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제 일자리 2년, 양질의 일자리가 없다
시간제 일자리 2년, 양질의 일자리가 없다
  • 장원석 기자
  • 승인 2015.08.0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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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발표와는 달랐던 현장 목소리
시간제 노동자 보호제도와 정부의 명확한 방향 설정 필요
[사건] 시간제 일자리

2013년 6월, 정부에서 발표한 ‘고용률 70% 로드맵’은 2017년까지 고용률 70% 달성, 장시간 근로시간 개선, 남성 중심의 근로구조 탈피 등을 내세웠고 그 대안으로 시간제 일자리가 등장했다. 이명박 정부 말기 등장했던 시간제 일자리는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면서 일자리 정책의 핵심 부분 중 하나로 떠올랐다. 시간제 일자리 본격 도입 2년, 그동안 정부는 두 차례에 걸쳐 ‘시간선택제 일자리 활성화 추진 계획’을 추진하고 각종 지원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진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타나지는 않고 있다. 오히려 현장에서는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불만이 차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은행에서 시간제 노동자로 일하는 A씨

올해 서른이 된 A씨는 작년, 한 은행에 시간제 행원으로 입사했다. 30대를 앞두고 있던 A씨는 올해가 지나가면 끝이라는 생각에 일자리를 알아보던 도중, 금융권에서 시간제 일자리를 도입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돈도 일하는 시간에 비하면 여타 아르바이트보다는 낫고, 근무태도가 좋거나 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A씨는 하루에 4시간 일하고, 어느 정도 돈을 받으면서, 나머지 시간에 겸업을 한다든가 자격증 공부를 하면서 일자리를 알아보면 좋겠다고 생각해 입사 지원을 했고 꽤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들어가서 보니 대부분이 은행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A씨는 노력한다면 정규직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희망에 부풀었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고 나니 시간제 일자리는 생각처럼 장밋빛은 아니었다. 4시간만 일한다는 것부터 문제였다. 우선 업무시간을 스스로 정하지 못했다. 정오부터 오후 4시까지 일하다보니 남는 시간을 쓰기가 애매했다. 일도 바로바로 끝나지 않았다. 은행 마감시간 이후에도 일하는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 일찍 출근해서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딱 시간을 맞춰서 일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런 태도로는 재계약이 안 될 것 같아 A씨는 추가근무를 계속했다.

급여나 복지에 있어서 차이는 어느 정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제 일자리를 바라보는 정직원들의 시선은 불편했다. 회의가 있어도 결과만 듣고, 회식도 시간제 노동자는 빼놓고 따로 했다. 당연하게 커피 심부름이나 잡일을 시키는데 그럴 때마다 A씨는 근무 의욕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A씨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재계약이였다. A씨는 1년씩 계약하는 방식으로 일하고 있는데 재계약 전 달에는 피가 바짝바짝 말랐다. 그나마 운이 좋아 재계약을 할 수 있었지만 같이 들어온 사람 중에는 재계약을 못한 사람이 있었다. A씨는 내가 저렇게 안돼서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내년에는 저렇게 되지 않을까 섬뜩했다고 한다. A씨는 재계약 이후 취업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여기서 계속 있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간제 노동자는 쓸 데가 없다

하지만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정직원 B씨의 말은 또 달랐다. B씨는 시간제 노동자의 능력을 ‘공익근무요원 수준’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말 바빠서 손이 아쉬운 상황이 아니면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B씨는 “남들이 8시간 일하는데 4시간 일하는 사람이 들어온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일이라는 것은 연속성이 있는데 하루의 절반을 모르는 사람과 업무를 같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또 시간제 노동자가 들어와서 그만큼 정규직 노동자의 자리가 줄어들었다고 말한다. 원래 들어올 행원 수보다 더 많이 들어왔으니 좋은 게 아니냐는 은행 측의 말에 B씨는 어처구니가 없었다고 한다. B씨는 “여기 있는 시간제 노동자 모두 대신 전일제 계약직 한명을 뽑아 쓰는 것이 더 능률이 좋을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B씨는 시간제 노동자들은 일반 고객 응대, 전표 정리 등 기초적인 업무만 하고 있고 계약직이다 보니 일에 대한 열의도 부족해 보인다고 했다. 한 예로, 어떤 시간제 노동자가 자꾸 업무 중에 전화 통화를 하기에 상사가 주의를 줬더니 계약이 종료되는 약 3개월 동안 퇴근 시간이 되자 고객이 있든 없든 퇴근해버리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B씨는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숨기지 않았다. 정부에서 우격다짐으로 실시하고 은행은 보조금이나 평가 때문에 도입한 다음, 정권이 끝나면 흐지부지 돼버리니 피해를 받는 사람들은 결국 말단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시간제 교사로 학교에서 일하는 C씨

역시 올해 서른인 C씨는 경기도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시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다. 영문과를 졸업하고 약 3년 동안 임용고사를 준비한 C씨는 가족의 눈치도 보이고 쓰는 돈도 많아져 2013년 기간제 교사에 지원했다. 그러나 학교에서 1년 정도 일했지만 임용고사를 계속 보고 싶어 그만 두고 임용고사를 준비했다. 그러던 도중 학교에서 시간제 교사를 채용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C씨는 “시간제 교사는 아무래도 일하는 시간이 적으니 공부를 하면서도 생활비는 벌지 않겠나 생각해서 지원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일하면서 C씨는 “내가 여기서 더 험한 꼴을 보기 전에 빨리 일반 교사에 합격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우선 시간제 교사는 담임을 못하고 수업만 들어가니 단순 강사 역할 이상을 할 수 없었다. 상담이나 생활지도를 할 수가 없는 상태다. 학생들이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 같은 선생님들과 밀착한 상태에서 교육과 상담을 받아야 청소년기에 형성할 수 있는 여러 가지를 완성할 수 있는데 지금 시간제 교사들은 그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C씨는 그러다보니 학생들이 기간제 교사나 시간제 교사를 대하는 태도에도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얼마 전에는 학생이 자신에게 “당신은 선생이 아니라 교육서비스 종사자”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C씨는 일반 교사와의 문제도 있다고 말한다.  보통 공통의 과목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수업 방향, 진도에 대해 꾸준하게 협의를 계속 하는데 시간제 교사는 협의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냥 결정된 내용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C씨는 “아르바이트로 생각한다면 적어도 추가근무는 안했으면 좋겠다”며 “시간제 교사도 숙제검사나 수업·수행평가 준비 때문에 수업 이후에도 일하는데 업무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C씨는 시간제, 기간제 교사가 확대되면 결국 일반 교사의 자리가 줄어들게 되고 임용고사의 문이 점점 좁아지기 때문에 교사 지망생들이 시간제나 기간제에 지원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벌어질 것이라 말한다. 또 시간제, 기간제 교사들은 대부분 임용고사를 준비하기 때문에 매년 임용고사가 시행되는 시기가 되면 많은 수가 일을 그만두는데 그래서 생기는 수업 공백은 고스란히 학생의 몫으로 돌아간다는 점도 지적했다.

일반 교사들은 시간제 교사들이 오면 차라리 수업을 맡기지 말고 학교 행정업무를 맡기는 게 낫지 않냐고 말한다고 한다. 그 부분은 C씨도 동감한다. 시간제 일자리가 공공부터 민간까지 확산되고 있는데 전문성, 공공성이 필요한 직종에는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고등학교 3년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 중 하나다. 중간에 가르치는 사람이 바뀌어버려서 학생들이 학업에 지장을 받는다면 인생에 있어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시간제 일자리, 온도차가 크다

고용노동부의 발표를 보면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순조롭게 안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원 인원은 약 10배 증가(2014년 1월~3월 기준 4,680명. 전년 동기 459명)하고 호텔, 테마파크, 심리 상담까지 다양한 업종으로 시간선택제가 확산되고 있으며, 기업 만족도도 5점 만점에 4.05점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3년 62.2%에서 2015년 89.3%로 증가했고 월 평균 임금(133만 7천 원)과 시간당 임금(9,439원)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각종 공모전과 세미나, 채용박람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2015 예산안에서 고용노동부는 시간선택제와 관련해 325억 원을 편성했다. 2014년에 비해 98억 원이 많다. 또한 이번 추경안에 137억 원을 더 잡아놓은 상태다. 5,200개 일자리가 추가로 만들어진다는 계산 아래 편성한 예산으로, 특히 기업이 시간선택제를 도입할 경우 이를 지원하기 위한 예산이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정부 밖에서 시간제 일자리를 바라보는 시선은 또 다르다. 한국무역협회(KITA) 국제무역연구원이 2014년, 4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도입한 기업은 전체 대상의 10.0%, 기업이 고용한 근로자 수는 평균 5.1명, 도입률이 가장 높은 기업은 상시근로자 수 49명 이하로 나타났다. 공공부문의 시간제 일자리 채용도 답보상태다. 2014년, 국가·지방자치단체는 1,060명의 시간제 노동자를 채용하기로 계획했지만 실제로는 883명을 채용했다. 1,000명의 채용계획을 밝혔던 공공기관들도 112명을 채용했을 뿐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올해 발표한 ‘지난 10년간 시간제 일자리의 질적 변화’에서는 300인 이상 대기업에서의 시간제 노동자 비율이 2.8%에 불과했다. 처음 시간제 일자리가 나올 때 앞 다퉈 의욕적으로 나서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대기업에서도 목표치에 미달하는 시간제 노동자를 채용해 2차, 수시 채용을 하고 있는 상태며 중소기업은 보조금 수급을 목적으로 아르바이트 대신 시간제 노동자를 채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근로계약서, 시간외 수당, 상여금, 유급휴일의 문제도 전일제 근로자에 비해 여전히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노동조합 가입률이 0.6%로 낮은데다가 노동조합 가입대상이 아닌 소형 사업장에서 일하는 비율이 증가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드러났다.

시간선택제 일자리에 주로 여성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도 큰 문제다. 한국의 여성 고용률은 OECD평균보다 고졸이하의 경우 12.4% 높고, 고졸 9%, 대졸이상은 18.6% 낮다. 시간제 일자리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74.5%로, 특히 여성 노동자들 중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자 비율이 2014년 기준 32.1%로 나타났다. 저임금 노동자중 시간제 여성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41.6%로 나타났으며 생계를 목적으로 하는 미혼 여성 노동자가 31.7%로 증가했다.

이러한 모습은 정부에서 말하는 “자기 필요에 따라 풀타임, 파트타임을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차별받지 않는 반듯한 일자리”, “전혀 차별받지 않는다는 취지에서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와는 거리가 있다.

현대경제연구소의 이준협 연구위원은 시간제 일자리의 질이 악화되는 원인을 ▲자영업자가 많은 저부가가치 산업 및 소규모 사업체에서 시간제 일자리의 가파른 상승세 ▲취업애로계층인 여성과 고령층, 청년, 저학력자 중, 시간제 일자리에 종사자의 가파른 상승세 ▲기업과 정규직 근로자의 이해가 일치로, 정규직 노동시장과 비정규직 노동시장의 분단 구조가 고착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가 전일제 비정규직, 시간제 일자리보다 비용부담이 크기 때문으로 보았다.

시간제 일자리의 성공을 위해서

전문가들은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 정책이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시간제 일자리의 양적 팽창에만 몰두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시간제 일자리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려면 고용률 70%라는 수치에서 벗어나 고용률을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만드는데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확대를 위해 필요한 것으로 전체 시간제 일자리 중, 9할에 이르는 중소기업 시간제 일자리의 질 향상을 뽑을 수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보고서에서도 정부가 인건비, 사회보험료, 복리후생비 보조와 함께 직무분석 및 인사제도 재설계를 위한 컨설팅을 제공하여 중소기업의 행정·재정적 부담을 경감시켜 시간제 일자리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근로기준법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시근로자 49명 이하 사업장에 근무하는 시간제 근로자들을 위한 법적, 행정적 지원이 필요한 실정이다. 시간제 근로자의 매우 낮은 노동조합 가입률 역시 정부가 제도적으로 시간제 노동자 보호 입법 및 근로감독 등 제도정비를 필요로 하는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네덜란드, 일본 등은 시간제 노동자 보호법을 제정하여 시행중이다. 2012년 기준 56.6%에 불과한 시간제 임금 노동자의 임금 수준을 높이기 위한 제정 마련 방안도 중요하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주최한 ‘시간선택제 일자리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한국개발연구원 황수경 박사는 “시간제 일자리 사업의 부진 원인은 수요 부족이 아니라 정책의 타게팅, 인센티브 설계, 전달체계, 홍보 부족 등 현재 지원제도와 사업방식의 문제”라고 말했다. 시간제 일자리의 질적 향상만큼이나 정부가 정책 방향성을 명확히 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더불어 시간제 근로시간 외의 시간 활용문제 또한 중요하다. 지난해 한국개발연구원 설문조사에서 청년층이 개인시간 활용과 일·학습병행을, 여성은 자녀 양육·교육을 시간제 일자리 희망 이유로 들고 있다. 더불어 청년층은 요일제, 여성은 시간 단축형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개별 집단의 특성을 파악하여 맞춤식 직무형태를 가진 시간제 일자리를 골고루 개발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정규직, 전일제 근무자와 지속적으로 협업이 가능한 직무개별로 시간제 노동자가 단순 업무보조만 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시간제 일자리의 성공적인 정착에 필요한 요소로 ▲자발적인 사유로 선택 가능 ▲지속적으로 근무 가능 ▲정규직과 같은 사회·노동제도 제공 ▲정규직 대비 70% 이상의 임금조건 ▲직업능력향상, 승진의 기회 보장▲ 능력과 숙련에 맞는 고용 등을 뽑았다.

그러나 시간제 일자리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양분화 되어 있는 노동시장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해, 올바른 시간제 일자리의 확산은 상당한 진통이 예상되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