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브볼 잘 치려면 ‘뇌’ 알아야 한다
커브볼 잘 치려면 ‘뇌’ 알아야 한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15.07.1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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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물체 위치 파악에 ‘정교한 추론’ 진행
GPS 신호 보정하는 내비게이션 원리와 동일

과학칼럼니스트
야구 타자들은 커브볼(curveball)을 두려워한다. 투수가 던질 때는 직구처럼 보였는데, 홈플레이트 근처에 오면 방향을 바꾸기 때문이다. 어떤 타자는 눈앞에서 ‘갑자기 야구공이 멈췄다’고 말하기도 한다. 뭔가에 홀린 듯한 짧은 순간이 지나면 투수는 십중팔구 ‘스트라이크’를 당하고 만다. 대체 커브볼은 왜 치기 어려운 것일까.

’커브볼 착시’는 뇌의 ‘정교한 추론’ 때문

커브볼이 타자 가까이서 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야구공이 실제로 경로를 바꾸는 데다 ‘착시현상’도 일어나기 때문이다. 커브볼을 던지는 투수들은 손가락으로 공을 회전시킨다. 빙글빙글 도는 야구공이 공기 속을 지나가면서 일정한 흐름을 만들고 직선이 아닌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게 되는 것이다. 이때 야구공의 실밥도 한몫 한다. 실밥 때문에 야구공이 만드는 공기 흐름도 달라지는 것이다. 커브볼의 경로는 야구공의 회전과 속도, 실밥 등 복합적인 요소가 만들어낸 결과다. 

타자들이 겪는 ‘커브볼 착시(curveball illusion)’의 원인은 우리 뇌에 있다. 타자는 눈으로 휘어지는 공을 열심히 쫓지만 뇌가 파악한 커브볼의 위치가 실제와 달라진 것이다. 지금까지는 이 현상의 원인이 명쾌하게 알려지지는 않았다. 다만, 우리가 보는 세상이 뇌가 해석한 내용이라는 걸 보여주는 사례로 활용됐다. 그런데 최근 과학자들이 커브볼 착시가 생기는 원인을 찾아냈다. 우리가 야구공처럼 움직이는 대상을 볼 때 뇌에서 ‘정교한 추론’이 진행된다는 내용이다. 여기에는 움직이는 물체의 위치와 움직임이 통합적으로 쓰인다. 

우리가 눈으로 무언가를 바라보면 여러 정보를 받아들이게 된다. 색깔이나 형태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커브볼처럼 움직이는 물체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는 두 가지 정보가 중요하다. 우선 물체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한 ‘위치 신호’가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이동방향이나 속도 등 ‘움직임 신호’를 알아야 한다. 즉, 우리가 보는 장면들은 뇌가 두 신호를 적절히 이용해 계산한 결과인 것이다.

움직이는 야구공, 타자 시선 따라 위치 인식 달라져

미국 로체스터대 연구진에 따르면, 타자 시야의 어느 부분에 커브볼이 있느냐에 따라 뇌가 인식한 공의 위치가 달라진다. 가령 움직이는 야구공을 시야 중심에 두면 실제 위치를 그대로 파악한다. 그런데 똑같은 공이 시선을 벗어나면 실제와 다른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게 된다. 시선 가운데서 들어오는 위치 정보는 정확하지만, 시야 주변에서 받아들인 위치 정보는 부정확하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뇌는 움직임 신호를 받아들여 위치 정보를 보완하게 된다. 덜 정확한 정보까지 고려하는 매우 ‘똑똑한 계산’인 셈이다. 

커브볼 착시는 뇌의 이런 최적화된 시각정보 처리 과정이 만들어낸 결과다. 빠르게 회전하는 커브볼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이때 야구공에 있는 실밥은 회전에 따른 움직임 신호를 만든다. 바로 이 움직임 신호가 뇌가 계산하는 데 작용하면서 착시가 생기는 것이다. 
 
만약 야구공을 보던 타자가 시선을 야구공에서 조금 돌렸다고 하자. 그러면 타자의 뇌는 위치 정보가 부정확해졌다는 걸 알아챈다. 이때 움직임 신호를 받아들여 위치를 보정하는데, 야구공의 회전으로 인한 움직임 신호에 실밥이 만든 패턴까지 더해진다. 이 때문에 뇌의 계산에 오류가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타자가 보는 야구공의 궤적은 실제와 달라진다.
 
이 연구를 진행한 권오상 박사는 “어떤 물체가 우리의 시야 중심에 있으면 그 위치를 매우 정확하게 보지만, 물체가 시야 주변부에 있으면 위치를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며 “우리 뇌는 이런 오차를 보정하기 위해 물체의 움직임에 강조점을 두고 눈으로 들어온 정보를 해석한다”고 설명했다.

GPS 신호 약해지면 지난 경로에 가중치 두는 내비게이션과 유사

운전을 하다 보면 GPS 신호가 약해지는 지역을 지나거나, 터널 속으로 들어가 아예 GPS 신호가 끊기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은 당황하지 않고 현재 위치를 꾸준히 보여준다. 부정확한 GPS 신호를 보완하는 알고리즘 덕이다. 이 알고리즘은 자동차가 지나온 경로와 최신 GPS 신호를 통계적으로 조합해 현재 위치를 파악한다. 만약 GPS 신호가 부정확해지면 지나온 경로에 더 많이 의존하는 식이다.
 
칼만 필터(Kalman Filter)라고 불리는 이 알고리즘은 로켓의 위치 파악 등 기계장치의 위치 해석을 위해 고안됐다. 그런데 이 원리는 이미 뇌에서 움직이는 물체의 위치를 인식할 때 활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눈으로 들어온 감각 신호도 GPS 신호처럼 부정확할 때가 많다. 이를 보정하기 위해 뇌는 물체의 궤적과 현재 눈에 들어오는 신호를 통계적으로 분석해 현재 위치를 추론한다. 결국 커브볼 착시는 뇌의 착각이 아니라, 오히려 뇌가 똑똑하다는 증거인 것이다.

이번 연구 결과를 야구에 적용하면 커브볼뿐 아니라 야구공을 칠 때 ‘시선을 야구공에 두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만약 시선을 야구공 외에 다른 곳에 두면 실밥이 만들어내는 움직임 신호 때문에 뇌가 다른 계산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야구뿐 아니라 우리 삶에서도 ‘한눈팔지 않을 때’ 뇌의 똑똑한 추론이 제 힘을 발휘한다. 목표에 집중하는 건 언제나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