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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크스바겐 스캔들로 노사 공동결정제 ‘흔들’
비리 의혹으로 노동평의회 의장 사퇴 인사이사 축출
선거 앞둔 기민당 음모설도‘타락한 연합’이 화 불러
[15호] 2005년 09월 10일 (토) 박명준_ 독일 쾰른대학교 사회학 박사과정 press@laborplus.co.kr

성공적인 노사관계와 경영 모델로 불리던 유럽 최대의 자동차회사 폴크스바겐에서 불거진 비리 관련 스캔들이 독일 사회를 흔들고 있다. 지난 7월 내내 독일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 스캔들은 향후 폴크스바겐 경영의 방향뿐 아니라 독일 노사관계 시스템의 변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큰 커다란 사건이었다.

 

갑작스런 노동평의회 의장의 사퇴


이번 사건은 지난 7월 1일 폴크스바겐의 노동평의회 의장(한국의 기업노조 위원장 개념)인 폴커트가 돌연 의장직 사퇴를 선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폴크스바겐 모델의 성공 과정에서 이미 엄청나게 커진 노동평의회의 위상과 폴커트 자신의 권력의 크기를 감안했을 때 그의 전격사퇴는 뭔가 묵직한 배후를 암시했다. 곧 이어 폴크스바겐의 자매 회사인 체코의 스코다사 사장인 슈스터와 폴크스바겐의 인사부 임원인 게바우어 등이 저지른 공금유용 스캔들이 터져 나왔다. 수사 과정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들이 저지른 비리와 관련하여 문제가 된 부분은 크게 3가지였다.

 

첫째, 이들은 인도와 앙골라 등지에 유령회사를 설립하여 사적인 치부에 이용했다.

둘째, 노동평의회 의장인 폴커트가 이들이 추진한 유령회사 설립에 함께 참여하였다.

셋째, 이들은 그 대가로 노동평의회를 위한 위락행사와 해외여행을 조직해서 제공했고, 그 비용을 회사 공금에서 충당하였다.


이들의 비리 혐의가 공개되는 과정에서 폴커트 사퇴의 비밀은 한 꺼풀 벗겨졌다. 특히 슈스터와 게바우어 등이 노동평의회에 제공한 위락여행은 브라질 출신의 젊은 매춘부들을 비행기에 함께 동승시키고, 고급호텔을 찾아다니며 여흥을 즐기도록 하는 프로그램이었다는 것이 폭로되어 사회적으로 커다란 빈축을 사기도 했다.

 

사민당 노동개혁 이끈 하르츠도 연루 의혹


연일 새로운 비리혐의들이 폭로되며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자 세간의 관심은 하르츠도 이 비리에 관여했느냐 아니냐로 모아졌다. 비리의 주모자들이 모두 지난 시기 하르츠와 함께 폴크스바겐의 개혁을 이끈 핵심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애당초 그의 관련 의혹은 쉽게 씻을 수 없었다.


7월 9일 폴크스바겐 이사회는 인사이사 페터 하르츠에게 이번 사건에 관여했으리라는 혐의를 가지고 공식적으로 임원직을 사임하고 퇴사하도록 결정을 내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비리의 내용과 규모가 심각해지자 이사회는 하르츠에 대한 구체적인 비리 혐의가 밝혀지기 전에 일단 그를 기업으로부터 분리시킨 것이었다.


이사회 임원진들 가운데 노동측 대표들은 하르츠의 사퇴를 반대했으나, 기업총수인 피쉐츠리더가 끝내 하르츠의 사퇴를 종용하고 나섰고, 특히 폴크스바겐의 최대 주주인 니더작센 주의 주지사 불프 역시 하르츠의 사퇴를 강하게 요구했다. 이후 사건은 전문회계기관에 의해 기업감사를 의뢰하고, 또 비리와 관련해서 검찰이 개입해 수사에 착수한 이후 시간을 두고 진행 중에 있다.


이 사건이 표출된 이후 독일 사회 일각에서는 공동결정제도(Mitbestimmung)와 합의적 노사관계 시스템 자체의 어두운 면을 부각시키며 제도 혁신을 주창하는 의견들이 크게 대두되었다.


지난 시절 폴크스바겐의 노사공동경영의 핵심 인물들이 이미 이 사태에 연루되어 회사를 떠나야 하는 결정이 내려졌고, 그들이 현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해온 사실을 감안하면, 폴크스바겐의 내부 개혁과 독일 노사관계 전체의 개혁에 이 사건은 일대 전환점이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폴크스바겐은 전체 종업원수가 34만여 명에 이르며, 그룹 경영상의 의사결정 중추기관인 기업이사회는 21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가운데 노동평의회에는 7석, 노동조합에는 3석의 자리가 배정되어 있어, 전형적인 독일식 공동결정제의 원리에 의해 기업경영의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폴크스바겐 본사가 위치한 볼프스부르그의 주정부 니더작센은 오랫동안 사회민주당이 정권을 잡아 왔고, 폴크스바겐의 최대 주주는 전체 주식의 18.2%를 소유하고 있는 니더작센 주정부이다.


이렇게 폴크스바겐의 경영은 주정부, 경영진, 그리고 노동자의 이해대표체가 함께 관여하는 삼자주의적 양상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때 주정부는 대체로 사회민주당이 집권해 왔고, 또 경영측의 핵심인사들도 상당수 노조원으로 가입된 상태이기 때문에, 노조와 정당을 중심으로 한 경영 엘리트들 간의 연계망은 보다 복잡하면서도 매우 친밀하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와 관계는 이번 사건의 원인 제공자 역할을 했다.

 

폴크스바겐 모델과 페터 하르츠

1993년 창업 이래 최대의 경영난에 봉착한 폴크스바겐을 구한 것은 신임 인사이사로 부임한 페터 하르츠와 그가 제시한 개혁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경영데이타상 회사는 생존을 위해 2~3만명의 직원을 감원하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그는 근로시간을 주당 28.8시간으로 단축하고, 고령 근로자들의 단계별 퇴직과 신규 근로자들의 단계별 고용 등을 내용으로 한 혁신적인 고용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물론, 참여와 그룹에 기초를 둔 작업조직의 혁신 등 참신한 제도를 도입할 것을 주창하며 위기극복의 마스터플랜을 제시했다.

애래로부터도 강한 호응을 받으며 실행된 그의 개혁 프로그램은 좌초한 폴크스바겐호를 위기에서 건져냈고, ‘폴크스바겐 모델’로 명명되었다.
폴크스바겐 모델의 실행은 전통적으로 이 회사에서 유지되어 오던 ‘노동을 존중하는 합의적 경영관행’을 창조적으로 승화시킨 것으로, 여기에는 기업 내 노동측의 이해를 대변하는 노동평의회의 역할이 컸다. 그룹 내 총노동평의회 의장인 폴커트는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경영측의 해결사 하르츠와 긴밀한 파트너십을 이루며 개혁 과정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의회 선거를 앞둔 정치적 음모?


일각에서는 이번 비리사건의 폭로가 일종의 정치적인 음모의 결과라는 해석을 하기도 한다. 현재 독일에서는 다음 달에 있을 연방정부 하원의회 선거를 앞두고 기민당의 집권이 예상되는 가운데 이미 선거 정국에 돌입해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을 선거와 결부지어 해석했을 때, 왜 하필 지금 이 비리사건이 터지게 되었는지, 그것의 노림수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훨씬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음모설은 타당성을 지닐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현 정부의 여당인 사민당의 개혁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데에 슈뢰더 총리와 하르츠 이사는 매우 긴밀한 협조를 한 바 있다. 폴크스바겐이 있는 니더작센 주의 주지사 출신인 슈뢰더는 1993년 하르츠의 주도로 폴크스바겐의 위기대응 개혁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한 바 있다.


그때부터 슈뢰더-하르츠-폴커트는 폴크스바겐의 경영을 책임지는 정부-사용자-노조를 대표하는 인물들로서 긴밀한 팀워크를 형성했다. 슈뢰더는 2002년 2차 집권에 성공할 무렵 1990년대 폴크스바겐의 개혁모델의 성과를 독일의 노동시장 전반으로 확대시키려는 취지에서 사회민주당이 추진하는 노동시장 개혁안을 하르츠로 하여금 주도하게 했다.

 

사민당 정부 노동시장 개혁 브레인 제거


그런데, 몇 해 전 니더작센 주는 보수야당인 기민당의 정치가인 불프에게 주지사 자리를 빼앗겼다. 주정부의 실권 교체는 이미 그 시점에서부터 폴크스바겐의 미래에도 적지 않은 의미를 지녔다. 폴크스바겐의 최대 주주이자 이사회 임원으로서 폴크스바겐의 경영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된 불프는 이전 사민당 정부 시절 형성된 노사정의 결탁이 빚은 부작용과 어두운 면들에 대해서도 깊이 인지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번에 불거진 사태의 부상과 수습 과정에 언론이 계속해서 불프에게 시선을 던진 것은 이 사건의 정치적인 의미를 고려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폴크스바겐에서 하르츠와 폴커트가 불명예스럽게 제거되고 회사가 비리기업의 이미지를 뒤집어쓰게 된 것은, 중차대한 선거 직전에 그간 사민당이 폴크스바겐을 통해 쌓아 왔던 금자탑을 일거에 허물어뜨리는 효과를 지녔고, 여기에 불프와 기민당의 능동적 배후를 의심하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상상은 아니다.


그 파급효과를 봤을 때, 하르츠의 사퇴는 단순히 폴크스바겐 기업 임직원 한 사람이 불명예 퇴사하는 것이 아니라 현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의 브레인 자체를 거세하는 보다 큰 정치적인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일이다.


더불어 ‘폴크스바겐 모델’의 구상자인 그의 사임은 1993년 이래로 줄기차게 이어져 온 폴크스바겐 모델의 씁쓸한 뒤안길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폴크스바겐 비리사건이 폴크스바겐 모델의 종언의 원인인지 아니면 그 결과인지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논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완벽한 제도는 없다


이번 사건으로 폴크스바겐의 노사 정상들이 함께 손을 잡고 전 세계 30여만 명의 폴크스바겐 식구들을 기만한 지배엘리트가 되어 공동 경영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만용을 부렸다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문제를 정치적인 정략 차원에서 이해한다고 할지라도, 분명 부지불식 간에 폴크스바겐사에서 자라고 있던, 노사 대표자들 간의 타락한 사적 이해 연합의 관행은 어떤 식으로든 제거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비리사건은 결국 인간 세상에 완벽한 제도는 없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준다. 폴크스바겐처럼 노동이 깊숙이 경영에 개입하고 상호 파트너십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노동의 인간화를 진전시키며 높은 경영지표상의 성과를 나타낸 기업조차 그것이 시스템화하고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면 관계에서 추한 모습을 띨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 사건의 수습과 처리과정에서 파생될 제도 개혁의 정도와 범위는 지난 10여 년간 폴크스바겐 모델이 독일 노사관계의 변화에 커다란 함의를 지녔던 것과 마찬가지로 향후 의미심장한 파급력을 보일 것임에 틀림없다.


아마도 비리사건의 원인을 공동결정제에서 찾으려는 인물들의 목소리와 추한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를 방어하려는 이들의 목소리가 어떻게 맞부딪치느냐가 그것을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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