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식,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삭발식,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 박상재 기자
  • 승인 2015.07.15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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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상 위원장부터 김동만 위원장까지 5번의 삭발식
삭발식이 총파업까지 이어진 건 1번
13일 오전 11시 여의도 천막농성 기자회견에서 김동만 위원장이 삭발식을 진행했다. ⓒ 한국노총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이 13일 한국노총 지도부 천막농성 기자회견에서 머리를 깎았다. 기자회견의 사회를 담당했던 강훈중 한국노총 홍보선전본부장이 삭발식을 두고 ‘계획에는 없었지만,’이란 표현을 한 것처럼, 김동만 위원장의 삭발에 현장에 있던 간부들도 놀란 분위기였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전부터 투쟁상황실에서 삭발식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있었고, 기자회견 당일에 김동만 위원장이 삭발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국노총이 위원장 삭발식을 통해 투쟁 의지를 밝힌 건 최근 10년간 김동만 위원장을 포함해 5번 정도이다. 1996년 당선된 박인상 한국노총 16대 위원장은 1996년 김영삼 대통령 시절 정부가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 변형근로시간제 도입과 관련한 노동법 개정을 강행할 움직임을 보이자 10월 15일 노사관계개혁위원회 탈퇴를 선언한다. 그리고 정부가 노동법 개정을 ‘연내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보이자 총파업을 선언하고 12월 17일 여의도 노총강당에서 산별대표자들과 삭발을 한 적이 있다.

박인상 위원장 다음으로 18대 위원장에 당선된 이남순 위원장은 2002년 조흥은행노동조합 총파업 전진대회에서 삭발식을 진행했다. 당시 조흥은행노동조합은 정부가 신한금융지주회사로 매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독자생존을 위한 투쟁을 전개했고, 이남순 위원장도 삭발을 통해 조흥은행 매각 저지를 위한 투쟁에 함께 할 것을 보인 바 있다.

이용득 19대 한국노총 위원장은 2005년 6월 24일 청와대 앞에서 삭발식을 진행했다. 2005년 6월 14일은 특수고용직 노동3권 보장을 위한 결의대회를 마치고, 사조레미콘 현장 투쟁을 전개하던 김태환 열사가 회사가 동원한 차량에 치여 사망한 날이다. 이후 이용득 위원장은 김태환 열사 사망에 대한 진상규명, 특수고용직 노동3권 보장 등을 요구로 하는 총파업을 전개하겠다고 밝히며 청와대 앞에서 산별노조 대표자들과 삭발식을 진행한 것이다.

▲ 2009년 10월 15일 장석춘 위원장(왼쪽에서 세번째)을 비롯한 한국노총 지도부가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삭발식을 진행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22대 위원장으로 선출된 장석춘 위원장은 2009년에 노조법 개정 방침 철회를 요구하며 삭발식을 전개했다. 당시 정부는 1997년 제정됐으나 계속 유보됐던 노동조합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내용이 담긴 노조법을 2010년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장석춘 위원장은 10월 15일 한국노총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삭발식을 통해 총파업 결의를 보였다.

박인상 위원장부터 장석춘 위원장까지 진행된 삭발식은 모두 총파업을 앞두고 진행됐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조금 다른 점은 이남순 위원장의 경우 조흥은행 매각 저지를 위한 조흥은행노동조합 차원의 총파업에 힘을 싣기 위한 삭발식이었다면, 다른 세 위원장은 한국노총 차원의 총파업을 앞둔 삭발식이었다는 정도이다.

이번 김동만 위원장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앞서 10년간의 삭발식이 결과적으로 한국노총 차원의 총파업까지 이어진 적은 박인상 위원장 시절을 제외하곤 없다. 총파업에 이르기 전 협상을 통해 매듭을 지은 것이다. 총파업 가결 선언 이후에도 여전히 현장에선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현 상황에서, 이번 김동만 위원장의 삭발식 이후엔 어떤 상황이 전개될 것인지 새삼 주목해 볼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