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야 노올~자!
문화야 노올~자!
  • 김경아 기자
  • 승인 2006.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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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도 함께, 지역민도 함께, 가족도 함께
광주지역 4개 노동조합, 지역민 위한 문화 한마당 열어

▲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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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1일 늦은 저녁. 광주광역시청 야외음악당에서는 조금 특별한 문화행사가 열렸다. 지역주민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공연은 국악과 서양음악의 접목이라는 소재도 독특하지만, 행사를 주최한 단체가 노동조합들이라는 점이 더 시선을 끌었다.

국악실내악단 ‘황토제’의 공연을 추진한 ‘문화야 놀자’는 광주시에 위치한 기아자동차노동조합 광주지부(지부장 김준겸), 광주은행노동조합(위원장 하희섭), 금호타이어노동조합(위원장 허용대), KT노동조합 광주전남본부(본부장 임종대)가 모여 결성한 일종의 지역사회 문화 향상 프로젝트 팀. 지역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기아차 사주기 운동’ ‘광주은행 살리기 운동’ 등을 통해 먼저 손을 내밀어준 지역사회에 보답하고 ‘지역사회의 삶의 질 향상이 곧 조합원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취지로 출발한 단체다.

지난 5월 첫모임을 가진 ‘문화야 놀자’ 집행위원회(집행위원장 김준겸 기아차노조 광주지부장)는 첫 문화 마당으로 국악실내악단인 ‘황토제’ 공연을 열기로 했다.

‘황토제’가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하고 있을 뿐 아니라 현대적 감각을 접목시킨 국악이 가족과 함께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다는 판단이었다. 재정은 4개 노조가 300만원 씩 분담하고 출연진 섭외와 홍보, 행사기획과 진행 등도 모두 조합원들의 손을 빌리기로 했다. 무대와 객석, 공연기획자와 관객을 분리하는 것이 아닌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축제의 장을 만들자는 취지다.

참여의 폭을 더 확대하기 위해 ‘황토제’ 공연은 물론 조합원들의 장기자랑도 함께 준비했다. 각 노조에서 추천으로 무대에 오른 조합원들은 마술, 클래식기타, 노래까지 다양한 재주를 선보이며, 이날만큼은 ‘새벽같이 나가 밤늦게 들어오는 재미없는 엄마ㆍ아빠’가 아님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아빠 회사’, ‘아빠 노조’가 자랑스러운 날

2~3주 동안 주최측의 속을 태우던 빗줄기는 자취를 감추고 오랜만에 하늘이 말간 얼굴을 드러냈다. 공연을 준비한 사람들의 얼굴도 함께 갰다. ‘문화야 놀자’ 김준겸 집행위원장은 그제야 긴장을 놓고 말문을 연다. “임단투 때문에 시민들이 노동조합을 보는 눈이 곱지 않아요.

이번 행사가 임단투와 연결해서 시민들의 인기를 얻으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죠. 하지만 오늘 축제는 단지 지역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시민과 조합원 모두가 어우러지고 함께하는 장입니다”

공연을 찾은 사람들은 노동조합 티셔츠를 입은 조합원에서부터 가족, 연인, 사제지간까지 다양하다. 가족들이 나란히 앉아 준비해온 김밥을 먹기도 하고 행사 안내장을 들여다보며 아이들에게 공연 내용을 설명해주는 엄마들도 곳곳에 눈에 띈다.

▲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이날 공연에서 무엇보다 신난 것은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공연보다도 자기 엄마·아빠·이모·삼촌들이 나오는 장기자랑이 더 관심인 모양이다. 특히 기아자동차 조합원이 선보인 ‘마술쇼’는 가장 큰 인기를 끌었다. 이날 ‘마술쇼’를 준비한 기아자동차 조립2부 최승재 조합원은 “노조에서 너무 좋은 취지로 공연을 한다고 해서 흔쾌히 무대에 올랐다”며 흐뭇하게 웃는다.

아이들뿐 아니다. ‘개구리 왕눈이’, ‘은하철도999’ 등 추억의 만화영화 주제곡이 흐를 때는 어른들마저 아이가 된 것처럼 박수치고 따라 부르며 동심으로 돌아갔다.

행사를 관람한 기아자동차 김명구 상무는 “공장에서 일하다보면 정서적으로 메마르기 쉬운데 이런 기회가 잦아지면 직원들의 정서함양에 매우 좋을 것”이라며 “특히 노동조합에서 이런 기회를 만든다는데 기대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금호타이어에 근무하는 남편을 통해 행사장을 찾았다는 한 시민은 “무료로 좋은 공연을 볼 수 있다고 해서 왔는데, 오늘 행사처럼 아이들과,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장을 많이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좋은 음악을 들으니 태교에 좋을 것 같다”며 흐뭇하게 아내의 부른 배를 바라보는 기아자동차의 조합원. 손녀와 함께 공연장을 찾은 노부부, 여름밤인데도 손을 꼭 잡고 있는 연인, 교복 입은 제자와 나란히 앉아 담소를 주고받는 교사, 아빠가 다니는 회사, 아빠가 속한 노조에서 여는 행사라서 더 신나고 자랑스러운 아이들.
행사에 참석한 모두가 함께 주인이 됐고 ‘지역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잠시나마 하나가 됐다.

지역사회와 노동조합을 엮어줄 하모니
같은 지역에 위치해 있긴 하지만 사업장 규모며 업종, 노조 내부 상황도 다른 4개 노조가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오직 ‘지역사회’라는 공통분모. 그간 기업 내부의 이해관계에 머물던 활동 반경을 조합원들과 그 가족들이 살아가는, 그리고 자신들이 생산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해주는 ‘고객’들의 삶의 터전인 지역사회로 눈을 돌리는 것은 넓은 의미의 ‘연대’고 ‘소통’이라는 취지로 출발했다.

하지만 노동조합에서 문화를 고민한다는 자체가 생소하기도 할뿐더러 전례도 없는 일이라 발걸음을 맞추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그렇지만 이번 공연은 ‘희망의 씨앗’을 뿌렸다는 자평이다. 기아자동차노동조합 광주지부 조진국 부지부장은 “흔히 톱니바퀴를 노동자에 많이 비유한다.

톱니바퀴는 하나라도 어긋나면 돌아가지 않는다”면서 “광주의 4개 노조가 함께 모여 톱니바퀴처럼 잘 돌아간 것이 좋은 열매를 맺었다고 본다”고 전했다.

또 KT노동조합 전남지방본부 류인석 사무국장은 “더 많은 사람이 함께 하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앞으로 더 많은 광주지역 노동조합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며 지역 노동조합 간의 네트워크 형성의 포부를 내비쳤다.

‘문화야 놀자’가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격월로 진행될 예정이다. 노동조합이 몸담고 있는 지역사회와 함께 숨쉬고, 아이들에게 풍부한 경험을 만들어 주고 더불어 조합원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을 열어주는 꿈. 그 꿈을 위해 작은 소리를 하나씩 조율해가는 이들의 하모니가 지역 노동계와 지역사회에 큰 울림으로 연주될 날을 기약한다.

▲ '황토제
"노조와 문화의 만남 나를 끌어당긴 자석"

공연을 모두 마친 소감은?
연주자들도 모두 신명나는 시간이었다. ‘황토제’가 기존에 해오던 공연과는 다르게 만화영화 주제곡, 대중가요 등도 연주했는데, 이것이 ‘황토제’가 시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간 계기가 된 것 같다.


5ㆍ18문화제 음악감독, 광주음악제 등을 기획하고 연출했는데, 지역문화에 대한 고민이 많은 것 같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광주라는 지역사회에 몸담고 있으면서 그렇게 흘러온 듯하다. 타 지역사람들은 광주를 진보적인 도시라고 하지만 사실은 꽤 보수적인 도시다. 5ㆍ18이라는 사건은 외부에서 부여하는 ‘진보성’의 의미를 떠나, 광주사람들에게 한이고 상처이다.

그런 상처들이 있는 그대로를 순수하게 바라볼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문화’가 광주사람들의 그런 껍질을 깨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처음 노동조합에서 공연 제안을 받았을 때 어땠나?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굉장히 마음이 ‘당기는’ 일이었다. 노동조합에서 이런 공연을 수용한다는 것 자체가 신선했다. 노동조합이 이런 유연성을 발휘했다는 점도 이 일에 뛰어들 수 있게 나를 자극했다. 다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기회에 지역 노동조합 간, 그리고 노동계와 문화계의 네트워크를 형성했으니 앞으로는 더 넓혀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