 화두가 됐다. 광주형 일자리의 목표는 연대와 혁신을 통한 지역 미래세대의 일자리 창출이다. 그 핵심은 사회적 대화이다. 추진 원동력은 노동계와 경영계를 포함한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지지다.

광주형 일자리의 실체에 대한 논란은 쉽게 잦아들지 않고 있지만, 광주시가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외면당하고 배제됐던 노동이라는 의제를 광주형 일자리 모델 논의를 통해 지역사회의 주요 의제로 끌어올렸다는 점은 분명한 성과다.

노동과 행정, 공공부문 정규직화 논의로 신뢰 쌓다

2015년 이후 광주지역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민간위탁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 772명이 광주시에 직접 고용됐다. 2년 기간제로 시에 고용된 이들은 시의 방침에 따라 올해 전원 공무직으로 전환될 예정이다. 광주시의 공공부문 정규직화는 광주형 일자리의 출발점이자 좋은 성과를 낸 사례로 평가된다.

정규직 전환 대상과 규모보다 더 눈여겨 봐야할 부분은 광주시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추진 논의 과정이다. 광주형 일자리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타 지자체 공무원들이 광주를 찾아올 때마다 정경자 광주시 사회통합추진단 팀장은 “시가 노조와 얼마나 만나서 이야기나눴을 것 같나?”는 질문을 빠뜨리지 않는다고 했다. 정 팀장은 “‘다섯 번 정도?’라는 답이 돌아온 경우도 있었다”며 “공공부문 정규직화를 위해 광주시가 용역업체 노동자들의 노조를 만난 횟수는 공식적으로만 130회가 넘는다”고 강조했다.

앞서 지자체들의 노동정책이 노동자와 노조를 관리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근했다면, 광주시는 노동계를 함께 논의해 나갈 파트너로 대했다. 정 팀장은 “지역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어 노동에서 소외되고 있다. 사회 구성원이 노동에서 소외되는 구조에서 과연 공동체의 지속발전은 가능할 수 있는가”라며 “행정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은 공동체 삶을 책임지는 것인데 이를 하지 않는다면 책임 방기”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광주시는 지역의 당면한 위기와 노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사자들과 진심으로 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노동계와 행정의 신뢰는 부족했다. 아니 아예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노동자가 겪는 문제를 정책으로 풀어야하지만 노동계와 행정의 소통은 유지하기는커녕 시작조차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불균형한 노사관계 속에서 기댈 곳 없는 노조가 외치는 노동기본권은 사회적으로 과격한 강성노조의 모습으로 알려지고, 이는 또다시 노동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인식의 강화로 이어졌다.

실제로 이소형 공공운수노조 광주전남지부 부지부장은 “노사민정이라는 틀은 으레 노동계에 합의를 강요하고 압박하는 방식이었다”며 “그동안 지자체나 사용자들과 노동계의 괴리가 굉장히 켰다”고 비판했다. 이어 “노동자들이 왜 연봉 4000만 원 수준에 만족해야하느냐며 광주형 일자리를 공격했다. 신뢰가 없었기 때문”라면서도 “광주시와 정규직화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시가 노조나 현장 노동자들의 요구를 악성민원이나 여러 의견 중 하나가 아니라 좀 더 특화해서 존중하려고 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공공운수노조 광주전남지부가 바로 2015년부터 광주시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전환과 관련한 대화를 이어오고 있는 노조다. 광주시가 공공부문에서 ‘모범’ 사용자로서 쌓은 신뢰관계는 광주형 일자리를 민간으로 확대해 나가는 데 큰 자산이 될 것으로 보인다.

광주지역 노사 광주형 일자리에 ‘공감’

일자리 정책 모델의 중심은 제조업이다. 대량 고용이 이뤄져 규모 있는 노조와 노동자 집단이 존재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광주형 일자리 모델은 광주지역의 주요 산업인 자동차를 비롯한 제조업을 살리기 위해 빛그린산단 조성도 핵심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 정신의 민간 기업으로의 확산은 광주형 일자리 성공의 성패를 가름한 중요한 지점이다. 이는 지자체의 영향력이 미치는 공공부문과 달리 지자체가 법과 제도를 만들지 않고서는 강제할 수 있는 부분이 없기 때문에 보다 어려운 과제다.

광주 지역 노동계와 경영계의 대표, 실무자들은 광주형 일자리에 대한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 바탕은 지역이 소멸될 수도 있다는 위기상황에 대한 인식 공유다. 한국노총 광주본부로 대변되는 지역 노동계와 경영계는 오래전부터 노동과 고용 현안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해 왔다.

양대 노총 중 민주노총이 광주형 일자리 논의에 공개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앞서 민주노총의 공공부문의 지역단위 노조가 공공부문 정규직화 논의에서 3년 넘게 시와 신뢰를 구축했고, 이들은 광주형 일자리 논의를 위한 광주시 더나은일자리위원회의 실무위원회에 작년 하반기부터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광주지역 노조들이 상급단체 구분 없이 함께 지역민과 함께하는 광주형 일자리의 성공 기원 문화행사도 열었다. 노조들은 행사의 수익금을 중소기업 등을 위한 사회연대 기금으로 광주시에 쾌척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윤영현 광주경총 상임이사는 “노동조합이 중소기업 사장들을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하고 어려움을 같이 고민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윤 이사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입장 차이가 있겠지만,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경영계는 지금 소위 말하는 멘붕 상태에 빠졌있다”며 “정부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최저임금을 인상했지만, 지금 기업들은 시설자동화, 공장 해외이전, 인원 감축을 대책으로 고민하고 있어 최저임금의 역설 상황이 우려 된다”며 “노사 어느 한 쪽만 보는 것이 아니라 노사가 상생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광주형 일자리는 신뢰의 노사관계라는 토대에서 지속가능하다. 광주지역 노사 단위 대표자들의 공감대 형성을 노동계와 경영계 전반으로 확대시켜 나가야한다. 빛그린산단을 비롯한 광주지역 민간 기업으로 광주형 일자리 정신이 퍼져나가려면 우선 각 사업장의 노사 신뢰관계가 전제돼야 한다.

지역사회서 ‘가능성 vs 실현불가능성’ 논란 여전

지역의 당면한 노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사정 직접 이해당사자들의 신뢰회복의 다음단계는 신뢰를 바탕으로 함께 지향할 목표를 세우고 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시켜나가는 것이다. 지난 6월 광주시 더나은일자리위원회에서 적정임금, 적정근로시간, 원하청 관개 개선, 노사책임경영 등 4대 의제에 대한 기초협약을 체결했다. 광주형 일자리의 성공은 지역사회가 얼마나 공감하고 지지해 줄 것인가 여부에 달린 셈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용역업체에 고용된 비정규직도 상시지속 업무와 같이 정부가 정한 기준을 충족한다면 바로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지만, 광주시가 정책을 추진할 때만 해도 지역 사회의 여론이 좋지 않았다. 광주가 5.18 민주화 운동이라는 한국의 민주주의의 발전을 견인한 지역이지만, 노동에 대한 인식에서는 다른 지역과 다르지 않았다.

여기에는 광주지역 노조뿐만 아니라 한국의 노조들이 그동안 소속 사업장의 문제해결에만 집중해 온 탓도 있다. 노조들은 한국 사회가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불균형한 노사관계 속에서 노조가 과소 대표되며 배제돼 왔다고 항변한다.

이에 대해 더나은일자리위원회 실무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해광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조 운동의 결과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조직노동자와 비조직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을 나누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노조가 직접적인 원인제공자는 아니라고 해도, 이런 문제 상황을 노동운동이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정해야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어느 누구만의 책임이 아니라면 모두가 주체로 나서 이 문제를 공론화하고 해결방안을 찾아야한다”며 ”광주형 일자리가 성과를 내, 현재와 같은 상황 속에서 자리 잡은 한국사회의 노동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바꾸는 계기를 만들어야한다“고 강조했다.

광주형 일자리라는 새로운 시도에 대해 지역 노사정이 꾸준히 노력함에 따라 노동을 대하는 지역사회의 인식도 과거에 비해 나아지고 있다. 지역사회에 광주형 일자리의 취지에 대한 공감이 확산되는 중이다. 이 같은 현상의 배경은 광주에 청년 일자리가 없어 고급 인력들의 수도권 유출이 심각하고, 미래 세대를 위한 먹거리도 전무해 지역이 소멸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다.

문재인 정부의 광주형 일자리 국책사업 선정도 주효했다. 비록 광주형 일자리의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이는 많지 않지만, 광주는 지금 지역에서 노동이 경제, 복지, 일자리, 교육, 공공서비스 등을 망라해 거의 모든 지역 현안과 밀접하게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분야임을 알아가고, 담론을 만들어가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것과 정책에 대한 지지는 별개다. 광주사회 내에서도 광주형 일자리의 실체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정영일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상임대표는 “광주형 일자리 추진을 위해 광주시 더나은일자리위원회가 구성된 지 1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구체적인 내용이나 결과 없이 막연한 이야기만 한다”며 “‘광주형 일자리’에서 ‘더 나은 일자리’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무슨 개념인지조차 알 수 없다”고 비판했다.

지역 내 광주형 일자리의 모호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광주시의회에서도 나왔다. 작년 12월 광주시 의원들은 2015년 광주시 외부에 별도로 뒀던 사회통합지원센터의 2018년 예산을 삭감하고 사실상 폐지했다. 초기 센터장을 맡았던 김상봉 전남대 교수가 센터장을 그만 둔 뒤 전남대에서 더좋은자치연구소로 위탁업체가 바뀌었지만, 센터장 공석이 장기간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예산을 방만하게 사용했다는 지적과 함께 광주형 일자리의 싱크탱크 역할을 맡고도 가시적인 결과를 만들지 못했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사회통합지원센터의 역할은 광주시 사회통합추진단으로 넘어 갔다.

이 같은 결정에 대해 박해광 교수는 “사회통합지원센터가 예산을 방만하게 사용했다면 예산을 좀 줄이더라도 살렸어야 한다”며 “광주시 더나은일자리위원회나 실무위원회는 대화기구이고, 광주시 사회통합추진단은 행정조직이기 때문에 해당 단위들이 할 수 없는 기능을 지원하는 조직이 필요하다. 그 기능을 모든 것을 문서화 해 처리하는 공무원조직이 발빠르게 수행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전했다.

광주시는 광주형 일자리라고 하는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이에 대해 누군가는 ‘가는 만큼의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변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다. 반면 혹자는 실현불가능함을 강조한다. 이런 가운데 확실한 한 가지는 광주형 일자리의 성과는 정책의 가장 강력한 원동력인 지역사회의 새로운 시도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믿음과 지지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