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이후 노동자들] “반짝 관심보단 노동조건 개선을 바란다”
[산불 이후 노동자들] “반짝 관심보단 노동조건 개선을 바란다”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2.04.06 17:42
  • 수정 2022.04.12 1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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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진압 투입된 산림청 공무원·소방관·산불재난특수진화대
산불은 계속될 것···“노동자들 지속가능성”에 한목소리

[리포트] ‘213시간 최장 산불’ 이후 노동자들

3월 4일 경북 울진군에서 시작된 산불이 213시간 만에 진화됐다. 진화까지 걸린 시간도, 피해 면적도 여태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산불 중 가장 길고 넓었다. 산림청이 추정하는 피해 면적은 2만 4,940㏊로, 서울시의 1/3 정도 크기다. 주택 319채, 농·축산시설 139개소, 공장·창고 154개소 등이 소실됐다.

가능한 인력을 모두 투입했지만 산불 발생 초기 초속 20m가 넘는 강풍이 불어 경북 울진 원전을 지나 강원 삼척까지 불이 빠르게 번졌다는 게 산림청의 설명이다. 짙은 연무로 헬기 진화도 어려웠다. 특히 울진 금강송면 소광리와 이어지는 삼척 응봉산 자락은 해발고도가 높고 절벽과 급경사가 많아 접근이 힘들었다.

언제 진화될지 모르는 산불 앞에서 노동자들도 비상이 걸렸다. ‘불’을 다루는 공공노동자들이 대거 투입됐고, 출장은 길어져만 갔다. 산불 진화 노동자들은 소방인력이라고 뭉뚱그려 표현되지만 실은 고용형태와 역할이 각각 다르다. 고용형태로 구분하면 국가직인 산림청 공무원, 소방청에서 동원된 소방관, 산림청 비정규직·공무직인 산불재난특수진화대, 6개월 계약직인 산불전문진화대원 등이 있다.

산불 진화 주무부처인 산림청 공무원은 헬기를 이용해 산불을 진화하거나 방화선 구축*을 하고, 소방관은 산 아래서 민가와 국가시설에 불이 번지지 않게 진화하는 작업을 한다. 산불재난특수진화대는 호스를 끌고 산에 들어가 물로 산불을 진화한다. 산불전문진화대원은 산불을 감시하거나 규모가 작은 산불의 초동 대응 업무를 맡는다.
*방화선 구축: 산불이 번지지 않도록 공터를 만드는 작업. 이 작업에 투입된 노동자들은 불이 오는 방향 쪽으로 땅을 파서 탈 만한 것들을 미리 없애버린다.

산불 진화를 마치고 복귀한 노동자들은 “지금의 방식은 아쉽다”고 입을 모았다. 산불이 진화됐을 때마다 정부는 노동자들을 영웅으로 잠깐 치하했지만, 실질적인 노동조건의 변화는 없었다는 지적이다.

ⓒ 산림청지부

#1. 산림청 공무원

“안 그래도 속이 너무 상해서. 직원들 사기도 바닥에 다 떨어졌어요. 산림청이 산불 주무부처인데도 모든 게 열악해요. 인력부터 시작해서 장비, 처우까지 정말 정이 똑 떨어질 정도예요.”

산림청은 산불과 관련한 고민이 가장 많은 부처다. 박명주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산림청지부 위원장은 ‘산불’이라는 키워드를 꺼내자마자 이야기를 쏟아냈다. 현장에서 산불을 총괄해야 하는 부처가 산림청인데,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호소다.

산림청지부는 산불 진화 업무만을 수행할 수 있는 산불진화팀을 따로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산불은 산불조심기간(보통 2~5월, 11~12월)에 주로 발생하는데, 지금은 이 기간에 모든 산림청 공무원이 본연의 업무를 중단하고 나와야 한다.

산불조심기간이 아닐 때 산불진화팀은 산림청의 업무 중 하나인 병해충 예찰과 화물수송 업무를 하면 된다는 게 산림청지부의 주장이다. 그러나 다른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인력충원은 하늘의 별 따기다. 인력충원을 요구해도 기획재정부에서 승인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산림청은 공무원 인력충원 대신 기간제·공무직인 산불재난특수진화대를 2016년부터 시범 운영하고 2018년 정식 도입했다. 하지만 처우가 불안정한 공공부문 비정규직이 아닌 일반직 공무원 증원이 필요하다는 게 산림청지부의 입장이다. 그래도 박명주 위원장은 산불재난특수진화대 도입도 “하늘이 도운 ‘천운’”이라고 말했다. 그 정도로 산림청의 인력충원은 더디다.

ⓒ 산림청지부

“시키는 대로 해 왔으니까 이전처럼 그냥 하자. 주말은 당연히 반납해야 하는 거고 야근도 당연히 해야 하는 거다. 이렇게 말하는 거죠.” 인력충원이 안 되면 처우라도 바꾸자는 게 산림청지부의 요구지만, 이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산불 진화에 투입되는 일부 산림청 공무원들에게는 수당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다. 일례로 헬기를 타고 산불을 진화하는 공중진화대 공무원들은 화재진화수당을 받지 못한다. 화재진화수당은 공무원 수당 중 특수업무수당에 해당하는데, 임업직 공무원인 공중진화대 공무원들의 기술정보수당과 함께 지급받을 수 없다.

“버텨서 어떻게든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하고 싶은데. 불만을 이야기하면 산림청은 그렇게 말해요. ‘보완은 차후에 해도 되니까 일단 산불부터 끄자고.’ 맨날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는데도 우리를 달래기만 하는 거죠. 산림청이 이번에는 꼭 산림청 직원들을 돌아봤으면 좋겠어요.”

#2. 동원된 소방관

소방청은 산불이 났을 때 지원부서로 역할을 한다. 이번 산불에서도 상당수 소방관이 산불 진화 업무에 동원됐다. 소방청은 3월 ‘강원·경북 등 대형 산불 진화를 위한 총동원령’을 내려 전국의 소방관들을 모았다. 문제는 소방관이 산불에 동원돼 버리면 소방서에 남는 소방관들의 노동강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어떤 대안도 소방청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간 소방관들은 근무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말해왔다. 인력을 늘려 소방관들이 야간근무를 했을 때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근무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소방서는 2주간 야간근무와 비번을 번갈아 서고, 한주는 주간근무를 하는 3조 2교대를 채택하고 있다.

산불과 같이 많은 소방관이 이 근무체계에서 갑자기 빠지는 상황이 왔을 때 3조 2교대의 열악함은 드러난다. 김주형 민주노총 전국공무원노조 소방본부 본부장은 “필요한 인원이 없으니까 남은 소방관들이 보충근무를 해야 한다. 산불로 소방관들을 계속 차출해서 인원 변동이 생기니 지금 3조 2교대도 제대로 하는 곳이 없다”고 설명했다.

ⓒ 전국공무원노조 소방본부

동원된 소방관들도 어려움을 토로했다. ‘반쪽짜리 국가직’이라 불리는 소방관은 국가직이지만 인사권과 예산이 지자체에 있다. 그래서 산불 출장에 필요한 예산도 시·도지사가 허락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소방관들은 예산을 소방청이 한꺼번에 관리할 수 있도록 온전한 국가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강원도 동해소방서에서 산불 진화에 동원된 김태우 소방관(전국공무원노조 소방본부 청년부본부장)은 “밥 사먹을 돈도 받지 못했던 소방관들을 보면서 우리가 이렇게 열악했구나를 느꼈다”고 말했다.

“우리는 지원부서이기 때문에 밥차를 운영해준다거나 휴식처를 지원해주는 게 처음엔 없었습니다. 다 같이 주불 진화를 하는 건데 소방관들은 예산이 없었던 겁니다. 재난 상황에서 저희는 ‘힘들어서 못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지도 못하고, 불만만 곪아가고 있습니다. 당장 산불 진화를 하러 갔는데 돈이 없어서 ‘산림청에서 좀 주세요, 시청에서 좀 주세요.’ 말해야 하는 상황이 참 힘들었습니다. 국가직인데도 국가직처럼 일하지 못하는 게 상당히 부당하긴 한데, 이제는 고착됐다는 느낌이 들어서 안타깝습니다.” (김태우 소방관)

ⓒ 산림청지부

#3. 산불재난특수진화대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들은 공무직과 공공부문 비정규직이 느끼는 어려움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전국에는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 435명이 있다. 이들 중 160명이 공무직, 275명은 기간제로 고용된 노동자다. 원래는 전원이 기간제로 고용돼 있었지만, 2019년 강원도 고성 산불 이후인 2020년 160명이 공무직으로 전환됐다.

신현훈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국가공무직지부 산림청지회 정책부장은 “우리는 다른 공공부문 비정규직과 똑같이 신분이 불안정하고, 공무원과의 차별도 심하다”고 했다.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들은 주기적인 체력측정을 통해 계약을 연장한다. 소방관같이 체력이 중요한 공무원들은 체력측정 결과가 인사고과에 반영되는 정도지만, 이들은 해고가 가능하다.

신현훈 정책부장은 국가인권위원회의 공무직 차별시정 권고를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공무직 차별을 시정하라는 권고를 여러 번 내려왔다. 위험수당과 관련해서도 2014년과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는 “공무원과 같은 부서, 같은 업무환경에서 일하는 공무직에만 위험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차별”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초과근무수당은 없고, 수당 대신 받은 휴가를 제대로 쓰지도 못한다. 공무원에 비해 장비도 부실하다는 게 신현훈 정책부장의 주장이다. “공짜노동은 하지 말아야 하는 거잖아요. 연장근로를 수당으로 지급해야 하는데 이걸 정부가 휴가로 주거든요. 연장근로가 많은 직종인데 수당을 예산에 반영시키지 않는다는 건 공짜노동을 없애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거거든요. 휴가를 받아도 마음대로 못 써요. 나중에 비오는 날 강제로 쉬게 한단 말이에요.”

“장비를 주긴 줘요. 문제는 성능이에요. 진화장갑은 필수장비인데, 방수기능이 아주 모자라는 거를 주니까 10명 중에 8명은 장갑을 사비로 사서 쓰고 있어요. 특수진화대원에게 지급되는 피복비가 1년에 40만 원이래요. 그런데 우리 장비는 왜 이러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예산을 어떻게 쓰고 있는 걸까요?”

신현훈 정책부장은 “저마다의 어려움이 있겠지만 정부가 꿈쩍도 안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산림청 공무원, 소방관,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의 이야기는 산불이라는 옷을 입었을 뿐 새롭지 않다. 코로나19를 대응하는 과정에서도 같은 문제가 벌어졌다. 담당 공무원은 끝이 안 보이는 비상근무에 괴로워하고, 다른 부처에서 동원된 공무원은 본연의 업무가 해결되지 않은 채 투입됐다. 공무직·공공부문 비정규직은 불안한 고용형태와 공무원과의 차별에 시달려왔다.

전염병, 자연재해 등 국가적 재난은 또 온다. 공공노동자들이 각각 말하는 ‘고질적인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면 긴 출장에서의 서러움은 계속될 것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반짝’ 관심과 칭찬이 아닌 변화를 위한 정부의 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