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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중심으로 사회 공론화해야
한국의 일터혁신 어디까지 왔나
2018. 07. 20 by 김민경 기자

2018년 한국사회의 화두는 ‘일하는 사람들의 삶의 질 향상’이다. 촛불시민의 힘으로 교체된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모두 하나의 목표를 지향한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정작 노동은 생계를 이어기가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하고 싶지 않은 것 또는 감추고 싶은 것이 돼 버렸다.

일은 삶이다. 생활의 기반이자 타인과의 연결이며, 나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노동자에게 삶의 질 향상을, 조직엔 높은 성과를 동시에 가져다줄 일터혁신을 말해야 한다. 일터혁신은 단순히 관심을 둬야할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가 당면한 과제다. 한국의 일터혁신 현주소를 진단하고, 일터혁신을 추진 중인 사업장의 사례를 소개, 일터혁신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찾아본다.


[커버스토리] 일터혁신을 찾아서 ① 한국의 일터혁인 어디까지 왔나

개정 근로기준법에 따라 주 68시간까지 허용했던 법정근로시간이 52시간으로 줄어든다. 정부는 이달 300인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오는 2021년 5~49인 사업장까지 단계적으로 법을 확대 적용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노동현장은 혼란스럽다. 일각에서는 담배를 피우는 노동자들의 흡연시간을 일하는 시간에서 제외해야 한다거나 사무실에서 커피 마시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는 말부터 한다. 일하는 시간을 두고 노사가 예민해짐에 따라, 업무 중 개인적인 용무를 보기 위해선 하루 연차휴가를 5등분으로 쪼개 2시간 씩 사용하는 문화가 생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가 “노동은 사람을 위한 것, 사람을 우선하겠다”고 밝힌 노동시간 단축의 취지는 허공에 울릴 뿐이다.

노동시간 단축 발목 잡는 낮은 노동생산성?

노동시간 단축과 함께 화두가 된 것은 노동생산성이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이 지금처럼 낮은 상황에서 충분한 준비 없이 노동시간을 단축할 경우 곧장 생산 감소로 이어진다는 우려다. 이로 인한 기업들의 부담이 증가할 경우 정부가 기대했던 노동시간 단축은커녕 기업이 고용을 꺼리게 돼 오히려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라는 비판이 경영계를 중심으로 나온다. 노동생산성은 생산액을 노동투입(노동자 수× 노동 시간)으로 나눈 값으로, 노동의 질적 수준을 나타낸다.

2015년을 기준으로 한국 기업들의 노동생산성은 OECD 35개국 중 28위다. 지난해 10월 한국생산성본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구매력평가(PPP) 기준 환율을 적용한 한국의 1인당 노동생산성은 시간당 31.8달러였다. 노르웨이(78.7달러)와 덴마크(63.4달러), 미국(62.9달러), 네덜란드(61.5달러) 등의 절반 수준이다. OECD 평균치는 46.7달러였다.

특히 한국 중소기업 노동생산성은 국제 비교가 가능한 2013년을 기준으로 관련통계가 있는 OECD 24개 중 꼴찌였다. 핀란드(73.6%)와 영국(57.5%), 일본(56.5%) 등 중소기업 노동생산성이 대기업의 절반 이상인데 반해 한국의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약 29.7%에 그쳤다.

한국은 장시간 노동을 하는 나라다. OECD가 발표한 지난해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2,069시간이다. 34개 회원국 가운데 멕시코(2,255시간)에 이어 2위다. 한국은 2008년 이후 10년째 장시간 노동을 하는 국가 2위를 유지하고 있다. OECD 평균(1,763시간)보다 306시간 길고, 노동시간이 가장 적은 독일(1,363시간)에 비해선 706시간이나 더 일한다. 이를 하루 8시간으로 계산하면 각각 약 39일, 89일 더 일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노동시간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장시간 노동은 그 자체로 노동생산성과 효율성을 저해한다. 같을 일을 해도 오래 일할 경우 태업을 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고, 일자리 창출을 제약하며, 일과 가정의 양립을 가로막는다.

다만 이 때 초점을 맞춰야 하는 부분은 단순히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 아니다. 일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내고 업무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노사의 노력이 절실하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을 바로 ‘일터혁신(workplace innovation)’으로 표현할 수 있다.

노동존중사회 기반 될 일터혁신

일터혁신은 무엇인가. 일터혁신은 ‘일하는 곳(workplace)’에서 기존에 해오던 방식을 ‘바꾸는 것(innovation)’이다.

그렇다면 일터혁신은 왜 하는가. 이 부분을 명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선 일터혁신이 등장한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터혁신은 교통과 기술 통신의 발달로 시장경제가 세계화되면서 경쟁이 심화되자 기업이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강조됐다. 동시에 기업 내부 구성원들은 노동을 통제하고 소외시킴으로써 숙련을 저하하는 테일러주의와 포디즘적 생산방식의 한계를 지적하며 촉구됐다. 즉, 일터혁신은 태생적으로 ‘조직의 성과’와 ‘노동생활의 질’의 개선이라는 두 가지 큰 틀의 지향점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일부 선진 기업들은 기존에 상반되는 가치라고 여겼던, 즉 ‘기업의 지속적인 경쟁력 확보’와 ‘노동생활의 질이 높은 수준의 고용’이 실제로는 서로 반(反)하지 않음을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 이 두 지향점은 오히려 서로 보완적인 관계로 봐야 옳다.

실제로 당장의 이익을 쫓아 노동자가 입는 피해를 고려하지 않은 채 비용을 절감했던 기존의 방식은 기업의 경쟁력 확보에 부정적이다. 노동자의 권한과 참여를 엄격히 제한하며, 일의 효율을 높이기보단 일의 강도를 높이기 때문이다. 일의 강도가 높아진다는 것은 일터의 복지와 안전에 악영향을 준다. 뿐만 아니라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역량을 최대로 발휘하고, 창조적이며 혁신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일터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데 장애물이 된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단기간의 생산성 증가에 매몰돼 일터를 혁신할 경우, 지속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창조적 역량을 잃게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일터혁신의 의미는 노동자의 참여를 보장하고 권한을 부여해 일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조직의 성과’와 ‘노동생활의 질’을 높이는 것으로 정리해야 한다.

지금까지 언급한 일터혁신의 핵심 지점들을 충족한다면, 일터의 청결과 정리정돈, 생산 제품의 개선하기 위한 작은 아이디어, 불필요한 업무 요소의 제거, 공정의 최적화, 쾌적한 작업환경 조성, 중고령인력을 배려한 작업공정 개발과 배치, 안전한 일터 만들기 등 모든 부분이 일터혁신이다.

지난 10년간, 한국의 일터혁신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일터혁신은 다양하게 정의됐다. 일터혁신은 앞서 작업장 혁신으로도 불렸는데, ‘기업이 외부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작업장 수준에서 일하는 방식 및 사람 관리 방식이라는 사회 시스템 변화와 관련한 혁신 활동을 의미(이영호, 2009)’, ‘작업조직의 변화, 작업조직의 직무구성과 직무수행활동의 통합. 창의성과 의지를 갖춘 존재로서 지식기반경제의 담지자가 될 인간 노동의 잠재적 능력을 끌어내고 적절히 활용하며, 그에 합당한 보상을 통하여 경제적 효율성은 물론 사회적 정당성까지 확보하는 전략적 요충(조성재, 2010)’ 등으로 통일되지 못한 채 제각각으로 그 의미가 제시됐다.

이 같은 담론마저도 전문가와 연구자들이 중심이었다. 현장의 노동자와 노동조합은 일터혁신을 자신들의 의제로 삼는 데 적극적이지 않았다. 일터혁신에 큰 관심을 두지 않은 건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대해 일터혁신을 오래 연구한 학자들은 대립적이었던 한국의 노사관계가 일정부분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일터혁신은 노사가 신뢰를 바탕으로 함게 전략을 찾아나가야 하는 현실적인 의제인데, 불신이 만연한 한국의 노사 관계에선 쉽게 논의의 물꼬조차 트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에서 정부가 위탁하는 방식의 일터혁신 지원 사업은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다. 2004년 한국노동연구원 내 뉴패러다임센터가 만들어졌다. MB정부 시절 임금직무혁신센터로 통합되면서 ‘고성과작업장혁신센터’로 명칭을 바꿨고, 2010년부터는 노사발전재단이 해당 업무를 이어받아 수행하고 있다.

현재 일터혁신 지원 사업을 수행하는 기관은 노사발전재단을 비롯해 한국생산성본부, 능률협회, 씨앤피컨설팅 등 4곳이다. 이들은 일터의 영역을 9개로 나눠 컨설팅에 나선다. 구체적으로는 ▲임금평가체계 개선 ▲평생학습체계 구축 ▲노사파트너십체계 구축 ▲작업조직작업환경 개선 ▲장시간 근로개선 ▲비정규직고용구조개선 ▲고용문화개선 ▲장년고용안정체계 구축 ▲일가정 양립 등이다.

그동안 정부가 주도한 일터혁신 지원 사업은 컨설팅 외에도 연구와 교육, 우수사례 발굴을 통한 획산, 코칭, 인증, 재정지원이라는 방식으로 실시됐다. 그러나 국가차원의 의제가 되지 않았고, 중장기적 계획 수립이 미흡했다는 한계도 뚜렷하다.

한국의 일터혁신 기반을 다져야 한다. 일터혁신은 노동시간 단축과 생산성 향상, 노동생활 질 개선, 고용률 제고, 일가정 양립 등 현재 당면한 주요 노동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기반이다. 일터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일하기 좋은 일터를 만드는 것은 저성장 기조에 접어든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일터혁신은 일터의 문제를 진단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사가 함께 해법을 찾는 선에서 그치지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와 기업 모두를 위한 혁신 해법이 일터의 변화로 나타나고, 유지돼야 한다.

정부가 일터혁신의 중장기적인 로드맵을 잡고, 시기별로 정책 목표와 과제를 설정해야 한다. 한국에서도 2008년 노동부가 ‘작업장혁신 추진 5개년 실천계획’을 수립해 일터혁신을 활성화하고자 시도한 바 있지만, 기업의 경쟁력과 생산성 향상이라는 한쪽 목표에 치우쳐 방향 설정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 데 그쳤다.

한국 노사, 일터혁신 의제화 적극 나서야

일터혁신 목표는 균형적으로 재정립돼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일터혁신은 사실상 ‘경쟁력 강화’와 ‘성과’라는 측면에 초점이 맞춰져왔다. 이때 성과는 영업이익과 같은 경영 성과에 집중됐다. 일터혁신을 통한 경쟁력 강화는 양질의 일자리와 함께 만들어져야한다. 아울러 일터혁신의 성과로는 경영성과뿐만 아니라 노동생활의 질적 개선도 중요하게 논의해야 한다. 노동자가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참여하지 않는 일터혁신은 진정한 의미의 혁신이 될 수 없다.

일터혁신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한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앞서 정부의 일터혁신 지원 정책에 대해 언급했지만, 일터혁신은 노사의 공감 속에서만 성공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다.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정책 시행이 본격화 된 지금 다시 일터혁신이 답이다.

노사가 공동으로 실천 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일터혁신에 대한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해 나가야 한다. 일터혁신을 ‘왜’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들여다본다면, 일터혁신은 그리 거창한 담론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참여와혁신>은 일터혁신을 주제로 기획기사를 다루면서, 일하는 ‘공간’에 대해 노사가 함께 고민하며 일터를 바꿔나가고 있는 아디다스코리아와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운영 회사)을 찾아 현장에서의 의미 있는 변화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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